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읽다, 쓰다 - 세계문학 읽기 길잡이
김연경 지음 / 민음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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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수집이 취미인 내가 가장 충동적으로 사는 책의 장르는 문학이다. 문학이 좋아하는 이유는 정말 많지만, 어렸을 때 첫 만남이 좋았던 덕이 크다. 오후에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와 내 방으로 들어가, 옷도 갈아입지 않고 책가방에서 책을 꺼냈다. 『좁은 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을 꺼내 나른한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엎드려 웅크리듯 무릎 꿇고서 책을 읽었다. 그렇게 책에 온몸을 쏟아서 읽으면 그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요즘도 책을 읽다 몰입을 하면 나도 모르게 몸을 웅크려 둥글게 몸을 말곤 한다.


그렇게 세계 문학과 만나 이후에 세계 문학 전집을 보면 설레었다. 도서관에서 책등에 놓인 제목과 이름만 보아도 설레었고, 그렇게 읽고 좋았던 책을 하나 둘 책을 모았다. 작년에 100여권의 세계문학전집을 선물 받은 뒤, 세계문학전집을 사는 일은 뜸해졌다. 하지만 요즘도 서점에 가면 문학 코너에서 고전 부분에서 홀로 여러 출판사의 표지와 번역을 비교하며 장바구니에 담곤 한다. 문학 중 세계 문학이 나에게 다른 나라의 다른 세계의 삶을 살아볼 수 있는 경험을 주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 경험이 계속해서 읽기로 이어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단계를 넘어선 누군가는 쓰는 것까지 나아가 『살다, 읽다, 쓰다』를 완성했다.


『살다, 읽다, 쓰다』는 등단한 소설가이며, 노문학을 번역한 번역자이자, 문학작품을 사랑하는 독자다. 이 책은 세계문학의 독자로 행복했던 한 사람이 자신에게 문학 작품 읽기의 즐거움을 안겨준 작품들에 대한 헌사다. 자신이 작품을 읽고 마음에 찡하게 울렸던 울림의 자취에 대한 기록이다. 저자가 선별한 문학 작품은 7개의 장으로 엮여 있다. 시대에 따라, 국가에 따라, 작가에 따라 나눈 듯 보이지만 그와 또 다르게 야망, 성장, 정치, 일상이란 친숙한 이름으로 엮어져 있다. 그 엮어진 짜임새를 따라 문학 작품을 읽다 보면 한 편 한 편의 문학 작품이 모여 어떤 큰 자취를 남겼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저자가 헌사를 남긴 모든 세계 문학을 읽어보았다면 참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아는 책은 많으나, 읽은 책은 별로 없고, 제대로 읽은 책은 열 손가락에 꼽힌다. 이 책은 세계 문학을 다 읽지 못했어도, 괜찮다. 저자의 글을 읽다 보면 이름은 익숙한데 낯선 고전 문학이 조금은 가깝게 다가온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다만, 문학 작품 자체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점이 아쉬웠다. 작품을 읽고 난 뒤에 독자의 생각과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궁금한데, 그 부분은 맨 처음 서문을 제외하곤 찾아보기 힘들다.


개인의 경험을 덜어내고 문학 작품을 깊이 들여다본 덕분에 작품 하나하나가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고, 어떤 주제로 그 작품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문학을 읽고 자기 마음대로 즐기면 충분하다고 말하지만, 그 즐기는 것조차 쉽지 않은 독자가 많다. 문학 속 세계와 나의 세계 간의 시공간이 멀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 거리감을 좁혀준다. 낯선 곳에서 누군가 걸었던 자취나 이정표만으로 안심이 되듯 이 책은 낯선 문학 세계를 이해하는 좋은 가이드북이 되어줄 것이다.


"책을 통한 공부는 내 인생의 전부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여전히 모범생일 필요가 있다."라는 저자의 말에 피식 웃었다. 세계 문학을 읽을 때만큼은 난 초등학교 시절 웅크리며 책의 세계로 빠져들었던 책벌레 모범생이었던 나의 시절로 돌아가는 듯하다. 한참 동안 그 기분을 느끼지 못했는데, 오랜만에 문학을 읽어야겠다. 문학 속 세계를 느끼기 위해, 문학을 순수하게 사랑했던 나의 그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아직도 읽지 못한 수많은 작품 중 어떤 걸 읽으면 좋을까. 행복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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