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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학의 도전 - 변방의 자리에서 다른 세계를 상상하다, 2019 우수출판콘텐츠 제작지원사업 선정작 ㅣ 질문의 책 30
김도현 지음 / 오월의봄 / 2019년 11월
평점 :
삶에서 100% 주류에 서있다고 자신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누구나 비주류의 입장에 서고, 또 주류의 입장에 선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부자와 빈자, 기혼자와 미혼자, 청년과 노인 등 기준에 따라 주류이기도 하고 비주류가 된다. 우리 사회에서 비주류에 선 '장애인'에 대한 책을 잘 읽지 않았는데, 『선량한 차별주의자』의 선택 장애에 대한 글을 읽은 후에 이 책을 우연히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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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학이란 학문이 있는 줄 몰랐다. "문제로 정의된 사람들이 문제를 다시 정의할 수 있는 힘을 가질 때 혁명은 시작된다"라는 말을 힘주어 하는 『장애학의 도전』은 사회에서 장애인이 어떻게 고립되며 이들의 고립을 해방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정리한 책이다. 일반교양서의 형태이기보다, 논문의 성격을 띤 글로 일반 독자가 읽기에 낯선 부분이 있다. 미주와 각주 그리고 저자의 장애인 인권 현장 경험이 묻어나 있어 충분히 극복 가능한 어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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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장애학이란 학문 분과가 가지는 의미부터 시작해, 장애인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어려움, 역사적으로 장애인이 어떻게 낙인을 받아왔는지 과학적, 철학적으로 분석한다. 4개 장, 9개 챕터로 이루어진 글 중 2부 성찰은 나에게 낯섦으로 다가왔다. 우생학,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론, 정의론 모두 한 번은 들어보았으나 내가 확실하게 소화한 영역이 아니었기 때문에 맥락만 이해하여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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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이기 때문에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차별받기 때문에 장애인이 된다는 저자의 생각은 일관된 목소리로 글에 나타난다. 저자의 글은 학술적이지만 뜨거운 마음이 담긴 글이었다. 장애가 우리의 영역으로 들어가야만 하고, 들어갈 수 있다는 믿음이 바탕에 놓인 글이었기 때문이다. tv 방송에서 장애에 대한 주제로 시사토론이 이루어진 적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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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이기도 하고 비주류이기도 한, 사는 것이 원래 그렇다. 주류에 있으면 나도 모르게 좋았을 것이고, 비주류에 있으면 나도 모르게 나쁜 날이 되었을 것이다. 그 반복을 모르게 지나칠 수 있고, 잠깐의 불편으로 넘길 수 있는 나와 다른 누군가가 있다. 그 다른 누군가가 체념하며 "사는 것이 원래, 그래."라고 한숨 쉬지 않고, 내가 느끼듯 삶을 일구어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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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가시처럼 걸리는 사회 문제를 다룬 이 책을 읽어 좋았다. 순서가 바뀌었지만, 조만간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읽어봐야겠다. 끝으로 내가 책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바로 다음 부분이었다. 밑줄을 긋고 싶은 구절이었고, 차별이 만든 장애라는 프레임을 깨기 위한 생각의 단초를 주는 부분이었다. 당연한 것인데, 이 당연함이 좋았던 것을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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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존엄성의 기반은 개별 인간 내부에 존재하지 않으며, 개체[개인]들을 가로지르고 초과하는 사회적 관계 안에 존재한다. 쉽게 말해 인간 존엄성은 그것을 존중하고 보장하는 사회적 관계들 속에서만 존재한다. 내가 이미 존엄한 존재이기 때문에 나의 존엄성이 사회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기보다, 나의 존엄성이 보장되는 사회적 관계들 (그리고 그런 관계들 내에 있는 주체들의 상호작용과 인정) 속에서 나는 비로소 존엄한 존재가 된다. 이 사회가, 그리고 다른 사회 구성원들이 나를 존엄하게 대하지 않는다면 나는 존엄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인간은 왜 존엄한 존재인가?'가 아니라, '어떤 사회적 관계와 조건 속에서 인간은 존엄해질 수 있는가?'라고 말이다. _ 『장애학의 도전』, 248-24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