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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기와 거주하기 - 도시를 위한 윤리
리차드 세넷 지음, 김병화 옮김, 임동근 해제 / 김영사 / 2020년 1월
평점 :
리처드 세넷. 그가 말하는 도시는 존재했다. 그리고 페이지를 넘기면 사라졌다. 또 다른 도시가 존재했다. 그리고 이내 사라졌다. 『짓기와 거주하기』는 그런 책이다. 저자는 현대인의 대다수가 거주하고, 그렇기에 끊임없이 짓는 도시를 위한 윤리를 물었다. 윤리란 삶에 대하여 묻고 이에 대해 사고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이 책은 다채로운 삶이 지어지고 거주하는 도시를 다양한 학문으로 설명하였다.
세계적인 도시화 연구의 권위자인 저자는 빌(ville)과 시테(cité)에서 시작한다. 그가 설명하는 빌은 물리적 도시 자체를 말하며, 시테는 도시 안에서 이루어지는 실생활이다. 제목의 '짓기'는 빌을 의미하고, '거주하기'는 시테를 뜻한다. 지금 우리는 도시를 구성하는 두 가지가 전혀 다른 요소라고 생각한다. 1장에서 저자가 빌과 시테의 관점에서 도시를 분석할 때, 두 요소의 불안한 조응이 반복되었던 과거를 지적하며 문제제기 한다.
"그래서 당신은 어떻게 할 겁니까?"
비판한 후에는 자신의 생각이 나오기 마련이다. 2부의 도시라는 공간이 가지는 물리적인 의미와 사물과 생명체(사람과 동식물)가 살아가며 다른 곳과 구분되는 독특한 의미와 맥락을 만드는 장소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롭다. 특히 도시가 각각 가진 물리적 위기와 사회학적 트라우마가 무엇인지에 대한 부분에서 해결방안을 찾는다. 그는 도시 내의 시테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기피하기, 비교하기, 섞기로 분석했다. 이 관점은 실제 일어나는 사례를 바탕으로 하여 흥미를 끈다.
그가 생각하는 도시는 도시 문화의 개방성을 중요시한다. 시테가 열린 도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질적인 기술이 있으므로, 이를 바탕으로 더 나은 도시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도시를 개방해서 경험이 더 조밀할 수 있는가"를 논한 3부가 나는 가장 어려웠다. 인도의 네루 플레이스의 사례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다공성(porosity) 개념을 토대로 한 다섯 가지 건축 형태에 대한 설명이 유독 많은 학문이 중첩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4부는 자신이 앞서 제언한 열린 도시가 인간의 삶에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논하는 장이었다. 현대 도시가 겪는 몸살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우리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싶으며 어떤 삶을 일구고 싶은지 묻고 그는 답한다. 저자는 생존과 직결된 기후변화를 적극적으로 다루는데, 이는 사람에서 생명체로 시테의 경계를 확장하는 도시의 발전과 궤를 함께한다. 결국 저자는 빌과 시테에 거주하는 존재가 인간에서 생명체로 넓어져야 한다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윤리가 도시 설계의 형태를 결정할 수 있을까?
이 거대한 질문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끊임없이 지어지고 해체되었다. 글을 다 읽고 난 후에, 너무 많은 것이 쌓였고 또 너무 많은 것이 무너져, 내 안에 무엇이 쌓였는지 알 수 없었다. 방대한 분야에 거쳐 전 세계 도시를 논한 글은 시간대 역시 이리저리 오갔다. 그의 생각은 마치 세계지도 위 곳곳에 찍힌 도시처럼 흩뿌려져 있었다. 자유롭게 나열된 생각을 어떻게 연결해야 할지 아직은 모르겠다. 그럼에도 알 수 없는 뿌듯함이 번지는 독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