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법학자, 그 사람 백충현 - 독도와 외규장각 의궤를 지켜낸 법학자의 삶
이충렬 지음 / 김영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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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는 과거를 바라보는 창문인 동시에
현재와 연결되는 역사의 통로 역할을 한다.
 _<국제법학자, 그 사람 백충현>, 4쪽

 

 

한 사람의 삶을 통해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 의미 있는 것은 그의 결단과 선택에 따라 달라진 역사를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삶의 자극을 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롤모델'을 삼거나, '어떤 분야에 대한 흥미'로 나타나거나, '꿈과 목표'를 세우거나 통사가 설명하지 못한 한 시대의 그늘진 면을 바라보고 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국제법학자, 그 사람 백충현>을 통해 바라본 대한민국의 국제법 史는 그가 해낸 일만큼이나 다사다난한 길이었다. '국제법 학자'로서 책무와 존재 의미를 잊지 않고 국제법학자 백충현은 그 길을 걸었다.  그의 삶은 살얼음판을 걷는 듯 조심스러운 한반도 국제 정세 위에 놓인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생각의 자극'을 주고 있다.

 

 

 


저자 | 이충렬

저자 이충렬은 서울 출생, 1994년 《실천문학》을 통해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현재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아, 김수환 추기경 1,2》《간송 전형필》《혜곡 최순우, 한국미의 순례자》《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 등이 있다. 실제에 근접하여 인물의 궤적과 시대정신을 담아내는 장르인 전기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치밀한 자료 조사와 탄탄한 스토리텔링, 처음부터 끝까지 감정을 몰입시키는 드라마틱한 연출로 쓰이는 글은 영혼이 담긴 다큐멘터리이자 소설 이상의 문학이 되고 있다. 이 책 《국제법학자, 그 사람 백충현》에서는 독도, 외규장각 의궤 반환, 재일 동포 인권, 종군 위안부, 아프가니스탄 집단 학살과 난민 문제 등 조국과 인권을 위해 헌신했던 백충현 교수의 생애를 복원하면서 최초 공개되는 자료인 <관판실측일본지도官板實測日本地圖>를 통해 독도가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 저자의 저서를 보면, 우리나라 근현대사 인물 가운데, 그 시대에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을 발굴하고 조명한 책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화재 보호를 위해 노력한 "간송 전형필". 민주화를 위해 애쓰신 "김수환 추기경", 반추상 미술의 거장 "수화 김환기"등.. "한 인물을 통해 지난 시대를 바라보는 일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시야를 넓히면서 사고의 깊이를 깊게 하는 계기(4쪽)"가 된다는 신념이 반영된 결과가 아닐까.

 

 

 

"국제법상 무엇이 정의이고 부정의 인지를 사회에 알리는 것이 국제법 학자로서의 책무이고 존재 의미 아니겠는가."
_ <국제법학자, 그 사람 백충현> 87쪽 중에..

 

 

 한 나라의 국민들이 얼마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삶의 질' (quality of life indicators) 지표가 있다. 이는 국민들이 얼마나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고 있는가를 경제적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 환경 등 모든 면에 걸쳐 포괄적으로 척도화한 지표이다. 언젠가부터 세계 각국에서는 삶의 질을 중요하게 여기는 조용한 혁명이 있었다. 물질적 풍요와 생활의 안정 이상으로 어떤 삶을 영위하는지에 대한 쪽으로 관심이 옮겨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 각국은 환경 보호, 복지 문제, 문화재 보호, 국제 분쟁에 대한 합리적 해결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는 100년만 거슬러 올라가도, 얼마나 합리적인 해결을 위한 제도를 만들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큰 성과를 이룬 것임을 알 수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국제법"이다. 



국제법의 가치를 일찍 알아챈 사람이 바로, 고 송현  백충현 교수였다.

 

 

 

국제법 연구 모임을 했었던 '사직 아파트' (서울시 종로구 사직동)         

 

 

 백충현 교수는 1970년 하버드대학교 로스쿨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동아시아연구소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우리나라 국제법 수준이 개발도상국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에 문제의식을 느꼈다. "국가 간의 분쟁은 외교의 힘으로 해결된다고 믿기 쉽다. 그러나 외교의 힘은 항상 법적 이론이 뒷받침할 때 비로소 정당한 방법으로 행사될 수 있다(140쪽)"는 그의 신념은 그의 행동으로 실천적 삶으로 바뀌었다. 1972년 귀국 후 국제법 연구 모임을 만들고, 이후 이를 서울 국제법 연구원으로 만들었다. 중학교 시절 등하굣길에 지나다니던 '사직 아파트'가 백충현 교수의 국제법 연구의 출발점이 되었던 장소라는 것에 놀랐다. 이 사실을 알고 종로도서관을 가기 위해 걷는 길이 조금 색다르게 느껴졌다.                        

* 독도 * 외규장각 * 재일 동포 * 위안부 * 아프가니스탄 집단 학살 *

한일 양국이 재일 동포 법적 지위에 대한 회담에 나선다는 소식을 들은 백 교수는 국제법 전문가로서 재일 동포가 받고 있는 법적 지위 차별의 부당성에 대한 국제법적인 견해를 밝혀야겠다고 생각했다. 묻혀 있는 문제, 그것도 국가가 한일 협정을 체결할 때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발생한 문제에 대해 공무원 신분인 국립대학교 교수가 나서서 문제 제기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국제법 학자로서 침묵하는 것은 학자의 양심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국제법상 무엇이 정의이고 부정의 인지를 사회에 알리는 것이 국제법 학자로서의 책무이고 존재 의미 아니겠는가. 국제법 학자만이 재일 동포들이 왜 피해자인 동시에 권리자인지를 명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_ <국제법학자, 그 사람 백충현> 87쪽

 

 

 국제법 학자로서 그의 관심과 신념은 올곧았다. 자신의 양심과 책무에 따라 외면할 수 있는 일을 외면하지 않았고, 노력을 쏟을 수 있는 일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노력은 우리나라 현대사에 있어서 유의미한 흔적을 남겼고, 지금도 남기려고 하고 있다.
  이노우 다다타가가 측량한 지도 관판실측일본지도를 메이지대학 박물관에서 확인하고, 일본의 '독도' 영유권 도발에 대한 '결정적 증거'를 찾기 위해 노력을 쏟았다. 일본 고지도 전문 서점을 돌아다니며 이 지도를 구하기 위해 애썼고, 1997년 기적처럼 발견하고 1억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우리나라로 가지고 왔다. 안타깝게 이 자료가 우리나라에 왔을 때 일본과 '신한일어업협정'과 '중간수역'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독도 문제를 거론할 수 없었다. 이후 몸이 좋지 못해, '관판실측일본지도'와 그 해석에 대한 자료가 공개된 바가 없다. 그의 논문 집필 계획안 속 촘촘한 논의를 보며, 완성된 논문으로 접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의 '외규장각'에 대한 열정을 보며, <박물관학 개론> 수업에 배운 내용들이 떠올랐다. 문화재 반환에 있어서 우리나라의 입장은 문화재 원산국이고 반환된 문화재를 돌려받기 위해 노력을 쏟고 있다. 돌려받은 외규장각 문서, 아직도 받아야 할 문화재들이 전 세계 곳곳에 놓여 있다. 이 문화재 반환에 대한 노력은 제국주의 열강에서 독립한 신생 독립국들이 1960년도에 제기하면서 본격화되었다. 문화재 반환에 대한 논리적 근거로 문화민족주의를 근거로 두고 있다. 그리고 문화재 약탈은 '한 나라의 문화재에 대한 일련의 약탈 행위가 한 민족의 갱신적이고 물질적인 문화유산에 대해 영원히 회복시킬 수 없는 손실을 입힌 것(Kifle  Jpte, 1994)'이라고 규정하며, 본국으로 반환해야 한다는 국제적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하지만 이를 우리에게 유리하게 이용하기 위해서는 국제법상 우리에게 유리한 고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알고 있었던 백충현 교수는 병인양요 때, 외규장각 도서 약탈에 대한 글을 확보하고, 프랑스와 외교 협상에서 우리나라가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해 분명한 논조로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른 결과가 실현될 때, 그는 고인이 되었지만 그의 노력이 '외규장각' 반환의 밑바탕이 되었다. 우리나라에 머문지 6년이 되어, 어느새 당연히 우리나라 문화재가 된 '외규장각' 도서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나라가 문화재 반환을 위해 국제법상으로 어떤 노력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북한 무력 도발, 트럼프 정권, 사드 배치, 일본 위안부 문제, 독도 문제..

 

 

 다양한 국제 이해관계 속에 한반도 외교는 바람 앞 촛불과 같은 상황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에는 한 가지 방법만 있지 않을 것이다. 고 송현 백충현 교수가 걸어온 길이 우리에게 주는 길도 분명 있다. 물론 학자로서 그의 삶이 현실 실리 외교와 멀어보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국제법이란 상대가 인정하지 않으면 법으로서 성립하지 않는 것은 사실(252쪽)"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제법은 외교 협상에서 상대국의 이론 대결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해 국가와 국민을 위한 최선의 결과를 얻어낼 수있는 '무기'(252쪽)"라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리고 그 기반에는 "외국의 국제법 이론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 맞게 적용(157쪽)"이라는 분명한 신념이 존재해야 한다. 

"학자"로서 그가 지킨 양심과 책무는 그의 죽음에서 멈추지 않고, 지금이라는 시간 속에 계속 흘러가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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