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겨우 자식이 되어간다 - 평범하지만 특별한, 작지만 위대한,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해
임희정 지음 / 수오서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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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겨우 자식이 되어간다는 임희정 작가의 나는 막노동하는 아버지를 둔 아나운서 딸입니다.” 글처럼 애틋함과 저릿함으로 마음에 닿는 글도 있으나누구나 한 번쯤 부모님과 함께 마주할 수 있는 잔잔한 이야기로 공감을 전하는 책이다분명 그녀의 삶과 그녀의 부모님 이야기이지만, 여러 글이 엮어진 책에서 난 나의 모습과 우리 부모님의 삶을 발견하며 공감했기에지난 2월에 실시간 검색어를 통해 처음 그녀의 글을 읽었을 때보다 오히려 더 울림이 크게 뜻깊게 다가왔다. 책을 읽으며 자연스레 우리 부모님이 떠올랐다특히 내가 사랑하는 아빠가나는 부모님께 좋은 딸이 아니다어쩌면 나쁜 딸일지도 모른다부모님은 나에게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알아서 잘 커준 고마운 딸이라고 말하셨고나는 내가 그런 줄 알았던 못난 딸이었다. 사실 그렇지 않았는데

 

우리 부모님은 참 바쁘셨다. 실제로 바쁘셨고, 내가 칭얼거릴 여유가 없어 보였다. 어른이 되어서 응석을 부리지만, 오히려 어렸을 때는 어리광을 부리지 않았다. 못한 것이 아니라, 하지 않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난 뭐든 알아서 결정하고 부모님께 꼭 전해야 할 이야기와 그렇지 않은 이야기를 구분할 줄 알았다. 내가 내린 결정에 대한 책임은 나의 몫이라 생각했고, 늘 감당할 수 있을만한 일만 찾아왔기에 난 어려움 없이 자랐다그렇게 했던 생각이, 행동이 언젠가부터 습관이 되어버렸다중학교 이후 나와 부모님과 대화는 상의일 때보다  나의 통보인 경우가 많았다진학전공연애친구까지중요한 결정은 내가 다 답을 내린 후, 그 결정을 부모님께 들려드렸다. 부모님은 나에게 질문하지 않으셨고, 나도 으레 그것이 당연하다 생각했다.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서라고 말했지만사실은 아니다. 나는 부모님께 어떻게 내 고민을 나누어야 할지 몰랐다고민에 공감받기 보다 고민을 잘 해결한 모습을 전하는 것이 더 좋았다. 대화보다 딸이 전하는 이야기를 들어주셨던 부모님께서 나에게 할 수 있는 대답은 역시우리 딸엄마 아빠는 너를 믿어!” 였. 그 말을 듣는 것이 좋았고, 실제로 부모님은 시종일관 나를 믿어주셨다. 때때로 그 믿음에 실망을 안겨드리기도 하였음에도 굳게 나를 믿어주시는 부모님이 나는 참 좋았다. 그래도 엄마와는 목욕탕도 다니고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무언가가 있었지만 사춘기를 지나며, 아빠와는 이상하게 점점 멀어지기만 했다. 그런데 그런 아빠와 나의 관계에 변화가 생겼다.

 

바로 고때였다아빠는 밤 10시면어김없이 버스 정류장에 마중을 나오셨다괜히 보지도 않으면서 챙긴 책으로 무거운 책가방을 들어주시며 오늘은 어땠냐고 넌지시 물어보셨다그렇게 집으로 돌아갔다처음엔 짧은 대답과 침묵이 그다음엔 아이스크림 먹는 소리로 채워졌던 시간이 따뜻해지는 날씨처럼 바뀌어갔다. 그리고 다시 수능이 가까워져 추워졌을 때에 나는 아빠 손을 잡고 있었고이런저런 이야기를 재잘재잘 꺼내기 시작했다먹고 싶은 음식모의고사 지문 이야기 등 별일 아닌 이야기였으나 쏟아내는 이야기를 아빠는 가만히 다 들어주셨고, 나의 응석에 맞장구까지 쳐주셨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정말 수능날이 되었다. 내 수능 도시락은 아빠가 싸주셨다긴장하면 밥을 잘 못 먹는 딸을 위해 찹쌀과 쌀을 섞어 끓인 흰죽. 국물보다 아욱이 더 많이 담긴 된장국깨가 박힌 포항초 무침잔멸치와 견과류를 볶은 것물엿을 넣지 않은 연근들기름 냄새가 고소한 김구이간을 하지 않은 달걀말이이렇게 정확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가 아빠에게 했던 딱 내 입맛에만 맞는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먹었던 가장 맛있었던 도시락이었다. 

 

좋아하는 취향이 분명한 딸이 수능날 불안함에 허한 마음을 사랑 가득 담긴 음식으로나마 든든하게 채워주고 싶었던 아빠의 마음이 담긴 점심 도시락이었고, 빈 도시락 통을 아버지는 하루종일 기다리셨을 것이다그 도시락을 결국 집에 와서 가채점을 다하고저녁으로 먹는데 눈물이 나왔다시험장에서 몇 수저 먹지 않고 넣어둔 죽과 국이 차갑지 않고 따뜻해서꼭 아빠 마음 같아서 울었다시험을 망쳐서라는 거짓말 아닌 거짓말에 기대어 참 많이 울었다.

 

이 기억이 가슴 한켠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까나는 겨우 자식이 되어간다를 읽는 내내 아빠 이야기에엄마의 음식 이야기에 철렁하고 마음이 내려앉아 눈물이 자주 맺혔다내가 생각하는 최선이 부모님께 최고일 거라 믿었는데, “그래서 나는 많이 그리고 자주 알아서 했다그게 무엇이든뭐든 알아서 하는 딸이 엄마 아빠는 편했을까불편했을까사실 나는 부담스러운 딸이었다.”라고 담담히 이야기하는 그녀의 글을 읽으며 스스로에게 물었다나는 어떤 딸이었을까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빠에게 받은 편지에 한 부분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우리 혜란이는 초등학교 4학년이면 너무나 어린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혼자 혜란이가 혼자서 혜란이가 할 일을 알아서 너무나도 잘해줘서 고맙구나.” ‘혼자 혼자서라는 말을 두 번이나 반복한 아빠의 편지는 자랑스런 아빠가 되기 위한 다짐과 약속으로 채워져 끝이 났다혼자서 알아서 하는 딸에게 미안하지 않기 위해그런 딸에게 자랑스런 아빠가 되기 위해 새벽에 잠을 줄이며 새 편지를 쓰셨다.

 

 

 

이 책을 읽은 후 그 편지가 다르게 마음에 닿았다나는 어렸을 때부터 동생에게 부모님을 양보하며 자랐다고 생각했다불평할 수 없는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부모님이 늘 믿는 든든한 첫째 딸이었고, 동생에게 가는 일상에서 받는 사랑을 덜 받는 걸 이해하는 딸이고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곤 했는데아니었다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 없거나 모자란 줄 알았던 지난 내 삶은 알고 보니 부모의 사랑으로 차고 넘치는 날들이었다.”라는 작가의 고백처럼나는 동생에게 쏟은 부모님의 사랑과 다른 또 다른 사랑을 넘치게 받았고, 지금도 여전히 받고 있다.

 

임희정 작가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나는 부끄러웠다그러다가 나는 계속 나쁜 딸로만 머물고 있는 걸까라는 투정이 나왔다위로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나를 키워낸 부모의 생그 자체가 위안이었다.”라고 말하는 저자의 글에 더 작아지려는 찰나부모님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몹시 힘들고 어렵지만 그 길을 걸어오며 그 순간까지 돌아본 글을 읽었다.

 

솔직하게 드러내는 삶마음을 보여주는 관계나를 해체하기쉽지 않지만 앞으로의 연분들 속에서는 그렇게 마주하고 싶다내 안의 경계를 잘 지나고 나면 꽃이 핀다고 믿으니까나는 쓰고 말하며 피어날 것이다.”

 

나에겐 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이 내 안의 한 경계를 지나는 중이 아닐까15년 전 아빠의 마음을 가늠하며  흘린 눈물이. 나에겐 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이 순간이 내 안의 한 경계를 지나는 중이 아닐까. 이젠 괜찮겠지 싶어 책을 읽다가또 울어버렸다코끝을 찡하게 울리는 여운이 어찌하지도 못하고, 눈물로 바뀌어 있었다책장을 넘기듯 지나가는 나의 이야기가 임희정 아나운서의 책에서는 자꾸만 멈추었다.

 

눈물이 부른 우리 부모님과 나의 추억을 떠올렸다바쁘다는 핑계로 넘어가고 지금 당장 내가 더 중요하다며 생각하지 못한 순간들이 눈물과 번져 만화경처럼 눈앞을  스쳤다죄송하고 부끄러워 나온 눈물이 이제는 괜찮은 것 같다눈물이 마른 뒤에 생기는 자국이 만든 경계를 넘어 만날 나를 기대하면 되니까그렇게 경계를 넘어나도 겨우 자식이 되어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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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읽다, 쓰다 - 세계문학 읽기 길잡이
김연경 지음 / 민음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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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수집이 취미인 내가 가장 충동적으로 사는 책의 장르는 문학이다. 문학이 좋아하는 이유는 정말 많지만, 어렸을 때 첫 만남이 좋았던 덕이 크다. 오후에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와 내 방으로 들어가, 옷도 갈아입지 않고 책가방에서 책을 꺼냈다. 『좁은 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을 꺼내 나른한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엎드려 웅크리듯 무릎 꿇고서 책을 읽었다. 그렇게 책에 온몸을 쏟아서 읽으면 그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요즘도 책을 읽다 몰입을 하면 나도 모르게 몸을 웅크려 둥글게 몸을 말곤 한다.


그렇게 세계 문학과 만나 이후에 세계 문학 전집을 보면 설레었다. 도서관에서 책등에 놓인 제목과 이름만 보아도 설레었고, 그렇게 읽고 좋았던 책을 하나 둘 책을 모았다. 작년에 100여권의 세계문학전집을 선물 받은 뒤, 세계문학전집을 사는 일은 뜸해졌다. 하지만 요즘도 서점에 가면 문학 코너에서 고전 부분에서 홀로 여러 출판사의 표지와 번역을 비교하며 장바구니에 담곤 한다. 문학 중 세계 문학이 나에게 다른 나라의 다른 세계의 삶을 살아볼 수 있는 경험을 주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 경험이 계속해서 읽기로 이어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단계를 넘어선 누군가는 쓰는 것까지 나아가 『살다, 읽다, 쓰다』를 완성했다.


『살다, 읽다, 쓰다』는 등단한 소설가이며, 노문학을 번역한 번역자이자, 문학작품을 사랑하는 독자다. 이 책은 세계문학의 독자로 행복했던 한 사람이 자신에게 문학 작품 읽기의 즐거움을 안겨준 작품들에 대한 헌사다. 자신이 작품을 읽고 마음에 찡하게 울렸던 울림의 자취에 대한 기록이다. 저자가 선별한 문학 작품은 7개의 장으로 엮여 있다. 시대에 따라, 국가에 따라, 작가에 따라 나눈 듯 보이지만 그와 또 다르게 야망, 성장, 정치, 일상이란 친숙한 이름으로 엮어져 있다. 그 엮어진 짜임새를 따라 문학 작품을 읽다 보면 한 편 한 편의 문학 작품이 모여 어떤 큰 자취를 남겼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저자가 헌사를 남긴 모든 세계 문학을 읽어보았다면 참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아는 책은 많으나, 읽은 책은 별로 없고, 제대로 읽은 책은 열 손가락에 꼽힌다. 이 책은 세계 문학을 다 읽지 못했어도, 괜찮다. 저자의 글을 읽다 보면 이름은 익숙한데 낯선 고전 문학이 조금은 가깝게 다가온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다만, 문학 작품 자체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점이 아쉬웠다. 작품을 읽고 난 뒤에 독자의 생각과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궁금한데, 그 부분은 맨 처음 서문을 제외하곤 찾아보기 힘들다.


개인의 경험을 덜어내고 문학 작품을 깊이 들여다본 덕분에 작품 하나하나가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고, 어떤 주제로 그 작품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문학을 읽고 자기 마음대로 즐기면 충분하다고 말하지만, 그 즐기는 것조차 쉽지 않은 독자가 많다. 문학 속 세계와 나의 세계 간의 시공간이 멀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 거리감을 좁혀준다. 낯선 곳에서 누군가 걸었던 자취나 이정표만으로 안심이 되듯 이 책은 낯선 문학 세계를 이해하는 좋은 가이드북이 되어줄 것이다.


"책을 통한 공부는 내 인생의 전부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여전히 모범생일 필요가 있다."라는 저자의 말에 피식 웃었다. 세계 문학을 읽을 때만큼은 난 초등학교 시절 웅크리며 책의 세계로 빠져들었던 책벌레 모범생이었던 나의 시절로 돌아가는 듯하다. 한참 동안 그 기분을 느끼지 못했는데, 오랜만에 문학을 읽어야겠다. 문학 속 세계를 느끼기 위해, 문학을 순수하게 사랑했던 나의 그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아직도 읽지 못한 수많은 작품 중 어떤 걸 읽으면 좋을까. 행복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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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힘들지? 취직했는데 - 죽을 만큼 원했던 이곳에서 나는 왜 죽을 것 같을까?
원지수 지음 / 인디고(글담)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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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이 된지 얼마 안 된 사람이라면, 취업이라는 목표를 달성한 이후에 그다음 목표를 세우지 못했다면 힘들 것이다. 그다음 목표가 불분명할 때, 내가 생각했던 일과 다른 현실까지 덮친다면 더 힘들 것이다. 또 직장인이란 수식어가 학생보다 익숙해졌다면 이직에 대한 고민, 성과에 대한 고민, 일과 삶의 조화에 대한 고민이 이어질 것이다. 『왜 힘들지? 취직했는데』의 저자는 그 과정을 거쳐온 프로 직장인이다. 그 고민에 대해 차근차근 자신의 경험을 미루어 공감해준다. 조언이나 충고 혹은 프로 직장인 가이드가 되어주기보다 "이해한다"라고 말한다. 당신만 힘든 것이 아니라 모두가 힘들기에 별거 아닌 것이라 말하지 않는다. 나와 같은 사람이 또 있다는 사실에 작은 위안을 건네고, 그 위안 속에 '나다움'을 발견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책은 총 4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직장에 들어갔을 때, 이직을 고민할 때, 더 나은 직장인이 되고 싶을 때, 그리고 직장인의 삶이 익숙해졌을 때 찾아오는 고민에 대한 글이 "왜 힘들지 취직했는데?", "그만두고 싶은가, 시작하고 싶은가", "그런다고 누가 알아줘?", "언제쯤 안정될 수 있을까"에 묶여 있다. 직장인이 가지고 있는 고민이 다를 것이고, 자신의 고민에 맞는 부분을 찾아 읽으면 좋은 책이다. 저자는 섣부른 조언이나 위로를 아낀다. 대신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히 풀어낸다. 그 이야기에 학교를 다니고 졸업하는 과정을 거친 후에 직장인이 된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공감할 이야기가 많다. 세상이 한편의 소설이라면 당연히 주인공은 나라고 믿었는데, 그 믿음이 어느 순간 조연 혹은 단역밖에 되지 않는 것 같아 힘겨운 사람이 있다면, 다시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내가 주인공이게 만들어주는 에세이다.

나는 계속, 답이 없더라도 고민할 것이고, 무겁더라도 나의 선택을 할 것이고, 그런 나를 최선을 다해 이해해 줄 것이다. 꿈꾸고, 만나고, 도전하고, 좌절하며 살아갈 모든 순간의 나를 존중하면서, 지치지 않고 언제고 또다시 초년생이 될 것이다. _ 279쪽

다가오는 10월이면 입사한지 5개월이 된다. 찬바람이 불던 올해 초 하고 싶었던 일을 다시 찬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이 되기 전에 하고 있다. 5개월이란 시간이 눈 깜빡한 새 지나가버렸고, 여전히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내가 신기하고 또 놀랍다. 일이 쉽지 않지만, 어렵기에 도전의식이 생기고. 내가 알던 모습과 달라 낯설지만, 그 낯섦이 익숙함으로 바뀔 때 설레고. 실수할 때마다 스스로를 탓하며 미워할 때도 있지만 조금 더 눈과 정신에 힘주어 일하는 법을 배우며 조금은 직장인스러워지는 내가 신기할 때도 있다.

거짓말처럼 들리겠지만, 나는 5월처럼 아니 첫 출근했을 때보다 지금 더 설렌다. "우리가 취업을 할 때 꿈꾸었던 '와, 오늘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설레서 미치겠어!' 따위의 즐거운 출근이란, 현실에서는 영영 불가능한 미션인 건가."라고 저자가 말한 그 불가능한 미션을 실행하고 있는 직장인이다. 의심의 눈으로 보는 사람이 있지만, 상관없다. 진짜 그러니까. 물론, 직장을 다니며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나의 힘듦은 『왜 힘들지? 취직했는데』의 저자가 말하는 많은 힘듦과 달랐다. 나는 더 잘하고 싶은데, 실수가 잦은 나 때문에 힘들었고. 더 잘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더 잘하는 것인지 몰라 답답해서 힘들었다. 결국 시간과 경험이 해결해주는 문제 앞에 조급해진 내가 날 힘들게 했다.

 

간절히 원했던 무언가를 이룬 후엔, 그것을 '이루고자 했던' 가장 큰마음의 동력이 사라지면서 그 자리에 두려움이나 불안함 같은 성질 급한 감정들이 들어앉는다. 그런데, 그 감정을 쫓아내려는 마음은 더 성질이 급한 게 문제다. _ 130쪽

힘든 보통의 직장인 뿐만 아니라, 조금 다른 고민을 안고 있는 나에게도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내가 책에서 가장 공감한 글은 "그런다고 누가 알아줘?"였다. 글 중에 이런 말이 나온다. "아무도 칭찬해 주지 않겠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이런 무수한 작은 성공의 순간들을.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내가 노력해서 나아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성공이다. 그런 작은 성공의 경험들을 무심히 흘려보내지 말라.". 나는 일을 하며 매일매일 조금씩 나아지려고 한다. 조금 더 일을 잘 해내는 마케터가 되고 싶고 그렇기 위해 노력한다.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더 나은 마케터가 되고 싶어서 하는 일이다. 그 노력을 내가 알고 있다. 그로써 충분하다.

하지만 현실은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 노력이 성과로 이어져야 하고, 그것은 보상받을 수 있는 결과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인생의 선배들이 해주는 피가 되고 쌀이 되는 조언을 흘려듣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일이다. 나는 타인보다 나 스스로에게 인정받았을 때 행복한 사람이다. "내가 밤을 새워 고민했던 나날들이 기특해서, 내가 최선을 다해 얻어낸 결과가 뿌듯해서, 내가 이를 악물고 버텨온 시간들이 짠해서, '해냄'의 순간순간마다 나의 가슴은 기쁨으로 벅차올랐다."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했다. 불합격 통보를 계속 받았던 시기에 흔들리는 멘탈을 부여 잡을 수 있었던 건, 내가 나를 믿기 때문이었다.

"작은 성공의 경험들이 만드는 건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라, 오늘 이만큼 해낸 내가 내일도 성공할 수 있다는, 힘차게 뿌리내린 자존감이다"라는 저자의 말에 별표를 친 신입 마케터는 이만 오늘을 위한 준비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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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VS 80의 사회 - 상위 20퍼센트는 어떻게 불평등을 유지하는가
리처드 리브스 지음, 김승진 옮김 / 민음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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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제임스 트러슬로 애덤스는 아메리칸드림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인간을 위해서가 아니라 계급의 이익을 위해 이전 문명들이 오랫동안 구축되어 온 장벽의 제약을 벗어나, 남녀 모두가 인간 개인으로서 온전하게 성장하고 발전해 나갈 수 있으리라는 꿈". 어느 순간부터 어디에도 없는 곳이란 의미의 유토피아처럼, 아메리칸드림도 잡히지 않는 신기루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우리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계층 이동성이 어려워졌다는 걸 부정하기 힘들다. 하지만 『20vs80의 사회』의 저자는 사라진 것은 아메리칸드림이 아니라, "중상류층이 아메리칸드림을 사재기"하고 있기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 말한다. 중상류층 20%가 사회의 모든 특권을 차지하고 있어 그 나머지 80%가 닿을 수 없었던 기회에 대해 고발한다.

저자는 사용하는 언어에서 계급이 드러나는 영국에서 나고 자라, 미국으로 이주한 이민자다. 저자가 볼 때, 영국과 달리 미국은 상류 계급이 존재하지 않으며 계급에 따른 우월 의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평등한 기회가 있으며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자유를 허용한 국가라고 믿었다. 하지만 보이는 미국과 달리 그가 살아오며 깨달은 미국은 소득 상회 계층에 대한 세대 간 경직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소득에 따른 계급 사다리 상위 20%의 고착화된 정도가 점점 심해졌다는 것을 지적한다. 그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소득 상위 20퍼센트 가구에서 자란 아이 중 37%가 성인이 되었을 때도 소득 상위 20%에 존재"하며, "부를 지표로 삼았을 때도 44%가 부모 세대에 이어 부에서도 상위 20%에 속한다." 학력 역시 46%가 계속해서 부모와 같은 정도의 학력을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평등이 심화된다는 것은 중상류층에서 떨어질 경우 더 깊게 추락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중상류층 부모는 자녀가 떨어지지 않도록 유리 바닥을 깔아 주고자 할 동기가 커지며, 그들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자원도 있다. 그래서 기회 사재기를 포함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다해서 자녀의 하양 이동 위험을 줄여 주려고 한다. 그들의 노력이 성공적일 경우, 위쪽이 더 경직적인 계층 구조가 생겨나게 된다. 그러면 중상류층은 자녀가 계층을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어 재분배 정책에 돈을 지불할 의향이 줄어든다. 그러면 불평등이 더 심화된다."

저자는 소득과 부 그리고 학력의 대물림이 이루어지는 현상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상위 20%가 자신이 누리는 부가 계속해서 대물림 되는 것보다 심각한 문제는 하위 80%와 상위 20% 간의 격차가 극심하게 벌어져있다는 데 있다. 그리고 이 두 사안이 하나의 사이클을 이루고 있는 것이 문제다. "현재 (미국의) 구조에서는 중산층에서 아래로 이동하는 것이 연착륙이 아니라 추락"으로 보일 만큼 중상류층과 나머지 사이의 격차가 크게 벌어져 있다. 이 냉혹한 현실에 "중상류층은 기를 쓰고 자신과 자녀의 중상류층 지위를 지키려 할 것"이라 말한다. 그 결과 상위 20%와 그 나머지 사이에 유리 바닥 혹은 유리 천장이 놓이게 되었다. 능력 본위만으로 기회의 평등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 모두가 같은 출발선 위에 서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때로 누군가는 조금 더 수월한 방법으로 경기를 치르고 이 과정이 점차 심화되어 간다는 걸 저자는 비판하고자 했다.

저자는 알고 있다. 개인의 자유가 보장된 미국에서 합법적으로 자녀를 위한 기회 사재가가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개인의 욕망에 기초한 자연스러운 선택이라는 것을. 하지만 "잘 사는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결집할 것이고 이들이 사용할 수단에는 다수의 인구를 희생해서 자신의 이득을 챙기는 것들도 포함될 것"이라는 경제학자 앵거스 디턴의 말이 옳을 수 있는 증거로 『20vs80의 사회』을 출간했다. 미국이 수호해야 할 것이 개인의 자유만이 아니고 기회의 평등도 있기에, 이 책을 출간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계획하지 않은 출산을 막고, 육아의 질을 높이기 위한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대학 학자금 조달을 위한 기회를 공정하게 만들고, 동문자녀 우대를 막고, 인턴 기회를 개방할 것을 제안했다.

아쉬운 점은 저자가 상위 20%가 부의 대물림, 자산의 대물림, 학력의 대물림을 고수하기 위해 이용한 전략, 그리고 개인의 자유하에 벌어진 위선적인 행동에 집중했다는 것이다. 나는 20%의 전략과 위선이 팽배할 수밖에 없었던 사회구조적 이유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상위 20%의 삶과 중위 20%의 삶의 격차가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면 과연 그들이 모든 것을 독차지하기 위한 유리 바닥을 만들었을까. 결국 중요한 건, 기회의 사재기를 하여 지금의 나의 삶을 수호하게 만드는 사회가 아닌, 상위 20%의 삶과 중위 20%의 삶의 격차가 크지 않은 불평등 완화도 중요하다. 그 시작에 기회의 공정함을 위한 교육을 통한 계층 이동의 사다리 보장이 정말 중요하듯, 상위 20%와 하위 80% 사이의 삶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노력도 함께 다루었다면 어땠을까. 책을 덮은 후, "나는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 그러리라고 믿는다"라는 말에 깊은 무게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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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만남과 시간으로 태어난다 - 매일이 행복해지는 도시 만들기 아우름 39
최민아 지음 / 샘터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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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실내건축학과 수업을 들으며 서울의 여러 지역구 가운데 하나를 골라, 그 지역구의 특색이 살아 있는 공간, 건물, 실내 장식을 직접 영상으로 찍어 발표하는 수업이 있었다. 중구를 맡아, 덕수궁 석조전, 서울 시립미술관, 서울시청, DDP를 직접 방문해 열심히 영상을 찍고 발표 준비를 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준비한 것도 기억에 오래 남았지만, 종로구와 성북구를 맡은 발표자들이 준비한 영상이 지금까지도 기억이 난다. 지역구를 상징하는 공간과 건물을 담았던 여느 조의 발표와 달리, 한 공간을 걸으며 관찰했던 영상을 담백하게 소개해 인상적이었다.


『도시는 만남과 시간으로 태어난다』의 저자는 좋은 도시 공간이 무엇인지, 어떤 공간이 그곳을 지나가고 머무르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행복을 안겨주는지 글로 적었다. 유엔 해비타트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2050년에 세계 인구의 약 70% 이상이 도시에 머물게 될 거라고 말한다. 이미 선진국의 경우, 도시에 머무는 사람의 수가 압도적이다. 우리나라도 인구의 90% 이상이 도시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의 생활하는 도시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저자는 어느 도시에나 있는 공간을 중심으로 그 공간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설명하기도 하고, 서울의 상징적인 공간을 분석했다. "사람과 도시와의 관계는 거리를 통해 만들어집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형성이 풍요로운 삶을 만드는 것처럼, 찾아가고 싶고 머물고 싶은 거리가 많은 도시"가 좋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공원, 학교 운동장, 항구, 기차역 등의 공간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고,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도시 공간으로 바꿀 수 있는지를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도시를 살펴보며 내 주변 공간은 어떤지 살펴보게 된다. 그러다, 저자의 설명과 닿아 있는 곳이 보이면 빙긋 웃음이 나올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애착을 갖는 까닭은 단순히 그 장소가 아름답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에게 좋은 기억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들이 새로 산 장난감보다 어릴 적부터 갖고 놀던 손때 묻은 헝겊 인형을 더 많이 좋아하는 것처럼, 사람의 감정과 기억은 매우 주관적이라 자신에게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고 익숙했던 장소일수록 애착이 강해지지요.


정독도서관, 세종대로, 덕수궁 돌담길, 삼청동, 서울 7017 등 익숙한 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더 몰입할 수 있었다. 개인적인 추억이 담긴 공간이라 그런지, 공간의 의미보다 공간에서 쌓아올린 추억이 떠올라 좋았다. 그러다 저자가 설명하는 프랑스 파리에 팡테옹 옆에 있는 '생 쥐느비에브 도서관', 한번 밖에 가보지 못해 아쉬운 '퐁피두 센터', 서울 7017과 같이 도시 재생 사업으로 만들어진 '비아뒥 데 자르'를 공간과 도시의 역사를 헤아리며 살펴보고 싶어졌다.


책을 읽으며 "걷고 싶은 길이 많은 곳, 도시 구석구석 연결하는 길이 모세혈관처럼 발달한 곳이야말로 제가 생각하는 좋은 도시"라는 말에 깊이 공감했다. 아마도 요즘이 걷기 좋은 계절이라서가 아닐까. 선선한 바람이 스며드는 요즘 같은 날이면 느릿느릿 걸으며 산책이 하고 싶어지기 마련이니까. 책을 읽기 전에는 몰랐던 사실을 확인하며 산책을 하고 싶어졌다. 주변을 둘러보면 제법 걸을 수 있는 공간이 많아진 서울 곳곳을 살펴봐야겠다. 시간을 들여 도시를 걸으며 도시를 조금 더 깊이 관찰하고 싶게 만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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