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들 플라워
김선우 지음 / 예담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촛불이 반짝이던 그 밤도 벌써 2년 전의 세월 속에 묻혀갑니다. 우리 역사상 전 국민이 그토록 아름답게 하나되어 어우러진 적이 있었을까요? 이제는 그 아름다움을 더럽히던 악몽들도 함께 세월 속에 묻혀져가고 잊혀져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 가슴이 아릿합니다. 하지만 당연히 그 밤들을 보다 섬세하게 기억하고 아름답게 회상시켜줄 수 있는 민감한 분들이 있게 마련이죠. 이 책의 저자 김선우님이야말로 그런 분이 아닐까 하네요.

최초로 촛불의 밤을 다루는 장편소설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김선우님의 캔들 플라워가 출간되었네요. 이 책의 제목과 표지로 쉽게 촛불의 밤을 아름답게 그려내는 책이라는 것을 아실 수 있을테죠. 이 책은 표지에 그려진 4쌍의 다리의 주인들과 그들과 함께하는 아름다운 소년소녀들이 촛불의 밤을 아름답게 변주해나가는 이야기입니다.

지오. 지오는 낙원에서 온 아이입니다. 레인보우 빌리지는 여성성으로 표현되는 생명과 자연이 어우러져 빛나는 말그대로 낙원이지요. 이 아이는 잃어버린 자신의 분신을 찾기 위해 한국으로 옵니다. 그리고 의도치 않게, 하지만 필연적으로 촛불의 일원이 되죠. 그녀의 눈은 너무나 맑고 올곧기 때문에 그녀의 앞에서 옳고 그름, 아름다움과 추함은 저절로 밝혀지고 맙니다. 그녀는 이처럼 거울이 될뿐만 아니라 그녀의 낙원에서는 본 적이 없는 세속의 일들을 겪게 되면서 더욱 성장하여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의 분신과 관련되는 에피소드는 소설의 재미를 더해주는 비밀을 담고 있죠.

희영. 희영은 가난하고 힘없지만 꿈과 사랑을 간직하고 있는, 그러나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그것을 관철할 용기와 의지를 가지지 못했던 우리 자신의 분신입니다. 그녀는 옳고 그름, 아름다움과 추함을 알아볼 수 있지만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첫사랑을 소중히 간직하고 버려진 개 사과를 돌봐주는 다정함을 가진 그녀는 당연스럽게도 촛불의 인력에 끌려갈 수밖에 없었죠. 그녀의 사랑 이야기 역시 아름답게 변주되는 에피소드죠. 

연우. 올곧다, 심지가 굳다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강한 아가씨입니다. 수아와 더불어 가장 강하게 현실에 참여하는 행동력을 보여주지요. 촛불광장에서 소를 타고 있던 할머니, 숙자씨와의 에피소드를 통해 그녀는 현실의 아름다움과 추함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게 됩니다. 삶에 있어서 지켜야할 것이 무엇인지, 왜 인간은 소중한 것을 지켜내지 못하는지, 그런 현실에 대한 슬픔이 그녀를 통해 보여집니다. 촛불의 밤이라는 면에서는 서술의 중심에 있는 희영보다 그녀가 더 중요한 역할을 하죠. 

민기. 그는 현실에 함몰되어버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가슴 아파하는 풋풋한 소년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아무리 미워하려고 해도 미워할 수 없는, 그리고 미워해서도 안되는 '인간' 자체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추악한 아버지-어른-의 모습을 보고 상처받으면서도 그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버리지 않습니다. 사랑만이 인간에 대한 구원임을 지오와의 만남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으니까요. 

이 책은 사실 촛불의 밤들에 대해 정면돌격하는 책은 아닙니다. 작가는 그보다 현명한 방법을 택하죠. 사람이 살아가는 삶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촛불의 의미를 깨닫게 만드는 것이 작가가 택한 방법이었죠. 촛불이 가지는 의미는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겠죠. 하지만 저에게 있어 촛불의 밤은 사람이 사람다움이라는 것을 믿어도 된다는 희망을 준 나날들이었습니다. 사람은 사람을 믿어도 된다는 진리, 일상 속에서 자꾸 잊게 되는 그 진리를 다시한번 깨닫게 해준 나날들이었습니다. 시인이기도 한 작가답게 여성적이고 신선하면서도 톡톡 튀는 문체로 그날들을 추억하는 이 책은 읽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책이기도 합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축제에 참여하여 함께 어우러져 보고 싶은 분들에게라면, 희망을 느끼고 싶은 분이라면 꼭 한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