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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마고우 오성과 한음 - 빛나는 우정과 넘치는 해학으로 역사가 되다
이한 지음 / 청아출판사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확실히 예전에는 요즘보다 전래동화나 민담이 TV에서 여러모로 다양하게 활용되었던 것 같다. 특히 오성과 한음의 이야기는 어릴 적 꼬박꼬박 챙겨보았던 꼭두각시 인형극의 등장인물로 머릿속에 남아있다. 어릴 적부터 장난끼 넘치는 배꼽친구였던 그들이 장성하여 임진왜란에서 활약하는 일련의 과정은 상당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랬기에 오랜만에 책을 통해 그들과 재회하는 심정은 어릴 적 친구를 다시 만날 때의 그것과 비슷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러한 기대감을 기분좋게 배반해주었다고 해야할 듯하다.
사실 이 책의 제목에 '죽마고우'가 들어간 것은 실수가 아닌가 싶다. 이 책이 밝힌 바에 따르면 이들 둘은 어릴 적 친구가 아니라 20대에 관직에 진출하면서 만난 사이였기 때문이다. ...놀라셨는지? 이 책은 역사서에 남아있는 실제의 오성과 한음을 따라가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오성과 한음의 이야기가 대부분 민담임을 밝히고 있다. 때문에 우리가 알고있는 어린 시절의 오성과 한음은 책 속에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첫인상에서는 좀 실망스러울수도 있겠다. 나도 그랬고... 하지만 책을 읽어나가다보면 그러한 실망을 벌충하고도 남음이 있는 만족감이 있다. 바로 '어른'의 우정을 보는 즐거움이라고나 할까!
실제 오성은 한음보다 5살 정도 나이가 많았으며 아마도 한음은 오성을 형으로 대했을 것이라고 한다. 오성은 익히 잘 알려진대로 장난기가 넘치고 그만큼 포용력이 있는, 마당발형 인물이었으며, 한음은 다소간 고지식한, 대쪽같이 곧은 천재형 인물이었다고도 한다. 이처럼 서로간 차이점이 적지 않았음에도 이 둘은 죽을 때까지 서로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젊은 시절에는 임진왜란을, 말년에는 광해군의 폭정을 거치면서 평탄치 않은 삶을 살아가야했지만 이들이 주고받은 서간들은 그들이 서로에게 얼마나 힘이 되어주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단순하지 않은 현실 속에서 어른들이 나누는 우정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캐릭터의 특성상, 남아있는 사료상 이야기의 무게중심은 상당부분 오성에게로 기울어져 있다. 고지식한 사람에게보다는 유머러스한 사람에게 끌리는 것이 인지상정이기도 할테니, 오성의 이야기가 많이 남은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싶기도 하고.. 아무튼 그만큼 책 속의 오성은 매력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흔히 강직함은 유연함과 상충되는 것으로 이해하지만 강직함이 유연함 속에서 발휘되지 않으면 자신이 부러지는 것은 물론 그만큼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상처를 입히게 마련이다. 특히 고금, 권력을 가진 자가 그러한 유연함을 가지지 못하고 곧게만 나아가다 혈겁을 불러일으키는 일을 우리는 너무나 많이 보게 된다. 그렇기에 오성이 보여주는 유연함과 포용력은 정말 소중한 재능이었음을 생각하게 된다. 편협하다는 말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선조, 그리고 굳세기만 했던 광해군의 통치기에 오성이라는 인물이 있었다는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별로 두껍지 않은 책이지만 조선시대를 통틀어 가장 힘들었던 시기 중 하나일 임진왜란을 돌이켜보는 과정은 흥미진진하고 권율, 이순신, 유성룡, 선조, 광해군 등 역사에 이름을 남긴 조상들의 면면을 오성과 한음을 통해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특히 저자가 최대한 힘을 빼고 현대적인 어조와 우스개소리를 사용한 것도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생각된다. 청소년에게 권할만한 책이기도 하겠지만 나와 같은 추억을 가졌을, '어른'이 되어버린 친구에게 권하고 싶은 아주 괜찮은 책이었다.
한음이 오성에게 남긴 편지 한구절을 인용하며 마칠까 한다. 가슴이 뻐근해지는 아름다운 글귀이다.
" 밥 많이 드시라는 마지막 당부 잊지 마십시오.
늙어가니 이별의 정이 소싯적과 달라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