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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뒤에 남겨진 아이들 - 2018년 공쿠르상 수상작
니콜라 마티외 지음, 이현희 옮김 / 민음사 / 2019년 9월
평점 :
『그들 뒤에 남겨진 아이들』은 1990년대 프랑스 외각의 작은 소도시의 4번의 여름에 있었던 일을 담은 장편소설이다. 찬란했던 전성기가 지나가고 허망함만이 감도는 도시에서 사춘기를 맞이한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였다. 젊음이 찬란하게 빛나기 시작하는 때 그들이 있었던 곳은 하필 하루하루 힘을 잃어가는 프랑스의 주변부였다. 프랑스 하면 파리 외에 다른 도시가 떠오르지 않는 건 프랑스 역시 우리나라처럼 중앙으로 권력이 집중된 국가였다. 중심인 파리에서 빗겨난 도시에서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숙해지는 아이들은 내적 고민과 함께 불공평한 사회를 함께 바라보게 된다.
앙토니가 사촌과 함께 카누를 훔쳐서 '누드 비치'가 있다는 동네 호수 건너편을 가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앙토니는 열다섯 살 여름을 지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시작되어야 했다."라는 문장처럼, 무언가가 시작되기에 마땅한 때였으나, 앙토니가 살고 있던 도시는 모든 것이 끝이나고 있었다. 한 도시가 저물어가는 과정을 소년에서 청년기를 맞이하기 시작한 소년의 관첨에서 풀어낸 작품이 『그들 뒤에 남겨진 아이들』이었다.
사춘기의 시작은 첫 사랑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앙토니가 사랑을 느끼는 스테파니는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였다. 강을 사이에 두고 전혀 다른 공간이 펼쳐져 있었고 그 격차를 앙토니는 여과없이 목격한다. 산업이 저물어가는 도시 내에서 또 보여주는 중심과 주변을 앙토니와 스테파니, 클레망스를 통해 보여준다. 또 앙토니와 같은 입장이었으나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는 하신에 이르기까지. 1990년대에 한마을에 살았던 아이들의 미래는 저마다의 삶이 이끄는 방향을 따라 모두가 달랐다.
학생이란 위치에서 조금은 비슷했던 인생의 고민이 점점 바뀐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앙토니의 삶은 버텨내듯 살아내기 급급했다. 특히 파티에서 서빙 알바를 지원하는 앙토니의 씁쓸한 속마음에서 그의 서글픈 삶이 잘 드러나 있었다. 또 앙토니가 좋아했던 스테파니는 부유한 부모님으로부터 이 삶을 지켜내기 위해 상급학교 진학과 엘리트 계급 유지에 대한 압박을 받는다. 같이 맞이한 사춘기는 각자의 삶의 자리에 따라 다르게 끝이 나는 듯싶었다.
하지만 잊힌 공간에 살았던 이 아이들을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다. 기력이 쇠한 도시는 세상의 주목을 받지 못했고, 누군가 살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 삶이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다. 그렇게 기억할만한 것으로 선택받지 못한 채 어딘가 남겨져 있었던 이들의 삶을 작가는 섬세하게 들여다보았다. 약 20여 년 전 프랑스 이야기로, 작가의 자전적 경험이 많이 녹아있었다. 마치 작가의 기억 속에 은거한 일을 끌어올린 듯한 자세한 묘사를 통해 프랑스의 1990년대를 알지 못하는 나로 하여금 그 시간 그곳의 분위기를 최대한 느끼게 하려는 듯싶었다.
소설은 프랑스의 1990년대라는 특별하고 특수한 상황으로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아이러니하게 전혀 다른 문화권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도 공감대를 부른다. 각 인물이 자신의 삶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음을 냉정하게 보여주고, 극적인 변화 없이 그 삶의 태도대로 삶을 만드는 모습은 불편하지만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너는 왜 그렇게 남겨져 있었어?"라고 물을 수 없었다. 그렇게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는 소설은 읽는 내내 불편함을 내게 주었다.
언젠가 어느 방송에서 "인생에서 포기하는 법을 하나씩 배우는 과정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다."라고 말한 걸 들었다. 산업이 쇠퇴함에 따라 산업이 성장기를 지나 점점 마지막에 이를 때 소년은 내일에 대한 기대감보다 오늘의 지루함과 무료함을 느껴야 했다. 두근두근 설레는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저버리는 순간의 좌절감, 더 나은 내일에 대한 희망이 아득히 멀리 있어 포기해야 했을 때 씁쓸함이 4번의 여름에 담겨 있다.
그 여름을 오로지 앙토니의 이야기로만 채웠다면 지루했을 것이다. 이 책은 소년과 소녀의 삶을 통해 기억될 기회조차 없었던 삶이 보통의 삶은 아닌지 묻는다. 앙토니만이 겪는 일이 아니며,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이라고 말하는 듯싶었다. 그러기 위해 상세한 묘사와 정말 누군가는 그렇게 살았을 것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 소설은 엄청난 묘사를 하였다. 그 묘사에 모두 공감할 수 없었으나 몇몇 대목은 나의 경험에 미루어 상상하기도 했다.
도시 안에서 느끼는 수없이 많은 부정적인 감정으로 도시를 떠나고 싶어 했으나, 그럼에도 도시에서 깊은 친밀감을 느끼는 아이러니를 느껴본 적이 있는 나로서는, 책장을 넘기며 나에게 애증의 공간이 어딘지 내가 앙토니와 같은 곳임을 느꼈던 순간이 언제인지 떠올렸다. 한곳이 떠올랐다. 꼭 도시가 아니어도, 꼭 같은 갈등 과정을 거치지 않았어도 저마다 중심에서 멀어져 주변에서 고군분투한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한숨 가운데 에일랑주에 7월이 다시 찾아올 때 보드랍게 와닿는 빛의 질감. 해가 저물녘의 하늘은 솜처럼 나긋나긋한 분홍빛을 머금었다. 여름날 저녁 언제나 똑같은 이 느낌, 숲속에 드리운 그늘, 얼굴 위로 부는 바람, 공기의 이 틀림없는 냄새, 소녀의 피부처럼 오돌토돌한 아스팔트 길의 친숙함. 호수 골짜기가 그의 피부에 남겨 놓은 지문. 거기에 속해 있다는 이 끔찍한 포근함.
_『그들 뒤에 남겨진 아이들』 마지막 문단 마지막 4문장
햇살 아래 자라나는 계절, 여름. 그때에 성장이 아닌 성숙해져야 했고, 이해가 아닌 인정을 해야 했던 상황에 놓여 있던 사춘기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의 삶을 세밀하게 묘사한 소설. 이 소설은 내가 읽은 콩쿠르 소설 중 꽤 술술 읽히는 장편 소설이었다. 아마 나의 지난날을 발견할 수 있는 소설이어서가 아닐까. 앙토니와 같았던, 스테파니와 같았던 그리고 하신의 욕망이 스쳤던 때가 있기에. 이 소설이 1990년대 프랑스를 그린 리얼리즘 소설 이상의 의미가 있는 작품이 되었다. 나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