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 그림과 만나다 - 젊은 인문학자 27인의 종횡무진 문화읽기
정민.김동준 외 지음 / 태학사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정민 님의 한시 미학 산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에도 이런 책이 나오는구나'라고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확실히 좋은 책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법, 베스트셀러로 많은 이의 사랑을 받는 것을 보고 괜히 흐뭇해 했었더랬다. 그 후 정민 선생의 책이 많이 나오지 않기도 했고 출간된 책이 대부분 전문성이 강하여 그만큼 사랑받는 책은 나오지 않았지만, 많은 이들이 그의 이름에 가지는 신뢰는 쇠하지 않을 것 같다. 이 책 '한국학 그림과 만나다'는 그렇게 정민 선생의 이름에 기대는 바가 큰 책이며, 실제로 한시 미학 산책을 연상시키는 면이 많은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인문학자 모임인 [문헌과해석]에 참여하고 있는 인문학자 27명이 한 꼭지 한 꼭지씩 글을 땋아 엮어낸 책이다. 전체 4부로 구성되어 있지만 각 부간 크게 구별되는 면은 없으며, 그림을 통하여 역사를 재구성하고 복원한다는 한국학의 목적의식에 충실하게 서술되고 있다. 즉 각 꼭지마다 그림과 시화를 즐기고 읽어갈 수 있는 편안한 책이라 하겠다.







서양화는 '보는' 것이고 동양화는 '읽는' 것이라던가? 시서화가 구별되지 않고 함께 가는 한국 문예의 특성을 한껏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의 첫번째 매력이다. 사실 나는 동양화가 '아름다운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시서화가 함께 어우러질 때 발생하는 시너지 효과에 대해서는 매번 경탄을 하게 된다. 500쪽이라는 적지 않은 분량에 가득히 그림과 시가 세세히 소개되어 있어 내게는 한편한편 읽어가는 것이 너무나 즐겁게 느껴졌다. 한국화가 가지는 매력을 최대한 생생하게 독자에게 전달하기 위하여 사진의 질은 물론 종이의 질까지 신경썼다는 것도 좋게 보인다.







그림과 시화를 통하여 역사적 인물들과 당대의 사회상을 읽어내는 즐거움도 적지 않다. 마치 추리 소설을 읽듯 재구성되어 가는 역사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독자에게 짜릿한 흥분을 안겨준다. 그리고 수백 년의 세월을 넘어서도 변함없이 드러나는 인간의 욕망과 의지, 성찰과 실수 등을 보노라면 감동과 회한, 슬픔을 느끼게 된다.







한 꼭지 한 꼭지 흥미롭지 않았던 것이 없지만 다산 정약용의 매조도에 깃든 일화를 약간 소개해볼까 한다. 오랜 세월 귀양지를 떠돌아야 했던 정약용은 멀리 떨어져 지내게 된 아내가 보낸 치맛자락을 종이 삼아 책을 만들고 그림을 남긴다. 아비 노릇 하지 못하는 애달픈 심정을 담아 아들들에게 가르침을 주는 [하피첩]을 쓰고, 시집가는 딸을 위하여 [매조도]를 그린 것이다. 그런데 같은 치맛자락을 소재 삼아 그려진 [매조도]가 한 편 더 있다는 점을 주목한다. 이것은 누구를 위한 매조도인가? 저자는 귀양갔던 정약용이 소실을 들였고 그 소실의 소생인 또 한명의 딸을 위해 이 그림을 그린 것이라고 밝힌다. 부정이 아름답게 담겨있지만 이 그림에 얼룩이 있음도 감추지 않는다. 해배된 정약용은 소실과 딸을 거두지 않았고, 결국 두 모녀는 무심히 잊혀져 버렸던 것이다. 비록 정실 부인의 등살에 밀려서라고 하지만, 당대에는(어쩌면 현대에도) 흔히 있을 법한 일이라 하겠지만, 이러한 얼룩은 정약용의 오라와 대비되어 묘한 인상을 남긴다. 그리고 이러한 삶의 면면이 글과 그림으로 남아 세월을 넘어 후세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이러한 분야에 관심있는 독자라면 소장하여 되풀이하여 읽을 수 있을 만하게 만들어진 책이다. 요즘도 가끔씩 [한시 미학 산책]을 꺼내 들어 그림 한편, 시 한편을 감상하곤 한다. 이 책도 [한시 미학 산책] 옆에 꽂아두고 손에 짚이는대로, 눈에 띄는 대로 한 꼭지씩 되풀이 읽고 다시 즐거움을 느끼게 될 것 같다. 아껴야 할 책이 하나 더 손에 들어온 것 같아 흐뭇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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