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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천 반의 아이들
솽쉐타오 지음, 유소영 옮김 / 민음사 / 2019년 10월
평점 :
또 마찬가지 말이지만 여러분은 다 좋은 학생입니다. 모두 시험을 쳐서 들어온 학생들이니까. 난 여러분을 신경 쓰지 않을 거예요, 난 너무 피곤해요, 그러더니 선생님이 우리를 훑어봤다. 마치 자기 말을 알아들었는지 확인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확실히 알아들었다는 눈빛을 보냈고, 나도 그랬다.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한 친구와의 만남, 그 친구와 만났던 학교의 추억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야기를 읽었다. 솽쉐티오 소설집《9천 반의 아이들》의 첫 번째 소설 <9천 반의 아이들>이었다. 입학시험을 보고 1등을 하든 꼴등을 하든 등록금을 9천 위안 내야 하는 학교다. 공부만을 잘해서가 아니라 적지 않은 돈을 내야 들어갈 수 있는 학교 '9천 반'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린다.
주인공은 입학시험을 보고 '9천 반'에 들어갔으나, 그중에서 갑, 을, 병, 정 중 맨 마지막 정반에 들어간다. 같은 등록금을 내고 들어갔으나 다시 성적에 따라 구별된 반에 들어간 나는 아버지가 지어준 안더순이란 이름 대신 스스로 붙인 안더례라는 친구를 만난다. 입학 전까지만 해도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9천 반에서 자신의 자리는 맨 끝자리라는 사실에 맥이 빠졌다.
성적은 더 떨어질 곳이 없을 정도로 하양 곡선을 그렸다. 부모님이 이곳저곳에서 모아 자신에게 투자한 9천 위안이란 무게가 벅찬 그는 축구를 하루 종일 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이성을 바라보기만 하며 주어진 현실을 요리조리 피해 가기 바빴다. "내 생활 전체가 빛이 바래면 다시 영웅이 될 거라는 망상에 빠졌다"라고 고백하는 주인공의 마음은 매우 복잡했다.
어느 날 그가 내게 말했다. 마냥 여기 이렇게 앉아 있어서는 안 돼. 넌 공부해야지. 우리 둘은 달라. 내가 말했다. 뭐가 달라, 공부 생각은 떨쳐 버린 지 오래야. 그가 말했다. 아니, 그건 아니지. 우린 달라. 넌 희망이 있어. 다만 말을 잘 안 할 뿐이지.
그다음에 펼쳐진 이야기는 말도 안 되는 일의 연속이었다. 안더례와 나의 만남은 한편의 영화 같았다. 마치 영화 <나의 소녀시대> 말미에 나오는 극적인 장면과 닮아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서 벌어진 일은 해피엔딩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자신의 9천 반 시절을 돌아보는 나의 시선에는 아련함이 담겨 있었다. 남다른 추억을 쌓아왔으나, 어느 순간부터 두 사람 사이에는 좁혀질 수 없는 틈이 벌어졌다.
우리의 유일한 공통 화제는 중학교 시절에 대한 회상이었다. 안더례는 비록 꽉 채워진 완벽한 시간이 아니었고 많이 어그러지긴 했었지만, 그 시절이 자기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솽쉐티오 소설은 기억을 거슬러올라가는 이야기가 많았다. 친구와 관계, 아버지와 관계, 부모 간의 관계. 지금과 다른 과거의 관계를 더듬은 기억에는 무모하리만치 무언가 하나에만 집중하는 사람이 나오고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미적지근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다. 희망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 일상을 놓치지 않고 기록할 뿐이다. 감정의 흐름에 맞춰 나아가는 건 아니지만, 글이 그려내는 바래진 풍경은 어딘가 모르게 진솔하고 다정다감한 느낌을 준다.
대체 언제부터 이 기억들이 이처럼 또렷하게 내 삶의 일부가 되었을까? 아니, 대체 이 기억 가운데 정말 일어났던 일들은 무엇일까? 어떤 기억들은 그저 기억의 파편을 내 멋대로 조합해 놓고 그걸 사실이라고 믿는 건 아닐까? 모든 것이 수수께끼 같다.
<9천 반의 아이들>이 주는 몰입감도 좋지만 이 소설집에서 <평원의 모세>와 <대사>도 꽤 인상적이었다. 특히 <평원의 모세>는 각 인물의 관점을 오가는 형태라 읽는 내내 기억의 파편들을 오가며 상황과 인물을 관찰할 수 있어 인상적이었다. 중국 소설이라 낯설지 않을까 염려했으나, 현대를 배경으로 삼은 소설은 국경을 넘어 묘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특히 어른이 되어 지난날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느껴지는 아릿함 그리고 씁쓸함이 주는 인생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작품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