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사랑한다는 건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몇해 전, 갑작스런 변덕으로 영어 공부 좀 해볼까 싶어진 나는 서점의 원서코너를 기웃거렸더랬다. 여러 책이 있었지만 저자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고 내용도 흥미로울 듯하며 두께도 적절했던 결과, 나에게 간택된 책이 [Essays in Love]였다. 알랭 보통이라는 작가는 이름만 들어본 것이었고 어떤 책을 쓰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던 상태였다. 단지 책등에 써진 '사랑에 대한 감각적 단상'이라던가 하는 광고가 특별히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사랑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때니까.. 

후에 알게 된 것이지만 바로 이 책이 보통의 사랑 3부작이라 칭해지는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우리는 사랑일까], [너를 사랑한다는 건] 중 첫번째 편이었다. 결론적으로 이 책 한 권으로 인해 나는 보통에게 홀딱 반하고 말았다. 시원찮은 영어실력에도 불구하고 가슴을 직격해오는 작가의 감각적인 단상에 영어책이라는 것도 잊고 몇 번씩 되풀이해 읽었더랬다. 나를 더 놀라게 했던 것은 작가가 이 책을 쓴 때의 나이가 고작 23살이었다는 점.. 이 정도의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 당시의 나보다도 어렸다는 게 나를 일종의 열등감에 빠뜨렸다고 할까?

시리즈 세번째 편인 [너를 사랑한다는 건] 역시 작가의 그러한 특기가 여지없이 발휘된 책이다. 개인적 어조로 일상에서 접하는 다양한 가치들을 문학, 철학, 역사를 아울러가며 논하는 것을 보노라면 혀를 내두르게 될 따름이다. 이 책에서도 보통은 사랑에 대한 탐구를 계속해 나가는데, 이번에는 [전기]를 그 도구로 사용한다. 특별한 인물의 특별한 삶에 대한 이야기인 [전기] 말이다. 작가는 이와 같은 전기의 고전적인 의미를 재해석하여 극히 개인적이고 미시적인 전기를 써간다. 바로 그녀의 '여자친구'에 대한 전기를 말이다.

이처럼 언어구사와 감각성으로 승부하는 책을 요약하고 분석하는 것은 불가능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무의미하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읽을 가치가 있다, 직접 읽으면 그 맛을 알 수 있다는 뻔한 말이 가장 적절한 소개가 아닐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개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작가의 특성이 잘 러난 부분을 직접 인용하여 보여주는 것 정도가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손톱 깎기는 그 아름답지 못한 면이 보는 사람의 관대함을 요구하기 때문에 사적이다. 몸단장을 하거나 화장을 하지 않고 아침을 먹으러 나타나려면 신뢰가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사생활은 친절한 마음 또는 동정심을 갖고 보아야 하는 면이 담겨 있다. 사생활은 우리의 노출된 순간의 기록이다.


...우리 자신이나 우리의 생각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그 자체의 특질보다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쪽의 마음 상태와 더 깊은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뭘 할 때는 늘 느긋하게 해라"라는 말은 마침 그런 말을 듣고 싶었을 때는 의미심장하게 들릴 수 있다. 반대로 약혼자와 행복하게 지내는 남자는 매혹적인 미소도 하찮게 여기는 것이다.


너무 많이 말하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듯이, 너무 적게 말하는 것도 위험해질 수 있다. 정보 부족은 우리의 상상력을 수많은 꾸불꾸불한 길로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사벨이 어떻게 운전을 하는지 일부러 말해주지 않았다면, 당신 또한 그녀의 짐 싸는 문제가 주차 문제까지 암시한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책을 읽어가다보면 이 책이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가 아닌가 생각하게 되곤 한다. 화자가 정말 작가이고 이사벨이 그의 여자친구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는 말이다. 특히나 책의 가운데에 실려있는 인물들의 사진을 보노라면 도대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일까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그만큼 이 책은 작가가 독자에게 건네는 개인적인 고백처럼 들리는 것이다. 작가가 이런 말을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당연한 형식일지로 모르겠지만...


"내 글은 모두 일종의 자서전이죠. 나는 늘 독자와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관련을 맺는 것, 내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온 글을 쓰는 것을 목표로 삼습니다."


굳이 따져보자면 아쉬운 점 한 가지. 작가가 구사하는 언어의 방식과 번역이 가지는 한계로 인하여 읽어나가다보면 턱 걸리는 곳이 적지 않게 등장한다. 보통에게 익숙한 사람이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이런 류의 책은 시원시원하게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거슬리는 면일 수 있다. 다만 그러한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작가가 소근거림에 귀를 기울인다면 그만큼의 즐거움도 더해지리라는 것은 장담할 수 있다. 덧붙이자면 이 작품은 작가의 초기작에 속하기 때문에 후기작에 비해 미숙한 부분도 간간히 나타난다. 하지만 이런 언급은 이 책의 단점에 대한 지적이 아니라 후기작을 읽으면 더 큰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담보라고 말한다면, 개인적 애정이 지나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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