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등척기 - 정민 교수가 풀어 읽은
안재홍 지음, 정민 풀어씀 / 해냄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백두산! 어느 민족에게든 마음을 기대는 산과 강이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 민족에게 있어 그 산은 백두산일테고요. 실제 가본적이 있건 없건, 나이가 많건 적건 우리는 알게 모르게 백두산을 영산으로 삼고 있는 듯 합니다. 그러나 휴전선에 가로막힌 이후 백두산은 열망하되 가기는 어려운 곳이 되어버렸지요. 민족의 영산 반쪽을 중국에 넘겨버린 북한의 만행이 어이없습니다만 실제로는 중국측의 반쪽으로 백두산에 접근하는 것이 더 쉬운 현실은 아이러니일 뿐이지요. 그런 아이러니조차 백두산의 상징성을 더 부각시키는 듯도 하지만요.. 그래서인지 백두산 등반에 대한 글이 출간되면 상당한 관심을 끌기 마련인 듯 합니다. 이 책 역시 그렇지 않을까 하고요.

 

사실 제게는 저자의 이름이 낯섭니다. 안재홍.. 뒤늦게 찾아보니 큰 인물이시네요. 조선일보의 주필이기도 했던 그는 나석주 의거를 4차례 호외로 보도하여 일본의 경외를 샀고 신간회와 물산장려운동에도 깊이 관여하였다 합니다. 저는 오히려 정민 교수님의 이름 쪽에 더 눈이 가 이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만 - 제목도 그런 것을 노렸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겠습니다 - 그것이 오히려 부끄럽게 느껴지네요. 1930년대, 백두산 기행문은 신문지상에 상당히 인기 높은 기획이었다고 합니다. 당시의 상황을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겠지요. 아무튼 조선일보에서도 그러한 경향에 뒤따라 백두산 기행문을 지면에 실을 기획을 세웠고 주필이었던 안재홍을 비롯한 변영로, 김상용, 김찬영 등 일군이 백두산 답사를 시행하게 됩니다. 16일간의 기행 결과물을 신문지상에 연재하였는데 그것을 정민 교수가 현대어로 번역하고 다듬어 묶어 낸 것이 이 책입니다.

 

원래도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인데 저자의 성격을 반영하듯 간결한 어조 탓인지 훨씬 짧게 느껴지는 책입니다. 하지만 그 무게감은 적지 않지요. 현대어로 번역하였다 하나 원저자의 어투를 손상하지 않으려는 노력 덕에 이 책의 어조는 아주 고아하게 느껴집니다. 고풍스러운 듯 하면서 도리어 참신하게 느껴지는 어조는 매력적입니다. 정민 교수의 공이 엿보이는 부분이라고 하겠습니다. 기행문 답게 백두산에 대한 꼼꼼한 묘사가 돋보입니다만 그보다 더 관심을 끄는 것은 안재홍의 역사에 대한 식견과 통찰력, 그리고 일제에 대한 비판정신입니다. 한 신문의 주필이 이처럼 숨김없이 당대 사회상을 비판하며 보이게 보이지 않게 일제를 비판해댔으니 그의 생이 평탄할 수 있었을리 없었겠다 싶습니다. 읽다가 '정말 일제시대 때 신문에 실린 글 맞아?'라고 쓰여진 연도를 다시한번 확인하기도 했답니다. 여러모로 사료적인 가치가 큰 글이다 생각하게 됩니다.

 

정민 선생은 책 말미에 '글이 그 사람과 꼭 같다'는 말로 이 등척기에 대한 평을 마무리합니다. 너무 꼭 맞는 평인지라 덧붙이고 빼고 할 바가 없네요. 백두산에 대해서보다 안재홍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더 알게되는, 알고 싶어지는 특이한 기행문이라고 할까요? 기품있는, 그리고 마음에 울림이 남는 기행문을 읽고자 하시는 분들이라면 만족할만한 책이라 생각됩니다. 일독을 권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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