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청이의 포트폴리오
커트 보니것 지음, 이영욱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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끓기 전의 우롱차맛, 식은 뒤의 에스프레소 맛처럼 조금 모자라지만
소설이 되지 못한 에세이와 끝나지 못한 소설이 아쉬움을 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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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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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꼭 다진 인생의 무게, 맨밥처럼 넘기긴 어려워도 밥은 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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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 로베르트 발저 작품집 쏜살 문고
로베르트 발저 지음, 박광자 옮김 / 민음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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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운 출판사 모던클래식 시리즈 중 영 안맞아 읽다만 책 '아름다운 날들'에 '로버트 월서'씨가 어디 산모롱이에 눈밭에 대자로 엎어져 죽은 데라는 이야기로 시작을 한다. 어디 영국이나 미국 한량 작가가 노년을 즐기다 죽었나 생각을 했는데 알고 보니 로베르트 발저의 오역임을 영역본을 보고 알았다. 


수년도 전 벤야멘타 하인 학교 외에 다른 장편을 준비중이라던 ㅁㄷ 출판사는 아직도 미적거리는 사이에 ㅁ운 짓 하던 동출판사에서 고맙게도 로베르트 발저의 수많은 단편 중에 몇 개를 엮어 슬그머니 내었다. 그래서 나도 슬그머니 사서, 읽어보았더랬다. 


작가는 좋은 말로 관조적인 삶을, 나쁜 말로 구질구질한 삶을 살다가 갔으니, 도통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시인/작가는 그의 작품에 그런 내면에 한치의 부끄러움도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 물건을 두고 흥정하는 아둔패기처럼 눈치만 살피며, 낮게 낮게, 낮게, 더 낮게 움츠린다. 아마 이보다 더 겸손하고 낮은 데로 움칠대는 작가도 없을 것이다. 꽃은 이름을 두지 않고, 가는 길에 명칭을 두지 않고, 낯선 사람에게는 다가가지만 결코 더 다가가지는 않는다. 스무 개 넘는 단편들을 담은 NYRB '베를린 이야기' 속 도시나 '산책'속 근교나 시골이나 매한가지이다. 제자리걸음으로 만화경을 훑듯이 읽어나가는데, 거기서 묻어나오는 것은 자신이다. 타자는 늘 그 풍광보다 더 멀리 놓여있기 때문이다. 


아쉬우나마 발저 씨가 경성의 어느 서점 창문 가판대에 올라 쌀쌀한 겨울 기운을 내다보고 있는 것은 반갑기는 한데, 

가장 긴 산책이 번역이 조금 엉성한데가 적지 않아 별을 세개 밖에 못줘 섭섭하다. 그리고 진솔하고자 독자에게 직접 말을 거는 이 '산책'이 차라리 맨 뒤로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리고 더불어 왕창 엮어 한 삼백 페이지 쯤 사람들 지겹게 혼잣소리를 듣게 해도 좋을 것도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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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을 바라보며
줄리안 반즈 지음, 신재실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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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안하는 버릇했더니 불가사의가 불가사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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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인생
카렐 차페크 지음, 송순섭 옮김 / 리브로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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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카렐 차페크가 1933년과 34년 삼부작으로 출간한 책 호르두발, 별똥별/유성, 평범한 인생 중 시리즈 마지막 책입니다. 인식론이니, 존재론이니, 철학적 논쟁으로 책을 흐리지 않아도, 알고 보면 더 좋겠지만 대단히 평범하지 않은 책입니다. 크쥐시토프 키에슬롭스키의 세가지 색 영화 시리즈가 각기 다른 영화였듯이 이들은 제각각 무게를 지녀ㅡ사실 백오십 페이지 조금 넘는 이 소설들은 따로 떼어 놓아도 솔제니친의 붉은 수레바퀴 일곱권 전권보다 무겁습니다.  


이렇게 추켜세우는 이유는, 출판계의 대표 조루, 지만지에서 앞의 두 권만 내고 대체 왜 마지막 한권을 안 내느냐 그 이유를 먼저 따져 묻고싶어서입니다. 묻는다고 대답은 않겠지만. 


사실, 김규* 역의 별똥별은 첫번째 주머니 번역이 가히 정겹지가 않아서 영역본으로 건너뛰고 이 책을 읽었습니다. 


세 책 다 인식에 따른 접근의 한계를 보여주기 위해 취한 구성의 묘는 출중합니다. 그중 별똥별은 타자, 그것도 완벽한 타자의 시선들로 풀어내기 때문에 늘 사실이라고 가정된 책 공간 속으로 독자를 끌지도 않으면서 외줄 탄 광대마냥 불안을 느끼게 합니다. 결국 끝에는 그 줄마저 끊어놓고 말아버리지요. 첫번째, 세번째 소설은 마음이 단순한 사람의 독백을 따라 가고, 단순하기를 바라는 은퇴자의 이야기를 좁은 오솔길 마냥 따라가기 때문에 글귀들이 쉬운데, 두번째 글은 전달자가 다들 나름 사회의 식자들인데다 자신을 오롯이 투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화려한 문구들로 윤색을 할 수 밖에 없어서 꽤나 어려웠습니다. 


제가 볼  때 세 책은 호르두발 앞머리 서평처럼 정, 반, 합의 딱딱한 각이라기 보다 점차, 점차 소용돌이 곡선을 그리면서 그 범위가 넓어집니다. 그 넓어진 범위가 세번째 책 말미의 작가 자신의 말로 하늘을 덮지요.  


다시, 세가지 색 블랑, 블러, 루주는 다른 영화들이 맞기는 하지만, 셋 다 감독의 오래된 시선에서 변주를 하고 사각의 필름 속에 벗어나지 않습니다. 영화가 세트를 벗어나면 관객들은 영화관을 빠져나오기도 전에 머쓱해지는 관계로 최악의 영화로 돌변합니다만 소설은 당연히 그렇게 해도 되는 장치라서 

평범한 인생은 왜 전환점이 될만한 일이라 여겨도 될 일은 어물쩍 넘기나 반쯤 와서 슬슬 의아해하면 책이 다른 궤도를 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그랬나 용케, 4호선에서 서울역으로 갈아타서 그렇게 비낀 이야기를 듣다가, 반쯤 숨은 지역선으로 갈아타고, 전체를 조망하게 되었다 싶죠, 모월 모처에 나들이 가다 사진을 박고 돌아서려는데, 이제 제대로 벗어납니다. 


갑자기 무한 궤도처럼 같은 이야기를 세번쯤 들어요. 매번 시선이 조금씩 바뀌지만, 왜 이러나 당황하고 있으면, 죽어가면서 필사적으로 의미를 덧붙이고자 하는 화해하고자 하는, 잇고자 하는, 확장하고자 하는 억지가 뒤따라요. 그때부터는 이제 작중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던 사람은 사라지고 작가가 거기에 깜박깜박거리며 나타납니다.그리고 덜컥, 소설은 끝나고. 


작가의 말이 따릅니다. 마치 남 이야기하듯, 줄거리까지 요약을 해가면서 자신의 작심을 이야기하는데, 왜 저는 여기까지가 이 소설의 끝으로 여겨지는 걸까요? 그 절묘한 배치와 오묘한 굽이에 경탄이 절로 나옵니다. 꾸며놓아도, 버려져도 아름다운 정원처럼요. 끝내 첫번째 내면 속 자아의 파편이 원글을 쓰게 된 이유로 꼽은 사연은 끝끝내 듣지 못했다는 건 나중에야 생각이 나죠. 


다재다능한 작가에게, 이 소설에 어울리지 않는 저 웃기는 중산모 그림은, 알고보니 

웃기려고 그런 게 아니고 나는 개와 고양이가 있었다에 작가의 책에 작가가 그린 그림의 일부였습니다. 이해는 가지만 아주 훌륭한 선택은 아니라 안타까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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