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러셀 뱅크스의 소설,
(잘 모르는) 남북전쟁의 발단 중 하나인 1858년 (들어본 적 없는) 라이플 공장 하퍼스 페리 습격사건의 주도적 실존 인물 (전혀 모르는) 과격 노예폐지론자 존 브라운에 대한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전하는 이야기다.
화자는 존 브라운 살아남은 세째 아들, (미국 역사 전공자도 잘 모를) 오웬 브라운이 758쪽에 걸쳐
아주 방대한 자료를 모아 하퍼스 페리 습격 50주년을 기념해 전기를 쓰는 실존 전기작가 빌라드의 비서가 심심산골까지 찾아오 인터뷰를 요청했던 마요 양에게 편지를 쓰는 걸로 설정되어 있다.
빌라드는 존 브라운의 관점에서 주변 인물 인터뷰와 실제 남은 기록들을 샅샅이 찾아 800여쪽의 방대한 전기를 남겼으니
쌍으로 읽으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나, 그저 구글링 정도로 만족하며 읽어내려가도 책 내용은 얼추 따라잡는다.
작가는 일어난 사건의 회상, 앞날이 훤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역추적/추적해 들어가는 편, 역사의 장에 기록되지 않을,
미국 하층민, 아니 피해자 서민들의 애잔한 삶을 후벼파며 긴장감을 들이미는 작가라, 이번에도 택한 인물이 (세간의 시선이 어디에 놓이느냐에 따라 다르겠으나) 가난한 백인 농부, 실패한 무두장이, 부초처럼 떠돌며 빚쟁에게 쫓기며 이웃에게 배척당하며 배척한다고 생각하는 야심만 가득한 가축몰이꾼에서, 청교도적인 신앙심에 불타고, 그 시대 한창 '유행한' 노예페지론에 목숨을 걸고 해방론자에서 과격한 테러리스트, 게릴라 대장으로 무모한 삶을 교수형으로 마감하는 인물과 가장 가까이 지켜볼 수 밖에 없는 가족, 가부장적인 아버지에게 휘둘릴 수 밖에 없는 그러나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인물, 신적인 존재에 공경으로 복종으로 작은 반항들로 의미를 찾아 방랑하는 아들이 그 중심인 "소설"이다. 자랑과 변명만 늘어놓는 전기는 아닌 셈이다. 실패자의 실패담, 우여곡절 사후 성공담이다.
혹자는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와 비교를 하는데, 책의 분량으로 보나 그 내용에서 보나 분노의 포도에 "In Dubious Battle(의심스러운 싸움, 열린책들)"을 얹어놓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러셀 뱅크스는 피해자가 가해자, 가해자가 또 피해자가 될 수 밖에 없는 작금의 현실과 똑같은 어두울 수 밖에 없는
깜깜 현실을 과히 달갑지 않으나 삼키라며 찔러대는 글을 잘 쓴다. 다들 눈 질끔 한 번 깜고 시작해야 하는 책이다.
불편해도 손에서 책을 뗄 수 없는 책, 가득한 피해자에
없는 가해자를 희생양으로 만들어 단칼로 불편의 싹을 정리해 도리어 불편을 키웠던 책이 있고,
피해자로 삶을 계속 하느니 가해자로 삶을 살겠노라, 용감하게 삐뚤어지는 일말고 달리 삶의 방도가 희박한
열넷 꼬맹이의 이야기를 읽다가, 앞날 없는 인생살이에 갈수록 무거워지는 책장에 도저히 들고 있을 수가 없어 놓았던 적이 있다. (잘 나가긴 해도 작가의 대표작은 아닌듯)
본서에서는
겹겹의 중심 주제를 중심으로 구어적 서술을 해나가는지라 교묘하게 분산을 해놓아서,
조였다 풀었다, 건너 뛰었다가 다시 돌아가며, 역사적 사실과 아들의 전지적 해석을 끼워넣고
허구와 사실의 왜곡을 적절히 가미하여 극적인 점증을 하고, 되풀이와 요약 그리고 서술의 점진적 변화로 살을
계속 덧붙여가다, 가장 중요한 시점에서 이야기를 끝을 낸다.
자신에게 하나님 같은, 남에게 구세주 같은 아버지, 그 고난을 구약과 신약의 저술가처럼 적어내려가는 아들의 시점에서 아버지에게서 떨어져 나오는 순간으로 잡아서 그러지 않았을까 생각은 해보지만, 아버지를 빙자해 자신의 이야기를 이렇게도 근사하게 꾸려나가다니, 뱡대한 자료 섭렵은 차치하고도 소설적인 구성만으로도 대단한 작가라는 느낌이다.
또 다른 작가의 대표작 Continental Drift와 Lost memory of Skin은 어떠려나 모르겠다. 다작의 작가라 고르기가 좀 힘들다.
참고로 이 책은, 죽기전에 (아마 읽기 힘든) 1001권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