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 로베르트 발저 작품집 쏜살 문고
로베르트 발저 지음, 박광자 옮김 / 민음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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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운 출판사 모던클래식 시리즈 중 영 안맞아 읽다만 책 '아름다운 날들'에 '로버트 월서'씨가 어디 산모롱이에 눈밭에 대자로 엎어져 죽은 데라는 이야기로 시작을 한다. 어디 영국이나 미국 한량 작가가 노년을 즐기다 죽었나 생각을 했는데 알고 보니 로베르트 발저의 오역임을 영역본을 보고 알았다. 


수년도 전 벤야멘타 하인 학교 외에 다른 장편을 준비중이라던 ㅁㄷ 출판사는 아직도 미적거리는 사이에 ㅁ운 짓 하던 동출판사에서 고맙게도 로베르트 발저의 수많은 단편 중에 몇 개를 엮어 슬그머니 내었다. 그래서 나도 슬그머니 사서, 읽어보았더랬다. 


작가는 좋은 말로 관조적인 삶을, 나쁜 말로 구질구질한 삶을 살다가 갔으니, 도통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시인/작가는 그의 작품에 그런 내면에 한치의 부끄러움도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 물건을 두고 흥정하는 아둔패기처럼 눈치만 살피며, 낮게 낮게, 낮게, 더 낮게 움츠린다. 아마 이보다 더 겸손하고 낮은 데로 움칠대는 작가도 없을 것이다. 꽃은 이름을 두지 않고, 가는 길에 명칭을 두지 않고, 낯선 사람에게는 다가가지만 결코 더 다가가지는 않는다. 스무 개 넘는 단편들을 담은 NYRB '베를린 이야기' 속 도시나 '산책'속 근교나 시골이나 매한가지이다. 제자리걸음으로 만화경을 훑듯이 읽어나가는데, 거기서 묻어나오는 것은 자신이다. 타자는 늘 그 풍광보다 더 멀리 놓여있기 때문이다. 


아쉬우나마 발저 씨가 경성의 어느 서점 창문 가판대에 올라 쌀쌀한 겨울 기운을 내다보고 있는 것은 반갑기는 한데, 

가장 긴 산책이 번역이 조금 엉성한데가 적지 않아 별을 세개 밖에 못줘 섭섭하다. 그리고 진솔하고자 독자에게 직접 말을 거는 이 '산책'이 차라리 맨 뒤로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리고 더불어 왕창 엮어 한 삼백 페이지 쯤 사람들 지겹게 혼잣소리를 듣게 해도 좋을 것도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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