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튼 탐정 동물기
야나기 코지 지음, 박현미 옮김 / 루비박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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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책들이 있다. 어린왕자, 바보 이반 이야기, 우동 한그릇, 파브르 곤충기, 그리고 시튼 동물기.. 어린 시절에 읽은 책들은 말그대로 머리에 각인이 되나보다. 마치 어제 읽은 책을 떠올리는 것처럼 이 책을 읽을 당시의 기쁨, 짜릿함, 흥분, 그리고 슬픔, 아쉬움의 감정이 순간적으로 떠오르니 말이다. 프루스트에게 마들렌이 있었다면 나에게는 이런 책들이 있다고나 할까.. 특히 동물을 소재로 다룬 곤충기나 동물기 등은 좀 더 감정이입이 되어 읽었던 것 같다. 자연의 순수함에 좀 더 가까이 있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일까? 시튼 동물기에서 늑대 로보의 당당한 죽음에 얼마나 슬펐던지 생생히 떠오르는 내게, 이 책 시튼 탐정 동물기는 제목만으로도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책이다. 

이 책에는 시튼 동물기의 일화 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7편을 소재로 삼고 있다. 시튼이 실은 굉장한 관찰력과 추리력을 가진 인물이라는 설정을 더하여, 각 일화의 외전격으로 사건해결담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파브르나 시튼 등의 동물학자라면 고도의 관찰력을 가지고 있었으리라 생각되기 때문에, 시튼을 준탐정급 인물로 설정한 것도 그다지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셜록 홈즈와 미스 마플을 결합한 듯한 탐정 시튼은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역시 이 작품의 주인공은 늑대 로보, 까마귀 실버스팟, 곰 잭 등 이름만으로도 '그리운' 동물들이다. 오래된 친구의 새로운 소식을 듣는 것처럼 반갑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다만 추리물로서는 무난한 수준이라는 인상이다. 재창조된 셜록홈즈를 주인공으로 삼은 유사한 소설이 워낙 많은지라 허를 찔리는 구석은 있지만 참신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고 할까.. 다만 시튼 동물기를 이렇게 매끈하게 이어붙인 솜씨만큼은 눈에 띈다. 늑대 로보를 살인사건과, 까마귀 실버스팟을 보석절도사건과 이어붙인 솜씨가 인상적이었다. 

늑대 로보를 읽고 난 어린아이가 보낸 편지 중에 '(시튼) 당신은 가장 비겁하고 잔혹한 사람입니다'라는 내용의 편지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시튼은 그 편지를 가장 반갑게 읽었다고도 한다. 사실 어릴 적 늑대 로보를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교활한 속임수로 로보를 사로잡은 시튼과, 연인을 위해 자유를 포기하고 자유를 위해 생명을 포기하는 로보... 어느쪽이 더 '인간답게' 느껴졌을까? 인간 중심주의에 빠지지 않고 동물 혹은 자연의 입장에서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이 시튼 동물기의 매력 중 하나가 아니었다 생각해본다. 아마도 작가 야나기 코지도 어릴 때 시튼 탐정 동물기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았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이야기 곳곳에서 동물에 대한 진지한 애정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 시튼 동물기를 찾아보았는데, 애지중지하던 책이었음에도 어느샌가 잃어버렸던 모양이다. 빛바랜 기억과 추억에 대한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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