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식당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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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게 있어 일본 소설에 대해 특히나 신뢰를 가지는 분야를 꼽자면 추리과 공포 장르가 첫손에 들어갑니다. 실망스러운 경우가 거의 없었을 정도네요. 다양성이 보장되어 있고 그중에서도 알게 모르게 걸러진 것들을 선별하여 보았을 가능성도 꽤 있겠지만요. 그리고 세 번째 손가락을 꼽아본다면 소위 말하는 힐링물입니다. 지금에서야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성격의 소설들이 나오고 있지만 원조는 일본이었다는 것이 사실일 것입니다. 산업화의 과정을 먼저 겪은 나라로써, 일본 특유의 정적이면서 아기자기한 취향이 녹아들어 이런 책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추론해 봅니다. 달팽이 식당의 경우,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었으나 읽어본 것은 이렇게 재출간이 된 지금에서네요. 찾아보니 영화화된 것조차 2010년이고 보면 소위 힐링 소설의 원조격에 해당한다 해도 될만하겠네요. 책이 출간된 것은 2008년이고요. 이렇게 재출간 된다는 점이 이 책이 가졌던 인기를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싶군요.



 이야기는 '나'가 도시에서 실연의 상처를 겪고 고향집으로 내려오는 데서 시작됩니다. 실연의 상처가 어찌나 컸던지 그녀는 실어증에 걸리기도 했는데요,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그녀는 실은 고향집에 머무르기 위해 돌아온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돈을 훔쳐 타지에서 새 출발을 해볼 양이었습니다. 동거 중이던 전 남자친구는 끔찍하게도 돈이 될만한 것을 모두 훔쳐 달아나버렸기 때문에 그녀는 경제력이 전무한 상태였거든요. 어머니에게 사정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몰래 돈만 훔쳐내어 도망갈 생각을 했던 것은 모자간의 오랜 불편한 관계에 기인한 것이었습니다. 상극의 성격을 가진 둘은 꽤나 불편하게 마지막 만남을 가졌던 것으로 보이거든요. 하지만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 법, 돈을 훔치기도 전에 어머니의 애완 돼지인 엘메스에게 발각되어 한바탕 소동이 나고 어머니에게 상황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머니에게 그저 얹혀사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그녀는 고향집의 빈 공간을 활용하여 식당을 차려볼 발상을 가지게 되었고 그것이 '달팽이 식당'의 시작이었습니다. 상처 입고 돌아와 움츠러든 그녀에게 있어 가게 이름은 달팽이 외에 떠오르는 것이 없었던 것이겠지요. 그리고 이것은 주변 사람들에게 희망과 치유를 주고, 어머니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결국에는 실어증과 스스로의 상처까지 낫게 되는 여정의 시작이었지요.



 여기까지만 줄거리를 건드려봐도 사실 꽤나 상투적인 데가 있는 전개가 예상되실 겁니다. 확실히 책이 출간되고 15년 가까이 지나간 지금, 이 이야기가 새로운 감동을 주기에는 비슷한 힐링 소설들이 너무 많이 출간되었습니다. 그렇다고 고전적인 힘을 가지기에는 결함도 꽤 많이 보이는 이야기이고요. 힐링 소설은 사실은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전개하면서도 꽤나 현실적으로 그것을 살려서 보여주는 것이 핵심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읽다 보면 현실성과 개연성을 꺼끌 지게 만들어버리는 서사나 묘사가 꽤 많이 나와요. 사람들이 이 집의 요리를 먹고 우연찮게 고민거리가 해결된다는 큰 설정은 비현실적인 구조로써 깔아두고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그 안의 에피소드는 조금 더 현실감이 있게 제시되어야 했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그것이 실패한 부분들이 꽤 많이 보이는 것이죠. 



예컨대 거식증에 걸린 토끼를 치유하는 에피소드는 고개를 갸웃하지 않고서는 읽어 넘어가기 어렵습니다. 물총 베이비의 비밀이 드러나는 장면도 이렇게 소비할 거였으면 굳이 넣을 필요가 있는 설정이었나 싶고요. 이 사실이 밝혀졌을 때 주인공의 반응이라던가, 이런 행동을 한 어머니의 캐릭터라던가 납득이 안 가는 부분이 오히려 많아지는데 이야기는 바로 어머니의 죽음 장면으로 넘어가게 되니까요. 또  어머니가 죽음을 앞두었을 때 애지중지하던 애완 돼지를 잡아 파티 요리로 쓰기 시작한 결정은, 심경을 미루어 짐작할 수는 있지만 좀 더 섬세한 분량 할당이 없이는 감동을 주기 어려운 설정이었습니다.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대한 욕심에 무리를 한 감이 있어요. 어머니와의 관계 회복도 애초 관계가 어그러진 것에 대한 설명이 충분치 않았기 때문에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절망적인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도식적이고 기계적인 느낌이 있습니다. 사실 많은 부분은 소설의 분량이 담아내고자 했던 이야기에 비해 충분치 않았다는 점에 기인하기는 하겠습니다. 이럴 때는 욕심을 덜 냈어야 할 텐데 그것이 쉽지 않았던 것 같네요. 서사적으로는 꽤나 아쉬움이 느껴지는 소설이었어요.



 그럼에도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을 꼽아보자면 요리와 음식에 대한 섬세한 묘사입니다. 애초 저는 힐링 소설에서 이런 묘사적인 부분을 읽는대서 쾌감을 느끼는 세속적인 인간이니만큼 이런 부분에서 실망하는 일은 거의 없긴 해요. 장면 장면을 머릿속에서 상상하는 것이 주는 쾌감이 꽤 컸습니다. 그리고 현대에는 인터넷 검색이라는 부가적인 수단까지 있다 보니 머릿속 상상에 더해서 실질적인 시각적 이미지를 덧입히는 것도 어렵지 않으니까요.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부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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