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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
가와하라 렌 지음, 양윤옥 옮김 / 지식여행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어둡고 긴 터널에서 ‘한순간’은 시작한다. 물방울 소리가 떨어지고 꽃도 녹아 사라지는 악몽이라고 말할 수 있는 주인공 이즈미의 꿈으로 시작한다. 시작이 매혹적이다. 어두운 분위기의 꿈이지만 오히려 읽는 내게는 자꾸만 다음 장 또 다음 장으로 결코 헤어날 수 있는 매력을 뿜는 빛과도 같았다.
이즈미는 회상한다. 준짱과의 추억을. 내가 눈치를 챘을 즈음 이즈미와 준짱이 자신들의 마지막 순간을 위해 더 가까워져 있을 때였다. 마지막이구나 하고 다 알았을 때 아련하게 전해져오는 슬픔이란 작가의 생생한 표현에 더 가시가 돋힌 것처럼 내 마음 속까지도 찔렀다. 그러나 그 가시는 아마 나는 장미의 가시라고 하고 싶다. 이즈미의 손가락을 파고들던 그 가시 같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만큼 ‘한순간’은 처음 나를 이끌었던 매력이 읽은 쪽수가 많아진다고 해서 결코 사그라들지 않았던 소설이었다는 것이다.
회상과 마지막 그 한순간을 찾기 위한 이즈미. 그녀의 그런 이야기만 쓰였다면 아마 이 소설의 재미는 크게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찾아간 오빠의 소개로 간 병원에서 우연히 만난 마키코. 마키코는 등장부터 살짝 비딱한 말투와 함께다. 그녀의 등장은 의외로 이즈미에게 그 역할을 한정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마키코에게 부여된 성격은 딱 적당하다. 조금은 더 활기찬 느낌을 불어넣어준다. 탁월한 선택이다.
이즈미의 회상이 마침내 마침표를 찍고 그리고 만난다, 준짱과. 한적한 고갯길. 시작은 어두운 동굴이었지만 끝(아직 끝은 아니지만)은 연못도 있는 경치 좋은 곳이다. 그리고 그녀에게서 심장박동소리가 들려온다. 특히 이 마지막 결말에서 준짱을 다시 떠올리는 이즈미의 모습을 보며 정말 잘 되었다며 마키코처럼 웃어주고 싶었다.
어쩌면 평범하고 진부하다고 말할지 모르는 소설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는 말할 수 없는 색다름이 있다. 진하면서도 옅은. 이즈미에게 한순간. 나에게는 여러 차례 곱씹을 긴 여운의 ‘한순간‘.
드디어 찾은 마지막 순간의 기억. 이것을 되찾기 위한 이야기여서였을까? 표지에서 자태 고운 여자가 얘기해주는 것 같이 섬세한 묘사들이 돋보였던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