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여행의 이유 - 지구를 탐하고 뜨거운 사람들에 중독된 150일간의 중남미 여행
조은희 지음 / 에코포인트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푸르른 하늘에 하얀 구름이 가득하다. 땅에도 하얗게 구름이 끼었다. 그 사이에 팔을 벌려 선 한 여인이 있다.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 사막에 선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 자유로워 보인다.
이 책의 저자인 그녀, 조은희는 여행의 이유를 표지만으로도 충분히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여행의 마력에 중독된 많은 인물들이 그러하듯, 그녀 역시 몸담고 있던 직장을 박차고 낯선 땅으로 떠나곤 한다.
이 책은 그녀가 6개월간에 걸쳐 누빈 남미의 땅들에 대한, 만난 남미의 사람들에 대한 추억을 담아내고 있다.
여행을 떠나는 그녀의 발길은 마치 발레리나의 그것처럼 발끝만 땅에 닿아 한없이 가볍다.
중력을 벗어난 자만이 느낄 수 있는 환희가 곳곳에 묻어난다.
그녀는 어떻게 여행을 떠나게 되었는지, 어떻게 여행을 준비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여행정보지도 아닌 여행에세이에 주저리 주저리 박차고 떠나는 과정을 늘어놓는 것은 여행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 때문이리라..
그녀는 도착한 첫번째 땅은 콰테말라이다.
숙소로 마련한 민박집의 주인은 영어를 못한다. 낯선 땅에 도착한 그녀는 스페인어를 못한다.
소통이 되지 않아야 할 그들이지만 그들의 대화는 한없이 즐겁다.
[ 소통에 언어가 대수는 아니다 ]
자원봉사를 하고 싶어 그녀는 2주간 데이케어 센터의 아이들을 돌본다.
말도 통하지 않지만 그녀가 부는 서툰 오카리나 소리만으로도 아이들은 눈을 반짝인다.
떠나는 날, 아이들은 직접 만든 실 팔찌, 플라스틱 귀걸이 등 작지만 귀한 선물들을 그녀에게 안긴다.
오카리나를 선물할까 망설였지만 아끼는 물건이라 결국 주지 못한다.
[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가방을 보니 오카리나는 저 혼자 깨져 두 동강이 나 있었다.
그곳을 떠나올 때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
두번째 땅 쿠바에서 좋지 않은 이와 만나 속임수를 당할 뻔한 그녀는 껍질 속으로 움츠러든다.
춤을 배우던 그녀에게 다가와 춤을 가르쳐주려는 한 흑인 년, 전날의 일 때문에 그녀는 조심스레 물러선다.
춤을 끝마치며 그는 그녀에게 "너는 이제 흑인 친구가 있어"라고 속삭여준다.
[ 하늘에서 그 친구를 내려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다시 사람을 믿어 보라고. 그래도 사람이라고.]
세번째 땅 콜롬비아에서 그녀는 미국에서 왔다는 여행객 '아론'을 만난다.
함께 카약을 타며 신나게 즐기는 하루가 지난 후, 아론은 말한다.
카약을 배우기 위해 계획된 여행을 멈추고 남겠다고...
[ 여행이란 게 그냥 하고 싶었던 것을 길에서 하면 되는 거였네.... ]
네번째 땅 에콰도르.
[ 창문 너머 내 앞으로
90도로 허리가 꼬부라진 아주아주 조그마한 할머니가
커다란 철 가스통을 맨몸으로 이고 한발짝 한발짝 발을 내디뎌 가고 계셨다. ...
그걸 지고 내 앞을 거북이처럼 지나가신 그 할머니의 모습이
1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내 마음속엔 느리고 무거운 화면으로 남아 있다. ]
다섯번째 땅 페루. 마추픽추에서 포르투칼의 청년을 만났다.
"난 계속 여행해. 1년에 6주만 빼고."
6주는 영국에서 일하고 나머지는 물가가 싼 나라들을 여행한다는 그..
[ 세상엔 정말 다양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여러 번 깨닫는다. ]
여섯번째 땅 볼리비아에서 그녀는 장 구경을 한다.
시커먼 얼굴에 푸석한 머리를 땋아내린 채 아수라장이 된 장터에서 악다귀처럼 아둥바둥 살아가고 있는 원주민들.
구경 끝에 들어간 레스토랑은 하얀 테이블보가 반들거리고 깨끗한 서구 관광객들이 맛있는 음식을 즐기고 있다.
씁쓸하게 그녀는 말한다.
[ 이거 뭐, 지옥에서 천국으로 넘어온 것 같네... ]
그녀의 남미 여행은 칠레를 거쳐 아르헨티나에서 끝난다.
일주일간의 휴가를 버리고 남미까지 날아온 그녀의 남자친구는 소설처럼, 영화처럼 프로포즈를 한다.
[ 나에게 베케이션 로맨스는... 이미 3년이나 사귄 현실의 남자친구, 한국에서 날아온 바로 이 사람이었다. ]
여행은 결국 낯선 땅을 만나러 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곳에서 자라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것이다.
서로 다른 사람임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공유하고 있는 인생의 진리를 깨달아가는 과정이 여행이다.
여행은 그렇게 조금씩 나의 세계를 넓혀줌으로써 결국 나를 더욱 크게 만들어준다.
이러한 여행의 아름다움이 간결하고 성기게 적어가는 그녀의 글들 사이에서 반짝인다.
누구든, 여행하는 사람은 반짝반짝 빛이 난다.
나는 여행이 좋고, 여행 에세이가 좋고, 무엇보다도 여행하는 사람이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