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몫의 사랑을 탕진하고 지금 당신을 만나
장석주 지음 / 마음서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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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있어요, 당신

 

 

 

《내 몫의 사랑을 탕진하고 지금 당신을 만나》는 이국의 도시를 여행하며 새벽마다 쓴 짧은 편지글이다. 편지라면 손으로 직접 건네주던, 주소를 쓰고 우표를 붙여 전달해주어야 하는데, 이 편지는 수취인이 '불명'이란다. 원래 책이란, 저자와 독자가 다른 시공간에서 만나는 거니까. 이 표현이 낯설지는 않았다. 책은 쓰는 저자 외에 확실한 수취인이 존재할 수 없는 편지니까. 새삼스럽게. 이런 말을 쓰나 싶었다.

 

"우리는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까요. 당신을 처음 보았을 때, 당신은 벚꽃 아래 벤치에서 벗들과 가벼운 담소를 나누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 편지들의 몇몇 부분에서 대한 저자의 표현이 몹시 구체적이었다. 독자에게 썼다고만 하기에는 설명이 부족해서, 저자가 사랑하거나 사랑했던 사람들이 아닐까란 흥미로운 상상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몇몇 편지는 끝자락에 나온 '당신'이란 말이 나를 향한 말이 아닐 텐데, 내 마음을 찌르르 건드렸다. 그래서 난 이 35편의 편지 모두 나에게 온 편지라 생각했다. 누군가의 편지를 엿보는 게 아니라, 내 앞으로 온 편지를 읽듯이 기대하며 편지를 읽었다. 그러니까, 글이 난 더 좋았다. 중반부까지 읽다가 다시, 맨 앞장으로 돌아가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역시, 이렇게 읽었어야 했다!

 

 


여행이란 길을 탐색하고,
낯선 길에서 자기를 돌아보고 찾는 여정이에요.
여행은 길 그 차체에요.

 

 

우린 '여행'을 하며 정말 외적인 것만 한껏 즐기기만 할까? 여행의 순간 눈앞을 스치는 것들만 보고 듣고 느끼기만 할까? 그렇지 않다. 여행하는 동안 온몸의 감각기관을 활짝 열고서, 닫은 생각과 마음을 환기하는 것이 여행이다. 아름다운 풍경, 맛있는 음식, 놀라운 문화예술작품 등을 통해 행복한 순간을 선물 받는 것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때로는 곪아 있던 생각들이 치유되기도 하고, 꽁꽁 숨겨 두었던 내 안의 비밀을 열어볼 용기를 얻기도 하고, 낯선 곳에서도 잘 해내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다. 고단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호주로 훌쩍 여행을 떠난 사람이 있다. 그는 자신의 여행을 보통의 여행기나 여행안내서처럼 우리에게 소개하지 않는다. "편지"로, 호주에서 여행자로 존재했던 자신의 사유 모음집이자, "살아 있음의 가장자리에 존재의 존재함에 대한 깊은 생각"을 담아 선물한다. 그만이 할 수 있고, 그때 그곳에서 가능했던 생각들에 대해 쓴걸. 아름다운 호주 풍경을 찍은 걸 함께.

 

블루마운틴에 서서 "김소월"의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 대일 땅이 있었더면〉을 떠올리고, 오클랜드 땅에서 "김혜순"의 〈당신의 첫〉을 떠올리기도 한다. 시만 떠올리는 건 아니다.  유칼립투스 나무에서 우주를 채우는 암흑물질을 생각하기도 하고, 여행지의 낯섦을 곱씹기도 한다. 그가 그날 보았던 것이 어떻게 마음으로 다가오는지를 확인하는 즐거움이 남다른 책이다. "그의 눈에 들면 풍경이 시가 되고 산문이 된다. 풍경을 순수히 관조하며 그 위에 아로새겨진 시간의 무늬를 사유하는 사람"라는 표현처럼,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여느 여행지의 풍경과 다르고 그 풍경이 머리에 그리는 이미지는 짧지만 강렬한 여운을 안기는 시와 닮아있다.

 

당신은 당신 인생의 여정에서 겪은 무수한 '당신의 첫'들의 찰나에서 발아되어 밀봉되어 있습니다. 당신의 첫 밤, 당신의 첫 울음, 당신의 첫 웃음, 당신의 첫사랑, 당신의 첫 실패, 당신의 첫 거짓말, 그 많은 '당신의 첫'들 속에 서 당신은 무심코 발견됩니다.

 

분명 저자는 나를 모를 텐데, 왜 나를 아는 듯.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했던 생각보다는 조금은 문학적으로 다듬어져 있지만 어딘가 나와 닿아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편지마다 내가 했던 생각의 끄나풀이 약하게 혹은 단단하게 엮어져 있었다. 그래서일까. 여행지에서 저자가 써 내려간 편지를 읽다 보면 마음속에 무언가 부유하고 떠다니는 것이 느껴진다. 평소에 좀처럼 느껴지지 않는 마음의 조각들이 말이다. 그건 덤덤한 듯, 딱딱한 듯 써 내려가다가 어느 순간 애절함이 느껴지는 문장으로 아련하게 만드는 문장이나, 피식 날 웃게 만드는 문장에서 툭 걸린다.

 

"그 광경을 부감하니 마치 녹색 융단을 깔아놓은 듯합니다."
"당신은 젊고, 나는 늙어갑니다. 이것이 우리가 짊어진 불평등의 전부인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의 살아 있음을 덧없다고 하지는 말아요. 우리의 생은 죽음의 광휘를 통해 더욱 빛나는 것!"
"달의 뒤편에서 말갛게 웃는 당신!"
"연애는 슬프거나 우습고 빛나거나 치졸했습니다만, 연애라는 전쟁을 치르면서 나도 모르게 깊은 내상을 입었던 거지요."

 

《내 몫의 사랑을 탕진하고 지금 당신을 만나》.


제목을 다시 한번 보았다. 책을 읽기 전부터 제목이 마음에 걸렸다. 왜 이렇게 제목을 만든 걸까.
그는 자신의 몫의 사랑을 탕진했다고 했지만, 과연 그의 마음에 담긴 사랑과 생각이 탕진할 수 있었을까. 전부 모두 다 없앨 수 있었을까. 호주 여행을 하며 든 생각을 새벽에 적어내려간 그는 글을 한 편 한 편 쓰고 나서 공허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탕진하듯 쏟아냈다고 한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편지의 수취인이었던 난 그의 글을 읽으며 사랑이 쏟아졌다기보다 사랑이 배어 나온다는 느낌이 들었다. 모든 것이 쏟아져 고갈한 것이 아니라, 사랑을 닮은 여행을 하는 중이라 일상보다 더 많이 사랑을 담아서 조금만 건드려도 사랑이 좌르르 쏟아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삶의 광휘는 오직 혼돈을 견딘 결과로써 눈부십니다.
당신의 처지가 나쁘다면 좋았던 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꿋꿋하게 기다리기를,
부디 불행에 꺾이지 말고 끝까지 견디며 잘 살기를 바랍니다.

 

 

저자는 사랑에 메마른 사람에게 독특한 애틋한 감성을 담아 편지를 쓴다. 누구나 삶을 보내다가 한 번쯤은 혹은 자주 허전함을 느낄 때가 있지 않은가. 그 틈을 저자의 사랑 듬뿍 담긴 문장으로 매워보면 어떨까. 저자의 문장이라고 생각해서 시작한 문장들이, 어느새 나의 문장으로 나의 생각이 되어 채워지는 걸 느낄 것이다. 허전함은 가만히 있는다고 채워지지 않는다. 기억의 편린을 부여잡고서 생각을 부여잡기보다, 여행하듯 책으로 생각과 마음을 환기해보면 어떨까. 다른 여행서적과 아주 많이 다르고 낯선, 이 책은 그러기에 딱 좋은 책이다.


저자 장석주는 모든 글의 말미에 "잘 있어요, 당신"이란 말을 빼먹지 않는다. 물론 약간의 변형은 있다. 시에서 시적 허용처럼, 분위기에 딱딱 들어맞는 따뜻한 인사말이자 안부 인사다. 물론 글을 쓰는 그에게 되돌아오는 인사는 없다.
그런 그의 글을 다 읽고 나니, 문득 저자에게 이 말을 하고 싶어졌다.

 

"고마워요, 당신도 잘 있어요."

 

당신의 편지에 담긴 마음은 마음을 둥둥 떠다니며 부유하던 감정의 조각들을 모아, 내 마음에 무사히 잘 전달되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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