로지코믹스 - 버트런드 러셀의 삶을 통해 보는 수학의 원리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 & 크리스토스 H. 파파디미트리우 지음, 전대호 옮김, 알레코스 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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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런트 러셀이 수학자로써보다 철학자로써 더 잘 알려져있다는 것은 그의 특이한 위치를 잘 설명하고 있다. 르네상스맨이 존재할 수 있었던 마지막 시대라고 불리는 1900년대 초반, 그 역시 수학, 철학, 논리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지만 실상 그의 삶의 목표는 분명 수학에 놓여있었다고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학사에서 그는 하나의 터닝포인트로 남아있을 뿐이다. 그가 남긴 대표작 [수학의 원리]가 미완성으로 남았다는 것 역시 그러한 사실을 잘 반영한다 할 수 있지 않을지.. 때문에 당대의 허다한 수학자 중 유독 버트런트 러셀을 주인공으로 택한 이 책이 더욱 흥미롭게 다가왔던 것 같기도 하다.

이 책은 이중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저자인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 등이 등장하여 이 만화책의 내용을 구상하는 외부와 그렇게 구상되어가는 버트런트 러셀의 인생이 그려진 내부이다. 내용 역시 이중적이다. 한편으로는 1900년대부터 50년대에 걸친 수학사의 중요한 장면들을 그려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시련, 도전, 좌절, 극복으로 점철된 한 개인 '러셀'의 삶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수학사적으로 워낙 격동적이었고 수많은 천재들이 자웅을 겨루던 화려한 시대였던만큼, 이 책에서도 수많은 수학자들과 엄청난 수학적 발견들이 등장한다. 칸토어, 프레게, 힐베르트, 비트겐슈타인, 푸양카레, 튜링, 화이트 헤드 등의 인물들이 집합론, 무한론, 논리철학, 러셀의 역설, 불완전성의 정리 등 다양한 이론을 발견하고 그에 대에 반박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과정이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한정된 분량과 만화라는 매채의 특성상 세세한 서술이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때로는 코믹하게, 때로는 영화적 기법으로 핵심되는 개념을 흥미롭게 전달하고 있는 점이 놀라웠다.



책의 또다른 주제는 좀 더 보편적이다. 누구나 만날 수밖에 없는 도전과 그에 대한 응전, 그리고 좌절과 극복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러셀의 경우 수학사에 남긴 족적이 작다 하지는 못하겠으나 사실 스스로의 삶에 대해 '실패다'라고 생각했다 해도 무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가족사적인 광기에 대한 두려움과 그로 인한 반동으로써의 논리학에 대한 집착, 그리고 개념화된 세계속에 살면서 현실을 도식화함으로써 겪게 되는 남편 혹은 아버지로써의 실패,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가 가장 신뢰했던 수학적 기반에 대한 불확실성의 발견 등... 그런 삶을 살았던 그이기에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마친 후, 지면상에서 그가 던지는 다음의 말이 더욱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확실성의 모범인 논리학과 수학에서도 완벽한 이성적, 확실성에 도달할 수 없다면 하물며 복잡하고 어지러운 인간사에서는 더 말할 것이 잇겠습니까?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을 막론하고 인간사에서 완벽한 이성적 확실성에 도달하기는 정녕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말한다. 이 이야기는 교훈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이 이야기는 단지 여러분들의 태도를 결정하는 데 지침이 될 수 있으리라고 말이다. 어떤 태도를 취할지 그 대답은 결국 각자에게 달려있는 것이라고..

흥미로운 구성과 유려한 그림체가 인상적인 이 작품은 작가의 말을 빌리지 않고서라도 전기라기보다 소설의 인상을 준다. 그만큼 저자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목적이 뚜렷했던 것이다. 즐겁게, 인상깊게 읽을 수 있었던 훌륭한 코믹스가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후속작이 계획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번에는 어떠한 인물의 삶을 새롭게 채색해줄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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