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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만남과 시간으로 태어난다 - 매일이 행복해지는 도시 만들기 ㅣ 아우름 39
최민아 지음 / 샘터사 / 2019년 8월
평점 :

예전에 실내건축학과 수업을 들으며 서울의 여러 지역구 가운데 하나를 골라, 그 지역구의 특색이 살아 있는 공간, 건물, 실내 장식을 직접 영상으로 찍어 발표하는 수업이 있었다. 중구를 맡아, 덕수궁 석조전, 서울 시립미술관, 서울시청, DDP를 직접 방문해 열심히 영상을 찍고 발표 준비를 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준비한 것도 기억에 오래 남았지만, 종로구와 성북구를 맡은 발표자들이 준비한 영상이 지금까지도 기억이 난다. 지역구를 상징하는 공간과 건물을 담았던 여느 조의 발표와 달리, 한 공간을 걸으며 관찰했던 영상을 담백하게 소개해 인상적이었다.
『도시는 만남과 시간으로 태어난다』의 저자는 좋은 도시 공간이 무엇인지, 어떤 공간이 그곳을 지나가고 머무르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행복을 안겨주는지 글로 적었다. 유엔 해비타트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2050년에 세계 인구의 약 70% 이상이 도시에 머물게 될 거라고 말한다. 이미 선진국의 경우, 도시에 머무는 사람의 수가 압도적이다. 우리나라도 인구의 90% 이상이 도시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의 생활하는 도시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저자는 어느 도시에나 있는 공간을 중심으로 그 공간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설명하기도 하고, 서울의 상징적인 공간을 분석했다. "사람과 도시와의 관계는 거리를 통해 만들어집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형성이 풍요로운 삶을 만드는 것처럼, 찾아가고 싶고 머물고 싶은 거리가 많은 도시"가 좋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공원, 학교 운동장, 항구, 기차역 등의 공간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고,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도시 공간으로 바꿀 수 있는지를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도시를 살펴보며 내 주변 공간은 어떤지 살펴보게 된다. 그러다, 저자의 설명과 닿아 있는 곳이 보이면 빙긋 웃음이 나올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애착을 갖는 까닭은 단순히 그 장소가 아름답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에게 좋은 기억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들이 새로 산 장난감보다 어릴 적부터 갖고 놀던 손때 묻은 헝겊 인형을 더 많이 좋아하는 것처럼, 사람의 감정과 기억은 매우 주관적이라 자신에게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고 익숙했던 장소일수록 애착이 강해지지요.
정독도서관, 세종대로, 덕수궁 돌담길, 삼청동, 서울 7017 등 익숙한 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더 몰입할 수 있었다. 개인적인 추억이 담긴 공간이라 그런지, 공간의 의미보다 공간에서 쌓아올린 추억이 떠올라 좋았다. 그러다 저자가 설명하는 프랑스 파리에 팡테옹 옆에 있는 '생 쥐느비에브 도서관', 한번 밖에 가보지 못해 아쉬운 '퐁피두 센터', 서울 7017과 같이 도시 재생 사업으로 만들어진 '비아뒥 데 자르'를 공간과 도시의 역사를 헤아리며 살펴보고 싶어졌다.
책을 읽으며 "걷고 싶은 길이 많은 곳, 도시 구석구석 연결하는 길이 모세혈관처럼 발달한 곳이야말로 제가 생각하는 좋은 도시"라는 말에 깊이 공감했다. 아마도 요즘이 걷기 좋은 계절이라서가 아닐까. 선선한 바람이 스며드는 요즘 같은 날이면 느릿느릿 걸으며 산책이 하고 싶어지기 마련이니까. 책을 읽기 전에는 몰랐던 사실을 확인하며 산책을 하고 싶어졌다. 주변을 둘러보면 제법 걸을 수 있는 공간이 많아진 서울 곳곳을 살펴봐야겠다. 시간을 들여 도시를 걸으며 도시를 조금 더 깊이 관찰하고 싶게 만드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