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학을 여는 것으로 꼽히는 작가들이 몇 있지만 그 중에서 '제임스 조이스'라는 이름이 빠지는 일은 없다. '의식의 흐름'이라는 기법을 창시하기도 한 그의 대표작 '율리시즈'는 하지만 분량 면에서도, 난해함 면에서도 독자를 넉다운시키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도전해본 적이 있었지만 미칠듯한 주석과 어떠한 가치를 담고 있는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는 내용에 질려 결국 중간에 책을 덮고 만 아픈 기억이 있다. 그래서 이 책, '더블린 사람들'을 접하게 되면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더블린 3부작이라고 불리우는 '더블린 사람들' '젊은 예술가의 초상' '율리시스'의 첫 작품이니만큼 무게감도 적지 않으리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펭귄클래식에서 출간된 '더블린 사람들'은 테렌스 브라운의 서문으로 시작된다. 서문이라는 제목이 붙어있지만 실제로는 작품에 대한 총괄적 분석에 가깝다. 보통 이러한 분석은 책의 뒷편에 달리기 마련인데 펭귄클래식에서는 독자의 긴장을 덜고 배경지식을 주어 본문을 접하기 편하도록 하기 위하여 이런 식의 배치를 택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아무튼 서문에 따르면 그의 나이 25세때 완성된 이 작품은 33세가 되어서가 출판이 되었는데, 이는 출판사 측에서 작품의 내용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하여 출간을 거부했기 때문이라 한다. 이 책이 출간될 즈음에는 이미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통해 명성을 얻고 있었던 그이기에 오히려 '더블린 사람들'은 그의 습작 정도로 취급받게 되었으며, 특히 단편소설에 대한 독자의 선호도가 떨어져가던 즈음이었던지라 이 작품의 가치를 인정받는데는 이후로도 적잖은 시일이 걸리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은 정말로 짧은 15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실적인 묘사방식과 더불어 각 작품의 짧은 분량 탓에 책은 상당히 건조하게 느껴진다. 본래 조이스는 그의 작품을 철저히 자신의 체험에 기반하여 써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이 작품은 당대 아일랜드에 현미경을 들이대고 감정없이 묘사해낸 듯한 인상을 준다. 마치 정밀하게 그려진 풍속화를 보는 듯 하다고 할까? 그래서 조이스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이는 이 안에서 사회적인 메시지를 읽어내기 쉽지 않다. 그래서일까, 내게 가장 인상적으로 느껴진 것은 사회적 주제보다 품 속 등장인물을 그려내는 능력이었다. 간결한 문장을 구사하는만큼, 인물 묘사 역시 몇 줄의 짧은 문장으로 이루어질 뿐인데 그 효율성이 놀라울 정도다. '은총'의 한 부분이다. [그는 더없이 생각이 깊고 영향력도 잇엇으며 머리도 좋았다. 천성이 민첩한 데다가 치안재판소에서 여러 사건들을 오랫동안 다루어오면서 특히 날카로워진 인간에 대한 통찰력은 철학 전반에 대한 지식을 겸비함으로써 다소 부드러워졌다. 그는 또한 박식했다. 친구들은 그의 말이라면 누구나 존중했고 그의 얼굴이 셰익스피어를 빼닯았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몇 개의 문장만으로 탁월하게 캐릭터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적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각 작품은 풍부한 내용을 담은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색한 부분이 없는 깔끔한 번역도 이러한 묘미를 살리는데 기여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을테고 말이다. 가장 길고 가장 감동적인 작품은 마지막에 실린 '죽은 사람들'이다. 전반적으로 건조하게 읽히는 작품들 속에서 이 작품은 유독 촉촉하게 읽힌다. 연말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을 그려내며 이 작품은 인물간의 감정선을 아름답게 교차시킨다. 그리고 가브리엘과 그의 아내가 과거와 현재를 얽어가며 상념에 잠기는 장면은 마치 꿈을 꾸는 듯하다. 메마른 현실묘사에 갈증을 느낄 독자에게 주는 선물인 것일까? 책장을 덮으면서도 이 책을 충분히 '읽어냈다'는 느낌이 없다. 무언가 더 읽어내야 한다는 느낌은 이 책의 역사적 무게 때문에 생겨난 강박일까, 아니면 내가 느낀 진정한 감상일까... 어느 쪽이 정답일지 시간을 두고 다시 한번 읽어본 후에 결론을 지어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