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 외우는 파랑새
방민지 지음 / 문학수첩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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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가 10대의 이야기를 쓴다는 것에 기대를 가지고 보았다. 주문을 외우는 예린이가 죽음 앞에서 떠올리는 기억들. 그 기억들은 가만히 글자로 보는 것이지만 충분히 아팠다. 그 아픔이 아픔을 부르고 죽음을 불렀다. 이 소설 역시 이혼과 재혼 그리고 부모의 사랑 같은 주제 또한 다루고 있다. 다수의 10대가 아닌 소수의 10대를 쓴 소설. 그게 이 소설의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말하고 싶다. 난 솔직히 10대의 이야기는 조금 더 단순하다고 생각하고 느끼니까 말이다. 내가 소설의 주인공이 된다면 그렇게 못하겠지만 적어도 내가 겪고 본 10대의 세상은 단순하다. 그 단순함 때문에 재미가 없다. 그리고 그 이유의 하나는 예린이가 갑갑함을 느끼고 잠을 자거나 딴짓을 하게 되는 학교의 그 딱딱한 것들이기도 하다. 학교의 10대는(적어도 내가 본) 예린이가 보여주는 만큼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지는 않다. 하지만 그런 예린이의 그런 반응이 고민하게 만들고 이해하게 만드는 것 같아 좋았다. 측은해해서는 안된다.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른은 많이 살아왔다는 이유로 더 충고어린 말들을 하고 아이들은 또 그런 어른들의 말을 듣는 경향도 많이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을 소설이지 않다고 느껴보지 않은 적이 없다. 결코 느낌이 짧은 것들을 차있지 않다. 결말마저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고 아련한 여운을 준비해둔 그 실력은 결코 짧아보이지 않다. 요즘 인터넷소설들을 볼 수 있는데 적어도 내가 겨울에 빠져든 그 인터넷소설들은 무거웠다. 가볍지 않고 아직도 떠올리면 내가 보았던 그 문장들이 가슴에 다가와 떨렸던 느낌을 되살려놓는다. 사랑을 하는 그들의 장면 때문이 아니라 10대가 지어낸 문장에서다. 그들의 나이도 10대다. 10대라고 무시할 세상이 못되는 것이다.

예린이는 아프다. 그러나 예린이의 아픔을 제대로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 보이지 않는 아빠와 그리고 예린이 스스로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믿는 새 엄마. 친엄마는 이혼 후부터는 예린이의 삶에서 나쁜 역할 이후에 마땅한 역할을 맡지 못하고 물러나 있다. 예린이는 죽는 그 순간에 자신을 낳은 엄마의 아픔을 이해하고 원한다. 결국 예린이는 다시 만난다.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을까 하고 문득 의문이 들었다. 예린이의 아픔을 몰랐고 또 예린이도 아픔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그러기 전에 우리가 주위를 둘러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자신을 위한 주문을 거는 사람이 있을지. 그 주문을 결말에서야 남을 위해 주문을 걸기 전에 바꾸어야 될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파랑새. 본 적 없는 새다. 파랑새는 예린이다. 살구 꽃잎으로 다가오던 결말 잊지 못할 것 같다. 아무리 쓸쓸하고 쓸쓸하게 끝나고 예린이의 마지막 인상도 좋지 못하게 끝났지만 그래도 정을 잊지 못한 것 같다. 예린이의 납치한 그 범인 중 하나. 끝내 처절했지만 살갗게 다가온 이야기. ‘주문을 외우는 파랑새’. 주문에 의지하던 예린이를 곱씹는다. 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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