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o-Between (Paperback)
L. P. Hartley / New York Review of Books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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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현실에서 어른이 현실로, 차분한 비상과 추락의 해부. 포스터부터 이언 매큐언까지 아우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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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oviegoer (Paperback)
월커 퍼시 / Farrar Straus & Giroux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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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커 퍼시, Walker Percy, 존재론 관련 철학자이자 기호학자, 의사, 소설가, 수필가이다. 

1961년 마흔다섯 나이에 낸 첫 소설이고, 전미작가상을 받았다. 

배경은 누에바 오를레앙스(뉴올리언즈), 시기는 정월대보름 조금 지난 마디 그라스Mardi Gras 전후 일주일이다.

마디 그라스는 리우데자네이루와 맞먹는뉴올리언즈의 대표적 퍼레이드, 카니발이고, 뉴올리언즈는 과거 프랑스령, 스페인령 식민지라 많은 주민들이 가톨릭교도이다. 


서른 살을 맞은 작중 인물 나, 빙스 볼링은 

일상성에 매몰되는 자신에 반하여, 자신으로서도 뭔지 모를 'search'혹은 탐구로 쫓아다닌다고 하는, 이런 

변명같은 추구도 먹히지 않자 포기해버리는 comformist이다. 

동시대의 일반인들처럼 행동하고, 그런 행동에 소외감을 강화하고, 과거와 현재는 자신이 본 영화와 영화관을 

매치시켜 떠올리기는 하지만, 


영화를 보는 행위에 대해, 그 제목으로 경향, 편향의 암시만 내보일 뿐 

영화에 왈가왈부하는 일은 없이, 실제 영화는 거드는 역할 이상은 하지 않고 

내면 탐구를 빙자하여 소설은 주변인물의 관찰하며 마디 그라스 축제동안 모여드는, 들르는 가족들, 

그리고 현세대 뉴올리언즈 세대, 그 주변들을 그리는 자아 투사 '관찰 일기'이다. 


태어나길 남부 주류 백인, 길들어지길 가톨릭인, 소위 계급은 사라지고 종교는 맥을 잃어가고 있으니 

마디 그라스는 또 다른 구경거리, 세력 과시에 지나지 않은지 오래다. 

늦깎이 데뷔하였으니, 또 다른 남부작가 23살에 벌써 대표작을 낸 카슨 맥컬러스에게서 보이던 푸릇푸릇 젊은 현대의 우울은 없고, 키에르케고르의 영향 아래, 자욱한 우울증의 두툼한 '병리적'인 안개가 끼여있다. 

또 다른 반 주인공 '케이트', 주인공과 데깔꼬마니 대척점으로 불안불안하게 물수제비를 뜨고, 소설의 긴장감을 

선사하며 그녀 자신의 일상성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집안의 구심점 역할 늦깎이로 저물어가는 이 늙은 세대, 뭐 있는 집안 자손에, 연줄이 밥먹여주는 그런 '클래스' 있고, 자부심 뚜렷하고 소명의식 확실한 보수주의자도 빼놓을 수 없다. 


책 종결부 이를 즈음의 말을 옮겨 적어본다. 


--왜냐면 모든 똥무더기 사람들이, 구석구석 똥냄새를-내 유일한 재주-맡고 다니는 파리들이, 사실 바로 merde(똥)의 세기를 살아가기 때문이다. 과학적 휴머니즘이 부족/필요를 채우는 대단한 변소간의 시대, 모든 이들이 아무나가 되고, 따뜻하고 창조적인 사람이 되고 쇠똥구리처럼 번성을 하고, 백 퍼센트의 사람들이 휴머니스티이고 구십팔 퍼센트가 신을 믿는다. 그렇게 사람들은 죽었다, 죽었다, 죽어 있다, 고질적인 병폐는 낙진처럼 가라앉았고 사람들이 진짜로 두려워하는 것은 폭탄이 떨어지리라가 아니라 포탄이 떨어지지 않을까 봐 두려워한다.-나는 아무 것도 모르고 욕망의 제물이 되는 외에 할 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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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다가 뜬금없이 또다른 꼭지점, 또 다른 남부 작가가 떠올랐다. 

어스킨 콜드웰 Erskin Coldwell

좌파적인 시선에, 남부 벽촌 가난한 백인들의 한없이 한심스러운 한탄스러운 삶을 주로 그렸다. 

어찌나 한탄스러운지 흑인들조차 지나다 배고파 벌이는 소극을 쪼그리고 앉아 비웃는 정도다. 

대표작은 'tobacco road'외 서너편 더 된다


Image result for tobacco road

참고로 콜드웰은, 포크너가 자화자찬의 말에 슬쩍 끼워넣었던 작가, 우생학적인 식견에 지금은 짜하게 식은 다작의 작가인데 


1959년 에반 코넬 '처녀작' 캔자스 시티 중상류층 세상이 낯선, 중년의 사멸한 여성상, '브리지 부인'에서 토바코로드 언급이

된다. 'Tobacco Road' 연극버전이 30년대 브로드웨이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장기공연을 하고 

저 시골 캔자스 시티까지 원정공연을 하자, 문화적 의무감에 친구와 보러 간다, 

브리지 부인은 내용에 당황하여 '좋은 연극이긴 한데 그렇게 대놓고 표현을

했어야 하는가' 조금 몸서리를 치며 얌전한 의견을 내놓아서 알게 되었다. 


1941년 이 책은 존 포드 감독이 영화로도 옮겼다. 존 포드 감독은 1940년에 동일 선상 분노의 포도 역시 만들었다. 

분노의 포도의 주연의 맡은 헨리 폰다가 나오는, 아는 사람들만 아는 유명한 영화 '옥스보우 인시던트'가 moviegoer에 잠시 

등장하는 정도가 연결점이라면 연결점이랄 수도 있다. 



종교적인 고민을 좀 한다는 작가이긴 한데, 주인공이 그다지 종교에 뜻이 없는 사람이라, 실천 이상은 하지 않고 

21세기 세번째 decade 작금의 편향적 시각에서 보면 어엇 싶은 부분이 없지는 아니하지만, 

the moviegoer는 잘 빠진 작품이다. 이름 없는 잊힌 흑백영화, 시대상을 반영하는 영화와 시대를 뛰어넘는 영화를 보듬는 

재미도 제법 없지는 않다. 



옥스보우 인시던트까지 포함해서 다 국내 미번역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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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존은 책을 검색하거나 책을 읽으면 연관 책들을 한번 잡숴보시라고 어떻게나 권하던지, 

헝가리 작가를 비롯해 동유럽 작가 몇을 연달아 읽었더니, 계속 NYRB의 주옥 같은 책 한 권을 유난히 들이밀며, 아니 따라붙는 데가 없고 - 

아, 나는 사람을 죽였노라, 악몽이 저 문 밖에 고양이처럼 도사려 힘들다는 한탄으로 회상에 잠기기 시작하기에 

귀가 그만 솔깃, 시작했더니, 제멋대로 도우미 할머니가 멀쩡한 가정의 평화를 교란하며, 가는귀가 먹었나, 고집은 있는대로 부리고성질은 있는대로 뻐정대길 반복, 20페이지 쯤에 나같으면 벌써, 다음주에 안 오셔도 됩니다 통고하고 자물쇠부터 바꿨을 것을마음씨 좋은 주인이 오냐 받아주고, 미안하다 받아주고, 불쌍한 처지에 받아주고 굴렁쇠 굴리듯 뒤집었다 풀고를

대보름 쥐풀놀이 마냥 되풀이, 사람 속만 뒤집고, 공감능력이 많이 떨어지는 나는 머리만 쥐어뜯다가 

        (이야기 구성도 영 시원찮고, 전개도 석연찮고 생각의 전달도 미덥잖고, 인물의 성격은 개연성이 없고) 


아, 이런 40년도 더 된 책을 왜 NYRB는 재판을 해가지고 괜한 짜증만 돋우나, 

설마 이런 책이 국내에 나오겠나 싶었는데, 웬걸, 















헝가리어 번역판에 영어 제목이 붙어! 출간이 되었다. 


제임스 볼드윈이라고 나름 험난한 미국 흑인역사에 꽤나 굵은 족적을 남긴 사람이 있다. 

얼마 되지 않지만 소설도 썼다. 꽤나 독자를 모은 책이 

 (아마도 제법 잘 사는) 미국인 남자가, (미국흑인이 아니다!) 대전후 유럽에 와 

누군가의 사형 시간을 손꼽으며 통한에 젖어 어두운 바다를 바라보며 회상에 잠기는 걸로 시작한다. 

초라한, 처량한 개인역사에 세상을 휩쓴 재난에 낭패를 당한 잘생긴 이태리 남성 웨이터를 만나 정사를 벌이고, 

돈은 다 떨어지고, 집에서는 돈을 부쳐주지도 않고 벼랑 끝에서 방황을 하며, 돈이 많아 유럽을 돌아다니는 

미국 여자와 덜컥 약혼까지 하지만, 마음은 하염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조반니에게 향하고오오오---

처량한 한탄조에, 센티멘탈한 어조에, 하염없이 나약한 추락에, 초라한 변명에, 

미워도 다시한번 수준의 심금을 부여잡고 쥐어 흔드는데, 평이한 구조, 수동적 전개가 조금 못마땅하긴 해도 

나쁘지는 않았다. 그래도 사형대의 계단을 오르는 절박한 긴장의 재미는 있으나 그것뿐, 

이미 한번 출간도 되었고, 이미 50년도 넘은 책이 출간이 되겠나 싶었더니, 어랍쇼 
















이런 책들은 왜 내는 건지 나로서는 도통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나름 재미 있었던 '인형의 계곡' 

 세 명의 재주좋고 얼굴 어디에도 빠지지 않는 여성이그 재주와 미모로 자본의 중심에 섰다가 불을 끈 헐리우드 계곡의 뒤편에서 철저하게 망가지는, 그 영고성쇠를 현실적으로, 풍자적으로 그려낸 책이다. 여기서 '인형'은 비처방 습관성 약품을 의미한다.  

뻔한 미국식 성공담, 로맨스소설로 생각했다가 날아올라 그대로 저 세상까지 날아가버리는 기막힌 반전에 허가 찔렀던 작품이다. 50년전 약을 빤 게 너무 빤하게 보이는 여배우들이, 마이너곡조의 비장한 주제곡 하나를 열심히 비틀며, 정말 무덤덤하게 그린 영화를 보고 식겁을 하고서, 

그 당시 절판되어 (60년대 국내에서 절찬리에 팔린 것으로 추정) 완전히 잊혔기에, 안타깝지만 그대로 묻어 두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했는데, 영화 때문인가, 에그머니 세 번이나 새로 나온 걸 보고 깜짝 놀랐었다. (지금은 절판이다.) 

          (사족 : 영화는 진짜 뮤지컬 가수로 나오는 사람 빼고는 '연기'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하하, 어쨌든 나는 책 보고 고르는 재주가 꽝, 완전 까막눈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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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15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지음, 차경아 옮김 / 문예출판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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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추론의 방법론으로 광기를 선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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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이브의 수난' 


앤젤러/안젤라 카터의 1977년 작품입니다. 

74년작 호프만 박사의 영묘한 욕망 기계와 더 가깝고, 후기작 '서커스의 밤' '똑부러진 아이들'에 비하면 한참이나 우울합니다.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면, 우울한 근미래, 뉴욕 아리조나 보지 못한 미국의 그럴듯한 현실, 프로이트, 라캉, 포스트모던 뒤바뀐 외디푸스의 모험, 더불어 페미니즘 조금, 환상 리얼리즘의 욕망 조금, 우울, 우울, 우울입니다. 77년작인데, 75년 끝난 베트남의 그림자는 희미하지만, 서서히 현재 역사를 신화로 적어내려갈 수 밖에 없는, 신화가 신화의 의미가 아닌 미국의 진 자리들이 현실 역사화하여 저절로 가라앉고 있습니다. 


화자는 젊은 영국인 (남)강사, 뉴욕으로 강사자리를 알아보러 왔다가 면접에서 미역국 먹고, 뉴욕을 배회하다가 

 디스토피아의 근미래 영화들 배경, 매드맥스가 현실이 된 사막을 헤매며,

 꼭 장고한 문화적 배경, 배운 티를 내는 영국 작가의 남부러운 서술에, 건조하지만 시큰둥하게, 간결하지만 비아냥거리며 치고 들어오는 미국식 어투로 '모험/수난'을 들려줍니다. 그러니까 보니것이 언급했던 '슬릭' 매거진용 어투를 차용하고 있죠. 


펭귄판 세러/사라 워터스 서문을 보면 폭발적 인기를 누리는 작가는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닐 조던 감독이 'the company of wolves' 작품을 '피부림 방'을 토대로 만들면서 조금 반짝 인기를 끌고, 

이후로 나온 유쾌 상쾌, 통쾌(하기를 바랐던) 책 '서커스의 밤'이 후광 덕분인지, 아니면 가벼운 체질에 어울려든 덕분인지 인기를 끈 것 같습니다. 














국내 출간작으로 한권 더, 2009년 민음사에서 아마 그런 줄 알고 다시 만들 생각이 없었는지 작가의 이름을 '빌어' 700여쪽의 방대한 전세계 신화 모음집을 간행한 바가 있더군요. 지인 책장에서 그 두껍게 핑크한 색을 접했던 기억이, 참 타겟 한 번 간결지향적이라고 생각한 기억이 났습니다. 책장을 폈던 기억은 나지 않는 걸로 봐서, 인상에 안 남았거나, 진짜로 펼치지 않았거나-- 


마지막 소설 'wise children' (현명한 아이들은 아버지가 누구인지 안다에서 나온 말) 일흔다섯 은퇴한 보더빌 시대의 마지막 세대였던 어느 할머니의 회고록인데 완전 복잡한 가계도에 '한국'아침 드라마 저리 가라로 뒤얽힌 런던 템즈강 남부, 런던의 뒷동네에서 벌이는 뒤죽박죽 소동의 코미디입니다. 세익스피어 전문 장구한 가문의 이야기가 어떻게 16인치 흑백텔레비젼 드라마가 되는지 보여주죠.

마지막에서 두번째 소설, 19세기 마지막 해, 세 장소에서 벌어지는 세 가지 소동입니다. 















처음 런던, 영국 뒷골목 줄신의 어느 곡예/공중부양/날개달린 비너스의 이야기가, 찰스디킨스의 초기작처럼 유쾌한 모험담을 

하룻밤 사이에 두 명의 세레하자드에게 전해 듣는 이야기이고, 두번째 러시아와 (가지도 못하는)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가는 길목, 도스토예프스키의 도시 '생트페쩨르부르그'에서 난장판 서커스 소동이 고골의 이야기처럼 펄쳐지고, 세번째 시베리아, 시간과 역사가 없는 토착민(이누야트족)이 마지막으로 역사로 편입되기 직전, 러시아 민담에서 쫓겨난 농부들의 이야기가 조금은 맥빠지게, 하지만 마지막에 빙긋웃음을 선사하며 펼쳐집니다. 환상이면 환상이고 리얼리즘이면 리얼리즘이지 그 헷갈리는 정의, 환상 리얼리즘이 이런 거로구나, 여기서 알았습니다. 여기서는 스스로를 매직리얼리즘이라고 칭하지요. 


국내판은 '카터' 작가 식으로 말해 '썩을' 눈이 시베리아 찬바람에 백태 끼었는지, 이 재밌는 책을 어떻게 산 채로 목젖을 따서 솟대에다 꽂아 놓고 까마귀 저승밥으로 만들어 놓아서, 안타까운 마음에 분통이 터집니다. 


카터 작가는 이렇게 후기작 4권을 읽고 느낀 점, 하나. 

작가는 장소가 바뀌면 화자의 어조가 바뀐다는 겁니다. 신화의 장소에서는 신화의 목소리로, 미국에서는 간결하지만 시니컬한 유럽인의 어조로 능수능란하게 바뀌죠. 욕망 기계는 (남미가 배경으로 추정되도록 해놓았으니) 남미 작가들의 유령들이 젊은 인디언의 목소리 속으로 넘나들고, 똑똑한 아이들은 너무 젠체 하는 속물은 싹 벗어버리고 소동 속에 흥겹게 녹아들어가 있습니다. 

그러고도 점층하는 긴장감이란, 환상을 있음직하지 않은 현실로 만드는 재주란 탁월하니, 이야기꾼은 이야기꾼입니다. 그렇다고 아쉬운 점이 아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작가의 죽음에 친구와 부퉁켜 안고 주저앉아 울었다던 사라 워터스나 작가의 사망에 긴 조사를 쓴 마거릿 애트우드보다 솔직히 55배 쯤 대가가 아닐까-하는. 

단편집 신화와 민담은 곁가지, 아이스크림을 담는 콘이었나 봅니다.  장편이 그 알맹이를 오롯이 이루는데, 

제일 좋은 하나만 고르자니, 장편들은 다들 다른 맛과 색채라서 사실 우열은 논하기는 조금 어렵다는 낭패감이 듭니다. 시간을 거슬러 나머지도 천천히 먹어가다 보면, 어디 덜 떨어진 녀석 하나는 만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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