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사랑하고 업적을 남겨라 - 스티븐 코비 지혜의 말
스티븐 코비 지음, 김경섭 옮김 / 김영사 / 201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명언. 名言. famous saying...
국어사전의 뜻을 살펴보면, '사리에 맞는 훌륭한 말' '널리 알려진 말'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단지 사리에 맞는 훌륭한 말이나, 널리 알려진 말이기 때문에 명언이라고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짧은 말속에 담긴 특별함이 있기 때문에 사랑을 받고, 기억에 남아 전해지고 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할 때 명언이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는 이유는 '생각의 임계점'을 넘어선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즉 우리가 쓰는 일상적인 말 혹은 조금 난해한 문장에 담긴 메시지 안에는 일상적인 생각의 정도에서 닿지 못했던 것이 담겨 있기 때문에 명언으로 남았다고 생각한다.

스티븐 코비의 말을 엮어 만든 <살고, 사랑하고, 업적을 남겨라>는 18가지 주제에 대한 '원칙' '조언'이 담겨있다.

책임. 균형. 선택. 기여. 용기. 효과성. 공감. 성실성. 리더십. 배움. 사랑. 잠재력. 자기 절제. 시너지. 신뢰. 진실. 비전. 승-승.

우리 삶에서 마주하는 고민거리와 닿아 있는 것들이다. 가지고 싶지만 쉽게 가질 수 없는 것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는 삶의 가치들이다. 그래서일까? 이 요소에 대해 인터넷, 책, 강연 등 다양한 매체에 방법, 중요성, 그리고 핵심 메시지만 요약한 글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수많은 글들이 있지만, 그 글들이 개인의 마음에 얼마나 닿을까? 이 가치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책임감, 삶의 균형, 인생에 있어서 선택의 중요성,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하는가, 용기, 효과성, 성실성,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 리더십, 배움의 자세, 사랑, 내 안의 잠재력을 가지는 법, 자기 절제 등의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을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만 이 중요한 것을 다룬 메시지가 개인의 마음에 닿기도 하고 "그냥 뻔한 소리"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 차이는 바로, 개인의 생각 '임계점'을 넘느냐 넘지 못하느냐에 달려있다. 

그리고 <살고, 사랑하고, 업적을 남겨라> 속 메시지는 아주 당연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생각의 임계점을 넘어선 문자들이 많이 담겨 있는 책이다. 모든 문장이 다 와 닿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스티븐 코비의 하나의 생각 흐름 속에 놓인 문장들은 개인의 상황과 생각에 따라와 닿을 수 있는 조언들이 담겨 있다.

7장 공감의 원칙에는 총 32개의 메시지가 있다.

"살면서 한 번쯤은 나 자신도 나를 믿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은 나를 믿어주는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라는 메시지는 공감의 필요성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공감의 사회성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준다.  

"자신의 자서전적인 과거 경험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이 메시지는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거나, 혹은 경험이 적다고 생각한 이들과 대화를 할 때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즉, 내 이야기가 좋은 선례이기 때문에 이를 상대에게 강요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하게 한다. (안타깝게 이 문장을 보고 이와 같은 성찰을 했으면 하는 사람은 이 메시지가 그의 생각의 임계점에 닿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두려움은 가슴속의 매듭과 같은 것이다. 그러한 매듭을 풀려면 진실하고 솔직하며 서로를 긍정하는 그런 관계가 필요하다."

공감에 있어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공감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넘어설 수 있는 메시지가 담긴 문장이다.

과연 이 문장들이 같은 사람에게 닿을까? 아니다. 개인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어떤 고민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눈에 더 들어오는 문장은 달라질 것이다. 문장에 한 사람의 마음에 닿고 닿지 못하고의 문제는 개인의 생각의 임계점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이 책은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의 임계점에 닿을 메시지들이 많이 담겨 있다. 18가지의 분야별로 또 그 분야 속 다른 결의 메시지가 책 속에 있다.

어떤 고민이 있을 때 책을 펼쳐보고 그 해결점이 담겨 있는 '해결의 책'을 보듯이 <살고, 사랑하고, 업적을 남겨라>를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책무가 책임감(주도적 대처능력)을 낳는다.
13쪽

실수를 할 수 있지만,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사람들이 실수를 용서하는 것은 대부분의 실수란 판단의 오류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악의, 불순한 동기, 오만, 정당화 같은
마음의 실수는
쉽게 용서하지 않는다.
14쪽

관계에 관련된 대부분의 문제는
서로의 역할이나 목표가 충돌하거나 기대치가 달라서 일어난다.
15쪽

자아의식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에게 한걸음 떨어져서
자신이 스스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관찰할 수 있다.
16쪽


이성적인 마음의 소리를 할 때가 있고
내면적인 감정의 소리에 귀 기울어야 할 때가 있다.
22-23쪽

우리는 모두 변화의 문을 지키는 문지기들이다.
그 문은 안에서만 열 수 있다.
28쪽


나는 환경의 산물이 아니라, 내가 한 선택의 결과이다.
29쪽

당신의 생각, 믿음, 이상 그리고 철학으로
만드는 환경이 당신이 평생 살아갈 환경이다.
35쪽

좋음은 종종 최상을 막는 방해꾼이다.
44쪽

살며, 사랑하며, 웃으며, 그리고 유산을 남겨라.
59쪽

스스로를 교육시키고 사고의 지평을 넓히는 데에는
꾸준히 양질의 독서를 하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
61쪽

살면서 한 번쯤은 나 자신도 나를 믿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은 나를 믿어주는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66쪽

공감적 경청은 이해하기 위하여 듣는 것이다.
즉, 진정으로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듣는 것이다.
공감적 경청을 하다 보면 타인의 사고의 틀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 틀을 통해 상대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그들의 패러다임을 이해하고,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67쪽

두려움은 가슴속의 매듭과 같은 것이다.
그러한 매듭을 풀려면 진실하고 솔직하며
서로를 긍정하는 그런 관계가 필요하다.
지적인 이해와는 전혀 무관하다.
68쪽

사람들은 점차 그들이 받는 대우나 기대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주는 경향이 있다.
73쪽

가면을 쓰고 사는 것은 복잡하고 괴로운 일이다.
83쪽

좌절은 기대의 소산이다.
그리고 우리의 기대는 종종 자신의 가치나 우선순위보다 사회적인 기준을 반영한다.
84쪽

결국 우리의 성품이 어떤 한마디의 말이나 행동보다 훨씬 많은 것을 전달한다.
85쪽

자신과 작은 약속을 하고 그것을 지켜라. 
그리고 조금 더 큰 약속을 하고, 또 그보다 더 큰 약속을 하고 꼭 지켜라.
결국 그 약속을 지켰을 때 생기는 자긍심이
그날 당신의 기분보다 더 큰 만족을 가져다줄 것이다.
그때 당신은 진정한 힘의 원천, 즉 도덕적 권위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86쪽

당신의 행동으로 생긴 문제를 몇 마디 말로 해결할 수는 없는 법이다.
91쪽

모든 문제는 우선 자신의 마음속에서부터 시작된다.
92쪽

리더는 러더가 되기를 선택한 사람이다.
96쪽

좋은 사람을 나쁜 시스템에 두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 
좋은 꽃을 기르고 싶다면 좋은 물을 주어야 한다.
97쪽

사람의 노동력을 살 수 있지만, 그의 마음을 살 수는 없다.
의리나 열정은 마음의 것이다.
일손도 살 수 있지만 사람의 머리를 살 수는 없다.
창조력, 기발함, 지략은 머리에서 나온다.
102쪽

무지를 인정하는 것이 교육의 첫걸음이다.
109쪽

마음을 수양하는 것은 사고를 성장시키는 것과 반드시 함께해야 한다.
110쪽

교육의 핵심적 가치는 돈을 벌거나 직업을 얻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이고 영적인 성품 함양에 있다.
111쪽

한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당신의 다른 사람들에 대한 생각도 알 수 있다.
결국에는 모든 사람이 하나이기 때문이다.
116쪽

깊은 신뢰가 있을 때, 소통은 쉽고 빠르며 효과적이다.
117쪽

관계에서는 작은 것들이 중요하다.
118쪽

사랑의 법칙의 핵심은
사람들을 그들 본연의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감정을 존중하며 인내심과 애정을 갖고
그들과 관계를 쌓아나가는 데 있다.
119쪽

우리는 우리가 하는 생각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127쪽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여라.
양심상 꼭 해야 한다고 느껴지는 일이 있을 것이다.
133쪽

갈등은 삶이 보내는 신호이다.
갈등은 보통 사람들이 어떤 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때 일어나는 것이다.
140쪽

사람들은 올바른 원칙을 지키는 사람을 본능적으로 신뢰한다.
152쪽

신뢰는 삶과 삶을 이어주는 끈 같은 것이다.
효과적인 소통의 핵심 요소이며, 어떤 관계이든 신뢰라는 원칙을 기반으로 한다.
152-153쪽

우리가 문제를 바라보는 방식이 진정한 문제이다.
162쪽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다.
자신의 상황과 조건에 따라 만들어진 시선으로 본다.
163쪽

당신은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과 도움을 주고 싶었는가?
169쪽

끝을 생각하며 시작하라.
169쪽

미래는 직업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미래는 당신 안에 있다.
171쪽

자신을 효과적으로 바꾸려면 먼저 자신의 인식을 바꿔야 한다.
172쪽

그 누구도 당신의 동의 없이 당신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엘리노어 루스벨트
192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뮤얼 헌팅턴의 미국, 우리는 누구인가
새뮤얼 헌팅턴 지음, 형선호 옮김 / 김영사 / 201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트럼프가 당선되었을 때, 전 세계도 놀랐고 미국도 놀랐다. 놀란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 국민들이 트럼프를 뽑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생각은 틀렸고, 미국의 45대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가 되었다. 세계화의 선봉에 서있는 '미국'이 왜 "반이민 정책" "국경 장벽 설치" "FTA 재검토" 등의 세계화와 반대 방향의 정책을 말하는 트럼프를 국가 리더로 선택한 것일까? 

우리는 정말 미국이 어떤 나라인지 제대로 알고 있었던 것일까?

 

내가 볼 것인가 타인이 볼 것인가

 

정체성이란 내가 누구인지 구성하는 토대를 말한다. 개인적 자아 형성에서 시작해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획득해 나가는 사회적 역할과 자신이 속한 집단의 성격, 민족, 인종, 국가, 지역, 성별, 나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특질들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과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정체성을 동시에 갖게 된다(「처음 만나는 문화인류학』, 120쪽.)
 흥미로운 점은 정체성의 어원에 있다.'identity'란 단어가 '확인하다(identify)'란 말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은 정체성이 자기가 아닌 남에 의한 확인과 증명을 통해 형성되는 것임을 말해준다(「우리 전통예술은 한(恨)의 정서를 바탕에 깔고 있는가?」,  『한국의 교양을 읽는다』, 189쪽.). 즉 내가 누구와 다르고, 누구와 같은가에 따라 정체성이 결정된다는 의미다.
 이 맥락에서 볼 때, <새뮤얼 헌팅턴의 미국, 우리는 누구인가>는 정체성이라는 단어 어원과 닿아 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보통의 민족, 인종 등의 정체성에 대한 접근은 타 문화권 사람들에 의해서 분석된 경우가 많았다. 특히 이를 바탕으로 발전을 이룬 학문이 문화 인류학이다. 대표적인 저작으로는 <국화와 칼> <슬픈 열대>등이 있다. 물론 이와 같이 타인이 바라본 시선을 통해 확인한 정체성도 유효하지만, 자신이 바라본 자문화에 대한 분석도 매우 유의미하다. 이때 중요한 점은 얼마나 객관적인 태도로 그 분석에 임하느냐에 있다. <새뮤얼 헌팅턴의 미국, 우리는 누구인가>는 미국이라는 국가의 역사와  각종 실질적 통계자료에 근거해 미국인이 바라본 미국인의 문화에 대해 서술한 책이다. 

 

 

 

 

<새뮤얼 헌팅턴의 미국, 우리는 누구인가>의
시각으로 바라본 트럼프 대통령 당선

 

45대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당선되었을 때, 그 해석을 다시 찾아보았다. 기사 속에 나타난 해석들을 읽으며, <새뮤얼 헌팅턴의 미국 우리는 누구인가>의 메시지와 상당 부분 맞아 들어간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트럼프의 돌풍에 대해서 우리는 '교양 있는' 소위 미국 내 지식인·엘리트들은 무시로 일관했다. 트럼프가 후보자가 되겠다고 나왔을 때,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될 리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화당 경선이 진행될수록 트럼프에 대한 지지는 압도적으로 높았고, 결국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가 되었다. 후보자가 된 뒤에도 결코 대통령에 당선될 리가 없다고 이야기했지만, 결국 당선되었다. 이는 <새뮤얼 헌팅턴의 미국 우리는 누구인가>에서 지적했듯이, "백인 엘리트와 비 백인 엘리트 간의 거리"에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백인 엘리트들은 미국의 모든 주요 기관들을 지배하지만, 수백만의 비엘리트 백인들은 엘리트들과 전혀 다른 태도를 갖고 있고, 엘리트들의 확신과 안전이 부족하고, 엘리트들의 지지와 정부 정책의 지원을 받는 다른 집단들과의 인종적 경쟁에서 자신들이 설자리를 잃고 있다고 생각한다.(386쪽)" 

즉, 미국의 정치계, 사회계, 문화계를 이끌고 있는 엘리트 집단의 생각과 다수의 비 엘리트 백인 집단 간의 괴리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의 거리는 실질적인 수치로 명백하게 드러나던, 드러나지 않던 여부와 관계없다. "마음속에만 존재해도 새로 부상하는 집단들에 대해서 미움과 두려움"을 가질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심리적 요인에 대해 간과했다는 것이 반 트럼프 주의자들이 간과했던 점이다. 특히 경제적으로 중산층과 중산층 이하의 삶을 살았던 백인들은 자신들이 다른 인종, 민족에 비해 역차별을 받고 있으며, 미국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다인종 지원 정책에서 배제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자신들의 희생을 당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이 바탕에는 미국이라는 국가의 정체성 구성과 밀접한 연관되어 있다. 

"이민자들과 개척자, 이민자, 그리고 노예의 후손들 외에, 현재의 일부 미국인들은 미국인들이 정복한 사람들의 후손들이다.(67쪽)"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같은 언어, 같은 종교적 신념을 공유함으로써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는 당위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이민자, 개척자, 노예의 후손 등으로 구성된 독특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국가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토나 장소에 대한 깊은 정체성을 다른 국가에 비해서 가지고 있지 않았다. 국민들 구성에 대한 연결 관계가 하나로 통일되어 있지 않은 편이다. 물론 기독교라는 종교를 공유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 일체감을 가지기 어려웠던 것이다. 백인들의 경우, 유럽의 다양한 국가에서 이민을 왔고, 이 이민자들은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결혼 과정을 통해 혼합되었다. 그 결과 다른 인종에 비해 뚜렷한 민족적 정체성을 가지지 못했고, 그 공백이 "희생자란 느낌"으로 채웠다고 조지아 주립 대학교의 사회학자인 찰스 갤러허 교수는 주장했다.

그리고 이들이 트럼프의 지지기반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언론에서 트럼프 지지에는 백인 노동자 계층 외에도 다른 인종의 지지도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당선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백인 노동자 계층의 적극적 지지를 받았다는 것이 주류 해석이다. 그렇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 역시 이를 의식한 듯한 대선 승리 연설에서, 자신의 지지 기반이 원하는 메시지를 담은 연설을 했다. 

2016년 11월 9일 미국 맨해튼 힐튼 미드타운호텔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 승리 연설을 했다. 이때 트럼프는 “우리가 해 온 것은 선거 캠페인이 아니라 모든 인종, 종교, 배경, 신념을 가진 미국인들이 만들어낸 위대한 운동이었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고 한다. 이 말에는 전국적 지지를 발판으로 삼은 자신감이 묻어났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폄하해 온 주류 기득권에 보내는 경고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아메리칸드림을 부활시키겠다"라며 미국 백인 노동자 계층의 기대감을 높였다. 
참고 기사 | 박영환 특파원·이윤정 기자, [트럼프 당선 - 기대와 실망]“아메리칸드림 부활…미국 다시 세울 것”, 경향신문, 2016.11.09

트럼프 지지 기반인 백인 비 엘리트 집단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 새뮤얼 헌팅턴은 상세하게 책에서 다루었다. 

"그중에서 한 가지 가장 있음 직한 반응은 기본적으로 백인 남성이고, 근로계층이고, 중산층인 사람들이 배타주의적인 사회정치적 운동을 전개하는 것일 수 있다. 이들은 그와 같은 운동 속에서 그와 같은 변화들을, 그리고 자신들이 볼 때 점점 더 줄어드는 자신들의 사회적 및 경제적 지위, 이민자들과 외국들에 빼앗기는 일자리, 자신들의 문화와 언어가 약해지는 것, 그리고 자신들 나라의 역사적 정체성이 침식되거나 사라지는 것을 막거나 되돌리기 위해 애쓸 것이다. 이와 같은 운동은 인종적 및 문화적 특성을 가질 수 있고 반 히스패닉, 반 흑인, 그리고 반이민일 수 있다. 이와 같은 운동은 과거에 미국의 정체성을 규정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다수의 인종적 배타주의 및 반외국인 운동과 비슷할 수 있다. …(중략) '백인 현지인주의'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을 수 있다.(381쪽)" 

즉, 이미 지금 벌어진 일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 아니라 충분히 있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마 1990년대부터 예견된 일이었던 것이다.

"히스패닉의 대규모적이고 지속적인 유입은 백인 앵글로-개신교도 문화의 지배력과 유일한 전국적 언어로서 영어의 지위를 위협한다. 백인 현지인주의 운동은 이와 같은 추세들에 대응하는 가능하고 일견 타당한 반응이며, 심각한 경기 불황과 고난의 상황에서 가능성이 아주 높은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가능성은 몇 가지 요인들로 인해서 높아진다.(384-385쪽)

"그러나 백인 현지인주의에 가장 강력한 자극이 되는 것은 백인들이 볼 때 미국 사회에서 히스패닉이 점증하는 인구적,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정치적 역할에서 비롯되는, 그들의 언어와 문화에 대한 위협일 것이다.(388쪽)"

그리고 그 움직임이 처음에는 인종에 따라 있을 수 있는 차별에 대한 배려가 시작되었지만, 점차 미국이라는 국가 정체성의 핵심에 놓여 있는 '언어(영어)'까지 흔들자 느끼는 위협의 강도가 더 높아졌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미국을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그 변화의 감도를 체감할 수 없다. 다만 트럼프의 극단적인 '멕시코'에 대한 정책과 이민자에 대한 엄격한 규제로 볼 때, 미국인들이 느끼는 바가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정책이 21세기에서 볼 때 비정상적이며 말도 안 되는 일임에도 추진하려고 하는 것을 볼 때 말이다.)  

"업계 엘리트들의 세계화 정책들은 일자리를 해외로 이동시켰고 근로계층 미국인들의 점증하는 소득 불평등과 실질임금 하락을 초래했다.(384쪽)"

"인종적 균형이 계속해서 변하고 더 많은 히스패닉이 시민이 되어 정치적 활동이 높아짐에 따라, 백인 집단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다른 방법들을 찾아야만 할 것이다.(385쪽)"

흥미로운 점은 백인 노동자 계층이 미국 정체성에 있어서 주류였고, 이들이 그 토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이들이라는 점이다. 히스패닉과 아시아계, 흑인 등의 인구 증가 속도가 높지만, 여전히 백인 계층이 미국 내에 차지하는 비율은 결코 낮지 않다. 즉, 이들이 피해자라고 느낄 만큼 약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하지만 이는 타국에서 바라본 나의 시선이고, 이들의 체감하는 위협도는 '트럼프' 대통령을 탄생시킬 만큼 위협적이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지지 기반과 이들의 프레임에 의해서 당선된 트럼프가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지는 <새뮤얼 헌팅턴의 미국, 우리는 누구인가>를 통해 또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최근 극우 정당의 지지를 많이 받고 있는 유럽권 국가들의 문제도 이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민, 다문화를 지향했던 국가에서 기존에 국가의 주류에 속했던 이들이 위협을 느끼자 극우 정당에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새뮤얼 헌팅턴의 미국, 우리는 누구인가>의 해석을 유럽에 대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미국과 다른 국가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의 종교, 언어, 문화 사회적 토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새뮤얼 헌팅턴의 미국, 우리는 누구인가>에서 다양한 문화 간의 접촉과 혼합이 당연시된 21세기에 오히려 이 흐름에 역행하려는 움직임에 대한 고찰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국제법학자, 그 사람 백충현 - 독도와 외규장각 의궤를 지켜낸 법학자의 삶
이충렬 지음 / 김영사 / 201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기는 과거를 바라보는 창문인 동시에
현재와 연결되는 역사의 통로 역할을 한다.
 _<국제법학자, 그 사람 백충현>, 4쪽

 

 

한 사람의 삶을 통해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 의미 있는 것은 그의 결단과 선택에 따라 달라진 역사를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삶의 자극을 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롤모델'을 삼거나, '어떤 분야에 대한 흥미'로 나타나거나, '꿈과 목표'를 세우거나 통사가 설명하지 못한 한 시대의 그늘진 면을 바라보고 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국제법학자, 그 사람 백충현>을 통해 바라본 대한민국의 국제법 史는 그가 해낸 일만큼이나 다사다난한 길이었다. '국제법 학자'로서 책무와 존재 의미를 잊지 않고 국제법학자 백충현은 그 길을 걸었다.  그의 삶은 살얼음판을 걷는 듯 조심스러운 한반도 국제 정세 위에 놓인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생각의 자극'을 주고 있다.

 

 

 


저자 | 이충렬

저자 이충렬은 서울 출생, 1994년 《실천문학》을 통해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현재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아, 김수환 추기경 1,2》《간송 전형필》《혜곡 최순우, 한국미의 순례자》《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 등이 있다. 실제에 근접하여 인물의 궤적과 시대정신을 담아내는 장르인 전기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치밀한 자료 조사와 탄탄한 스토리텔링, 처음부터 끝까지 감정을 몰입시키는 드라마틱한 연출로 쓰이는 글은 영혼이 담긴 다큐멘터리이자 소설 이상의 문학이 되고 있다. 이 책 《국제법학자, 그 사람 백충현》에서는 독도, 외규장각 의궤 반환, 재일 동포 인권, 종군 위안부, 아프가니스탄 집단 학살과 난민 문제 등 조국과 인권을 위해 헌신했던 백충현 교수의 생애를 복원하면서 최초 공개되는 자료인 <관판실측일본지도官板實測日本地圖>를 통해 독도가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 저자의 저서를 보면, 우리나라 근현대사 인물 가운데, 그 시대에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을 발굴하고 조명한 책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화재 보호를 위해 노력한 "간송 전형필". 민주화를 위해 애쓰신 "김수환 추기경", 반추상 미술의 거장 "수화 김환기"등.. "한 인물을 통해 지난 시대를 바라보는 일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시야를 넓히면서 사고의 깊이를 깊게 하는 계기(4쪽)"가 된다는 신념이 반영된 결과가 아닐까.

 

 

 

"국제법상 무엇이 정의이고 부정의 인지를 사회에 알리는 것이 국제법 학자로서의 책무이고 존재 의미 아니겠는가."
_ <국제법학자, 그 사람 백충현> 87쪽 중에..

 

 

 한 나라의 국민들이 얼마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삶의 질' (quality of life indicators) 지표가 있다. 이는 국민들이 얼마나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고 있는가를 경제적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 환경 등 모든 면에 걸쳐 포괄적으로 척도화한 지표이다. 언젠가부터 세계 각국에서는 삶의 질을 중요하게 여기는 조용한 혁명이 있었다. 물질적 풍요와 생활의 안정 이상으로 어떤 삶을 영위하는지에 대한 쪽으로 관심이 옮겨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 각국은 환경 보호, 복지 문제, 문화재 보호, 국제 분쟁에 대한 합리적 해결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는 100년만 거슬러 올라가도, 얼마나 합리적인 해결을 위한 제도를 만들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큰 성과를 이룬 것임을 알 수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국제법"이다. 



국제법의 가치를 일찍 알아챈 사람이 바로, 고 송현  백충현 교수였다.

 

 

 

국제법 연구 모임을 했었던 '사직 아파트' (서울시 종로구 사직동)         

 

 

 백충현 교수는 1970년 하버드대학교 로스쿨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동아시아연구소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우리나라 국제법 수준이 개발도상국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에 문제의식을 느꼈다. "국가 간의 분쟁은 외교의 힘으로 해결된다고 믿기 쉽다. 그러나 외교의 힘은 항상 법적 이론이 뒷받침할 때 비로소 정당한 방법으로 행사될 수 있다(140쪽)"는 그의 신념은 그의 행동으로 실천적 삶으로 바뀌었다. 1972년 귀국 후 국제법 연구 모임을 만들고, 이후 이를 서울 국제법 연구원으로 만들었다. 중학교 시절 등하굣길에 지나다니던 '사직 아파트'가 백충현 교수의 국제법 연구의 출발점이 되었던 장소라는 것에 놀랐다. 이 사실을 알고 종로도서관을 가기 위해 걷는 길이 조금 색다르게 느껴졌다.                        

* 독도 * 외규장각 * 재일 동포 * 위안부 * 아프가니스탄 집단 학살 *

한일 양국이 재일 동포 법적 지위에 대한 회담에 나선다는 소식을 들은 백 교수는 국제법 전문가로서 재일 동포가 받고 있는 법적 지위 차별의 부당성에 대한 국제법적인 견해를 밝혀야겠다고 생각했다. 묻혀 있는 문제, 그것도 국가가 한일 협정을 체결할 때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발생한 문제에 대해 공무원 신분인 국립대학교 교수가 나서서 문제 제기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국제법 학자로서 침묵하는 것은 학자의 양심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국제법상 무엇이 정의이고 부정의 인지를 사회에 알리는 것이 국제법 학자로서의 책무이고 존재 의미 아니겠는가. 국제법 학자만이 재일 동포들이 왜 피해자인 동시에 권리자인지를 명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_ <국제법학자, 그 사람 백충현> 87쪽

 

 

 국제법 학자로서 그의 관심과 신념은 올곧았다. 자신의 양심과 책무에 따라 외면할 수 있는 일을 외면하지 않았고, 노력을 쏟을 수 있는 일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노력은 우리나라 현대사에 있어서 유의미한 흔적을 남겼고, 지금도 남기려고 하고 있다.
  이노우 다다타가가 측량한 지도 관판실측일본지도를 메이지대학 박물관에서 확인하고, 일본의 '독도' 영유권 도발에 대한 '결정적 증거'를 찾기 위해 노력을 쏟았다. 일본 고지도 전문 서점을 돌아다니며 이 지도를 구하기 위해 애썼고, 1997년 기적처럼 발견하고 1억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우리나라로 가지고 왔다. 안타깝게 이 자료가 우리나라에 왔을 때 일본과 '신한일어업협정'과 '중간수역'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독도 문제를 거론할 수 없었다. 이후 몸이 좋지 못해, '관판실측일본지도'와 그 해석에 대한 자료가 공개된 바가 없다. 그의 논문 집필 계획안 속 촘촘한 논의를 보며, 완성된 논문으로 접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의 '외규장각'에 대한 열정을 보며, <박물관학 개론> 수업에 배운 내용들이 떠올랐다. 문화재 반환에 있어서 우리나라의 입장은 문화재 원산국이고 반환된 문화재를 돌려받기 위해 노력을 쏟고 있다. 돌려받은 외규장각 문서, 아직도 받아야 할 문화재들이 전 세계 곳곳에 놓여 있다. 이 문화재 반환에 대한 노력은 제국주의 열강에서 독립한 신생 독립국들이 1960년도에 제기하면서 본격화되었다. 문화재 반환에 대한 논리적 근거로 문화민족주의를 근거로 두고 있다. 그리고 문화재 약탈은 '한 나라의 문화재에 대한 일련의 약탈 행위가 한 민족의 갱신적이고 물질적인 문화유산에 대해 영원히 회복시킬 수 없는 손실을 입힌 것(Kifle  Jpte, 1994)'이라고 규정하며, 본국으로 반환해야 한다는 국제적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하지만 이를 우리에게 유리하게 이용하기 위해서는 국제법상 우리에게 유리한 고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알고 있었던 백충현 교수는 병인양요 때, 외규장각 도서 약탈에 대한 글을 확보하고, 프랑스와 외교 협상에서 우리나라가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해 분명한 논조로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른 결과가 실현될 때, 그는 고인이 되었지만 그의 노력이 '외규장각' 반환의 밑바탕이 되었다. 우리나라에 머문지 6년이 되어, 어느새 당연히 우리나라 문화재가 된 '외규장각' 도서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나라가 문화재 반환을 위해 국제법상으로 어떤 노력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북한 무력 도발, 트럼프 정권, 사드 배치, 일본 위안부 문제, 독도 문제..

 

 

 다양한 국제 이해관계 속에 한반도 외교는 바람 앞 촛불과 같은 상황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에는 한 가지 방법만 있지 않을 것이다. 고 송현 백충현 교수가 걸어온 길이 우리에게 주는 길도 분명 있다. 물론 학자로서 그의 삶이 현실 실리 외교와 멀어보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국제법이란 상대가 인정하지 않으면 법으로서 성립하지 않는 것은 사실(252쪽)"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제법은 외교 협상에서 상대국의 이론 대결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해 국가와 국민을 위한 최선의 결과를 얻어낼 수있는 '무기'(252쪽)"라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리고 그 기반에는 "외국의 국제법 이론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 맞게 적용(157쪽)"이라는 분명한 신념이 존재해야 한다. 

"학자"로서 그가 지킨 양심과 책무는 그의 죽음에서 멈추지 않고, 지금이라는 시간 속에 계속 흘러가길 고대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피엔스 (무선본)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 김영사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역사의 진로를 형성한 것은 세 개의 혁명이었다. 약 7만 년 전 일어난 인지 혁명은 역사의 시작을 알렸다. 약 12,000년 전 발생한 농업혁명은 역사의 진전 속도를 빠르게 했다. 과학혁명이 시작한 것은 불과 5백 년 전이다. 이 혁명은 역사의 종말을 불러올지도 모르고 뭔가 완전히 다른 것을 새로이 시작하게 할지도 모른다.
이들 세 혁명은 인간과 그 이웃 생명체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_ <사피엔스>, 19p


 

 

왜 사피엔스 종만이 지구 상에 살아남았나? 인간은 왜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동물이 되었는가? 과학은 모든 종교의 미래인가? 인간의 문명은 왜 발전하였고, 이런 발전은 우리에게 행복을 주었는가? 인간의 유효기간은 언제까지인가?
역사, 사회, 생물, 종교 등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인류 역사의 시간을 종횡무진 써 내려간 문명 항해기.
이제 우리는 무엇을 인간이라고 할 것인가?

 

 

***

 

 

역사를
왜 공부할까?

 

***

 

 

 '어떻게'를 서술하는 것과 '왜'를 설명하는 것은 뭐가 다를까?
'왜'를 설명한다는 것은 왜 다른 사건이 아니라 하필 이 사건이 일어났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인과관계를 찾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_ <사피엔스>, 338쪽

 

 

이 질문을 받는다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당연한 질문이기 때문에 어떤 답도 내릴 수 없지 않은가. 나도 "배우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라는 궁색한 이유로 답할 것이다.

2017학년 수능부터 한국사가 필수과목으로 지정되면서 역사 교육의 중요성이 높아졌다. 또 '한국사 능력 시험'이 기업, 공기업  입사, 공무원 채용에 가산점 및 시험 응시 필수 과목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응시하고 있다. 이때 우리가 시험 보는 역사는 '국사'로 우리나라의 역사다.  국사를 배우는 이유에 대해 역사 교과서는 어떻게 설명할까.

"국사 교육의 목표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주체적으로 이해하는 데에 있다. 이는 국사가 곧 우리 자신이 살아온 모습이고 민족 정체성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 역사는 현재의 뿌리이자 미래를 전망하는 단서이고 우리 삶의 총체이므로 발전적이고 종합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중략)… 아울러 우리 역사를 삶의 과정으로 이해하여 새 문화 창조와 사회 발전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_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7차 교육과정) 머리말 중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이스라엘의 한 역사학자는 역사를 연구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미래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다. 우리의 현재 상황이 자연스러운 것도 필연적인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그 결과 우리 앞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_342쪽

 

 

유발 노아 하라리 교수의 <사피엔스>(342쪽)의 책에 나온 '역사를 연구하는 이유'를 말한 부분 중 일부다. 역사학자가 말하는 역사를 연구하는 이유에 공감되는가. 당신이 역사를 공부하는(연구하는) 이유와 닮은 부분이 있는가.

초등학교 사회 시간을 시작으로 고등학교 때 '국사'와 '근현대사' 그리고 대학에서 교양으로 '근현대사' 수업 통해 역사를 배웠다. 뿐만 아니라 역사서도 여러 권 읽어왔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역사를 왜 배워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한 적은 별로 없었다. 누군가 말하는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에 감동을 받은 적은 있지만, 그 감동이 내 것이 되어 '내 안에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가 된 적은 없었다. 


문자 기록이 나오기 전부터 현대에 이르는 역사를 다룬 책,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역사를 서술함과 동시에 인간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왔는가, 어떻게 해서 이처럼 막대한 힘을 얻게 되었는가'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우리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왔는가, 어떻게 해서 이처럼 막대한 힘을 얻게 되었는가'라는 하라리의 질문을 왜 역사를 통해 알아야 하는지, 역사를 통해서 알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었다.


다시 말해 <사피엔스>를 읽으며 "왜 역사를 알아야 하는가"에 대한 나만의 답을 찾으려고 했다.

 

 

1. 현재를 보기 위해서, 인지 혁명

 

<사피엔스>의 첫 장이자, 유발하라리의 인류 혁명의 첫 번째 혁명, 바로 인지 혁명이다. 인지 혁명은 사피엔스 이전에 약 6개의 인종이 있었지만, 현재 사피엔스만 남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 근거다. 물론 이후의 농업혁명과 과학혁명과 달리 인지 혁명의 과학적 근거 및 사료는 부족하기 때문에 다른 장에 비해 하라리 교수의 유머 있는 표현과 해석이 많이 나온다는 점에서 재미있게 읽은 장이다. 인지 혁명으로 네안데르탈인과 사피엔스의 운명은 갈렸다. "우리가 무시하게는 너무 친숙하고 관용하기에는 너무 달라서"라는 시적인 표현을 했지만 결국 두 인종 사이에 극복할 수 없는 차이로 사피엔스만이 이 세상에 남게 되었다. 그렇다면 왜 사피엔스만 남은 것일까. 바로 '언어'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언어의 발전이 사람들 간에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했다.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다양한 의사 전달이 가능해졌고, 사피엔스는 존재하는 것뿐만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것까지 전달했다. 즉, 직접 보거나 만지거나 냄새 맡지 못한 것에 대해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사피엔스가 언어를 사용해 객관적 실재와 가사의 실재에 대해 '말'로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무엇일까.
약 7만 년 전에 있었던 인지 혁명이 지금의 나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당연하게 여겼던 이 생각에서 '역사'를 알고 배우고 연구하는 이유를 발견했다.

"지금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이 질문에는 현재의 삶과 어떤 관련성을 포함하고 있다. 즉, 역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현재를 해석하고 있으며, 과거를 통해 지금의 위치를 파악하고, 지금을 이해하는 근거로 사용하려고 한다. 지금의 위치를 연대기적으로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는 역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필연적으로 왔다는 운명론적 설명도 아니고 현재에 대한 면밀한 과학적 실험을 통해서가 아닌, 오직 이전 시간의 기록, 사료 등과 비교하여 파악하는 것. 과거의 일과 현재의 일이 어떤 인과관계를 가지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 결국 이 파악한 것을 토대로 오늘날의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가를  확인하고 있다.  

 

인지 혁명 이후, 사피엔스는 이중의 실재 속에서 살게 되었다. 한쪽에는 강, 나무가 자라는 객관적 실재가 있다. 다른 한쪽에는 신, 국가, 법인이라는 가상의 실재가 존재한다. 시간이 흐르고 가상의 실재는 점점 더 강력해졌고,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강과 나무와 사자의 생존이 미국이나 구글 같은 가상의 실재들의 자비에 좌우될 지경이다. _60쪽

사피엔스의 언어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상의 실재'에 대한 권위를 인정하고 이에 대한 사회적 암묵적 약속을 가능하게 했다는 저자의 견해는 흥미로웠다. 즉, 오늘날 실제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의 영향을 받고, 하라리 교수의 말처럼 오히려 물질세계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상의 실재의 영향력이 더 커졌다는 점을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는 금융자본주의, 사회적으로는 국민국가 혹은 디아스포라 등 국가, 지역 등에 따른 정체성, 정치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 (일부 국가 제외) 등 이들의 존재를 알지만 이들을 만질 수 없는 가상의 실재들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2017년에서 가장 먼 시기에 있었다고 추정되는, '인지 혁명'이 현재 나의 삶과 연관관계가 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7만 년 전 인지 혁명에서 오늘날 나의 삶을 연결하는 이음새는 정교하지 못하다. 정확하게 정교할 수 없다. 오래전 일이기 때문에 사료적 근거를 통한 합리적 답을 얻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한계점에서 멈추지 않고  설득력과 논리성을 부여한 '유발 하라리' 교수의 통찰력이 놀랍다. 역사학자 E.H 카의 역사는 "현재를 오가는 대화"라는 말처럼 그의 과거에 대한 끊임없는 대화가 '인지 혁명'이라는 그만의 독창적인 논리를 완성하게 했을 것이다. "답을 얻을 수 없는 질문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인류 역사의 6만 ~ 7만 년을 "그 시기에 살았던 인류는 중요한 일이라고는 전혀 하지 않았다(101쪽)"는 핑계로 일축하고 싶어질 수 있다."는 그의 말에서 때론 생각의 한계를 뛰어넘는 사고의 지평을 넓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낄 수 있다.

 

2. 새로운 프레임을 위해서, 농업 혁명

'신석기 혁명'이라는 이름이 익숙한 농업 혁명은 "무혈 혁명"이라는 특징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피엔스>의 농업혁명은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달랐다. 농업 혁명이 어떻게 불평등까지 이어졌는지를 설명했다. 역사상 농업혁명은 정착생활을 불러왔고, 청동기 시기를 지나 계급사회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국사 시간에도 들었던 이야기였다. 하지만 하라리의 농업혁명은  관점이 독특하다.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124쪽)"는 서문으로 농업혁명에 대한 이야기를 밝혔다. 그리고 그 사기꾼이 '밀'이라고 말하며 풀어 나갔다. 식물이 호모 사피엔스에 의해서 길들여진 것이 아니라 식물이 호모 사피엔스를 길들였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개개인 사피엔스의 삶은 보장되지 않았고, 인종 사피엔스의 수를 늘리는 데 효과적이었다. 농업혁명이 정착되고 다시 수렵생활로 돌이킬 수 없을 정도가 되자 다른 방향의 발전을 불러왔다. 그리고 그 발전이 또 많은 개인을 위한 발전이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농업혁명은 유발하라리의 말처럼 '덫'이었다. 농업혁명은 "파멸을 불러왔다"라는 평을 받기도 하지만 "인류가 번영과 진보의 길에 들어서게 도왔다"라고 평가받기도 한다(148쪽). 어떤 쪽에 손을 들어줄지는 개인의 판단에 맞길 문제이다.
 

 

농업 혁명 덕분에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식량은 총량이 확대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여분의 식량이 곧 더 나은 식사나 더 많은 여유시간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_ 124쪽

 

농업혁명을 읽으며 '사고의 지평을 넓히는 것'이란 이런 것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농업혁명의 주체를 밀에 두었을 때,  생기는 사고의 틈을 파고들어 논리적인 전개를 읽으며 사고의 지평을 넓혀져 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 이유는 다른 각도로 사건을 조망하는 프레이밍을 배웠기 때문이다.
현재를 다른 각도로 보는 것은 어렵지만, 과거에 지나온 사건을 다른 시각으로 보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 역사에 서술된 사건들은 보통 지금 살고 있는 나의 삶의 자리가 아닌 다른 시간 때로는 다른 공간에서 펼쳐진다. 현재 나의 위치와 다른 곳이기 때문에 시공간의 거리가 생긴다. 즉, 역사는 새롭게 세상을 보는 프레임을 익히는 데 효과적이다. 다시 말해 나는 농업혁명의 주체를 사피엔스가 아닌 밀로 두었을 때, 개개인의 삶과 사피엔스 인종을 두고 볼 때 전혀 다른 평을 할 수 있다는 점은 시각에 따라 같은 세상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실제 이런 새로운 프레임을 익힐 수 있는 책들은 많이 있다. 
연대순으로 쓰인 역사서가 아닌 <거꾸로 보는 세계사>.
외국인의 시각으로 본 역사 <하멜 표류기>.
왕이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통해 살펴본 조선의 역사 <왕을 낳은 후궁들> <왕이 못 된 세자들> <환관과 궁녀> <궁녀의 하루>.
같은 시기 다른 성장곡선을 그린 영국과 스페인의 역사를 풀어낸 <세계사 지식 향연> 등등..

역사를 통해 세상을 다르게 보는 시야를 내 삶에 끌어온다면, 지금 내가 보는 풍경과 다른 풍경이 삶의 자리에 펼쳐질 것이다. 그리고 그 다른 풍경이 어떤 빛깔을 낼지는 개인에게 달려 있다.

 

 

돈은 돈 있는 자에게 들어오고, 가난은 가난뱅이를 방문하는 법이다. 교육은 교육받은 자에게, 무지는 무지한 자에게 돌아가게 마련이다. 역사에서 한번 희생자가 된 이들은 또다시 희생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역사의 특권을 누린 계층은 또다시 특권을 누릴 가능성이 크다.
대부분의 사회경제적 차별에는 논리적, 생물학적 근거가 없으며, 우연한 사건이 신화의 뒷받침을 받아 영속화한 것에 불과하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훌륭한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다. _ 211쪽

 

이왕이면 나에게만 아름다운 풍경이 아닌, 많은 사피엔스들에게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는 프레임을 가지길 소망한다.

 

3. 더 나은 선택을 위해서, 과학 혁명

 

 

 우리는 천국과 지옥으로 나뉘는 갈림길에 서 있다. 한쪽으로 난 문과 다른 쪽으로 열린 입구 사이에서 초조하게 오락가락하고 있다. 역사는 우리의 종말에 대해 아직 결정 내리지 않았으며, 일련의 우연들은 우리를 어느 쪽으로도 굴러가게 만들 수 있다. _ 529쪽

 

과학혁명은 농업혁명 만큼이나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다. <사피엔스>의 과학혁명은 "왜 현대 인류는 자신에게 연구를 통해 새로운 힘을 획득할 능력이 있다고 믿게 되었는지. 무엇이 과학과 정치와 경제의 연대를 구축하게 했을지"에 대한 역사적 흐름과 더불어 그 답을 제시하고 있다. 한마디로 세계사 시간에 배운 16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는 과학과 서구 열강 그리고 자본주의 시스템의 발전과정을 유발 하라리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과학이 왜 홀로 사피엔스를 지배할 수 없었는지, 식민지 제국주의, 국민국가 시스템, 지구화에 이르는 세계 정치 체제가 바뀔 수밖에 없었던 이유, 자본주의가 이 둘 사이에 어떤 결합제가 되었는지를 말한다. 그 서술은 앞선 두 번의 혁명보다 '상대적으로' 나아 보인다.

하지만 그 '상대적으로' 나은 결과들이 '절대적으로' 나은지. 
지금까지 선택이 최선인지.
사피엔스를 위해 최선의 선택이었는지
라는 질문 앞에 나는 '아니오'라는 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역사상 모든 지점은 교차로다. 우리가 과거에서 현재로 밟아온 길은 하나의 갈래였지만, 여기에서부터 미래로는 무수히 많은 갈래의 길이 나있다. 이 중 일부는 더 넓고 평탄하며 이정표도 잘 되어 있기 때문에 선택될 가능성도 더 크지만, 때때로 역사는 - 또는 역사를 만드는 사람들은 - 예상을 벗어나서 움직인다. _ 337쪽

 

시간 순으로 본다면, 약 500년 전에 있었던 과학 혁명이 지금의 나와 가장 가까이 있었다. 그리고 가까워서는 아니지만, 그 혁명의 여파가 가장 강력하게 삶의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 여파는 7만 년 전 사피엔스도 만 2천 년 전 사피엔스도 500년 전 사피엔스도 상상도 하지 못할 결과일 것이다. 인류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성장했고, 힘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 결과가 과연 500년 전, 만 2천 년 전, 7만 년 전 사피엔스보다 더 나은 삶을 불러온 건지 확답을 할 수 없다. 인지 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으로 점점 고도화된 기술을 가지게 되었지만 사피엔스 간의 불평등의 격차는 더 커지고 있고, 환경은 나빠졌다.
<사피엔스>의 책장이 왼쪽에 쌓여갈수록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의학, 인문으로 치유하다>의 저자는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과거를 살펴봄으로써 미래를 내다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과거의 행적을 통해 현재의 결정에 도움을 받기 위해서(71쪽)"다.  즉, 역사를 통해 우리는 어떤 결정을 해야 하냐는 선택의 문제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그 문제에 대한 좋은 가이드라인을 '역사'는 보여준다. 물론, "역사는 우리에게 한 모퉁이만 돌면 금방 일어날 것 같아 보이는 일도 미처 예상치 못한 장애로 실현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점(584쪽)"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역사가 가르쳐준 가이드라인을 따르는 것이 가이드라인조차 보지 않고 달려온 것보다 더 나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개인들의 행복과 고통에 어떤 영향을 미쳤느냐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의 역사 이해에 남아 있는 가장 큰 공백이다. 우리는 이 공백을 채워나가기 시작해야 할 것이다. _ 560쪽

 

 

 

 

<사피엔스>를 통해 정리한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만은 아니었다. 그치지 않고 학문을 대하는 이유로, 책을 읽는 이유로, 생각을 해야 하는 이유로, 삶에서 무언가를 할 때 가져야 할 이유로 이어지고 있다.

세 번째 <사피엔스>를 읽을 때 난 어떤 '현재'에 있고, 어떤 '프레임'을 가지고, 어떤 '선택'을 할지 기대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한민국의 대통령들 - 누구나 대통령을 알지만 누구도 대통령을 모른다
강준식 지음 / 김영사 / 201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 소개  | 강준식 

“이제 우리는 한 사람의 정치 지도자가 우리 삶의 틀까지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알게 되었다.” 저널리스트로서의 냉철한 역사의식과 폭넓은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을 완성해냈다. 재미있으면서도 엄정하고 객관적인 서술이 되도록 많은 자료와 인터뷰를 섭렵하고 현장에서 취재한 정보들을 활용했다. 대한민국 현대사의 결정적인 장면들을 예리하게 포착해내 선 굵고 정제된 필치로 현장감 있게 되살려냈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문리대, 미국 일리노이대, 플로리다테크대(FTU), 연세대 연신원 등에서 문학, 정치학, 경제학, 신학 등을 공부했다. 196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다. 유신 말기와 5공 중반까지 〈시카고 동아일보〉〈뉴욕 동아일보〉〈뉴욕 조선일보〉 등에서 편집국장과 논설주간 등을 지냈으며, 한때는 정치권과 공기업 등에 몸담기도 했다. 

[출처] 누구나 대통령을 알지만 누구도 대통령을 모른다 <대한민국의 대통령들> 작성자 김영사




내 생애 첫 대선을 앞두고, 읽는 대한민국 대통령사



  2017년 5월 9일,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실시될 예정이다. 정당마다 대통령 선거 후보자 선출 경선 소식으로 지난주부터 이번 주까지 뉴스가 가득 차 있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이전 선거와 달리, 대통령 탄핵으로 조기 대선의 형식으로 치러지기 때문에 선거가 진행되는 과정을 비롯해 대통령 당선인 시기 없이 바로 대통령 000으로 나라를 이끌어나가야 한다는 점과 같이 이전 선거와 차이가 있다. 하지만 앞으로 5년이라는 시간 동안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국가라는 거대한 행정관료 체제를 지휘하고 엄청난 물자를 통제하며, 합법적 국가폭력을 독점하여 전쟁을 치를 수도 있고, 수출입국을 할 수도 있으며, 남북 교류의 물꼬를 트거나 거대 토목공사를 강행할 수도 있고, 나라를 환란이나 혼돈에 빠뜨릴 수도 있(7쪽)"는 힘과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동일하다. 


그렇다면, 

5000만 국민의 삶을 좌우하는 대통령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선출해야 할까. 

대통령이 되고자 나온 이들에게 무엇을 묻고 무엇을 들어야 할까.


그 의문의 방향을 <대한민국 대통령들>에서 찾을 수 있었다. 



12명의 대한민국 대통령들

<대한민국 대통령들>에는 총 12명의 국가 지도자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대통령은 11명이었지만, 내각책임제하에 국무총리였던 장면을 포함한 우리나라 국가 지도자는 총 12명이었다. 


이승만, 장면,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이 책을 읽기 전 나는 각 대통령(총리)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또 알고 있는 정보도 선생님, 부모님, 교수님, 지인들을 통해서 접한 이야기가 전부였다. 그런데 문제는 인물마다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기 때문에 어떤 입장에 선 사람들에게 듣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인물의 이야기를 듣는 듯싶었다는 점이고, 결국 각 대통령이 무엇을 했는지 정도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는 대통령도 있었지만, 몇몇 분들은 이름을 알고 있지만 전임자 혹은 후임자의 그늘에 가려져 잘 알지 못한 인물도 있었다. 


<대한민국 대통령들>은 12명의 인물이 정치적 권력을 잡기까지 과정에서 시작해, 정치적 상황, 주변 인물들과 일화, 해낸 업적, 인물에 대한 대중적 평가를 아울러 다루고 있다. 이 책은 마치 조선왕조실록과 같이 '정사'가 역사를 서술하듯이 주요 사건에 대한 풀이와 인물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유추할 수 있는 '야사'가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딱딱하지도 재미 어느 한쪽에 무게가 쏠리지 않은 채 균형을 이루고 있다. 저널리스트인 저자의 사건에 대한 '시각'과 독자들이 편안히 읽을 수 있는 '필력'이 더해진 결과라는 생각이 드는 지점이었다. 또 저널리스트인 저자의 성격이 책에서 드러난 점은 '중립'이라는 점에서 서술하고자 노력한 부분이다. 이때 중립은 비판도, 칭찬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저자에게 중립은 정확히 사실의 선후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언급을 하고 이에 대해 논리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하여 전개해나간 점이다. 그래서 정치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글에서 자극적이기 보다 심심하면서도 깊은 맛이 느껴진다.


정사 정政자는 

원래 목표(一)를 향한 발걸음(止)이 

똑바로 향해지도록 

채찍질(攵)을 가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방향을 인도하는 자가 '정치적 지도자'다.

대한민국 대통령들 _ 217쪽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때로는 비난에 가까운 이야기가 마냥 비난만을 쏟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칭찬만 하던 사람도 마냥 칭송받아 마땅한 인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이라는 정치적 지도자에 대한 평이 극단적으로 갈리는 이유는 단 한 가지로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이유 중 하나는 "심리학자 황상민이 이야기한 '욕망'이라는 단어로 압축(476쪽)" 할 수 있다. 대통령이라는 지도자에게 국민들은 저마다 자신이 가지 싶은 욕망(need)를 대입했다. 자신의 욕망을 대입하고 이것이 잘 맞아떨어질 때 평은 호로 갈 수밖에 없고, 그 반대는 불호로 갈릴 수밖에 없다. 이렇게 개인적 욕망을 실현시킨 정도에 따라 호불호는 가릴 수 있지만, 그들의 업적을 평가할 때 개인적 호불호의 잣대를 가지고 갈 수는 없다. 민주주의 시스템이 자신에게 유리한 정치 공약을 내건 인물에게 투표를 하는 시스템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 호불호 (욕망)가 반영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하지만 대통령이 된 이후에 실시한 정책에 대해서는 개인적 호불호를 떠나서 평가를 내려야 한다. 이 평가에서 자신의 욕망과 감정을 분리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12명의 지도자의 삶을 압축해 읽으며 느낀 것은 저자의 표현처럼 "개인적으로는 불행한 정치가였고, 공적으로는 실패한 대통령들(320쪽)"이라는 점이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저자는 "내 안에, 우리 안에 규범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이래야 한다는 규범 말이다. 이런 잣대로는 누구도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없다."라고 말한다.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주는 무게는 엄청 그리고 우리나라는 그 무게를 잘 짊어졌든, 짐을 짊어지지 못했든 12명의 국가 리더를 만났다. 각 대통령은 저마다 자신의 푸른 청사진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청사진만 두고 본다면, 아름다운 이상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현실로 만들 때 얼마나 타협을 했는지, 국민들의 욕구와 일치했는지 그리고 그 방법이 민주적이었는지 비민주적이었는지에 따라서 그들에 대한 공과 실에 대한 평가는 갈렸다.


 <대한민국 대통령들>에서 각 인물을 평하며, 저자는 대통령이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의 견해를 밝혔다. 


"무릇 지도자란 집단이 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선택하는 사람이다. _ 58쪽"


"정치적 지도자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_ 445쪽 "


"대통령이 치러야 할 전쟁은 무엇인가? 그건 '사회통합'이라는 이름의 전쟁이다. 정치의 궁극적 목표이기도 하다. _ 452쪽"


"여기서 강조해야 할 대목은 대통령 자리는 한 개인이 성취욕을 만족시키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또한 개인의 입신 영달의 정점이나 치부의 수단이 되어서도 안 된다. _ 498쪽"


익숙한 말들이고, 당연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당연한 것들이 지켜지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모두가 이 당연한 것을 지키겠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정권이 끝날 때면 이 모든 것을 지키지 못했다는 평이 뒤에 붙었다.

"지금 청와대로 가는 길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5년 후 다시 이 집으로 돌아올 때 위대한 대통령으로 평가받기를 원한다."라고 말했던 고 김대중 대통령의 소망이 비단, 한 사람의 소망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모두가 자신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자신이 죽을 때까지, 그리고 자신이 죽고 난 이후까지 이 소망을 품었을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 책 속의 대통령들 가운데 누구도 이 소망을 이룬 사람은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이 소망이 원대한 꿈이기 때문일까. 아니라고 믿고 싶다. 분명, 대한민국 대통령 가운데 이 소망을 이룬 대통령이 나오길 소망한다. 


대선을 앞둔 지금 <대한민국 대통령들>이라는 우리나라 대통령사를 읽어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역사를 보면 미래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과거의 대통령들을 통해 앞으로 뽑을 대통령을 검증한다는 의미에서 중요할 수 있다. 대통령의 자질을 묻는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대통령 선거를 앞둔 나에게 있어 이 책은 나의 한 표가 가진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느끼게 해주었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알게 된 점은 어떤 대통령 선거도 중요하지 않은 때가 없었고, 어떤 대통령도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나의 첫 투표가 짧게는 5년 길게는 대한민국이라는 역사를 만드는 선택이다. 


이제 유권자는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에게 

적어도 다음 두 가지 질문에 대해 

분명한 답을 듣고 나서 

투표해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첫째, 당신은 왜 대통령이 되고 싶은가?

둘째, 당신은 대통령이 되고 나서 무엇을 하고 싶은가?

543쪽


저자의 마지막 질문에 한 가지를 더해 보자면, 

'나'와 '대한민국'이 당신을 왜 선택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더하고 싶다. 


물론, 이 책의 내용만으로 12명의 대통령에 대해 평을 내리기는 어렵다. 한정된 양으로 평해야 했고, 당시 한국 사회에 대한 전반적인 사회문화적 면모를 알기에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사'와 '야사'가 뒤섞인듯한 이 책은 5월 9일 대선을 눈앞에 둔 시점에 "대한민국 대통령사"를 읽어내기에 효율적인 책임은 분명하다. 

무릇 지도자란 집단이 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선택하는 사람이다. 국가의 큰 물줄기를 설정하거나 바꾸었다는 점에서 나는 역대 대통령 가운데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선택한 이승만과 그 후 대외지향적인 교류 국가로 나아가는 길, 다시 말해 수출입국의 먹고사는 길을 선택한 박정희, 그리고 대결의 연속이었던 남북문제를 교류와 협력의 햇볕정책으로 바꾸었던 김대중 등 세 사람을 준비된 지도자로 꼽는다. 그리고 거기엔 못 미치지만 권위주의의 새 실을 제시했던 노무현 또한 추가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58쪽

블라디미르 레닌은 사슬의 ‘약한 고리‘에서 혁명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90쪽

정치는 타협인데, 타협을 한 사람이 ‘타도(제명)의 대상‘이 되거나 ‘사쿠라‘로 몰리면 정치는 탄력성을 잃고 입지도 그만큼 좁아진다. 여기서 야당은 ‘선명성‘과 ‘강경일변도‘로 치닫게 되었고 여당은 이를 돌파하기 위해 ‘날치기‘로 맞서는 비극적 관행을 만들어냈다. 오늘날에도 그 흔적이 짙게 남아 있는 3공식의 대치정국은 이렇듯 ‘진산파동‘을 전후하여 생성된 것이다.
140쪽

정사 정政자는 원래 목표(一)을 향한 발걸음(止)이 똑바로 향해지도록 채찍질(攵)을 가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방향을 인도하는 자가 정치적 지도자다.
217쪽

보수주의의 아름다움은 사람이 보존하는 전통적 관습과 가치 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인간의 생명을 존중하고 보호한다는 점에 있다. 그래서 추상적이고 당위적인 정의를 부르짖는 진보주의 관점에서 옳지 않았다 할지라도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보수주의 관점에서 궁지에 빠진 한 개인의 생명을 구했다는 이야기는 늘 우리를 감동시킨다. 남의 ‘아픔‘을 같이 느낄 줄 알고 나와 다른 의견과 생각이 있음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것이 진정한 보수주의다.
232쪽

이렇게 적다보면 그는 개인적으로는 불행한 정치가요, 공적으로는 실패한 대통령이었다. 그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역대 대통령들에게 대해 글을 쓰면서 보니 누구나 그 점에서 예외가 없었다. 왜 그렇게 되는 것일까?
내 안에, 우리 안에 규범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이래야 한다는 규범 말이다. 이런 잣대로는 누구도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없다. 아무리 뛰어난 미인도 도마 위에 올리면 5분 안에 작살난다는 말이 있다.
320쪽

5000만 국민의 삶을 좌우하는 대통령의 자리는 한 개인의 즐거움이나 입신영달이나 부귀영화를 위해 주어지는 자리가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통령직에 대한 인식이 박근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정치인들이 많다는 점에서 이제 유권자는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에게 적어도 다음 두 가지 질문에 대해 분명한 답을 듣고 나서 투표해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첫째, 당신은 왜 대통령이 되고 싶은가?
둘째, 당신은 대통령이 되고 나서 무엇을 하고 싶은가?
543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