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9
패니 플래그 지음, 김후자 옮김 / 민음사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는 내게 글보다 이미지로 먼저 떠오르는 책이다. 십여년 전 홀로 집에 있던 내가 주말의 명화에서던가, 토요명화에서던가 영화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에 채널을 고정시켰다. 워낙 오래전이라 지금은 영화의 구체적인 부분은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버렸지만 영화의 크레딧이 올라갈 때쯤 가슴 먹먹함에 눈물을 찔끔 흘렸던 것만은 기억이 난다. 캐시 베이츠 분이 연기했던 에블린이 노파의 수다에 귀를 기울여가던 과정, 그녀의 이야기에 힘을 얻어 스스로를 변모시켜가던 후반부가 또렷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 당시의 내게 '삶의 주인'이라는 명제가 화두였던 것은 아니었나 돌이켜본다. 영화를 보고 수년 후에야 이 영화가 베스트셀러 책을 원작으로 한 것임을 알게 되었지만 어째선지 책으로 찾아볼 생각은 못했더랬다. 그랬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갑작스레 이 책을 읽게 된 것을 보면 책에도 확실히 인연이 있는 것일까... 

책의 저자인 패니 플래그는 극작가와 배우로 활발한 활동을 하던 인물이라 한다. 그녀가 1987년 두번째로 쓴 장편소설이 이 책이었고 무려 36주간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로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한다. 저자가 레즈비언이었고 그와 관련하여 정치적 활동도 활발했다는 사실 역시 이 책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 책은 그녀가 활동했던 1980년대에 에벌린과 스레드굿 부인을 위치시킨 후, 스레드굿 부인의 이야기 안에 이지와 루스, 십시와 빅 조지 등을 담아내어 1920~30년대의 미국의 사회상을 그려내는 방식으로 씌여졌다.

영화의 이미지 때문이었을까, 여성들의 자아 찾기가 주된 축이 되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했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이 책에서 여성들의 강인한 모습은 굉장히 인상적이며 작가도 그러한 모습을 부각시키는데 많은 힘을 쏟는다. 특히 책의 축이라 할 여성 이지는 너무나 매력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아이일 때 그녀는 부모에게 다시는 치마를 입지 않겠다고 선포한 후 평생 바지만을 입는데, 이것만으로도 그녀의 캐릭터가 상당부분 그려질 것이다. 청교도적 규율이 아직까지도 강하게 남아있던 20년대, 그녀가 살던 남부 지방은 지금보다 훨씬 많은 편견과 차별이 사람들을 얽어매고 있었다. 그러한 구속은 서로를 결속시켜 삶의 기둥이 되기도 하지만, 그만큼 타인을 배척하고 내부적으로도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이 되게 마련이다. 그러한 숨막히는 분위기 속에서도 이지는 거침없다. 정의롭고 마음이 따뜻한 그녀는 첫눈에 사랑에 빠진 여인 루스가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알자 거침없이 달려가 그녀의 남편을 물리치고 루스를 데려온다. 그 후 이지와 루스, 그리고 그녀를 돌보는 요리사 십시와 빅 조지는 함께 휘슬스톱 카페를 운영하며 그들의 주변에 그들이 가진 따뜻함과 정열을 전파해가게 된다. 그들의 전염력이 얼마나 강했던지, 50년 뒤에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평생 수동적인 삶을 살았던 뚱보 여인 에블린은 영혼과 생의 변화를 경험할 정도이다. 

하지만 책을 읽어가다 보면 이 책이 그려내는 30년대 미국의 생활상도 그에 못지않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미국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당대 미국의 역사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나이지만 이 책이 그려내는 휘슬스톱의 모습은 강력한 설득력을 가지고 다가온다. 섬세하고 꼼꼼히 그려진 배경 위에서 등장인물들은 훨씬 생동감을 띈다. 마치 그들이 실제 살아있었던 것처럼 이 책의 인물들은 울고 웃고 사랑하고 질투한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은 존재이고 그러다보니 악의 유혹에 빠지게 마련이다. 책의 주동인물들 역시 그러한 유혹에 빠져 실수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파멸을 맞는 책 속의 다른 많은 인물과 다른 점은 위기의 순간에 옳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혹은 실수를 바로잡을 수 있도록 마음 속에서 그들을 지켜보는, 실제로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점이리라.. 따뜻하고 정의로운 마음이 타인을 감화시켜 나와 함께 하게 하고, 그렇게 이웃이 된 이들이 나의 잘못을 막아주는 '선'의 선순환이 이 책에서 아름답고 생생하게 그려져 독자를 감동시키는 것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그것이 아닐지?

민음사의 모던 클래식 시리즈 중 4번째로 읽어본 작품이다. 그 중 행복하게, 낙천적인 기분으로 읽을 수 있었던 책이 이 책이 아니었던가 한다. 모던 클래식 시리즈는 현대의 고전을 찾아간다는 컨셉에 맞게 무겁게 읽어야할 책들을 많이 출간하는 편이지만 가끔 허를 찌르는 책을 출간해서 나를 놀라게 한다. 모던 클래식 시리즈는 출간 작품을 선정하는 기준이랄까, 순서가 무엇인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기는 하지만 상당히 기대해볼만한 기획이라는 생각이 든다. 근대에서 고전을 찾아가는 민음사의 노력이 독자를 즐겁게 해주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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