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즈버그의 말 - 평등을 향해 걸어온 대법관의 목소리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헬레나 헌트 지음, 오현아 옮김 / 마음산책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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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산책의 말 시리즈를 좋아한다. 책의 만듦새도 만듦새이지만, 호기심만 가지고 이었던 사람에 대해 조금 알 수 있게 하며, 더 알아보고 싶은 마음을 불어넣기 때문이다. 『긴즈버그의 말』을 읽으며 그 인생을 엿볼 수 있는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 다큐멘터리 〈나는 반대한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가 보고 싶어졌다. 소수의견으로 수오하고자 했던 바가 무엇인지 더욱 자세히 알 수 있도록 원문을 찾아봐야겠다 다짐했다. 역시, 좋은 책이었다. 이 책을 통해 알게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를 더 알아보고 싶어졌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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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학의 도전 - 변방의 자리에서 다른 세계를 상상하다, 2019 우수출판콘텐츠 제작지원사업 선정작 질문의 책 30
김도현 지음 / 오월의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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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100% 주류에 서있다고 자신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누구나 비주류의 입장에 서고, 또 주류의 입장에 선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부자와 빈자, 기혼자와 미혼자, 청년과 노인 등 기준에 따라 주류이기도 하고 비주류가 된다. 우리 사회에서 비주류에 선 '장애인'에 대한 책을 잘 읽지 않았는데, 『선량한 차별주의자』의 선택 장애에 대한 글을 읽은 후에 이 책을 우연히 발견했다.

장애학이란 학문이 있는 줄 몰랐다. "문제로 정의된 사람들이 문제를 다시 정의할 수 있는 힘을 가질 때 혁명은 시작된다"라는 말을 힘주어 하는 『장애학의 도전』은 사회에서 장애인이 어떻게 고립되며 이들의 고립을 해방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정리한 책이다. 일반교양서의 형태이기보다, 논문의 성격을 띤 글로 일반 독자가 읽기에 낯선 부분이 있다. 미주와 각주 그리고 저자의 장애인 인권 현장 경험이 묻어나 있어 충분히 극복 가능한 어려움이다.

 저자는 장애학이란 학문 분과가 가지는 의미부터 시작해, 장애인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어려움, 역사적으로 장애인이 어떻게 낙인을 받아왔는지 과학적, 철학적으로 분석한다. 4개 장, 9개 챕터로 이루어진 글 중 2부 성찰은 나에게 낯섦으로 다가왔다. 우생학,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론, 정의론 모두 한 번은 들어보았으나 내가 확실하게 소화한 영역이 아니었기 때문에 맥락만 이해하여 아쉬웠다.

장애인이기 때문에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차별받기 때문에 장애인이 된다는 저자의 생각은 일관된 목소리로 글에 나타난다. 저자의 글은 학술적이지만 뜨거운 마음이 담긴 글이었다. 장애가 우리의 영역으로 들어가야만 하고, 들어갈 수 있다는 믿음이 바탕에 놓인 글이었기 때문이다. tv 방송에서 장애에 대한 주제로 시사토론이 이루어진 적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씁쓸했다.

주류이기도 하고 비주류이기도 한, 사는 것이 원래 그렇다. 주류에 있으면 나도 모르게 좋았을 것이고, 비주류에 있으면 나도 모르게 나쁜 날이 되었을 것이다. 그 반복을 모르게 지나칠 수 있고, 잠깐의 불편으로 넘길 수 있는 나와 다른 누군가가 있다. 그 다른 누군가가 체념하며 "사는 것이 원래, 그래."라고 한숨 쉬지 않고, 내가 느끼듯 삶을 일구어나가길 바란다.

마음에 가시처럼 걸리는 사회 문제를 다룬 이 책을 읽어 좋았다. 순서가 바뀌었지만, 조만간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읽어봐야겠다. 끝으로 내가 책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바로 다음 부분이었다. 밑줄을 긋고 싶은 구절이었고, 차별이 만든 장애라는 프레임을 깨기 위한 생각의 단초를 주는 부분이었다. 당연한 것인데, 이 당연함이 좋았던 것을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인간 존엄성의 기반은 개별 인간 내부에 존재하지 않으며, 개체[개인]들을 가로지르고 초과하는 사회적 관계 안에 존재한다. 쉽게 말해 인간 존엄성은 그것을 존중하고 보장하는 사회적 관계들 속에서만 존재한다. 내가 이미 존엄한 존재이기 때문에 나의 존엄성이 사회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기보다, 나의 존엄성이 보장되는 사회적 관계들 (그리고 그런 관계들 내에 있는 주체들의 상호작용과 인정) 속에서 나는 비로소 존엄한 존재가 된다. 이 사회가, 그리고 다른 사회 구성원들이 나를 존엄하게 대하지 않는다면 나는 존엄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인간은 왜 존엄한 존재인가?'가 아니라, '어떤 사회적 관계와 조건 속에서 인간은 존엄해질 수 있는가?'라고 말이다. _ 『장애학의 도전』, 248-2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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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크맨
애나 번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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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이하게 되면 새로운 시작이란 설렘과 함께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생각한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와 함께, 늘 하는 다짐이 있다. "작년보다는 더 나아져야 하는데. 그래서 행복해져야 할 텐데." 어느 새해에는 이런 다짐을 했다. 남의 불행에 나의 삶을 비교하며 행복해하지는 말자고. 다른 사람의 불행에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보자고. 『밀크맨』을 읽으며 그때 했던 나의 다짐이 생각났다. 소설 속 주인공을 보며 나의 삶이 행복하다고 기뻐하지는 말자고, 그녀의 불행에 공감하는 마음 한 조각을 내어주자고.

쉽지 않았다. 주인공의 생각은 분명했지만, 자주 길을 잃었다. 때로 헤맸고, 다른 이야기를 했다가 다시 원래 이야기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열여덟 살인 주인공은 북아일랜드에 사는 아이의 고백은 누구도 믿어주지 않아, 어디에도 기댈 수 없는 불안이 글에 스며있었다. 쉽게, 섯부르게 공감을 내어주기 힘들었다. 이따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맥락이 이리저리 널뛰는 탓에 왜 오해를 산 이유부터 가늠해버렸다. 공감을 결심을 하며 읽은 소설에서 말이다.

열여덟 살인 주인공이 밀크맨이라 불리는 40대 남자와 불륜 관계라는 소문이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옮겨짐에 따라 주인공이 먼저 유혹해서 그렇고 그런 관계가 되었다는 사실로 바뀐다. 읽으면 읽을수록 이 아이의 마음이 얼마나 무너져내렸을지가 보였다. 아무리 아니라고 말해도 엄마에게, 친한 친구에게 외면받은 아이가 설 수 있는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머리는 복잡해지고 아득해졌을 것이다. 아니라는 해명이 변명으로 전해질 때, 나라면 괜찮을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의 마음은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네가 떳떳하면 그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고, 그래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소설이었다. 상처로 어디서부터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몰라 두서없이 꺼내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말하는 소설이었다. 종이 한가득 채워져 읽기는 불편하고 내용을 이해하기도 어려우며 공감을 내어주기까지 힘들지라도 말이다. 나는 몇 번이나 그만 읽고 싶었다. 하지만 다 읽었다. 어떤 기분인지 알 것 같다고 말할 수는 없어도, 네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 들어주고 싶다고 말하고 싶어서.

한 사람이 불안한 사회에서 누구에게서도 안정을 느낄 수 없을 때, 자신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지키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있었다. 단단했던 생각이 두서 없어질 때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것임을 소설을 다 읽고서야 알았다. "그러니까 이건 피하고, 이건 거르고 - 그게 사람이니까, 그게 관계니까, 그게 당연하니까 - 고양이 문제도 미뤄두고 나는 말했다."라는 말을 했을 때 참담했을 마음을 다 읽고 나서 천천히 생각하니 전해져왔다. 공감이란, 그 순간에 고개를 끄덕이며 줄 수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모든 걸 다 들어주고 나서야 비로소 전해지는 것이기도 했다.

저수지 공원 방향으로 가는 보도 위로 뛰어내리면서 나는 빛을 다시 내쉬었고 그 순간, 나는 거의 웃었다.
_ 『밀크맨』 492쪽

빛을 내쉬는 그녀의 웃음에 진심으로 웃어주는 사람이 '거의' 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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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들 시녀 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김선형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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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들》을 통해 바라본 길리어드는 《시녀 이야기》 속 세상과 사뭇 달랐다. 세 사람이 각기 다른 길리어드의 삶을 기록했다. 그 기록 더미에서 어렴풋 보이는 길리어드는 디스토피아 그 자체였다.

참혹한 길리어드에서 그 참혹함이 반복될 수 있도록 헌신하는 아주머니의 삶, 사령관의 양딸이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빵조차 만들 수 없고, 또 다른 사령관과 결혼해야 하는 아그네스, 부모님까지 잃으며 삶이 뒤흔들린 데이지의 이야기는 교차하며 연결된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무기력하게 명령에 따라야 할 때 참담함을 느꼈고, 고통 앞에 무기력해지는 나약한 모습에 안쓰러웠다.

한 사람은 온전한 인간이 아니다.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나는 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사람이 아닌 존재가 될 위험에 처해 있었다.
_ 《증언들》 217쪽

중반부터 서서히 길리어드에 균열점이 보인다. 아주머니 계급이 만들어질 때부터 존재했던 모순과 한계. 그리고 길리어드가 서서히 무너지는 모습은 세 인물을 통해 더 생생하게 드러난다. 당연한 우리의 일상이 이상이었던 길리어드가 무너지고, 그 과정을 되새기는 심포지엄이 2197년에도 이어진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시녀 이야기》의 강렬함을 넘어서지 못했고, 조금 아쉬웠다.

소설에서 인상적이었던 인물을 꼽자면, 역시 오프로드와 닮은 아그네스가 아닐까. 상대적으로 자신에게 편안한 길리어드를 이해할수록 모순을 발견하는 아그네스는 소설에서 가장 많이 바뀌는 인물 중 한 명이다. 주변의 다른 여성들과 대화하며 변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특히, 아그네스의 눈에 비친 사회 모습을 길리어드라고 선을 그을 수 없어 더 기억에 많이 남았을지도 모른다.

세 사람의 이야기이지만 마치 여러 편의 수필을 모아 놓은 것 같은 소설의 형태는 길리어드의 몰락 중심을 뚫고 지나간다. 길리어드에서의 비참한 삶에 대해 시녀 오브프레드를 통해 보았던 전작과 달랐다. 세 사람이 증언한 길리어드의 참담함은 다층적이며 생생하다. 내가 보지 못한 가상의 세계일 뿐인 길리어드의 이야기에 조금 더 공감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다.

증언은 어떤 사실을 증명하는 말이며, 증인으로서 사실을 진술하는 것을 말한다. 길리어드에서 몸도 마음도 상처받았을 그녀들의 내면을 확인하며, 이들의 목소리를 담는 소설이 왜 그렇게 오래 걸렸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역시, 마거릿 애트우드였다. 섬뜩한 디스토피아의 전형인 길리어드 속으로 들어갔다 그 마지막 문을 닫았을 때, 나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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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기와 거주하기 - 도시를 위한 윤리
리차드 세넷 지음, 김병화 옮김, 임동근 해제 / 김영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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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세넷. 그가 말하는 도시는 존재했다. 그리고 페이지를 넘기면 사라졌다. 또 다른 도시가 존재했다. 그리고 이내 사라졌다. 『짓기와 거주하기』는 그런 책이다. 저자는 현대인의 대다수가 거주하고, 그렇기에 끊임없이 짓는 도시를 위한 윤리를 물었다. 윤리란 삶에 대하여 묻고 이에 대해 사고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이 책은 다채로운 삶이 지어지고 거주하는 도시를 다양한 학문으로 설명하였다.
세계적인 도시화 연구의 권위자인 저자는 빌(ville)과 시테(cité)에서 시작한다. 그가 설명하는 빌은 물리적 도시 자체를 말하며, 시테는 도시 안에서 이루어지는 실생활이다. 제목의 '짓기'는 빌을 의미하고, '거주하기'는 시테를 뜻한다. 지금 우리는 도시를 구성하는 두 가지가 전혀 다른 요소라고 생각한다. 1장에서 저자가 빌과 시테의 관점에서 도시를 분석할 때, 두 요소의 불안한 조응이 반복되었던 과거를 지적하며 문제제기 한다.

"그래서 당신은 어떻게 할 겁니까?"

비판한 후에는 자신의 생각이 나오기 마련이다. 2부의 도시라는 공간이 가지는 물리적인 의미와 사물과 생명체(사람과 동식물)가 살아가며 다른 곳과 구분되는 독특한 의미와 맥락을 만드는 장소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롭다. 특히 도시가 각각 가진 물리적 위기와 사회학적 트라우마가 무엇인지에 대한 부분에서 해결방안을 찾는다. 그는 도시 내의 시테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기피하기, 비교하기, 섞기로 분석했다. 이 관점은 실제 일어나는 사례를 바탕으로 하여 흥미를 끈다.
그가 생각하는 도시는 도시 문화의 개방성을 중요시한다. 시테가 열린 도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인 기술이 있으므로, 이를 바탕으로 더 나은 도시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도시를 개방해서 경험이 더 조밀할 수 있는가"를 논한 3부가 나는 가장 어려웠다. 인도의 네루 플레이스의 사례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다공성(porosity) 개념을 토대로 한 다섯 가지 건축 형태에 대한 설명이 유독 많은 학문이 중첩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4부는 자신이 앞서 제언한 열린 도시가 인간의 삶에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논하는 장이었다. 현대 도시가 겪는 몸살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우리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싶으며 어떤 삶을 일구고 싶은지 묻고 그는 답한다. 저자는 생존과 직결된 기후변화를 적극적으로 다루는데, 이는 사람에서 생명체로 시테의 경계를 확장하는 도시의 발전과 궤를 함께한다. 결국 저자는 빌과 시테에 거주하는 존재가 인간에서 생명체로 넓어져야 한다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윤리가 도시 설계의 형태를 결정할 수 있을까?

이 거대한 질문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끊임없이 지어지고 해체되었다. 글을 다 읽고 난 후에, 너무 많은 것이 쌓였고 또 너무 많은 것이 무너져, 내 안에 무엇이 쌓였는지 알 수 없었다. 방대한 분야에 거쳐 전 세계 도시를 논한 글은 시간대 역시 이리저리 오갔다. 그의 생각은 마치 세계지도 위 곳곳에 찍힌 도시처럼 흩뿌려져 있었다. 자유롭게 나열된 생각을 어떻게 연결해야 할지 아직은 모르겠다. 그럼에도 알 수 없는 뿌듯함이 번지는 독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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