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존은 책을 검색하거나 책을 읽으면 연관 책들을 한번 잡숴보시라고 어떻게나 권하던지,
헝가리 작가를 비롯해 동유럽 작가 몇을 연달아 읽었더니, 계속 NYRB의 주옥 같은 책 한 권을 유난히 들이밀며, 아니 따라붙는 데가 없고 -
아, 나는 사람을 죽였노라, 악몽이 저 문 밖에 고양이처럼 도사려 힘들다는 한탄으로 회상에 잠기기 시작하기에
귀가 그만 솔깃, 시작했더니, 제멋대로 도우미 할머니가 멀쩡한 가정의 평화를 교란하며, 가는귀가 먹었나, 고집은 있는대로 부리고성질은 있는대로 뻐정대길 반복, 20페이지 쯤에 나같으면 벌써, 다음주에 안 오셔도 됩니다 통고하고 자물쇠부터 바꿨을 것을마음씨 좋은 주인이 오냐 받아주고, 미안하다 받아주고, 불쌍한 처지에 받아주고 굴렁쇠 굴리듯 뒤집었다 풀고를
대보름 쥐풀놀이 마냥 되풀이, 사람 속만 뒤집고, 공감능력이 많이 떨어지는 나는 머리만 쥐어뜯다가
(이야기 구성도 영 시원찮고, 전개도 석연찮고 생각의 전달도 미덥잖고, 인물의 성격은 개연성이 없고)
아, 이런 40년도 더 된 책을 왜 NYRB는 재판을 해가지고 괜한 짜증만 돋우나,
설마 이런 책이 국내에 나오겠나 싶었는데, 웬걸,
헝가리어 번역판에 영어 제목이 붙어! 출간이 되었다.
제임스 볼드윈이라고 나름 험난한 미국 흑인역사에 꽤나 굵은 족적을 남긴 사람이 있다.
얼마 되지 않지만 소설도 썼다. 꽤나 독자를 모은 책이
(아마도 제법 잘 사는) 미국인 남자가, (미국흑인이 아니다!) 대전후 유럽에 와
누군가의 사형 시간을 손꼽으며 통한에 젖어 어두운 바다를 바라보며 회상에 잠기는 걸로 시작한다.
초라한, 처량한 개인역사에 세상을 휩쓴 재난에 낭패를 당한 잘생긴 이태리 남성 웨이터를 만나 정사를 벌이고,
돈은 다 떨어지고, 집에서는 돈을 부쳐주지도 않고 벼랑 끝에서 방황을 하며, 돈이 많아 유럽을 돌아다니는
미국 여자와 덜컥 약혼까지 하지만, 마음은 하염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조반니에게 향하고오오오---
처량한 한탄조에, 센티멘탈한 어조에, 하염없이 나약한 추락에, 초라한 변명에,
미워도 다시한번 수준의 심금을 부여잡고 쥐어 흔드는데, 평이한 구조, 수동적 전개가 조금 못마땅하긴 해도
나쁘지는 않았다. 그래도 사형대의 계단을 오르는 절박한 긴장의 재미는 있으나 그것뿐,
이미 한번 출간도 되었고, 이미 50년도 넘은 책이 출간이 되겠나 싶었더니, 어랍쇼
이런 책들은 왜 내는 건지 나로서는 도통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나름 재미 있었던 '인형의 계곡'
세 명의 재주좋고 얼굴 어디에도 빠지지 않는 여성이그 재주와 미모로 자본의 중심에 섰다가 불을 끈 헐리우드 계곡의 뒤편에서 철저하게 망가지는, 그 영고성쇠를 현실적으로, 풍자적으로 그려낸 책이다. 여기서 '인형'은 비처방 습관성 약품을 의미한다.
뻔한 미국식 성공담, 로맨스소설로 생각했다가 날아올라 그대로 저 세상까지 날아가버리는 기막힌 반전에 허가 찔렀던 작품이다. 50년전 약을 빤 게 너무 빤하게 보이는 여배우들이, 마이너곡조의 비장한 주제곡 하나를 열심히 비틀며, 정말 무덤덤하게 그린 영화를 보고 식겁을 하고서,
그 당시 절판되어 (60년대 국내에서 절찬리에 팔린 것으로 추정) 완전히 잊혔기에, 안타깝지만 그대로 묻어 두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했는데, 영화 때문인가, 에그머니 세 번이나 새로 나온 걸 보고 깜짝 놀랐었다. (지금은 절판이다.)
(사족 : 영화는 진짜 뮤지컬 가수로 나오는 사람 빼고는 '연기'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하하, 어쨌든 나는 책 보고 고르는 재주가 꽝, 완전 까막눈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