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와 비밀의 부채
리사 시 지음, 양선아 옮김 / 밀리언하우스 / 2011년 2월
평점 :
절판





[설화와 비밀의 부채]라는 깔끔한 제목 아래 부채 하나가 그려진 표지가 눈에 들어온다. 차분한 옥빛 배경아래 화려한 부채에는 어떠한 비밀이 담겨 있는 것일까? 그리고 분명 중국을 배경으로 하는 이 이야기가 캐나다의 여성 작가 손에서 탄생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그녀의 그간 저작 활동을 보면 중국이라는 소재에 천착해온 작가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독특한 시각을 기대해야 하는 책인걸까? 여러가지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이 책은 설화와 나리라는 두 명의 중국 여인의 삶을 따라간다. 나리는 이 책의 화자로써 담담히 그녀의 삶을, 그리고 그녀의 영혼의 단짝 [라오퉁]인 설화의 삶을 그려나간다. 1800년대 여성에게 전족이 강요되고 여성으로써의 역할이 명백히 규정되어 있던 중국 사회에서 여성들은 그들의 슬픔과 기쁨을 다른 여성 동지들과 나누기 위해 누슈라는 글을 사용했다 한다. 여성의 목소리를 대신하는 누슈, 설화와 나리는 그들이 라오퉁으로 묶인 날부터 부채에 누슈로 편지를 써서 주고 받으며 사랑보다 깊은 우정을 쌓아나간 것이다.




전족을 하게 되는 잔혹한 과정과 가족의 명예와 부를 위하여 낯선 곳으로 시집을 떠나는 과정, 고된 시집살이까지 담담하게 그려가는 이 글에서 역설적이리만큼 강렬하게 생동감 있는 부분이 있었다. 아름답고 지혜로운 설화가 삶에 찌들어가 초라해지는 동안, 나리는 지역 유지인 시댁에서 큰마님으로 자리잡아 가게 된다. 강한 인습에 묶여 살아가게 된 나리는 설화를 누구보다 사랑하면서도 그녀에게 위로가 되어주지 못했다. 그저 전통적인 여인의 역할에 충실하게 살아가라고, 그러면 너도 행복해질 것이라고 조언을 거듭할 뿐이다. 상처입은 설화가 "있는 그대로 나를 봐주고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해"라고 말하는 순간, 그들의 우정은 비틀려 버린다.

설화가 최후를 맞는 순간 이들의 우정은 다시 회복된다. 그러나 설화가 비참히 죽어가는 순간까지, 친구의 우정이 가장 필요한 때에 라오퉁으로써의 역할을 다 하지 못했던 나리는 평생 그 슬픔을 안고 살아간다. 그들의 비극은 당대 중국이 여성에게 짐지웠던 공고한 인습의 끈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그 비극은 사랑하는 이를 소유하려 하고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변화시키려고 하는 인간의 변함없는 욕망으로 인해 폭발한 것이기도 하다. 이 책은 페미니즘의 냄새를 강하게 풍기면서도 보편적인 설득력의 끈도 놓치지 않은 것이다.




중국의 근대사에 대해 무지한 내가 이 책이 얼마나 중국의 당대모습을 잘 담아냈는지 이야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전족의 과정, 결혼식 모습, 가문에 대한 여성의 역할 등 세세한 부분에서 충실히 그림을 그려내는 것을 보노라면 이 책의 작가가 저술에 앞서 많이 공부하고 많이 고민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된다. 다소 담담한 플롯은 이러한 성실함과 세밀함으로 벌충되고 있지 않은가 싶다.

이 책이 [조이 럭 클럽]의 왕 웨인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다고 한다. 그간의 이력을 감안해보면 이 책을 영화화하기에 가장 적절한 감독이 선택된 것으로 생각된다. 또 설화역에 전지현이 캐스팅된다고 한다. 격렬하게 오르내리는 설화의 삶을 연기해내는 것이 배우 전지현에게 커다란 도전이 되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원작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면 실망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 영화는 그러한 기대를 기분좋게 배반해주는 작품으로 탄생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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