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 인 윈도 모중석 스릴러 클럽 47
A. J. 핀 지음, 부선희 옮김 / 비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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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낮은 날이면, 나는 나 자신을 위에서 내려다보곤 한다.
비행기나 구름 위에서 저 아래 섬을 내려다보듯이.
_ 57쪽


미스터리는 좋지만 스릴러는 좋아하지 않는다. 이 두 가지가 적절하게 섞였을 때, 현대적인 느낌보다 고전적일 때 선택해 읽는다. 미스터리와 스릴러가 현대적일 때 만들어지는 특유의 뉘앙스가 나에겐 낯섦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물론 이 느낌을 좋아하는 독자도 많을 것이다. 《우먼 인 윈도》를 읽은 건, 솔직하게 베스트셀러라는 타이틀 때문이 컸다.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할 것 같았고, 이 장르의 소설을 즐기지 않는 나에게 쉽게 다가오리라 믿었다. 《우먼 인 윈도》는 낯설기보다 쉽게 읽히는 소설이었다. 심리적 해석이나 은유보다 탁탁 치고 나가는 문장은 평면적으로 상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다.


창문 너머로 무언가를 엿보는 여자, 애나. 바로 소설의 주인공이다. 왠지 하얀 그녀의 관찰을 읽는 것이 어딘가 찝찝하지만, 불쾌함까지 닿지 않는 이유는 그녀가 집을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신의학 공부를 했고, 아동심리당담사로 일을 했던 그녀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창문 너머의 세계를 관찰하는 것. 그리고 온라인에서 상담을 하는 것. 그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여덟 살 된 사랑스러운 딸도 남편도 만나지 않고, 그저 집안에만 있을 뿐이다. 그녀가 엿보는 것 외에 다른 것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광장공포증으로 나가는 것이 불가능했기에. 그녀는 엿볼 수밖에 없었다.


애나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불안함이 느껴졌다. 치밀하게 엿보기보다 흐릿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듯했다. 그래서였을까. 그녀가 살인사건을 목격했다고 말해도, 한 여자가 죽는 것을 보았다고 해도 그 말을 그 누구도 믿지 않았다. 때때로 그녀 자신조차 자신이 본 것이 사실인지, 약기운에 취해 본 환각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모두가 네 머릿속에서 일어난 일일뿐이라고 그런 일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가 죽음을 목격한 사람은 집안에 칩거하며 살던 그녀가 자신의 과거라고 생각하는, 다시금 가지고 싶은 포근한 가족 그 자체였고, 그 중심에 있던 러셀 부인의 죽음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말한다.


"이야기를 지어내고 있는 건 당신들이야."
"상상은 당신들이 하고 있다고. 저 창문을 통해서 피범벅이 된 제인을 봤어."


굉장한 불안함으로 인해 세상에 나가지 못하는 그녀가 타인의 죽음을 목격했다는 것만큼은 또렷하게 말하는 점이 아이러니했다. 그녀에게 러셀 부인, 제인이 죽는 모습은 공황장애라는 극한 공포와 고통을 느끼게 하는 일이었으나 동시에 그녀를 돕기 위해 안간힘을 썼기에. 자신의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 몸으로 고통스러운 상황까지 환각이라고 믿지 않았기에. 그녀가 말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한 여자의 죽음 이후에 두 개의 반전이 있다. 중반부에 바로 나오는 반전이 굉장히 흥미로웠고, 소설 마지막에 나오는 이야기는 오히려 예상이 갔던 바라 그리 충격적이지 않았다.


이게 지금의 내 모습일까? 나는 수족관의 담수어 같은 표정으로 일상적인 점심시간의 풍경을 얼빠진 듯 바라보는 여자일까? 새로 생긴 식료품점이라는 기적에 놀라는, 다른 세계로부터 온 방문객일까? 얼어붙은 머릿속 깊은 곳이 지끈거린다. 화가 난다. 완패한 기분이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이게 바로 나다. 이게 바로 지금의 나다.
약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창문이 부서져라 비명을 지르고 있었겠지.
_243쪽


애나는 무엇을 본 것일까. 애나는 어떤 사람인 것일까. 그녀가 본 것이 무엇인지만큼이나 그 무엇을 확인하는 과정과 그 과정 중에 밝혀지는 여러 진실 혹은 진실에 가까운 무언가를 아는 과정이 스릴러의 묘미가 아닐까. 스릴러 소설을 많이 읽지 않았으나, 《우먼 인 윈도》의 속도감은 그렇게 빠르지 않다. 애나의 시점에서 보이는 풍경은 광장공포증 때문에 먹는 약으로 인해 어떤 순간에는 세밀하게 어떤 순간에는 느슨하게 지나간다. 그도 그럴 것이 10월 24일에 시작한 기록이 11월 15일까지 닿는 동안, 기록의 분량은 들쑥날쑥했다. 어떤 장면은 상세하게, 어떤 장면은 스쳐 지나가듯이 묘사하곤 빠진다.


책을 읽는 내내 회색 안개가 짙게 드리워진 곳을 것는 기분이었다. 음울함보다 뿌옇게 안개가 낀듯한 소설 속 세상은 애나의 시선으로 그려져서 흐릿한 것인지. 그 흐릿함. 무언가 실눈을 뜨고 바라보는 풍경을 그린 소설 같았다. 여담이지만, 《우먼 인 윈도》의 표지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특히 띠지까지 표지의 일부로 만든 디자인은 이 책을 만든 디자이너가 꽤 많이 공을 들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띠지 안에 담겨있는 일러스트를 독자가 엿본다는 느낌을 주는 디자인이 아닌가 싶었다.


나는 그곳에 서 있다. 주변은 고요하다. 시선을 떨궈 우산을 바라본다. 두 눈을 감는다. 바깥세상이 안으로 밀려 들어오는 것만 같아. 모든 것을 빼앗긴 느낌이다. 공허하다. 또다시, 나는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이 사실을 제외하면. 그녀는 나와 싸우고 있지 않았다. 어찌 됐든, 그녀는 나와 싸우고 있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나에게 애원하고 있었다.
_369쪽


《우먼 인 윈도》를 읽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왜 나는 히치콕 영화를 단 한편도 보지 않았을까." 만약 그의 작품을 보고, 《우먼 인 윈도》를 보았다면, 달라졌을까. 놀라운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치콕 감독의 영화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굉장한 작품이라는 걸 알지만, 뭐랄까. 아직은 보고 싶지 않은 세계였다. 언젠가 만나게 될 세계로 아직은 두고 싶은 작품이었다. 분명 히치콕 영화가 어떤 것인지 모르고, 그의 영화를 보지 않아, 이 소설에서 읽어낼 수 없는 것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보지 못한 것 대신 내가 본 것도 있으리라 믿기에. 이럴 줄 알았으면, 대학 때 <영화의 이해> 수업을 들을 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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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다 반사
키크니 지음 / 샘터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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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다 반사》의 저자 키크니는 이렇게 말한다.

"내 인생에서 그림을 뺀다면 나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나는 귀찮은 건 싫어해도, 하고 싶은 건 꼭 해야 하고(그러기 위해 남을 귀찮게 하기도), 친구들 좋아하고, 사람 만나는 건 좋지만 사람이 많은 건 좋아하지 않아 어디 잘 안 다니고, 하나에 집중하면 끝을 보지만 집중하지 않는 대부분의 것들은 기억을 못 해 '허당'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라고 그래서 "내가 그림을 안 그렸다면 지금쯤 어느 여관방에서 돈을 세며 묵직한 중저음으로 "이번 달도 욕봤다."하며 동료들에게 현금 뭉치를 쥐여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왼쪽 가슴엔 치킨, 오른쪽 가슴엔 농구공 문신이 자리 잡은 채로."라고 말한다.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일상, 다 반사》라는 책으로 처음 알게 된 키크니라는 이름의 일러스트레이터는. 글을 쓰는 작가도, 그림을 그리는 작가의 생각을 확인하는 건 늘 흥미롭다. 남과 다른 생각을, 남과 비슷한 생각을 나만의 정제된 언어로 표현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의 이야기는 재미있다. 어떤 생각을 하면서 일상을 살아갈까 궁금했는데, 키크니라는 분, 재미있는 분이었다. 특별한 무언가를 발견한 건 아니지만, 출근길에 퇴근길에 피식피식 웃으며 보았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일러스트레이터로 일을 하면서 있었던 일상과 그 일상을 유쾌하게 표한할 줄 아는 그림과 글을 읽는 재미가 있었다.


"그저 그런 일러스트레이터인 저, 키크니의 소소한 일상을 엿봐주세요. 그 안에서 일상의 버거움이나 무료함을 반사할 힘을 얻는다면 더 큰 영광은 없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는 작가는 왠지 귀엽고 조금은 독특하고 그리고 꽤 프로페셔널 할 것 같았다. 네 컷 만화에 툭툭 그려진 생각은 때로는 공감이 가서 때로는 허무맹랑해서 웃음이 나왔다. 무심결에 그린 그림일지도 모르지만, 그 그림에 공감을 부르는 생각을 담아온 시간이 함께 담겨 있어서가 아닐까. 작가가 귀엽다고 느낀 부분은 자신의 신상을 공개하지 않아 너무 좋다는 부분들이었다. 책에서 몇 번 반복되는 이야기인데, 그 반복의 횟수가 작가의 진심을 더 꾹꾹 누르는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일을 선택한 것에 후회해본 적이 없다. 어릴 적에 낙서로 시작했던 그림이, 이젠 누군가에게 작은 재미와 감동으로 다가간다는 게 참 좋다. 무엇보다 이렇게 긴 시간 동안 해왔음에도 그림은 아직도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신나는 일이니깐.

무슨 밥벌이든 장점은 부족하고 단점은 끝도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럼 결국 내가 이 일을 재밌어하느냐가 그 일을 하는 키가 될 텐데, 나는 불행하게도 이 단점 가득한 일러스트레이터의 일이 재미있다. 아마 이 불행함은 계속되겠지.
_ 《일상, 다 반사》, 37쪽


그러다가 툭, 자신의 일을 진중하게 대하는 글을 볼 때면, 역시 자신의 일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프로 일러스트레이터이시구나 싶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이고 글과 그림으로 자신의 세계를 다 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세계를 완전히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의 소소한 일상에서 나의 일상을 찾기도 하고, 그와 다른 일상을 살아가는 나의 일상을 떠올리기도 하며 보내는 과정이 좋았다. 공감과 생각을 오가며 읽은 《일상, 다 반사》, 조금 무료한 하루를 보냈다면 책과 함께 무료함을 덜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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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뒤에 남겨진 아이들 - 2018년 공쿠르상 수상작
니콜라 마티외 지음, 이현희 옮김 / 민음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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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뒤에 남겨진 아이들』은 1990년대 프랑스 외각의 작은 소도시의 4번의 여름에 있었던 일을 담은 장편소설이다. 찬란했던 전성기가 지나가고 허망함만이 감도는 도시에서 사춘기를 맞이한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였다. 젊음이 찬란하게 빛나기 시작하는 때 그들이 있었던 곳은 하필 하루하루 힘을 잃어가는 프랑스의 주변부였다. 프랑스 하면 파리 외에 다른 도시가 떠오르지 않는 건 프랑스 역시 우리나라처럼 중앙으로 권력이 집중된 국가였다. 중심인 파리에서 빗겨난 도시에서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숙해지는 아이들은 내적 고민과 함께 불공평한 사회를 함께 바라보게 된다.


앙토니가 사촌과 함께 카누를 훔쳐서 '누드 비치'가 있다는 동네 호수 건너편을 가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앙토니는 열다섯 살 여름을 지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시작되어야 했다."라는 문장처럼, 무언가가 시작되기에 마땅한 때였으나, 앙토니가 살고 있던 도시는 모든 것이 끝이나고 있었다. 한 도시가 저물어가는 과정을 소년에서 청년기를 맞이하기 시작한 소년의 관첨에서 풀어낸 작품이 『그들 뒤에 남겨진 아이들』이었다.


사춘기의 시작은 첫 사랑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앙토니가 사랑을 느끼는 스테파니는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였다. 강을 사이에 두고 전혀 다른 공간이 펼쳐져 있었고 그 격차를 앙토니는 여과없이 목격한다. 산업이 저물어가는 도시 내에서 또 보여주는 중심과 주변을 앙토니와 스테파니, 클레망스를 통해 보여준다. 또 앙토니와 같은 입장이었으나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는 하신에 이르기까지. 1990년대에 한마을에 살았던 아이들의 미래는 저마다의 삶이 이끄는 방향을 따라 모두가 달랐다.


학생이란 위치에서 조금은 비슷했던 인생의 고민이 점점 바뀐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앙토니의 삶은 버텨내듯 살아내기 급급했다. 특히 파티에서 서빙 알바를 지원하는 앙토니의 씁쓸한 속마음에서 그의 서글픈 삶이 잘 드러나 있었다. 또 앙토니가 좋아했던 스테파니는 부유한 부모님으로부터 이 삶을 지켜내기 위해 상급학교 진학과 엘리트 계급 유지에 대한 압박을 받는다. 같이 맞이한 사춘기는 각자의 삶의 자리에 따라 다르게 끝이 나는 듯싶었다.


하지만 잊힌 공간에 살았던 이 아이들을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다. 기력이 쇠한 도시는 세상의 주목을 받지 못했고, 누군가 살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 삶이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다. 그렇게 기억할만한 것으로 선택받지 못한 채 어딘가 남겨져 있었던 이들의 삶을 작가는 섬세하게 들여다보았다. 약 20여 년 전 프랑스 이야기로, 작가의 자전적 경험이 많이 녹아있었다. 마치 작가의 기억 속에 은거한 일을 끌어올린 듯한 자세한 묘사를 통해 프랑스의 1990년대를 알지 못하는 나로 하여금 그 시간 그곳의 분위기를 최대한 느끼게 하려는 듯싶었다.


소설은 프랑스의 1990년대라는 특별하고 특수한 상황으로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아이러니하게 전혀 다른 문화권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도 공감대를 부른다. 각 인물이 자신의 삶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음을 냉정하게 보여주고, 극적인 변화 없이 그 삶의 태도대로 삶을 만드는 모습은 불편하지만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너는 왜 그렇게 남겨져 있었어?"라고 물을 수 없었다. 그렇게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는 소설은 읽는 내내 불편함을 내게 주었다.


언젠가 어느 방송에서 "인생에서 포기하는 법을 하나씩 배우는 과정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다."라고 말한 걸 들었다. 산업이 쇠퇴함에 따라 산업이 성장기를 지나 점점 마지막에 이를 때 소년은 내일에 대한 기대감보다 오늘의 지루함과 무료함을 느껴야 했다. 두근두근 설레는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저버리는 순간의 좌절감, 더 나은 내일에 대한 희망이 아득히 멀리 있어 포기해야 했을 때 씁쓸함이 4번의 여름에 담겨 있다.


그 여름을 오로지 앙토니의 이야기로만 채웠다면 지루했을 것이다. 이 책은 소년과 소녀의 삶을 통해 기억될 기회조차 없었던 삶이 보통의 삶은 아닌지 묻는다. 앙토니만이 겪는 일이 아니며,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이라고 말하는 듯싶었다. 그러기 위해 상세한 묘사와 정말 누군가는 그렇게 살았을 것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 소설은 엄청난 묘사를 하였다. 그 묘사에 모두 공감할 수 없었으나 몇몇 대목은 나의 경험에 미루어 상상하기도 했다.


도시 안에서 느끼는 수없이 많은 부정적인 감정으로 도시를 떠나고 싶어 했으나, 그럼에도 도시에서 깊은 친밀감을 느끼는 아이러니를 느껴본 적이 있는 나로서는, 책장을 넘기며 나에게 애증의 공간이 어딘지 내가 앙토니와 같은 곳임을 느꼈던 순간이 언제인지 떠올렸다. 한곳이 떠올랐다. 꼭 도시가 아니어도, 꼭 같은 갈등 과정을 거치지 않았어도 저마다 중심에서 멀어져 주변에서 고군분투한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한숨 가운데 에일랑주에 7월이 다시 찾아올 때 보드랍게 와닿는 빛의 질감. 해가 저물녘의 하늘은 솜처럼 나긋나긋한 분홍빛을 머금었다. 여름날 저녁 언제나 똑같은 이 느낌, 숲속에 드리운 그늘, 얼굴 위로 부는 바람, 공기의 이 틀림없는 냄새, 소녀의 피부처럼 오돌토돌한 아스팔트 길의 친숙함. 호수 골짜기가 그의 피부에 남겨 놓은 지문. 거기에 속해 있다는 이 끔찍한 포근함.
_『그들 뒤에 남겨진 아이들』 마지막 문단 마지막 4문장


햇살 아래 자라나는 계절, 여름. 그때에 성장이 아닌 성숙해져야 했고, 이해가 아닌 인정을 해야 했던 상황에 놓여 있던 사춘기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의 삶을 세밀하게 묘사한 소설. 이 소설은 내가 읽은 콩쿠르 소설 중 꽤 술술 읽히는 장편 소설이었다. 아마 나의 지난날을 발견할 수 있는 소설이어서가 아닐까. 앙토니와 같았던, 스테파니와 같았던 그리고 하신의 욕망이 스쳤던 때가 있기에. 이 소설이 1990년대 프랑스를 그린 리얼리즘 소설 이상의 의미가 있는 작품이 되었다.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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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피곤한 건 너 때문입니다
가지모토 오사미 지음, 오선이 옮김 / 온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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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으로 인해 힘들어 본 적이 없는 이가 있을까. 사람을 좋아하고, 만남을 즐기는 나도 사람 때문에 힘든 순간이 있다. 내가 사람 때문에 힘든 순간은 본능적으로 이 사람이 나와 맞지 않다는 걸 알았을 때, 그런데 같이 프로젝트나 일을 해야 할 때, 혹은 오랫동안 같이 봐야 하는 사이가 되었을 때다. 굉장한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감정을 숨기고 그 사람에게 다가가지만 아니나 다를까 이 사람의 리액션이 나의 기대에서 한치에서 벗어나지 않았을 때. 와우! 다가가기 전 스트레스는 2배로 뛰어오른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하고만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다양한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서 그러기란 쉽지 않다. 결국 나와 맞지 않는 사람과도 적당한 커뮤니케이션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아무리 잘 맞는 사람하고도 적당히 거리를 둘 줄 알아야 한다. 누군가와 함께할 줄도 알아야 하고, 누군가에게서 멀어져 혼자 있을 줄도 알아야 한다. 『내가 피곤한 건 너 때문입니다』는 인간관계에 있어 밀물과 썰물의 순간, 어떻게 대처하면 좋은지 알려주는 책이다.


'아, 지겹다!'라고, '아, 힘들다!'라고 느낄 때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이 신호가 꽤 중요한 몸의 신호였다는 걸 나는 몰랐다. 이 생각은 나의 뇌가 피곤하다고 보내는 시그널이었고, 그 시그널에 쉼을 취해야 한다고 저자는 당부한다. 이 신호를 무시했을 때 생각보다 큰 몸의 이상이 올 수 있으며, 그때는 정말 의학적 도움이 필요해지기 때문이다. 저자는 인간관계에서 이 신호가 올 때 대응 방법을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한다. 하나는 혼자 있기, 다른 하나는 함께 있기다.


싫은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난 함께 있을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부분 중 매뉴얼화된 방법에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몇몇 부분은 공감이 갔다. 내가 공감했던 부분은 "우리가 누군가를 정말로 좋아하게 되는 건 그 사람이 완벽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사람의 부족한 부분에 사랑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약한 모습을 조금 더 좋아해 보면 어떨까요?"라는 말이었다. 사람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적당한 거리로 다가가는 것도 중요하다.


실제로 예전에 좀처럼 나의 약한 부분을 보여주는 데 힘들어했다. 하지만 내가 약한 부분을 감추고 딱딱하게 대할수록 사람과 친해지기란 쉽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나의 부족함을 솔직하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약한 부분, 그 약함을 극복하려 부단히 노력하는 나 역시 모두 나의 일부분이기에. 숨긴다고 숨길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의 우려와 달리 나의 부족함을 따스하게 바라봐 줄 수 있는 사람은 그런 나까지 보듬어주는 사람들이었다.


인간관계에서 우리는 종종 나의 선택권을 잃고 상대에 의해 그 관계가 이끌려가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인간관계로 힘들어지지 않기 위해서 절대 놓치지 않고 사수해야 할 내 몫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본 부분은 때론 혼자인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1~2시간에 한 번, 5분이라도 혼자만의 장소에 있는 것"이 인간관계로 힘들 때 좋은 특효약이 된다는 점, "무리해서 사람과 만나지 않는 것"만으로도 해결되는 순간이 있다는 점은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인 방법이었다.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하는 만큼 혼자 있는 시간도 난 소중하게 여긴다. 책을 좋아하는 것도 여기에 있다. 책을 읽으면 그곳이 어디든 나는 책 속 세계에서 혼자 머물 수 있다. 어떤 상황 인지에서도 벗어나서. 그래서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면 난 잘 읽지 않는 장르의 책을 사서 읽는다. 나에게 너무나도 낯선 세계로 접촉한다. 그렇게 자발적으로 잠시 세상과 멀어져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다. 그것만으로 굉장한 리프레시가 된다. 함께 있기를 좋아하지만, 함께 있으며 스트레스를 받으면 혼자만의 세계로 도망치기도 하는 나에게, 이 책은 함께와 혼자를 오가는 것이야말로 너무나 자연스럽고, 꼭 필요한 것이라며 잘하고 있다고 말하는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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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표 영어에 입시를 더하다 - EBS 스타강사 혼공샘의 우리 아이 영어 공부법
허준석 지음 / 북폴리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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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5년 차 현직 교사이면서 12년 동안 EBS 영어 강사로 활약한 허준석 선생님의 『엄마표 영어에 입시를 더하다』. 혼공쌤이라는 닉네임으로 더 유명한 허준석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영어를 잘 알려주기 위한 방법을 넘어 부모님과 아이가 영어를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지 영어 공부 로드맵을 제안한 책이었다. 학창시절 공부를 그리 열심히 하지 않아, 강의로 혼공쌤을 만난 기억은 없지만, 책을 읽으며 이렇게 체계적으로 영어 공부 로드맵을 만드는 분의 영어 강의를 들었다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이 잠깐 스쳤다.


사실, 내게 와닿는 책이 아니기에 빠른 속도로 후루룩 책을 읽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우리 엄마도 나의 영어 공부 때문에 꽤나 속상해했던 기억이 났고, 나 역시 영어가 늘 힘들었기에. 영어 때문에 힘들었을 아이와 부모님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혼공쌤의 마음이 책에 담겨 있는 듯싶었다. 수포자만큼이나 많은 영포자들이 조금이라도 줄어들 수 있도록 돕는 책이 아닐까 싶었다.


『엄마표 영어에 입시를 더하다』은 우리 아이 영어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부모님에게 확실한 기준을 세울 것을 제안한다. 수많은 영어 방법 중 우리 아이에게 딱 맞는 방법이 있고, 그 방법을 찾기 위한 첫 단추가 바로 "우리 아이만의 영어 기준 세우기!"라고 말한다. 이때 다른 부모님의 이야기나 영어 학원 선생님의 말에 휘둘리지 않는 부모님의 확실한 교육 철학이 있어야 함을 강조한다.


이 책은 무조건 이렇게 하면 영어를 꽉 잡을 수 있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심지어 언제 영어 교육을 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대답도 분명하게 하지 않았다. 혼공쌤의 자녀 역시 영어 교육의 적기가 다른 아이와 달랐다. 중요한 것은 부모가 확고한 교육 철학을 바탕으로 시기별로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고 아이에 따라 공부해나가는 협력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협력자라는 표현이 좋았다. 많은 부모님들이 자녀를 교육할 때마다, 엄마가 아이보다 주체가 되어 시키듯 공부를 한다. 이렇게 공부하는 것은 올바른 공부 방법이 아니다. 부모로서 아이가 언제 어려워하는지, 어떤 지점을 힘들어하는지를 발견하여 그 어려움과 힘듦의 고비를 잘 넘길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한다. 중요한 건 그 어려움과 힘듦을 넘길 수 있도록 돕는 구체적인 방법도 함께 소개한다는 점이다.


영어에 어떻게 흥미를 가질 수 있는지, 유튜브 영어 동영상 중 어떤 유형의 동영상이 도움이 되는지, 아이의 거부감을 덜어내는 공부법은 무엇인지, 엄마가 아이의 영어 공부를 도울 때 어떤 점이 어려울 수 있는지, 학년이 올라감에 따라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 할 영어 포인트가 무엇인지 등을 잡아주는 내용을 읽다 보면. 영어와 첫 만남부터 진학을 위해 필요한 영어 공부법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사실, 내게 와닿는 책이 아니기에 빠른 속도로 후루룩 책을 읽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우리 엄마도 나의 영어 공부 때문에 꽤나 속상해했던 기억이 났고, 나 역시 영어가 늘 힘들었기에. 영어 때문에 힘들었을 아이와 부모님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혼공쌤의 마음이 책에 담겨 있는 듯싶었다. 수포자만큼이나 많은 영포자들이 조금이라도 줄어들 수 있도록 돕는 책이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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