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먼 인 윈도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47
A. J. 핀 지음, 부선희 옮김 / 비채 / 2019년 9월
평점 :
하늘이 낮은 날이면, 나는 나 자신을 위에서 내려다보곤 한다.
비행기나 구름 위에서 저 아래 섬을 내려다보듯이.
_ 57쪽
미스터리는 좋지만 스릴러는 좋아하지 않는다. 이 두 가지가 적절하게 섞였을 때, 현대적인 느낌보다 고전적일 때 선택해 읽는다. 미스터리와 스릴러가 현대적일 때 만들어지는 특유의 뉘앙스가 나에겐 낯섦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물론 이 느낌을 좋아하는 독자도 많을 것이다. 《우먼 인 윈도》를 읽은 건, 솔직하게 베스트셀러라는 타이틀 때문이 컸다.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할 것 같았고, 이 장르의 소설을 즐기지 않는 나에게 쉽게 다가오리라 믿었다. 《우먼 인 윈도》는 낯설기보다 쉽게 읽히는 소설이었다. 심리적 해석이나 은유보다 탁탁 치고 나가는 문장은 평면적으로 상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다.
창문 너머로 무언가를 엿보는 여자, 애나. 바로 소설의 주인공이다. 왠지 하얀 그녀의 관찰을 읽는 것이 어딘가 찝찝하지만, 불쾌함까지 닿지 않는 이유는 그녀가 집을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신의학 공부를 했고, 아동심리당담사로 일을 했던 그녀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창문 너머의 세계를 관찰하는 것. 그리고 온라인에서 상담을 하는 것. 그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여덟 살 된 사랑스러운 딸도 남편도 만나지 않고, 그저 집안에만 있을 뿐이다. 그녀가 엿보는 것 외에 다른 것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광장공포증으로 나가는 것이 불가능했기에. 그녀는 엿볼 수밖에 없었다.
애나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불안함이 느껴졌다. 치밀하게 엿보기보다 흐릿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듯했다. 그래서였을까. 그녀가 살인사건을 목격했다고 말해도, 한 여자가 죽는 것을 보았다고 해도 그 말을 그 누구도 믿지 않았다. 때때로 그녀 자신조차 자신이 본 것이 사실인지, 약기운에 취해 본 환각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모두가 네 머릿속에서 일어난 일일뿐이라고 그런 일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가 죽음을 목격한 사람은 집안에 칩거하며 살던 그녀가 자신의 과거라고 생각하는, 다시금 가지고 싶은 포근한 가족 그 자체였고, 그 중심에 있던 러셀 부인의 죽음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말한다.
"이야기를 지어내고 있는 건 당신들이야."
"상상은 당신들이 하고 있다고. 저 창문을 통해서 피범벅이 된 제인을 봤어."
굉장한 불안함으로 인해 세상에 나가지 못하는 그녀가 타인의 죽음을 목격했다는 것만큼은 또렷하게 말하는 점이 아이러니했다. 그녀에게 러셀 부인, 제인이 죽는 모습은 공황장애라는 극한 공포와 고통을 느끼게 하는 일이었으나 동시에 그녀를 돕기 위해 안간힘을 썼기에. 자신의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 몸으로 고통스러운 상황까지 환각이라고 믿지 않았기에. 그녀가 말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한 여자의 죽음 이후에 두 개의 반전이 있다. 중반부에 바로 나오는 반전이 굉장히 흥미로웠고, 소설 마지막에 나오는 이야기는 오히려 예상이 갔던 바라 그리 충격적이지 않았다.
이게 지금의 내 모습일까? 나는 수족관의 담수어 같은 표정으로 일상적인 점심시간의 풍경을 얼빠진 듯 바라보는 여자일까? 새로 생긴 식료품점이라는 기적에 놀라는, 다른 세계로부터 온 방문객일까? 얼어붙은 머릿속 깊은 곳이 지끈거린다. 화가 난다. 완패한 기분이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이게 바로 나다. 이게 바로 지금의 나다.
약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창문이 부서져라 비명을 지르고 있었겠지.
_243쪽
애나는 무엇을 본 것일까. 애나는 어떤 사람인 것일까. 그녀가 본 것이 무엇인지만큼이나 그 무엇을 확인하는 과정과 그 과정 중에 밝혀지는 여러 진실 혹은 진실에 가까운 무언가를 아는 과정이 스릴러의 묘미가 아닐까. 스릴러 소설을 많이 읽지 않았으나, 《우먼 인 윈도》의 속도감은 그렇게 빠르지 않다. 애나의 시점에서 보이는 풍경은 광장공포증 때문에 먹는 약으로 인해 어떤 순간에는 세밀하게 어떤 순간에는 느슨하게 지나간다. 그도 그럴 것이 10월 24일에 시작한 기록이 11월 15일까지 닿는 동안, 기록의 분량은 들쑥날쑥했다. 어떤 장면은 상세하게, 어떤 장면은 스쳐 지나가듯이 묘사하곤 빠진다.
책을 읽는 내내 회색 안개가 짙게 드리워진 곳을 것는 기분이었다. 음울함보다 뿌옇게 안개가 낀듯한 소설 속 세상은 애나의 시선으로 그려져서 흐릿한 것인지. 그 흐릿함. 무언가 실눈을 뜨고 바라보는 풍경을 그린 소설 같았다. 여담이지만, 《우먼 인 윈도》의 표지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특히 띠지까지 표지의 일부로 만든 디자인은 이 책을 만든 디자이너가 꽤 많이 공을 들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띠지 안에 담겨있는 일러스트를 독자가 엿본다는 느낌을 주는 디자인이 아닌가 싶었다.
나는 그곳에 서 있다. 주변은 고요하다. 시선을 떨궈 우산을 바라본다. 두 눈을 감는다. 바깥세상이 안으로 밀려 들어오는 것만 같아. 모든 것을 빼앗긴 느낌이다. 공허하다. 또다시, 나는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이 사실을 제외하면. 그녀는 나와 싸우고 있지 않았다. 어찌 됐든, 그녀는 나와 싸우고 있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나에게 애원하고 있었다.
_369쪽
《우먼 인 윈도》를 읽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왜 나는 히치콕 영화를 단 한편도 보지 않았을까." 만약 그의 작품을 보고, 《우먼 인 윈도》를 보았다면, 달라졌을까. 놀라운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치콕 감독의 영화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굉장한 작품이라는 걸 알지만, 뭐랄까. 아직은 보고 싶지 않은 세계였다. 언젠가 만나게 될 세계로 아직은 두고 싶은 작품이었다. 분명 히치콕 영화가 어떤 것인지 모르고, 그의 영화를 보지 않아, 이 소설에서 읽어낼 수 없는 것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보지 못한 것 대신 내가 본 것도 있으리라 믿기에. 이럴 줄 알았으면, 대학 때 <영화의 이해> 수업을 들을 걸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