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 이동(설)" 



  러셀 뱅크스 작가의 1985년작이고, 저평가된 중견작가의 작품에 수여되는 "더스 패서스"상의 수상작이다. 

대륙이 이동한다는 거창한 제목으로 보면 딱 한해 뒤 1986년 사라마구 "돌뗏목"이 연상된다. 














돌똇목은 지금 난리도 아닌 이베리아 반도가 대서양을 정처없이 떠돌고, 그 불안한 대지에 서성이는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와 감상을 다루었다면, 

이 책은 사람들이 딛고 선 대륙, 그 자체의 움직임, 고난을 그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내용 중 말을 빌려쓰면 good-natural passivity로 keep moving.  

대륙이라고 했지만, 등장인물은 어찌나 초라하고 안쓰러운지 

또 다시 지금은 난리도 아닌 뉴욕 북부 한지에서 배고픈 줄 모를 기름보일러 수리공이 허기진 마음에 남으로 남으로 사회의 계단의 아래로 아래로 떨어지고, 먹고 죽을 쥐약도 없이 너무 허기져 배고픈지도 모르는 사람이, 기댈 것 없는 양심에 위로 위로 무작정, 아이티 벽촌 크레올의 환상에서 서구인의 현실 속으로 풍덩 뛰어드는 고달픈 이야기다. 

두 주요인물의 구조와 서술은 생판 남처럼 다르다. 북미 남성은 관조적 사변을 일삼는 모더니즘이라면, 남미는 환상과 마술이 범벅이 된 사실주의 이런 식이다. 마지막은 전지적 작가가 등장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이 상황에, 작은 바람으로 

Go, my book, and destroy the world as it is.로 끝을 맺으니, 두 인물의 하다 만, 할 생각도 없던 

대륙종단, 이동이 얼마나 쓰라릴지는-여튼, 이 작가는 긴 "사회고발성" 사설에 사람 눈을 못 떼게 잡는 실력이 탁월하다는 말로 에둘러본다.


충격적인 작금의 현실에도 충격요법으로 꽤나 쎄게 치고 들어오기 때문에 마음 약한 사람은 가벼이 들 책은 아니나, 

건너뛰어서도 아니 되는 책이 아닐까 한다. 



도스 패서스 작가의 '맨해튼 트랜스퍼"는 사실, 개인적인 이유로 조금 실망스러웠는데, 

이 작가의 이름을 딴 "도스 패서스"상 수상작가들, 그러니까 아쉬운 아차상 작가들에게 주는 상은 꽤나 괜찮은 작가들이 많이 포진해 있다. 몇몇은 이후 이름이 나 바이러스 퍼지듯 필명을 기하급수적으로 휘날리며 퓰리처니, 부커 상이니 등을 받기도 하고, 그대로 잔잔히 묻히기도 하고. 


그 중에 골라 읽었던 작품, 













(국내명 "거대한 지구를 돌려라" 칼럼 매켄"-역시나 절판) 


-은 강팍해진 마음에 가벼운 물결처럼 어루만져 주는 짭짤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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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ECTED STORIES/DUBUS (Paperback, 1st Vintage Contemporaries ed)
안드레 더뷰스 / Vintage / 1989년 12월
평점 :
절판


조곤조곤 들려주는 이야기가, 차근차근 진행이 되는데, 

복종과 순종, 까닭없는 반발, 이유없는 애정이, 졸졸졸 손가락 사이로 흘러가고,  


작은 유리병에 개울물을 담아 뒤흔들고 개흙과 모래알의 소용돌이를 쳐다보듯, 책이 멀끔하다. 


덤벙덤벙 대는 마음에, 질겅질겅 씹어내어보지만, 

조금 낡은 이야기가, 조금은 해묵은 세월이 자꾸 눈꺼풀에 덮여와서, 

머리에서 자꾸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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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러셀 뱅크스의 소설, 


(잘 모르는) 남북전쟁의 발단 중 하나인 1858년 (들어본 적 없는) 라이플 공장 하퍼스 페리 습격사건의 주도적 실존 인물 (전혀 모르는) 과격 노예폐지론자 존 브라운에 대한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전하는 이야기다.

화자는 존 브라운 살아남은 세째 아들, (미국 역사 전공자도 잘 모를) 오웬 브라운이 758쪽에 걸쳐 

아주 방대한 자료를 모아 하퍼스 페리 습격 50주년을 기념해 전기를 쓰는 실존 전기작가 빌라드의 비서가 심심산골까지 찾아오 인터뷰를 요청했던 마요 양에게 편지를 쓰는 걸로 설정되어 있다. 

빌라드는 존 브라운의 관점에서 주변 인물 인터뷰와 실제 남은 기록들을 샅샅이 찾아 800여쪽의 방대한 전기를 남겼으니 

쌍으로 읽으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나, 그저 구글링 정도로 만족하며 읽어내려가도 책 내용은 얼추 따라잡는다. 


작가는  일어난 사건의 회상, 앞날이 훤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역추적/추적해 들어가는 편, 역사의 장에 기록되지 않을, 

미국 하층민, 아니 피해자 서민들의 애잔한 삶을 후벼파며 긴장감을 들이미는 작가라, 이번에도 택한 인물이 (세간의 시선이 어디에 놓이느냐에 따라 다르겠으나) 가난한 백인 농부, 실패한 무두장이, 부초처럼 떠돌며 빚쟁에게 쫓기며 이웃에게 배척당하며 배척한다고 생각하는 야심만 가득한 가축몰이꾼에서, 청교도적인 신앙심에 불타고, 그 시대 한창 '유행한' 노예페지론에 목숨을 걸고 해방론자에서 과격한 테러리스트, 게릴라 대장으로 무모한 삶을 교수형으로 마감하는 인물과 가장 가까이 지켜볼 수 밖에 없는 가족, 가부장적인 아버지에게 휘둘릴 수 밖에 없는 그러나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인물, 신적인 존재에 공경으로 복종으로 작은 반항들로 의미를 찾아 방랑하는 아들이 그 중심인 "소설"이다. 자랑과 변명만 늘어놓는 전기는 아닌 셈이다. 실패자의 실패담, 우여곡절 사후 성공담이다. 


혹자는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와 비교를 하는데, 책의 분량으로 보나 그 내용에서 보나 분노의 포도에 "In Dubious Battle(의심스러운 싸움, 열린책들)"을 얹어놓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러셀 뱅크스는 피해자가 가해자, 가해자가 또 피해자가 될 수 밖에 없는 작금의 현실과 똑같은 어두울 수 밖에 없는

깜깜 현실을 과히 달갑지 않으나 삼키라며 찔러대는 글을 잘 쓴다. 다들 눈 질끔 한 번 깜고 시작해야 하는 책이다. 


불편해도 손에서 책을 뗄 수 없는 책, 가득한 피해자에 

없는 가해자를 희생양으로 만들어 단칼로 불편의 싹을 정리해 도리어 불편을 키웠던 책이 있고, 














피해자로 삶을 계속 하느니 가해자로 삶을 살겠노라, 용감하게 삐뚤어지는 일말고 달리 삶의 방도가 희박한 

열넷 꼬맹이의 이야기를 읽다가, 앞날 없는 인생살이에 갈수록 무거워지는 책장에 도저히 들고 있을 수가 없어 놓았던 적이 있다. (잘 나가긴 해도 작가의 대표작은 아닌듯) 

 















본서에서는 

겹겹의 중심 주제를 중심으로 구어적 서술을 해나가는지라 교묘하게 분산을 해놓아서, 

조였다 풀었다, 건너 뛰었다가 다시 돌아가며, 역사적 사실과 아들의 전지적 해석을 끼워넣고 

허구와 사실의 왜곡을 적절히 가미하여 극적인 점증을 하고, 되풀이와 요약 그리고 서술의 점진적 변화로 살을 

계속 덧붙여가다, 가장 중요한 시점에서 이야기를 끝을 낸다. 

자신에게 하나님 같은, 남에게 구세주 같은 아버지, 그 고난을 구약과 신약의 저술가처럼 적어내려가는 아들의 시점에서 아버지에게서 떨어져 나오는 순간으로 잡아서 그러지 않았을까 생각은 해보지만, 아버지를 빙자해 자신의 이야기를 이렇게도 근사하게 꾸려나가다니, 뱡대한 자료 섭렵은 차치하고도 소설적인 구성만으로도 대단한 작가라는 느낌이다. 


또 다른 작가의 대표작 Continental Drift와 Lost memory of Skin은 어떠려나 모르겠다. 다작의 작가라 고르기가 좀 힘들다. 


참고로 이 책은, 죽기전에 (아마 읽기 힘든) 1001권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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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ma가 사라졌다.-고 RAMe( 왕립기상학아카데미)에서 문의하는- 책. 


사랑이 다가오는 때와 헤어지며 멀어지는 때 그 기시감과 생경한 느낌의 차이/다름을 도플러 효과를 차용, 물리적으로 예상탐구하려는 정신병리적 기상현상의 전개를 사변으로 들려준다. 


화자는 변수의 수가 아니라 선택의 수를 놓고 고민을 하고, 징글한 사랑의 잔재여, 

금귤 대신에 (또 다른 오렌지색) 클레멘타인을 고른다. 



   (절대 귤 아님, 이것이 클레멘타인, 혹은 '클레멘띠나 외관상 색깔과 크기는 귤을 꼭 닮았지만 

 껍질은 더 딱딱하고 즙이 많고 향이 강하고 더 시큼상큼해도 더 달달함

저것은 크로와상이지 절대 아르헨티나 산 메디아루나가 아니다.) 


'너무 형이상학적으로 비유적으로 젠체 하지 마라, 오직 현실만이 우리 상상력의 한계를 넘을 수 있다'는 화자의 말처럼 

결국은 도플러로 그것도 단일파 도플러로 듬성하게 읽어낸 가상의 현실의 많은 부분을 메꿔야 하는 기상도처럼 늘 오류를 생득적으로 안고 사는 인간 관계에 복닦이다가, 그만 제 발에 제 등 찍는- 

자신의 방어기제는 당연히 프로이트와 라캉, 그리고 평행 세계, 다른 생의 아버지 장손 '기상학'이라는 객관적/객관적이고 싶은 과학적 용어들을 내세우며 비공감력의 자신을 외부에 투사한다. 외부에 휘둘린다. 

과학적인 서사를 빌어 쓰지만, 결국 관계 탐구의 내재적 한계에 대한 고민을 대신하는 글이라 그렇게 지레 겁먹을 정도는 아니다. 하비의 말처럼 '인식론처럼 들리지만 어쩌면 형이상학적인 문제' 어쩌고저쩌고다. 


조금(아니 많이) 지루해도, 읽은 보람은 나는 귤 껍질처럼 얇은 책. 

비슷한 변주곡이지만, 국외자의 해석 '에코메이커(따오기)"가 있다. 이 책은 유사품 주의 수준이다. 


왠지 모르지만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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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지고, 더하고, 바꾸고, 잘못 넣고, 번잡하게 걸리적거려, 생인손에 저릿저릿 머리카락이 쭈볐거릴 지경이지만, 

다 제쳐두고-


 















page 9 


(물론) 1970년대 영국 문학의 자산이 소위 햄스테드 이혼 소설에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몇 해 전의 부커 상을 놓친’ 최종 후보 목록은 그를 입증하는 강력한 증거이다.

English literature culture in 1970 was far more diverse that the so-called Hamstead divorce novel. Recent ‘missing Booker’ shorlist was powerful proof of that.


-> 1970년에 영국 문학 양식이 소위 햄스테드 이혼 소설보다 훨씬 다양하긴 하였다최근 (발표된) ‘누락된 부커상’ 최종 후보 목록이 그를 입증하는 강력한 증거이다.

 





맨부커 상 1970년 이전까지 전해 발표 소설에 시상, 1971년에 당해 발표 소설에 시상, 실제적으로 1970년 해당소설이 없어, 2010년 특별히 ‘Lost Man Booker Prize’ 발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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