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들의 침묵
토머스 해리스 지음, 공보경 옮김 / 나무의철학 / 201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워낙 오래 전이라 기억이 아득하지만 양들의 침묵을 처음 접한 것은 책이 아니라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그 때도 영화가 인기를 얻으면 책이 같이 출간되곤 했는데 그것을 학교에선가 문고부에 갖춰져있던 것을 읽었던 것 같은 기억이 있네요. 사실 영화의 이미지가 가지는 힘이 워낙 막강하다 보니 앤소니 홉킨스와 조디 포스터가 만들어낸 이미지가 소설을 덮어쓰기 해버렸던 것 같기도 하고, 영화와 다른 책의 이미지에 제법 이질감도 느꼈던 것 같네요. 그러던 것을 나중에 대학 때 도서관에 토머스 해리스의 책을 읽게 되면서 3부작을 주루룩 읽게 되었던 것 같은 기억이 있네요. 그 때는 책이 가진 매력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을 수 있었고요. 다시 한번 20년 가까이 지나서 다시 읽는 양들의 침묵은 어떤 감상을 줄지, 궁금해집니다.



 나무의철학에서 나온 이번 판본은 약간 문고판을 닮은 디자인입니다. 판형을 줄이니 대신 두께는 600쪽을 넘는 두툼한 책이 되었네요. 표지 디자인은 무난하다는 느낌? 힘을 많이 주지 않은, 재출간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게 하는 디자인이랄까요?



 작품을 여는 렉스와 스탈링의 면담은 다짜고짜 던져지면서도 너무나 효과적으로 두 인물의 캐릭터를 만들어내어서 경탄하게 되죠. 렉스가 스탈링을 우아하게, 하지만 핥듯이 뜯어내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오만하게 튕겨내는 부분은 언제 읽어도 즐거운 부분입니다. 사실 메인 캐릭터가 아니더라도 하나 하나의 인물들을 충분히 묘사해내는 것이 이 책의 가장 주요한 매력이지요. 



 사실 이 책에서의 한니발 렉터는 주연이라기보다 조연의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시리즈의 연장 속에서 읽게 되기 때문인지 시선이 자꾸 그에게 유지되는 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읽어가다 보면 역시나 이 작품의 주인공은 스탈링입니다. 읽다 보면 책 전체가 그녀의 캐릭터를 구축해가는 과정이라는 점을 알게 되죠. 그녀가 받는 압박감이 독자에게 그대로 전이되어 느껴지는 것이 이 책을 읽으며 느끼게 되는 긴장감의 5할 이상을 차지하지 않나 생각되요. 이런 캐릭터이기에 렉터 박사와 더불어 후속작으로 이어져 계속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이겠지요.



 캐릭터 이야기만 하고 있지만 연쇄살인마 수사라는 메인 플롯도 흥미롭습니다. 사실 생각보다 수사 과정이라던가 체포 과정이 치밀하고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의외로 평이한 쪽에 가깝죠. 그런데 이 플롯을 꼼꼼한 심리와 정황 묘사로 흥미롭게 만들어내는 것이 묘미라고 하겠습니다. 이것이 토마스 해리스라는 작가의 개성이자 장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책의 말미를 장식하는, 렉터가 스탈링에게 보내는 짧은 편지의 여운이 강렬하네요. 광고지를 언급하는 렉터의 취향은 캐릭터를 끝까지 구성해내는 작가의 힘을 잘 보여주는 것 같아요. 후속작을 아는 사람이라면 렉터와 스털링이 어떻게 얽혀져서 흘러가게 되는지 알기 때문에 더욱 임팩트가 강하게 느껴지겠지요. 렉터의 중력이 너무나 강렬하기에 파멸을 예측하게 만든다고 할까요..

*확인해보니 한니발 시리즈는 3부작이 아니라 4부작이었네요. 2006년에 나온 한니발 라이징은 읽어보지 못했더라고요. 영화로도 나왔던 것 같은데 크게 성공작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만 조만간 한번 읽어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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