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뮤얼 헌팅턴의 미국, 우리는 누구인가
새뮤얼 헌팅턴 지음, 형선호 옮김 / 김영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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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당선되었을 때, 전 세계도 놀랐고 미국도 놀랐다. 놀란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 국민들이 트럼프를 뽑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생각은 틀렸고, 미국의 45대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가 되었다. 세계화의 선봉에 서있는 '미국'이 왜 "반이민 정책" "국경 장벽 설치" "FTA 재검토" 등의 세계화와 반대 방향의 정책을 말하는 트럼프를 국가 리더로 선택한 것일까? 

우리는 정말 미국이 어떤 나라인지 제대로 알고 있었던 것일까?

 

내가 볼 것인가 타인이 볼 것인가

 

정체성이란 내가 누구인지 구성하는 토대를 말한다. 개인적 자아 형성에서 시작해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획득해 나가는 사회적 역할과 자신이 속한 집단의 성격, 민족, 인종, 국가, 지역, 성별, 나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특질들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과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정체성을 동시에 갖게 된다(「처음 만나는 문화인류학』, 120쪽.)
 흥미로운 점은 정체성의 어원에 있다.'identity'란 단어가 '확인하다(identify)'란 말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은 정체성이 자기가 아닌 남에 의한 확인과 증명을 통해 형성되는 것임을 말해준다(「우리 전통예술은 한(恨)의 정서를 바탕에 깔고 있는가?」,  『한국의 교양을 읽는다』, 189쪽.). 즉 내가 누구와 다르고, 누구와 같은가에 따라 정체성이 결정된다는 의미다.
 이 맥락에서 볼 때, <새뮤얼 헌팅턴의 미국, 우리는 누구인가>는 정체성이라는 단어 어원과 닿아 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보통의 민족, 인종 등의 정체성에 대한 접근은 타 문화권 사람들에 의해서 분석된 경우가 많았다. 특히 이를 바탕으로 발전을 이룬 학문이 문화 인류학이다. 대표적인 저작으로는 <국화와 칼> <슬픈 열대>등이 있다. 물론 이와 같이 타인이 바라본 시선을 통해 확인한 정체성도 유효하지만, 자신이 바라본 자문화에 대한 분석도 매우 유의미하다. 이때 중요한 점은 얼마나 객관적인 태도로 그 분석에 임하느냐에 있다. <새뮤얼 헌팅턴의 미국, 우리는 누구인가>는 미국이라는 국가의 역사와  각종 실질적 통계자료에 근거해 미국인이 바라본 미국인의 문화에 대해 서술한 책이다. 

 

 

 

 

<새뮤얼 헌팅턴의 미국, 우리는 누구인가>의
시각으로 바라본 트럼프 대통령 당선

 

45대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당선되었을 때, 그 해석을 다시 찾아보았다. 기사 속에 나타난 해석들을 읽으며, <새뮤얼 헌팅턴의 미국 우리는 누구인가>의 메시지와 상당 부분 맞아 들어간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트럼프의 돌풍에 대해서 우리는 '교양 있는' 소위 미국 내 지식인·엘리트들은 무시로 일관했다. 트럼프가 후보자가 되겠다고 나왔을 때,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될 리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화당 경선이 진행될수록 트럼프에 대한 지지는 압도적으로 높았고, 결국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가 되었다. 후보자가 된 뒤에도 결코 대통령에 당선될 리가 없다고 이야기했지만, 결국 당선되었다. 이는 <새뮤얼 헌팅턴의 미국 우리는 누구인가>에서 지적했듯이, "백인 엘리트와 비 백인 엘리트 간의 거리"에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백인 엘리트들은 미국의 모든 주요 기관들을 지배하지만, 수백만의 비엘리트 백인들은 엘리트들과 전혀 다른 태도를 갖고 있고, 엘리트들의 확신과 안전이 부족하고, 엘리트들의 지지와 정부 정책의 지원을 받는 다른 집단들과의 인종적 경쟁에서 자신들이 설자리를 잃고 있다고 생각한다.(386쪽)" 

즉, 미국의 정치계, 사회계, 문화계를 이끌고 있는 엘리트 집단의 생각과 다수의 비 엘리트 백인 집단 간의 괴리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의 거리는 실질적인 수치로 명백하게 드러나던, 드러나지 않던 여부와 관계없다. "마음속에만 존재해도 새로 부상하는 집단들에 대해서 미움과 두려움"을 가질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심리적 요인에 대해 간과했다는 것이 반 트럼프 주의자들이 간과했던 점이다. 특히 경제적으로 중산층과 중산층 이하의 삶을 살았던 백인들은 자신들이 다른 인종, 민족에 비해 역차별을 받고 있으며, 미국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다인종 지원 정책에서 배제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자신들의 희생을 당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이 바탕에는 미국이라는 국가의 정체성 구성과 밀접한 연관되어 있다. 

"이민자들과 개척자, 이민자, 그리고 노예의 후손들 외에, 현재의 일부 미국인들은 미국인들이 정복한 사람들의 후손들이다.(67쪽)"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같은 언어, 같은 종교적 신념을 공유함으로써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는 당위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이민자, 개척자, 노예의 후손 등으로 구성된 독특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국가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토나 장소에 대한 깊은 정체성을 다른 국가에 비해서 가지고 있지 않았다. 국민들 구성에 대한 연결 관계가 하나로 통일되어 있지 않은 편이다. 물론 기독교라는 종교를 공유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 일체감을 가지기 어려웠던 것이다. 백인들의 경우, 유럽의 다양한 국가에서 이민을 왔고, 이 이민자들은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결혼 과정을 통해 혼합되었다. 그 결과 다른 인종에 비해 뚜렷한 민족적 정체성을 가지지 못했고, 그 공백이 "희생자란 느낌"으로 채웠다고 조지아 주립 대학교의 사회학자인 찰스 갤러허 교수는 주장했다.

그리고 이들이 트럼프의 지지기반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언론에서 트럼프 지지에는 백인 노동자 계층 외에도 다른 인종의 지지도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당선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백인 노동자 계층의 적극적 지지를 받았다는 것이 주류 해석이다. 그렇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 역시 이를 의식한 듯한 대선 승리 연설에서, 자신의 지지 기반이 원하는 메시지를 담은 연설을 했다. 

2016년 11월 9일 미국 맨해튼 힐튼 미드타운호텔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 승리 연설을 했다. 이때 트럼프는 “우리가 해 온 것은 선거 캠페인이 아니라 모든 인종, 종교, 배경, 신념을 가진 미국인들이 만들어낸 위대한 운동이었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고 한다. 이 말에는 전국적 지지를 발판으로 삼은 자신감이 묻어났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폄하해 온 주류 기득권에 보내는 경고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아메리칸드림을 부활시키겠다"라며 미국 백인 노동자 계층의 기대감을 높였다. 
참고 기사 | 박영환 특파원·이윤정 기자, [트럼프 당선 - 기대와 실망]“아메리칸드림 부활…미국 다시 세울 것”, 경향신문, 2016.11.09

트럼프 지지 기반인 백인 비 엘리트 집단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 새뮤얼 헌팅턴은 상세하게 책에서 다루었다. 

"그중에서 한 가지 가장 있음 직한 반응은 기본적으로 백인 남성이고, 근로계층이고, 중산층인 사람들이 배타주의적인 사회정치적 운동을 전개하는 것일 수 있다. 이들은 그와 같은 운동 속에서 그와 같은 변화들을, 그리고 자신들이 볼 때 점점 더 줄어드는 자신들의 사회적 및 경제적 지위, 이민자들과 외국들에 빼앗기는 일자리, 자신들의 문화와 언어가 약해지는 것, 그리고 자신들 나라의 역사적 정체성이 침식되거나 사라지는 것을 막거나 되돌리기 위해 애쓸 것이다. 이와 같은 운동은 인종적 및 문화적 특성을 가질 수 있고 반 히스패닉, 반 흑인, 그리고 반이민일 수 있다. 이와 같은 운동은 과거에 미국의 정체성을 규정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다수의 인종적 배타주의 및 반외국인 운동과 비슷할 수 있다. …(중략) '백인 현지인주의'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을 수 있다.(381쪽)" 

즉, 이미 지금 벌어진 일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 아니라 충분히 있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마 1990년대부터 예견된 일이었던 것이다.

"히스패닉의 대규모적이고 지속적인 유입은 백인 앵글로-개신교도 문화의 지배력과 유일한 전국적 언어로서 영어의 지위를 위협한다. 백인 현지인주의 운동은 이와 같은 추세들에 대응하는 가능하고 일견 타당한 반응이며, 심각한 경기 불황과 고난의 상황에서 가능성이 아주 높은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가능성은 몇 가지 요인들로 인해서 높아진다.(384-385쪽)

"그러나 백인 현지인주의에 가장 강력한 자극이 되는 것은 백인들이 볼 때 미국 사회에서 히스패닉이 점증하는 인구적,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정치적 역할에서 비롯되는, 그들의 언어와 문화에 대한 위협일 것이다.(388쪽)"

그리고 그 움직임이 처음에는 인종에 따라 있을 수 있는 차별에 대한 배려가 시작되었지만, 점차 미국이라는 국가 정체성의 핵심에 놓여 있는 '언어(영어)'까지 흔들자 느끼는 위협의 강도가 더 높아졌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미국을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그 변화의 감도를 체감할 수 없다. 다만 트럼프의 극단적인 '멕시코'에 대한 정책과 이민자에 대한 엄격한 규제로 볼 때, 미국인들이 느끼는 바가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정책이 21세기에서 볼 때 비정상적이며 말도 안 되는 일임에도 추진하려고 하는 것을 볼 때 말이다.)  

"업계 엘리트들의 세계화 정책들은 일자리를 해외로 이동시켰고 근로계층 미국인들의 점증하는 소득 불평등과 실질임금 하락을 초래했다.(384쪽)"

"인종적 균형이 계속해서 변하고 더 많은 히스패닉이 시민이 되어 정치적 활동이 높아짐에 따라, 백인 집단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다른 방법들을 찾아야만 할 것이다.(385쪽)"

흥미로운 점은 백인 노동자 계층이 미국 정체성에 있어서 주류였고, 이들이 그 토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이들이라는 점이다. 히스패닉과 아시아계, 흑인 등의 인구 증가 속도가 높지만, 여전히 백인 계층이 미국 내에 차지하는 비율은 결코 낮지 않다. 즉, 이들이 피해자라고 느낄 만큼 약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하지만 이는 타국에서 바라본 나의 시선이고, 이들의 체감하는 위협도는 '트럼프' 대통령을 탄생시킬 만큼 위협적이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지지 기반과 이들의 프레임에 의해서 당선된 트럼프가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지는 <새뮤얼 헌팅턴의 미국, 우리는 누구인가>를 통해 또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최근 극우 정당의 지지를 많이 받고 있는 유럽권 국가들의 문제도 이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민, 다문화를 지향했던 국가에서 기존에 국가의 주류에 속했던 이들이 위협을 느끼자 극우 정당에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새뮤얼 헌팅턴의 미국, 우리는 누구인가>의 해석을 유럽에 대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미국과 다른 국가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의 종교, 언어, 문화 사회적 토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새뮤얼 헌팅턴의 미국, 우리는 누구인가>에서 다양한 문화 간의 접촉과 혼합이 당연시된 21세기에 오히려 이 흐름에 역행하려는 움직임에 대한 고찰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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