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 마야의 모험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 28
발데마르 본젤스 지음, 천은실 그림, 강민경 옮김 / 인디고(글담)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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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꿀벌 한 마리가 있다. 아무것도 모르기에 겁을 먹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기에 설레는 미지의 세계를 모험하는데 한치의 망설임도 없는 꿀벌. 바로 귀여운 "마야"를 가리킨 말이다. 모험을 다룬 책이 많지만, 마야의 이야기는 조금 더 특별했다. "나는 꽃이 가득한 세상을 돌아다닐 거야. 나는 다른 벌들과는 달라. 내 마음은 즐거움과 놀라움, 그리고 경험과 모험을 원하고 있어. 나는 어떤 위험도 두려워하지 않아. 나에게는 힘과 용기와 침이 있으니까."라고 말하며,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마야. 그 사랑스러운 존재에게 매료되지 않을 수 없는 만남을 <꿀벌 마야의 모험>을 통해 열었다.

빌데마르 본젤스가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전에 발표한 이 소설은 꿀벌 마야가 다른 동료들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고향을 떠나며 시작한다. 낯선 여정에서 마야가 만난 곤충과 동물은 다양했다. 딱정벌레, 메뚜기, 쇠똥구리, 거미, 나비, 노린재, 잠자리, 딱따구리 그리고 말벌까지. 다른 상황에서 다양한 곤충을 만나는 과정을 읽으면, 꿀벌이 겪는 일로 의인화한 우화란 생각이 단번에 든다. 하지만 이 소설이 어떤 교훈을 줄지를 고민하기보다,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만들어주는 일러스트 그림과 함께 마야와 여정을 떠난다 생각하며 읽으면 더 좋은 책이다.

어쩌면 일벌들 사이에서 보면 마야는 돌연변이다. 마치 <갈매기의 꿈>에 나오는 조나단 리빙스턴처럼. 다른 꿀벌이 이해하기 힘든, 그래서 카산드라도 손들어버린 아주 이상하고 특별한 존재다. "자신이 태어난 넓고 아름다운 세상을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마음"을 삼켜두지 않고, 용기 있게 그 마음이 이끄는 삶을 선택한다. "행복해지고 싶어요."라고 말하고, 행복해지고 싶은 채 두지 않고, 행복해지기 위해 움직이는 마야의 모습은 마음속으로 수차례 다짐만 하고서 끝내는 일이 많은 나를 따끔한 침으로 쿡 누르는 듯싶었다.

'햇빛 없이는 그 누구도 마음이 가벼워지지 못해.'

마야는 생각했다. 햇빛을 떠올릴 때면 마야의 가슴속에는 기쁨과 은밀한 긍지가 다시 차올랐다. 그것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의 힘으로 시작할 수 있다는 용기였다. 짧은 여행 동안 마야는 적잖은 일들을 보고 겪었다. 다른 꿀벌들은 평생을 살아도 마야가 겪은 일의 일부조차 경험하지 못할 것이다. 마야는 경험이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재산이며 자신을 희생할 가치가 있는 삶이라고 생각했다.

_<꿀벌 마야의 모험> 중에서

아무것도 모르기에, 순수하기 때문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모하기보다 마야의 모험에 가슴 두근거렸던 이유는 "위대한 자연과 마주할 때면 알고자 하는 욕망과 함께 크나큰 기쁨"을 만끽하고, 그 과정을 통해 성장하고 성숙해진 마야를 보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하는 모험이 얼마나 값진지 깨닫는다. 마야는 모험을 통해 때로는 자신의 무모함이 부른 화에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하고, 누군가의 도움에 진심을 다해 감사하는 법을 배운다. 이를 통해 "더 이상 어리기만 한 꿀벌이 아니라, 건강하게 반짝이는 날개와 뾰족하고 위협적인 침을 가진, 삶의 위험과 기쁨을 충분히 알고 있는 강인하고 훌륭한 꿀벌이 되었다.

마야가 좋았던 이유는 자신의 마음에 품고 있는 소망에 귀 기울일 줄 알았고, 무모하리만큼 용기 있게 행동으로 옮길 줄 알았다. 그리고 수많은 경험을 통해 자신 안에 쌓인 것을 올바르게 사용하고 싶은 깊은 생각까지 가지고 있었다. 때때로 혼자이기에 찾아드는 외로움을 견디며 성장한 마야는 다시 꿀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한다. 자신의 고향은 말벌의 공격으로 굉장히 큰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걸 알았던 마야는 동료들과 힘을 합쳐 말벌 무리들을 무찌른다. 말벌과의 사투 끝에 고향을 지켜내지만, 그 이후에 마야가 느낀 감정은 승리의 기쁨이나 환희가 아니었다. 눈물을 흘리며 마야는 "적도 자신처럼 살아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삶을 사랑하며, 죽을 때는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한 채 무거운 죽음을 받아들이는 존재"라는 걸 깨닫는다.

별난 태도는 종종 평범한 삶보다 더 고귀한 것, 더 나은 것을 추구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젊은 시절 난봉꾼으로 불리던 구성원이 어느 날 경험 많고 지혜롭고 이해심 넓고 온화한 어른이 되는 일도 적지 않은 것이다.

_<꿀벌 마야의 모험> 중에서

어렸을 때는 몰랐다. 이 동화 같은 이야기 속 주인공이 얼마나 단단해져 가는지를. 어렸을 때 만화로, 동화로 보았던 작품이라 동심을 일깨울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읽은 책 덕분에 오랜만에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나는 어떤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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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물에게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운다 - 보이지 않는 것들의 보이는 매력 아우름 40
김응빈 지음 / 샘터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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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물에게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우다』는 생물학자 김응빈이 쓴 "보이지 않는 미생물의 보이는 매력"을 파헤친 책이다. 미생물에 대한 선입견을 하나둘 깨트린다. 미생물이라고 하면, 질병 박테리아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에게 청바지를 염색할 때 사용하는 색소의 비밀을, 우리 신체에 숨어 있는 신비로운 미생물의 세계를, 그리고 맑고 투명한 바이칼 호수에서 공생하는 미생물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들려준다.


우리는 그 수많은 미생물을 눈으로 볼 수도, 몸으로 느낄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무얼 하든, 어딜 가든 늘 함께합니다. 싫든 좋든 우리는 미생물의 세계 안에서 살아갑니다. 미생물 없이는 인간의 삶도 없죠. 잊지 마세요. 미생물은 박멸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해야만 하는 동반자라는 사실을!


조류독감, 구제역, 아프리카돼지열병에 이르기까지, 미생물이라고 하면 나쁜 세균이란 생각이 먼저 스친다. 하지만 과연 미생물은 나쁘기만 한 것일까. 저자는 『미생물에게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우다』를 통해 미생물과 인간이 어떤 공생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 삶 속에 미생물이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소개한다. 책을 읽으며 오랜만에 과학 교과서에서 보았을 법한 사진, 그림, 도표에 반가웠다. 생물학 책이니만큼, 이해를 돕는 자료들도 시선을 끌었다.


이처럼 미생물은 자연 전반에 걸쳐 영양분의 순환과 재사용을 매우 효율적으로 통제합니다. 결국 지구에서의 삶이란, 미생물을 통해서 다양하게 연결된 '생명 네트워크'입니다.


책을 읽으며 내가 몰랐던 미생물의 세계가 얼마나 넓은지 알 수 있어 좋았다. 예를 들어 장내 미생물 생태계 교란 상태를 가리키는 용어가 디스바이오시스에서 우리 부모님이 챙겨드시는 프로바이오틱스의 정확한 지침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에 대한 설명은 미생물에 대한 지식이 우리 삶에 얼마나 맞닿은 일인지 알 수 있었고, 식물과 질소 사이의 관계에 들어간 질소고정 세균의 역할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다.


저자는 과거 많은 사람들을 사망으로 이끈 콜레라, 페스트에 대한 설명으로 미생물 연구의 역사부터, 송로버섯을 찾는 돼지의 역할, 생화학 무기의 위험성, 충치균이 과거와 달리 오늘날 많이 있는지, 그리고 흰개미를 통해 미생물을 통한 지구의 순환 시스템에 대한 설명한다. 일상과 닿아있는 주제부터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부분에 닿아 있는 미생물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는 책이었다. 과학 지식이 많지 않아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친절한 입문 교양 과학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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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천 반의 아이들
솽쉐타오 지음, 유소영 옮김 / 민음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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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마찬가지 말이지만 여러분은 다 좋은 학생입니다. 모두 시험을 쳐서 들어온 학생들이니까. 난 여러분을 신경 쓰지 않을 거예요, 난 너무 피곤해요, 그러더니 선생님이 우리를 훑어봤다. 마치 자기 말을 알아들었는지 확인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확실히 알아들었다는 눈빛을 보냈고, 나도 그랬다.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한 친구와의 만남, 그 친구와 만났던 학교의 추억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기를 읽었다. 솽쉐티오 소설집《9천 반의 아이들》의 첫 번째 소설 <9천 반의 아이들>이었다. 입학시험을 보고 1등을 하든 꼴등을 하든 등록금을 9천 위안 내야 하는 학교다. 공부만을 잘해서가 아니라 적지 않은 돈을 내야 들어갈 수 있는 학교 '9천 반'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린다.


주인공은 입학시험을 보고 '9천 반'에 들어갔으나, 그중에서 갑, 을, 병, 정 중 맨 마지막 정반에 들어간다. 같은 등록금을 내고 들어갔으나 다시 성적에 따라 구별된 반에 들어간 나는 아버지가 지어준 안더순이란 이름 대신 스스로 붙인 안더례라는 친구를 만난다. 입학 전까지만 해도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9천 반에서 자신의 자리는 맨 끝자리라는 사실에 맥이 빠졌다.


성적은 더 떨어질 곳이 없을 정도로 하양 곡선을 그렸다. 부모님이 이곳저곳에서 모아 자신에게 투자한 9천 위안이란 무게가 벅찬 그는 축구를 하루 종일 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이성을 바라보기만 하며 주어진 현실을 요리조리 피해 가기 바빴다. "내 생활 전체가 빛이 바래면 다시 영웅이 될 거라는 망상에 빠졌다"라고 고백하는 주인공의 마음은 매우 복잡했다.


어느 날 그가 내게 말했다. 마냥 여기 이렇게 앉아 있어서는 안 돼. 넌 공부해야지. 우리 둘은 달라. 내가 말했다. 뭐가 달라, 공부 생각은 떨쳐 버린 지 오래야. 그가 말했다. 아니, 그건 아니지. 우린 달라. 넌 희망이 있어. 다만 말을 잘 안 할 뿐이지.


그다음에 펼쳐진 이야기는 말도 안 되는 일의 연속이었다. 안더례와 나의 만남은 한편의 영화 같았다. 마치 영화 <나의 소녀시대> 말미에 나오는 극적인 장면과 닮아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서 벌어진 일은 해피엔딩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자신의 9천 반 시절을 돌아보는 나의 시선에는 아련함이 담겨 있었다. 남다른 추억을 쌓아왔으나, 어느 순간부터 두 사람 사이에는 좁혀질 수 없는 틈이 벌어졌다.


우리의 유일한 공통 화제는 중학교 시절에 대한 회상이었다. 안더례는 비록 꽉 채워진 완벽한 시간이 아니었고 많이 어그러지긴 했었지만, 그 시절이 자기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솽쉐티오 소설은 기억을 거슬러올라가는 이야기가 많았다. 친구와 관계, 아버지와 관계, 부모 간의 관계. 지금과 다른 과거의 관계를 더듬은 기억에는 무모하리만치 무언가 하나에만 집중하는 사람이 나오고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미적지근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다. 희망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 일상을 놓치지 않고 기록할 뿐이다. 감정의 흐름에 맞춰 나아가는 건 아니지만, 글이 그려내는 바래진 풍경은 어딘가 모르게 진솔하고 다정다감한 느낌을 준다.


대체 언제부터 이 기억들이 이처럼 또렷하게 내 삶의 일부가 되었을까? 아니, 대체 이 기억 가운데 정말 일어났던 일들은 무엇일까? 어떤 기억들은 그저 기억의 파편을 내 멋대로 조합해 놓고 그걸 사실이라고 믿는 건 아닐까? 모든 것이 수수께끼 같다.


<9천 반의 아이들>이 주는 몰입감도 좋지만 이 소설집에서 <평원의 모세>와 <대사>도 꽤 인상적이었다. 특히 <평원의 모세>는 각 인물의 관점을 오가는 형태라 읽는 내내 기억의 파편들을 오가며 상황과 인물을 관찰할 수 있어 인상적이었다. 중국 소설이라 낯설지 않을까 염려했으나, 현대를 배경으로 삼은 소설은 국경을 넘어 묘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특히 어른이 되어 지난날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느껴지는 아릿함 그리고 씁쓸함이 주는 인생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작품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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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생각은 사양합니다 - 잘해주고 상처받는 착한 사람 탈출 프로젝트
한경은 지음 / 수오서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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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적어도 한 번쯤 삶에서 어려움, 힘겨움  혹은 불행함을 느끼곤 한다. 속상하거나 힘든 일이 있으면 운동을 하며, 영화나 책을 읽으며 잊어버리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이야기하며 문제 해결 방법을 찾으며 응어리진 슬픔을 한바탕 울고 웃으며 해소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문제는 마음에 깊이 꽁꽁 숨겨져 있어 어떤 방법이나 행동으로 해결해야 할지 몰라 막막하게만 느껴진다. 


나의 경우엔 "답답한 나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머리로는 되는 일이, 실제 행동에선 자꾸만 어긋나서. 그렇게밖에 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싫어서 스스로를 탓하고, 상처 주었다. 그때는 그 문제에 대해서 누구에게도 말을 꺼내기 어려웠고, 그래서 혼자서 어떻게든 해결하고픈 마음이 간절해, 어찌하지도 못한 채 끌어안기 바빴다. 참고 견디면 어떻게든 해결되리라는 희망만으로는 마음이 괜찮아지지 않는다는 걸, 난 오랜 시간이 걸려서야 깨달았다.


한참 힘들었을 그때, 읽었다면 더 빨리 괜찮아지지 않았을까 싶은 책을 읽었다. 《당신 생각은 사양합니다》의 저자 심리상담사로 일하는 저자는 과거의 나에게, 지금 나에게 물었다. 내가 참으면, 내가 견디면, 내가 조금만 양보하면 정말 모든 것이 괜찮아지느냐고. 아니, 그렇게 당신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느냐고. 물었다. 《당신 생각은 사양합니다》는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나에게 상처를 주는 상황에서 내가 더 소중한지 혹은 관계가 더 소중한지 끊임없이 묻는다, 그 과정에서 저마다 자신을 사랑하기 위한 답을 찾아가길 바라는 책이었다. 

 

서점에 가면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네거나,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담은 책들이 정말 많다. 어떤 책은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실전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때로는 마음을 비우고 조금 다르게 관계를 바라볼 수 있는 방법을 일러주기도 한다. 《당신 생각은 사양합니다》가 나에게 특별히 다가왔던 이유는 읽으며 내 상황을 다 아는 듯 말하는 저자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저자가 상담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 같아,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책을 읽으며 상대가 나에게 상처를 줄 때, 그 상처를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던 내가 그 모든 걸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았다는 걸 알았다.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도 상처에 무감각해지기만 기다렸던 적도 있었다. 당연히 지옥 같은 마음은 괜찮지 않았고, 무기력해지거나 화가 쌓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나에게 최선인 줄 알았다. 저자는 감정을 마음에 담아두지 말라고. 잠시 감정을 지켜보는 것으로 충분하다며. 어쩔 수 없는 일을 어찌해보려고 마음을 쓰는 것이 교만이라고. 말했다. 그 후에 넌지시 일러준 방법들이 난 좋았다.


나는 타인을 정말 자주 의식했다. 내가 지어낸 생각과 갖다 붙인 해석으로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편이었다. 나에게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이 나를 싫어한다고 착각하는 일이 있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즉, 현실을 현실로 보지 못하고 내 마음대로 상상하며 받아들이곤 했었다. 많은 밤을, 특히 누군가 나를 싫어할까 봐 마음 졸이던 밤으로 보냈다. 그렇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는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갇혀 있었다. 


시간이 지나,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것이란 당연히 불가능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것도 정말 쉽지 않으며, 결국 내가 나를 아껴주고 사랑하는 것이 가장 실현 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그 사실을 알기까지 내 마음이 너덜너덜해지는 경험을 몇 번이나 해야 했다. 그렇게 내가 모두를 사랑할 수 없듯, 모두가 나를 사랑할 수 없다는 걸 오랜 시간에 걸려 아프게 배웠다. "나로 사는 데 누군가의 인정은 필요 없다" 부분을 읽으며 좋은 사람인척했다가 상처받았던 경험이 떠올랐고,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무리한 부탁을 수용했던 기억에 쓴 웃음을 지었다.


내가 가졌던 미성숙한 생각과 태도는 '그때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는 것을 다시 기억하자. 그 당시 나의 부정적인 생각, 행동, 감정, 태도들은 모두 정서적인 위협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나름의 기능을 한 것이다. _ 《당신 생각은 사양합니다》 202쪽


아마 '진짜 착한 사람'에 비하면, 나는 '착했던 사람' 혹은 '착한'이란 틀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책을 읽으며 내 이야기 같았던 부분이 많았다. 책을 덮으며, 저자의 말에 공감했다고 생각했던 말을 수정하고 싶어졌다. "내 이야기네.", "나도 그런데."라는 공감이 아니라 저자의 말이 아니라, 책을 읽으며 지금보다 조금만 더 나를 위하자는 다짐이라고 고치고 싶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으나, 나도 모르게 타인을 위한다는 이유로 나를 또 등한시 여겼던 내가 떠올랐다.


쉽지 않은 일이다. 나를 알아가고 이해하고 사랑한다는 건. 하지만 이번 생에 어떻게든 같이 살아가야 하는 나를 보듬어주며 조금 더 사랑해야겠다. 나를 위해 세상을 위해서라도, 그러니 난 《당신 생각은 사양합니다》를 말해야겠다. 망설이지 않고, 우물쭈물 주저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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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녀 이야기 그래픽 노블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르네 놀트 그림, 진서희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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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 세계를 그린 소설 『시녀 이야기』를 그림으로 옮긴 책 『시녀 이야기 그래픽 노블』. 21세기 중반쯤, 전쟁과 환경 오염 그리고 성병까지, 엎친 대 덮친 미국은 극심한 혼란에 빠진다. 이때 가부장제와 성경을 건국 이념으로 세운 전체주의 국가가 세워진다. 많은 전체주의 국가들이 그러하듯, 혼란한 정국을 수습하기 위한 목적으로 국민을 억압하며 반항할 시 폭력도 불사한다.


이 폭력은 여성을 여러 계급으로 나누어 임신을 할 수 있는 여성과 그렇지 않은 여성. 그리고 일에 따라 집을 나설 수 있는 공간적 범위에 따라 또 계급이 나누어진다. 그래픽 노블은 텍스트에서와 달리 시각적으로 계급 구분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읽기 쉬웠다. 주인공 '오프 브레드'는 평화롭게 그리고 평범하게 살았다. 하지만 가족을 빼앗기고 한 사령관의 '시녀'로 사령관 부부의 아이를 임신하도록 강요받는다.


사실 시각적으로 눈앞에서 그 과정을 보기란 쉽지 않다. 책 속 그림의 오묘한 분위기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시녀 이야기』의 전체주의 국가 '길리아드'의 세계로 집중하게 만들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지만, 오프브레드의 생각을 따라 어느새 그녀가 맞을 내일, 그 다음날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책장을 빠르게 넘기고 있었다.


2019년 부커 상을 수상한 마거릿 애트우드의 소설 『시녀 이야기』, 미드 <시녀 이야기>도 있으나 그래픽 노블로 느낄 수 있는 시녀 이야기는 사뭇 다른 충격을 안겨줄 것이다. 소설은 작가의 글을 내가 머릿속 상상으로 구현하며 느끼는 감동이 있고, 드라마는 실제 사람들의 연기와 그리고 극적 연출에서 전해지는 파장이 있다. 그래픽 노블은 이 두 가지와 달리 책 속 그림으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그림은 '오프브레드'가 살아가는 현실과 이제는 그녀의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세계 두 가지로 나뉜다. 현실을 그릴 때는 검은색 펜 선 안에 색을 칠했다면, 상상 속 세계에서 색과 색을 나누는 검은색 펜 선은 흐릿하거나 보이지 않는다. 마치 전체주의 세계라는 틀을 작화 방법 자체로 보여주는 듯싶었다. 소설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옮기지 않았으나, 『시녀 이야기』를 짧은 시간 내에 몰입하여 읽을 수 있어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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