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크맨
애나 번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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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새해를 맞이하게 되면 새로운 시작이란 설렘과 함께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생각한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와 함께, 늘 하는 다짐이 있다. "작년보다는 더 나아져야 하는데. 그래서 행복해져야 할 텐데." 어느 새해에는 이런 다짐을 했다. 남의 불행에 나의 삶을 비교하며 행복해하지는 말자고. 다른 사람의 불행에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보자고. 『밀크맨』을 읽으며 그때 했던 나의 다짐이 생각났다. 소설 속 주인공을 보며 나의 삶이 행복하다고 기뻐하지는 말자고, 그녀의 불행에 공감하는 마음 한 조각을 내어주자고.

쉽지 않았다. 주인공의 생각은 분명했지만, 자주 길을 잃었다. 때로 헤맸고, 다른 이야기를 했다가 다시 원래 이야기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열여덟 살인 주인공은 북아일랜드에 사는 아이의 고백은 누구도 믿어주지 않아, 어디에도 기댈 수 없는 불안이 글에 스며있었다. 쉽게, 섯부르게 공감을 내어주기 힘들었다. 이따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맥락이 이리저리 널뛰는 탓에 왜 오해를 산 이유부터 가늠해버렸다. 공감을 결심을 하며 읽은 소설에서 말이다.

열여덟 살인 주인공이 밀크맨이라 불리는 40대 남자와 불륜 관계라는 소문이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옮겨짐에 따라 주인공이 먼저 유혹해서 그렇고 그런 관계가 되었다는 사실로 바뀐다. 읽으면 읽을수록 이 아이의 마음이 얼마나 무너져내렸을지가 보였다. 아무리 아니라고 말해도 엄마에게, 친한 친구에게 외면받은 아이가 설 수 있는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머리는 복잡해지고 아득해졌을 것이다. 아니라는 해명이 변명으로 전해질 때, 나라면 괜찮을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의 마음은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네가 떳떳하면 그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고, 그래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소설이었다. 상처로 어디서부터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몰라 두서없이 꺼내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말하는 소설이었다. 종이 한가득 채워져 읽기는 불편하고 내용을 이해하기도 어려우며 공감을 내어주기까지 힘들지라도 말이다. 나는 몇 번이나 그만 읽고 싶었다. 하지만 다 읽었다. 어떤 기분인지 알 것 같다고 말할 수는 없어도, 네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 들어주고 싶다고 말하고 싶어서.

한 사람이 불안한 사회에서 누구에게서도 안정을 느낄 수 없을 때, 자신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지키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있었다. 단단했던 생각이 두서 없어질 때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것임을 소설을 다 읽고서야 알았다. "그러니까 이건 피하고, 이건 거르고 - 그게 사람이니까, 그게 관계니까, 그게 당연하니까 - 고양이 문제도 미뤄두고 나는 말했다."라는 말을 했을 때 참담했을 마음을 다 읽고 나서 천천히 생각하니 전해져왔다. 공감이란, 그 순간에 고개를 끄덕이며 줄 수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모든 걸 다 들어주고 나서야 비로소 전해지는 것이기도 했다.

저수지 공원 방향으로 가는 보도 위로 뛰어내리면서 나는 빛을 다시 내쉬었고 그 순간, 나는 거의 웃었다.
_ 『밀크맨』 492쪽

빛을 내쉬는 그녀의 웃음에 진심으로 웃어주는 사람이 '거의' 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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