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클 일주일 지갑 - 1만 명 이상의 마이너스 인생을 플러스로 바꾼 기적의 습관
요코야마 미츠아키 지음, 정세영 옮김 / 리더스북 / 2018년 3월
평점 :
절판



가계부 없이 지갑으로만
생활비 관리하기!




《미라클 일주일 지갑》은 돈을 사용하는 습관을 바꾸길 권한다. 그리고 그 작은 습관은 크게 소득을 늘리지 않아도, 크게 지출을 줄이지 않아도 지갑은 풍족하게 마음은 조급하지 않게 만들어준다. "절약"하면 바로 떠오르는 나라, 일본의 최고 재테크 컨설턴트가 제안하는 방법이라고 하니 몹시 흥미가 갔다. 10,000명 이상의 마이너스 인생을 살고 있던 고객의 생활을 플러스 인생으로 바꾸었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의 노하우가 궁금했다. 특히 아직 학생과 취업 준비생 그 사이에 놓인 나에게, 당장 수입을 늘릴 수도 없고 나름 지출을 최소화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늘 돈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나에게 필요한 "미라클"과 같은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갑에 든 현금을 보면 예산이 얼마나 남았는지
곧바로 확인할 수 있다는 데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나를 위한 책이구나 싶었다. 올 초 "김생민의 가계부"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가계부를 사용하면서 느낀 것은 내가 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그 흐름을 알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가계부를 사용하여 흐름을 읽는 것도 좋고, 매주 반성하는 것도 좋았지만. 종종 후회할법한 지출들이 갑자기 생긴다는 게 문제였다. "소비는 감정적이기 때문에" 내 감정 상태에 따라서 때때로 달콤한 디저트로 스트레스를 푸는 일이 생기곤 했다. 확실하게 내가 사실 "김생민"씨와 같이 의지가 강한 사람이었다면 가계부만으로 충분하겠지만, 나에게는 소비 습관을 바꾸기 위한 다른 노력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방법이 "식비를 1주 일치 현금으로 가지고 다니는 것이었다." 그리고 난 약 2주일간 이를 실천해보았다.


내가 첫 주 동안 실천한 방법은,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1주일 동안 식비를 넣어서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지갑이었다. 일주일치 지갑으로 사두고 좀처럼 사용하지 않았던, 귀여운 동전 지갑을 선택했다. 지폐와 동전을 넣기에 조금 작을 수 있지만, 일주일치 지갑이기 때문에 큰 지갑보다는 작은 지갑이 더 유용할 것 같았다. 그리고 절약을 목표로 지갑을 산다는 지출을 막기 위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지갑이었다. (사실 나는 카드 지갑 외에 지갑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일주일 동안 실천해본 결과를 말하자면.. "실패"였다.
실패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내가 실천했던 기간에 내 생일이 있었다. 그 주간 내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사람들과 만났고, 그 만남은 대부분 식사와 차로 이어졌다. 물론 이 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잘못도 있지만, 일주일간 실천하면서 느낀 것은 "외식하는 습관"이 당연시 여기고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생일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있기는 했지만, 외식을 정말 자주 하는 편이었고, 꼭 밖에서 밥을 먹지 않더라도, 친구들과 종종 카페를 가고 이 역시 외식비 지출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일본 총무성 통계국에서 발표한 2015년 가계 조사에 따르면 도쿄에 거주하는 2인 이상 가구의 한 달 평균 소비 지출은 약 360만 원이며, 그중 식비는 90만 원 정도로 전체의 4분의 1에 해당하며 압도적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한국의 사정도 다르지 않은 실정이다. 그 이유는 식재료 값보다 외식하는 문화가 많이 자리 잡았고, 외식비가 결코 저렴하지 않다는 데 있다. 10대 시절에는 학교에서 급식을 먹고 집에서 밥을 먹곤 했지만, 대학에 진학하고 외부에 있는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자연스레 외식하는 습관이 생겼다. 학교에서 사 먹는 학식이나, 편의점 음식들이 그렇게 비싼 편은 아니지만, 영양과 칼로리를 생각하면 그리 저렴한 편도 아니었다. 또 식후에 자연스럽게 커피를 사 먹다 보니.. 생각보다 지출이 많은 편이었다. 저자는 직접적으로 이 점을 않았지만, 집밥이 아닌 외식이 식비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점을 지적하고 "가능한 한 만들어 먹자"를 제안하고 있었다. 내가 실천하기는 어려운 부분이었지만, 저녁은 가급적으로 집에서 먹는 방향의 목표를 세웠다. 밖에서 먹는 지출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식후에 자연스레 마시던 차를 티백으로 대체했다. 약속이 있을 경우에는 불가피했지만, 혼자서 카페에 가기보다는 집에서 티백과 텀블러를 챙겨서 카페에서 지출하는 비용을 줄이기로 했다.
저자는 점심 도시락을 싸는 것이 절약의 특효약이라고 했지만, 내가 실천하기에는 조금 어려운 점이 있었다. 점심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니면 참 좋지만, 도시락 만들기에 재미를 붙이기는 조금 어려웠다.





2주차 실천에서는 방법을 조금 바꾸었다. 일주일 지갑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 불편했고, 그보다는 일주일치 식비를 넣는 체크카드를 사용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음식의 유혹에 약한 내가, 일주일치 지갑을 가지고 다니면서 생긴 문제 중 하나가 길거리 음식을 자주 먹는다는 거였다. 붕어빵이나 각종 길거리 음식의 유혹에 쉽게 넘어갔기 때문이다. 또 동전이 생각보다 많아진 것도 불편했다. 그래서 주거래 은행 대신에 사용하지 않았던 은행 계좌에 일주일치 식비를 넣고, 이를 사용하기로 했다. 주거래 은행을 사용하면, 추가 결재가 늘어날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막기 위해 잘 사용하지 않았던 은행의 체크카드를 사용하기로 했다.

2주차 실천은 나름 성공적이었다. 내 눈에서 돈이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스마트폰으로 돈이 얼마나 나가는지 실시간으로 알 수 있었기 때문에, 현금을 들고 다니는 것과 효과가 비슷했다. 확실히 돈을 한정해서 사용하다 보니 예상치 못한 지출을 막을 수 있었고, 이는 과소비를 줄이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지갑을 잘 들고 다니지 않았던 사람은 다른 은행의 체크카드 기능을 이용한다면, 지갑을 들고 다니는 부담은 줄고 효과는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미라클 일주일 지갑》을 읽고 그대로 실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자신만의 방법으로 조금씩 변형해서 실천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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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예찬 - 정원으로의 여행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안인희 옮김 / 김영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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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이 열어준 세계로의 초대

 

 

 

 

 

매우 힘든 날이었다. 새벽 다섯시에 일어나 밤 열두시까지. 하루 종일 쉴 틈 없이 바쁜 하루였다. 정말 녹초처럼 몸이 내려앉은 듯한 날, 극심한 피로감에 휩싸인 날. 그런 날이었다.
그런데,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단지 몸이 고단해서가 아니라,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는 '화' 때문이었다. 누구나 한 번쯤 이런 날이 있지 않은가. 나의 기대와 상대의 기대가 서로 일치하지 않았을 때, 실망하게 되는 날. 그런 날이었다.
안 그래도 피곤한데, 마음까지 몹시 허기진 그런 날이었다. 내가 《땅의 예찬》을 만난 날은.

그렇다고 위로나 힐링이 필요해서 《땅의 예찬》을 읽은 건 아니었다. 가쁜 마음의 숨을 고르기 위해 책을 집어 들었다. 적당한 두께. 신비로운 삽화. 길지 않은 글. 그리고 철학가의 사색. 작은 기대를 걸어볼만했다. 불규칙한 마음의 호흡을 맞추기에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스쳤다.

 

누구든 정원에서 일하면 정원은 많은 것을 돌려준다.
내게는 존재와 시간을 준다.
불확실한 기다림, 꼭 필요한 참을성,
느린 성장이 특별한 시간감각을 불러온다.


마음과 생각이 저 멀리 앞서나가 그보다 조금 더딘 삶의 속도를 잃어가고 있던 나에게 《땅의 예찬》은 "속도"를 맞춰주는 '페이스메이커'였다.
'한병철'. 독일에서 활동하는 철학자이자, 사회비평가인 그는 남다른 통찰력으로 세상을 섬세하게 날카롭게 지극히 현실적으로 포착하곤 했다. 그의 글은 마음을 내려앉게 만드는 묵직한 힘이 있다. 《땅의 예찬》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내가 알고 있던 사람은 맞는 것 같은데, 달랐다. 그의 문장에서 이렇게 아름다움을 수놓는 말이 나올 수 있다는 걸 알았다. 3년 동안 가꾼 정원, 그 안에서 피고 진 모든 것을 눈으로 손으로 코로 입으로 또 때로는 생각으로 관찰했다. 그리고 그 뒤에 피어난 모든 것을 기록했다.

 

 

 

 

슈피어란 말은 글자 그대로는 작고 섬세한, 뾰족한 끝을 뜻한다. 스피라에라에 속한 꽃들은 모두가 이런 모양이다. 매우 작은 꽃들. 정원이 아니었다면 나는 절대로 '슈피어' 같은 낱말을 알지 못했으리라. 그런 낱말들이 나의 세계를 넓혀주었다.


온 맘을 다해서 정원을 가꾸며 계절의 변화에 발맞추어 천천히 달라지는 풍경은 저자에게 남다른 생각을 불러온다. 그 생각은 산책하다 잠깐 본 '남의 정원'에서 얻을 수 있는 것과 다르다. 겨울에도 꽃이 피는 정원을 가꾸기 위해, 그는 부지런히 흙을 매만진 정원사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더 솔직하게, 철학자이자 사회비평가인 한병철이기에 가능한 것들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가 떠오르는 책이었다. 3년 동안 장원을 가꾸면서 누군가에게 "이름 없는 풀", "이름 모를 꽃"이 하나하나 그와 만나 존재성을 가지게 된 걸 볼 수 있다.
이름을 가진다는 것, 낱말이 하나둘 나의 세계로 들어온다는 것이 지닌 의미가 무엇일까.
아직 난 "슈피어"가 내 마음속으로 들어오지 않았기에, "슈피어"가 한병철 저자의 마음을 어떻게 얼마나 넓혔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별거 아닐 수 있는 이름이, 말이, 단어가 나에게만 특별해지는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다. 그 단어가 유달리 빛나 보이고, 마음의 틈을 벌리는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내는 걸 느껴본 적 있어서, 그의 글을 읽으며 "이런 것이 아닐까."하고 짐작해보았다.
그가 정원을 가꾸며 "슈피어"를 발견했던 건, 나에게 책을 읽다가 어떤 "문장"들이 탁 눈에 들어오는 것과 같다. 책을 읽지 않으면 결코 발견할 수 없었던 문장들이 이따금 나의 세계를 넓혀주었다. 다른 지적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되기도 했고, 추억에 잠기게 만들기도 했고, 지금 나를 돌아보게 만들기도 했다. 책과 문장이 함께 공존했을 때,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있다. 아마 그에게 "슈피어"는 함께 공존했던 순간이 쌓여 만든 무언가였을 것이다.
이렇게 그가 느낀 감정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순간, 낯설었던 문장들이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처음 저자의 글을 읽으면 나와 다른 세계를 살고 있고, 나와 다른 사유 체계를 가지고 있어 어렵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혹은 난해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장 하나하나를 천천히 읽다 보면, 나도 느꼈던 것들이란 걸 알 수 있다.

 

 

 

 

그는 "정원의 시간은 타자의 시간이다. 정원은 내가 멋대로 할 수 없는 저만의 시간을 갖는다. 모든 식물은 저만의 시간을 갖는다. 정원에서는 수많은 저만의 시간들이 교차한다."라고 했다. 자연 속에서 느끼는 시간은 우리가 달력을 넘기며 마주하는 시간과 사뭇 다르다. 그의 글 속에서도 그 시간감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 이유는 자연 속에서는 계절의 변화를 제대로 다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시 속에서 계절은 숫자로 나가오는 것들이다. 어느 달에 어떤 계절이라고 생각하거나 에어컨을 틀면 여름이고, 옷이 두꺼워지면 겨울이라고 느낀다. 하지만 자연 속에서는 매일매일 계절이 내 피부를 타고 전해진다. 그게 비록 작은 정원일지라도 말이다. 저자는 정원을 가꾸며 계절을 자신의 속도로 즐기는 꽃과 나무 풀들을 관찰한다. 그 시야를 타고 정원의 세계에 서서히 들어가는 걸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책의 중후반부에 나오는 일기에서 그 모습이 돋보인다.

 

이미 깊은 가을. 대기는 몹시 서늘하다. 슬픔이 크다.

깊은 가을, 아니 거의 겨울이다. 굵은 빗줄기가 쏟아진다. 차가운 비. 몹시 어둡고 축축하다. 해가 나온다 해도 제대로 밝아지지 않는다. 해는 광채를 낼 힘이 없다. 하늘에 붙은 맥 빠진 원반 같다.

 

의외로 가을과 겨울에 쓴 글들이 참 많다. 농사처럼 정원을 가꾸는 일도 겨울에는 쉬어가는 때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관찰이 빛을 발하는 계절은 겨울과 가을이다. 움직임이 가장 적은 때, 정원이 멈추었을 시간이라고 생각한 때. 그는 가장 섬세한 글로 그 시간을 남긴다. 얼음꽃에 눈과 마음을 내어주기도 하고, 가을날 지는 잎을 본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끝과 마지막을 생각하지만, 자연의 속도는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우리는 끝났을 것이라고 생각한 계절이 어떤 꽃에게는 시작일 수 있고 전성기일 수 있다고 들려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뒤에 오는 봄이 더욱 특별한 것이 아니라, 가을과 겨울과 대등한 계절감으로 다가올 수 있도록 만든다. 아니,  《땅의 예찬》에서만큼은 봄보다 가을과 겨울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서울은 아직 겨울 날씨. 초록은 없고 사방이 온통 잿빛 콘크리트다. 신령들이 사는 거룩한 산으로 올라가는 길에 피어난 영춘화를 보았다. 한겨울에 나무는 빛나는 노란색을 피웠다. 겨울에 꽃 피는 이 관목은 분명 산을 좋아한다.


서울을 말하는 구절마다 지금을 말하는 것 같았다. 날은 포근해졌지만, 아직 어떤 색감도 찾을 수 없는 고요한 모습이 그려졌다. 그런데, 저자의 문장들에서 강렬한 색채감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울긋불긋 아름다운 꽃을 표현하는 말들은 아름답지만, 강렬하지 않다. 그 화려함에 익숙해져서 굳이 표현하지 않은 걸까.
그런데 서울이 잿빛이라는 단어를 보자, 그의 정원에 놓인 색깔을 읽을 만큼 다양한 색을 떠올리기 힘든 내 모습이 보였다. 공원을 가도 잔디와 나무 몇 그루만 보아서 다른 빛깔을 본지 오래되었다. 꽃다발에 모여 있는 꽃은 많이 보았지만 땅 위에 놓여 있는 꽃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잿빛이라는 단어는 단번에 떠올랐다. 내게 익숙한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한참을 정원에 대한 글을 읽었지만, 나는 그가 말하는 정원을 좀처럼 떠올리지 못할 만큼 자연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당장 정원을 가꿀 수도 없는데, 어떻게 하나 싶었다.
그러다 문득 학교 교정에 있는 목련 나무가 보였다. 늘 그 자리에 있었는데, 꽃나무를 참 오랜만에 보았다. 하얗고 보랏빛 목련이 꽃을 피울 때가 기대되었다. 꼭 인왕산의 영춘화만 있는 건 아니다. 조용히 우리의 무관심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신의 빛깔을 내고 있는 존재들도 많이 있었다. 다만 내가 보지 못했을 뿐이었다. 올봄에는 이 존재들을 가꾸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지만, 관찰하는 즐거움은 느껴보아야겠다.

 

 

 

 

이 책은 '행복한 나날에 대한 시론'이라고 불릴 수도 있으리라.
정원에서 일하고 싶다는 그리움을 자주 느낀다.
이때껏 이런 행복감을 알지 못했다.
이는 또한 매우 육체적인 것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땅의 예찬》을 읽고 철학적으로 사회학적으로 분석할지도 모른다. 그런 재주 없는 난, 책과 함께 마음의 호흡을 맞추었다.


천천히. 서서히. 조용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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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이루는 독서법
이토 마코토 지음, 김한결 옮김 / 샘터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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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많은 사람들이 책은 꼭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책 읽는 사람들이 모두 성공하지 않았지만, 성공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책을 읽는 사람들이었다. 책 읽기의 중요성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대부분은 알고 있다. 책 읽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런데 알면서도 쉽지 않은 것이 바로 독서다. 그래서일까. 서점에 가면, 수많은 책들 사이에 독서가 어려운 사람들을 반기는 책들이 있다. 독서법에 대한 책이다. "이리 와, 책은 처음이지?" 하며, 책의 세계로 인도해주겠다는 가이드들이 정말 많다. 책을 좋아하지만, 내가 책을 잘 읽고 있는지 확신이 없었던 때, 나 역시 수많은 가이드를 찾았다. 이름만 대면 다 아는 독서법 책부터, 나 말고 과연 누가 이 책을 읽을까 싶은 책까지.. 이젠, 독서법 관련 책은 좀처럼 보지 않을 만큼, 나만의 방식으로 책을 즐기고 있지만 이따금씩 궁금해진다. 어떻게 하면 더 책을 잘 읽을 수 있을까. 
그러다 우연히 <꿈을 이루는 독서법>이란 책을 만났다. 

<꿈을 이루는 독서법>은 간결하다. 군더더기가 없다. 자신이 어떤 책을 읽고 좋았는지, 어떤 책에서 어떤 가르침을 받았는지에 대한 내용은 최소로 줄이고 "책 읽기"자체에 집중한다. 나는 이 점이 <꿈을 이루는 독서법>이 가진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독서법 책들은 자신이 얼마나 많은 책들을 읽었는지 이야기한다. 그래서 내가 이 독서법을 당신에게 적극적으로 권한다고 말이다. 물론, 그런 책들에서 좋은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책들은 어떤 사람들에겐 꼭 필요하다.) 하지만 많은 책을 읽는 사람들은 이제 막 책장을 넘기는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놓친다. 바로, 책 읽는 방법이다. 책 읽기가 어려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보다 "내가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가 궁금하다. 그 방법을 알고 싶어 한다. 하지만 많은 독서법 책들은 이를 놓치고, 경험 자체에만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독서는 영혼을 단련한다. 영혼을 단련하는 것은 자신과의 대화나 타인과의 대화를 깊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책을 통해 자기 내면과 마주하고 저자와 대화하며 자신을 성장시켜나간다. 나 자신을 돌아봐도 내 마음을 길러준 것 중 하나는 책이 분명하다. 나는 책을 읽었기 때문에 스스로 생각하고 성장할 수 있었다고 믿는다. 

물론, 이 책도 사법시험 학원장인 저자가 자신이 어떻게 책을 읽었는지 이야기하고, 책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분량은 책의 말미까지 미뤄둔다. 우선 방법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 방법을 말한 나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처음에 구성을 보고 "꽤 용감한데."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전면에 앞세워서, 설득력을 확보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저자는 과감하게 자신이 터득한 방법부터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다음에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무엇보다 이 책이 좋은 점은, 글이 길지 않다. 문장은 짧고, 내용은 간결하다. 일본 최고의 사법시험 학원인 이토 학원 학원장답게(?). 그는 핵심만 간추려 독자들에게 이야기한다. 왜 우리가 책을 읽어야 하는지와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독서법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한 책을 찾는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정말 금방 읽을 수 있다. 짧지만, 얻을 거리가 많다. 

책장의 위아래 모서리 접기를 활용하는 방법
강아지 귀를 닮아, 이른바 도그이어라고 부르는 모양으로 책장 모서리를 접는다. … 모서리 접기는 나중에 활용할 만한 문장이 있는 쪽의 책장을 접어두는 것인데, 먼저 '이건 좋은 의견이야'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한 문장이 있는 쪽은 위 모서리, 즉 책장의 위쪽 끝을 접는다. 반대로 '여기는 논리에 맞지 않아'하고 부정적으로 생각한 문장이 있는 쪽은 아래 모서리, 즉 책장의 아래쪽 끝을 접는다.
81-82쪽

한 가지 주제의 책을 20-30권 한꺼번에 산다
그래도 어딘가 한 줄이라도 도움이 되어 '이 책을 읽은 덕분에 이 한 줄을 발견할 수 있었으니 정말 다행이야'하고 생각한다면, 그 책은 자신에게 꼭 필요한 책이었다고 받아들인다.
48쪽

순식간에 현실에서 도피하게 해줄 책을 준비한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일과 공부를 위해 읽는 책뿐 아니라 이렇게 즐거움을 위한 책, 자신을 위로해주는 책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167-168쪽

볼펜과 형광펜을 사용하는 방법
상황에 따라서는 처음에 빨간 볼펜으로 밑줄을 긋고, 두 번째에 노란 형광펜으로 칠하기도 한다. 필기구를 바꾸거나 색을 구분해 쓰면 기억에 더 쉽게 남는 장점이 있다.
77쪽

자세한 실천적인 방법부터, 독서를 더 풍부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까지. 다양한 독서법을 알려준다. 실제로 내가 사용하고 있는 방법도 있었고, 내가 지금까지 활용해보지 않았지만 활용해볼 만한 방법들도 찾았다. 가령 책 끝을 접는 건 내가 자주 이용하는 책 읽는 방법이다. 기억하고 싶은 내용이 나오면 책 끝을 접는다. 하지만 위아래를 구별하면서 접을 때 내 기준은 위쪽 단락에 내가 기억하고 싶은 게 있는가. 아래 단락에 내가 기억하고 싶은 게 있는가다. 저자가 말한 책에 대한 내 생각을 기준으로 나누는 것도 꽤 유용한 방법이다. 책에 따라서 이 방법을 시도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꿈을 이루는 독서법>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이다. 

"그러나 첫 번째 목적은 더 생각하고 싶어서다. 생각하기 위해 지식과 정보가 필요한 것이므로, 어디까지나 주체는 생각하는 데 있다. … 그러므로 나에게 책은 늘 생각할 소재다."

책은 내가 상상할 수 있도록 만든다. 글자로 만든 것을 머리로 그려나가며 저자의 생각에 내 생각이 더해져 새로운 것이 태어난 순간이 책 읽으며 내가 즐거움을 느끼는 순간이다. 이렇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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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몫의 사랑을 탕진하고 지금 당신을 만나
장석주 지음 / 마음서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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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있어요, 당신

 

 

 

《내 몫의 사랑을 탕진하고 지금 당신을 만나》는 이국의 도시를 여행하며 새벽마다 쓴 짧은 편지글이다. 편지라면 손으로 직접 건네주던, 주소를 쓰고 우표를 붙여 전달해주어야 하는데, 이 편지는 수취인이 '불명'이란다. 원래 책이란, 저자와 독자가 다른 시공간에서 만나는 거니까. 이 표현이 낯설지는 않았다. 책은 쓰는 저자 외에 확실한 수취인이 존재할 수 없는 편지니까. 새삼스럽게. 이런 말을 쓰나 싶었다.

 

"우리는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까요. 당신을 처음 보았을 때, 당신은 벚꽃 아래 벤치에서 벗들과 가벼운 담소를 나누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 편지들의 몇몇 부분에서 대한 저자의 표현이 몹시 구체적이었다. 독자에게 썼다고만 하기에는 설명이 부족해서, 저자가 사랑하거나 사랑했던 사람들이 아닐까란 흥미로운 상상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몇몇 편지는 끝자락에 나온 '당신'이란 말이 나를 향한 말이 아닐 텐데, 내 마음을 찌르르 건드렸다. 그래서 난 이 35편의 편지 모두 나에게 온 편지라 생각했다. 누군가의 편지를 엿보는 게 아니라, 내 앞으로 온 편지를 읽듯이 기대하며 편지를 읽었다. 그러니까, 글이 난 더 좋았다. 중반부까지 읽다가 다시, 맨 앞장으로 돌아가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역시, 이렇게 읽었어야 했다!

 

 


여행이란 길을 탐색하고,
낯선 길에서 자기를 돌아보고 찾는 여정이에요.
여행은 길 그 차체에요.

 

 

우린 '여행'을 하며 정말 외적인 것만 한껏 즐기기만 할까? 여행의 순간 눈앞을 스치는 것들만 보고 듣고 느끼기만 할까? 그렇지 않다. 여행하는 동안 온몸의 감각기관을 활짝 열고서, 닫은 생각과 마음을 환기하는 것이 여행이다. 아름다운 풍경, 맛있는 음식, 놀라운 문화예술작품 등을 통해 행복한 순간을 선물 받는 것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때로는 곪아 있던 생각들이 치유되기도 하고, 꽁꽁 숨겨 두었던 내 안의 비밀을 열어볼 용기를 얻기도 하고, 낯선 곳에서도 잘 해내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다. 고단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호주로 훌쩍 여행을 떠난 사람이 있다. 그는 자신의 여행을 보통의 여행기나 여행안내서처럼 우리에게 소개하지 않는다. "편지"로, 호주에서 여행자로 존재했던 자신의 사유 모음집이자, "살아 있음의 가장자리에 존재의 존재함에 대한 깊은 생각"을 담아 선물한다. 그만이 할 수 있고, 그때 그곳에서 가능했던 생각들에 대해 쓴걸. 아름다운 호주 풍경을 찍은 걸 함께.

 

블루마운틴에 서서 "김소월"의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 대일 땅이 있었더면〉을 떠올리고, 오클랜드 땅에서 "김혜순"의 〈당신의 첫〉을 떠올리기도 한다. 시만 떠올리는 건 아니다.  유칼립투스 나무에서 우주를 채우는 암흑물질을 생각하기도 하고, 여행지의 낯섦을 곱씹기도 한다. 그가 그날 보았던 것이 어떻게 마음으로 다가오는지를 확인하는 즐거움이 남다른 책이다. "그의 눈에 들면 풍경이 시가 되고 산문이 된다. 풍경을 순수히 관조하며 그 위에 아로새겨진 시간의 무늬를 사유하는 사람"라는 표현처럼,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여느 여행지의 풍경과 다르고 그 풍경이 머리에 그리는 이미지는 짧지만 강렬한 여운을 안기는 시와 닮아있다.

 

당신은 당신 인생의 여정에서 겪은 무수한 '당신의 첫'들의 찰나에서 발아되어 밀봉되어 있습니다. 당신의 첫 밤, 당신의 첫 울음, 당신의 첫 웃음, 당신의 첫사랑, 당신의 첫 실패, 당신의 첫 거짓말, 그 많은 '당신의 첫'들 속에 서 당신은 무심코 발견됩니다.

 

분명 저자는 나를 모를 텐데, 왜 나를 아는 듯.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했던 생각보다는 조금은 문학적으로 다듬어져 있지만 어딘가 나와 닿아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편지마다 내가 했던 생각의 끄나풀이 약하게 혹은 단단하게 엮어져 있었다. 그래서일까. 여행지에서 저자가 써 내려간 편지를 읽다 보면 마음속에 무언가 부유하고 떠다니는 것이 느껴진다. 평소에 좀처럼 느껴지지 않는 마음의 조각들이 말이다. 그건 덤덤한 듯, 딱딱한 듯 써 내려가다가 어느 순간 애절함이 느껴지는 문장으로 아련하게 만드는 문장이나, 피식 날 웃게 만드는 문장에서 툭 걸린다.

 

"그 광경을 부감하니 마치 녹색 융단을 깔아놓은 듯합니다."
"당신은 젊고, 나는 늙어갑니다. 이것이 우리가 짊어진 불평등의 전부인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의 살아 있음을 덧없다고 하지는 말아요. 우리의 생은 죽음의 광휘를 통해 더욱 빛나는 것!"
"달의 뒤편에서 말갛게 웃는 당신!"
"연애는 슬프거나 우습고 빛나거나 치졸했습니다만, 연애라는 전쟁을 치르면서 나도 모르게 깊은 내상을 입었던 거지요."

 

《내 몫의 사랑을 탕진하고 지금 당신을 만나》.


제목을 다시 한번 보았다. 책을 읽기 전부터 제목이 마음에 걸렸다. 왜 이렇게 제목을 만든 걸까.
그는 자신의 몫의 사랑을 탕진했다고 했지만, 과연 그의 마음에 담긴 사랑과 생각이 탕진할 수 있었을까. 전부 모두 다 없앨 수 있었을까. 호주 여행을 하며 든 생각을 새벽에 적어내려간 그는 글을 한 편 한 편 쓰고 나서 공허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탕진하듯 쏟아냈다고 한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편지의 수취인이었던 난 그의 글을 읽으며 사랑이 쏟아졌다기보다 사랑이 배어 나온다는 느낌이 들었다. 모든 것이 쏟아져 고갈한 것이 아니라, 사랑을 닮은 여행을 하는 중이라 일상보다 더 많이 사랑을 담아서 조금만 건드려도 사랑이 좌르르 쏟아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삶의 광휘는 오직 혼돈을 견딘 결과로써 눈부십니다.
당신의 처지가 나쁘다면 좋았던 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꿋꿋하게 기다리기를,
부디 불행에 꺾이지 말고 끝까지 견디며 잘 살기를 바랍니다.

 

 

저자는 사랑에 메마른 사람에게 독특한 애틋한 감성을 담아 편지를 쓴다. 누구나 삶을 보내다가 한 번쯤은 혹은 자주 허전함을 느낄 때가 있지 않은가. 그 틈을 저자의 사랑 듬뿍 담긴 문장으로 매워보면 어떨까. 저자의 문장이라고 생각해서 시작한 문장들이, 어느새 나의 문장으로 나의 생각이 되어 채워지는 걸 느낄 것이다. 허전함은 가만히 있는다고 채워지지 않는다. 기억의 편린을 부여잡고서 생각을 부여잡기보다, 여행하듯 책으로 생각과 마음을 환기해보면 어떨까. 다른 여행서적과 아주 많이 다르고 낯선, 이 책은 그러기에 딱 좋은 책이다.


저자 장석주는 모든 글의 말미에 "잘 있어요, 당신"이란 말을 빼먹지 않는다. 물론 약간의 변형은 있다. 시에서 시적 허용처럼, 분위기에 딱딱 들어맞는 따뜻한 인사말이자 안부 인사다. 물론 글을 쓰는 그에게 되돌아오는 인사는 없다.
그런 그의 글을 다 읽고 나니, 문득 저자에게 이 말을 하고 싶어졌다.

 

"고마워요, 당신도 잘 있어요."

 

당신의 편지에 담긴 마음은 마음을 둥둥 떠다니며 부유하던 감정의 조각들을 모아, 내 마음에 무사히 잘 전달되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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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우리 언제 집에 가요? - 아빠, 엄마, 네 살, 두 살. 사랑스러운 벤 가족의 웃기고도 눈물 나는 자동차 영국 일주
벤 해치 지음, 이주혜 옮김 / 김영사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여행은 만남이다!?
우리의 다채로운 감정이 집약된 여정

 

 

 

 

편찮으신 아버지를 두고, 두 살, 네 살인 자녀들을 데리고 가는 여행이라.
좀처럼 여행을 떠나기 적절한 상황은 아니다. 그런데 이런 내 생각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저자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떠난다. 웃고 있지만, 정말 우스워서 웃는 건지 웃픈 상황에 웃는 건지 알 수 없는 웃음이 가득한 여정이 펼쳐진다. 마치 기쁘고도 슬픈 게 인생이라는 말과 닮은 이 여정은 5개월간 이어졌다. 그리고 그 과정은 이 책 속에 꽤나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다. "제정신이 아니구나. 미쳤어!"라는 친구들의 경고에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믿고 있었던 "굉장히 근사한 여행"이 될 거란 믿음은 조금 다른 빛깔의 모습으로 현실이 되었다. 그 과정을 다 읽고 나니 여행하기 좋은 때가 있을 수 있지만, 그때는 체크리스트를 확인해가며 만드는 건 아니란 생각이 든다. 무엇을 갖추었을 때, 무엇이 해결되었을 때 가는 게 아니라는 걸 『아빠, 우리 언제 집에 가요?』는 말하고 있다.

 

이게 바로 내가 견디는 방법이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거야.

평소와 똑같이 살아가다가 가속도가 붙어 내가 선 밖으로 벗어나길 바랄 뿐이다.

 

 

그가 여행을 결정한 이유는 단순했다. 공짜라서. 안정적이지 않은 상황이고, 언제고 장기 여행을 이와 같은 조건에서 떠날 수 있겠는가 싶어서 떠났다. 게다가 가족여행 가이드북이라니. 꽤나 매력적이고 즐거운 조건이라고까지 생각했다. 물론 힘들겠지만, 힘들어봤자 얼마나 힘들까 싶었다. 이미 육아에 단련이 되어 있다고 믿었던 저자는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짧았는지. 여행 시작하자마자 깨닫는다. 힘든 일은 쉼 없이 몰아치고 이따금씩 다가오는 기쁨은 찰나처럼 스쳐 지나간다. 매일 짐을 싸고, 영국 곳곳을 다닌다. 그가 다닌 곳은 좀처럼 여행지로 가는 곳은 아니다. 영국의 큰 곳을 제법 둘러보았던 나도, 저자가 말한 곳 중에 다녀온 곳은 몇 군데 되지 않는다. 영국 사람들이 여행 가는 곳인 데도 있고, 혹은 공짜로 여행하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간 곳도 있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취향에 따라 간 곳도 있다. 이유는 달랐지만, 그 이유가 여행지에서 완벽하게 충족되지 않은 걸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대화를 나누기 힘든 아이들과 육아와 여행 두 가지가 과업처럼 느껴지는 부부는 별거 아닌 일로 다투곤 한다. 그리고 심장을 내려앉게 만드는 아버지 소식까지.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여행다움은 이 책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여행을 할 때면 참고하는 가이드북 이면에 이런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니. 모든 여행 가이드북이 이러하지 않겠지만, 왠지 론리 플래닛 여행서에는 좀처럼 실을 수 없는 시트콤 같은 일상이 펼쳐져 있다. 이 책 속에.

어린 자녀와 함께 여행을 다니는 부모님의 표정이 아이보다 밝지 않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단지 어른이라서"만은 아니란 것도 함께 알게 되는 책이었다. 아이와 함께 박물관을 다닐 때 생길 수 있는 일들을 이 책은 여러 지역의 박물관을 방문하며 알려준다. 박물관의 동상을 부숴버리거나, 역사적 배경 설명해주는 영상이나 예술성이 높은 영상물을 보고 있는 그대로 말하는 아이의 말이 다른 관람객에게 미친 여파라던가, 두 살인 아이의 이유식 시간을 맞추기 위해 적절한 장소를 물색하는 일까지. 어린아이와 함께 박물관을 다니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쉽지 않은 일임을 벤 해치 가족은 경험으로 증명한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좋아하는 "월레스와 그로밋"이 먹는 치즈 공장에서 "월레스와 그로밋" 흔적이라곤 포장지 뿐임을 아이에게 납득시키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이며 결국 아이가 포기하기를, 다른 곳에 관심을 가지길 기다리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웠다. 그러다 문득 동굴 안 부모님 품속에 있는 내 사진이 떠올랐다. 작은 일에도 울음으로 의사표시를 했던 나를 품에 안고 동굴을 탐험했던 부모님도 이런 기분이셨을까 싶었다. 이제는 사진 한 장으로 남은 그 하루가 부모님께 어떤 기억이었을지 이제는 알 수 없지만, 이 책으로 추론컨대 비극과 희극을 오가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나의 지평선에 서 있는 대체 불가능한 대형 건물이었는데,

그 건물이 폭파되어 이제 땅을 향해 장관을 이루며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가이드북을 쓰기 위해서 시작한 여정인데, 그의 여정 속 기억들은 왜 여행이라고 하기에 뭔가 낯선 느낌을 자아낸다. 아마 그건 생의 마지막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는 아들의 감정이 곳곳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여행 중간에 몇 번씩 아버지의 병실로 저자는 찾아갔다 다시 여행지로 돌아갔다를 몇 번 반복했다. 건강이 좋지 못한 아버지, 그 아버지에 대한 깊은 사랑이나, 부자간의 남다른 유대관계가 있는 건 아니었다. 우리에게 낯설지 않는 서먹서먹한 부자관계였고, 아직 우리 문화에선 낯선 아버지 여자친구인 메리가 아버지 곁에 있었다. 마치 D-Day를 기다리듯 살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아버지를 바라보아서일까, 그의 여행 중간중간에 아버지와 기억이 떠오르고, 그의 입에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툭 튀어나온다. 저자에게 5개월간의 여정은 아버지와 이별을 준비하는 여정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훌륭한 분이고 훌륭한 삶을 살아오셨어."라는 문장이 그의 입에서 나오고 그 이후에도 이어지는 아버지에 대한 생각은 슬픔을 덤덤하게 적어내려간 듯 애잔함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현재가 아닌 과거가 되어가는 과정을 적는 저자 역시 아버지로 현재를 살고 있다. 재기 발랄한 아이들과 함께 전쟁과 평화를 오가는 여행을 하는 저자의 여정이 복잡 미묘하다. 아버지이면서 아들인 그가 자신의 아버지의 죽음과 자신의 여행을 함께 기록한 이 책은 단지 5달간 자동차 일주로 정리하기 힘든 방대한 만남이 담겨 있다. 낯선 여행지에서 처음 만나는 건 낯선 사람이 아니라, 어제와 다른 '나'임을 저자는 글로 말해준다. 비슷한 듯 다른 아이들의 행동과 아내와의 대화. 그리고 오늘 어떤 일을 마주하느냐에 따라 다른 기억 속에 존재하는 아버지의 모습. 이 모든 관계에서 조금씩 다른 '나'와 마주하고 있었다.

 

 『아빠, 우리 언제 집에 가요?』라는 제목을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생고생인 여행이라 얼른 편안한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동시에 집으로 돌아갈 만큼 마음이 괜찮은지 묻는 의미가 함께 담겨 있는 듯 했기 때문이다. "너무 웃기면서도 마음이 찢어지게 아팠다"는 E.M. 골드스미튼의 말이 난 이 책을 가장 잘 설명하는 평이자 책을 다 읽은 나의 마음과 닮아 있는 평이라고 생각한다.

 

 

 

가능하면 최고의 가이드북을 쓰겠다. 가이드북에 혁명을 일으키리라. 가이드북을 예술로 만들 것이다. 단지 입장료 같은 실용적 도움말만 싣는 게 아니라 우리 가족에게 일어난 지극히 개인적 이야기도 담을 것이다. 입장료와 기저귀 교환대의 존재 여부에 관한 상세한 설명과 명소에 대한 평가 사이에 섬세하고 진솔하지만, 감동적인 이야기를 담아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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