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
김인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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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다양한 드라마들이 사랑을 받고 있지만 변함없이 시청자의 애정을 받아온 것으로 사극을 꼽게 된다. 사극 장르가 꾸준히 사랑을 받을 수 있는 큰 이유 중 하나는 역사적인 인물이 생동감을 가지고 '살아나게 된다'는 점이 아닌가 한다. 역사책 속에서 만난 인물은 탈색되어 있게 마련이다. 역사가 학문으로써 다루어진다면 객관화는 당연한 것이겠지만 메말라버린 인간상이 매력적일 수는 없다. 울고 웃고 상처받고 싸워 극복하는 인간이 아니라면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는가.. 역사를 왜곡한다는 비판을 받곤 하는 사극이지만 그 안에서 희로애락을 숨김없이 보여주기 때문에 그들이 더욱 매력적일 수 있는 것이리라. 

내게는 이 책의 소현세자와 다른 인물들이 그러했다. 남한산성의 비극과 그 비극을 온몸으로 상징하고 있는 소현은 이미 잘 알려져있는 인물이다. 특히 최근의 유명 드라마에서 소현세자의 삶이 비추어져 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게 되기도 하였다. 힘없는 국가가 겪을 수 밖에 없는 치욕, 지도자의 어리석은 선택이 초래하는 많은 백성들의 피와 눈물, 이런 것을 떠올리면서 분노와 아픔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나에게 이러한 감정은 분명 가슴에서라기보다 머리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이 책의 작가 김인숙은 상상력으로 인물들을 살아숨쉬게 만들어냈다. 그 상상력에 힘입어 인물들은 하나의 '개인'으로써 나에게 다가왔고 개인이 직면하는 가장 큰 과제인 '선택'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만들어주었다. 

조선의 세자 소현과 청의 섭정왕 도르곤은 닮은꼴이다. 패한 나라의 지도자와 이긴 나라의 지도자라는 대척점에서 마주치지만 이들 모두 권력과 소명과 욕망의 틀 안에서 버둥거리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들이 두려워하며 그들을 두려워한 그들의 왕과 싸워나갈 수밖에 없기에, 그들은 마주보고 있는 쌍둥이였다. 석경과 흔, 귀한 집안에서 자라난 그들은 역사의 격랑에 휘말려 가장 비참한 곳까지 떠밀려왔다. 그렇기에 그들의 왕이 될, 그들이 왕으로 만들 세자를 우러러 보면서도, 한편으로 그들을 살게 하고 있는 가문과 이국의 권력에서 몸을 떼지 못한다. 만상과 막금, 세상 어느 곳에서든 버러지처럼 취급 받아온 그들이지만, 삶의 최후까지 '너머'를 바라볼 수 없는 그들이지만 살아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혹은 다른 생명을 앗아버리고 혹은 그렇게 파괴되는 생명에 눈물 지으며 말이다. 역사는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한다. 인간이 역사를 만들고 인간이 순간에서 살 수 밖에 없기에 결국은 선택만이 있을 뿐, 후세의 우리로써는 그 무게를 말할 수 없다는 말일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의 선택을 앞둔 우리는 과거의 선택을 평가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역사의 진리이자 아이러니겠지... 

고아한 문체와 비장미가 깊이 배어들어 아름다운 책이었다. 작가가 느꼈을 절절함을 함께 느끼도록 만들어주는 책이기에 한동안 음미하며 다시 읽어보게 될 듯하다. 이 작품을 통해 처음 만나게 되는 작가이지만 아파 하면서도 아픔에 매몰되지 않고 글을 써낸 작가임을 알 수 있었다. 장래 어떤 작품들을 낳아갈지 기대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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