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 - 권력은 지우려 했고, 세상은 간직하려 했던 사람들
김만선 지음 / 갤리온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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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 억울한 누명, 스산한 정적, 고독함, 한(恨), 독야청청한 선비의 절개와 청아한 지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림받아 세월속에 잊혀져 버린 충신의 비애.

유배라는 단어가 내게 각인되어 있는 이미지는 대략 이렇다.

사극을 통해 접한 유배.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이미지로 유배라는 말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던 참에 읽게 된 책 <유배>는 이런 피상적인 나의 생각을 뒤바꿔 놓은 계기가 되었다.

역사속에서 실수로든, 고의적으로든 죄인이라는 이유로 유배인들의 기록은 단 몇줄에 그치는 것이 대부분이고 승리한 자들의 입장에서 서술된 역사기록 앞에 그들이 설 자리는 조금도 없었다. 당연히 학교에서든, 개인적인 관심을 따라 습득한 것이든 우리가, 내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 속에도 유배인들의 존재는 극히 미미할 뿐이었다.

그러나 유배지에도 한 시대, 자신이 생각한 뜻을 불의에 대항해 끝까지 꺾지 않고, 충심과 지조를 지켜냈던 인물이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배라는 상황속에서 그들이 겪어내고 감내해야 했던 고통과 외로움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저 사극 속에 박제된 그들의 모습만 알고 있었을 뿐 그들도 역사의 승리자들처럼 살아 숨쉬는, 높은 이상과 뜻을 가지고 있는 존재임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 책 <유배>는 이런 의미에서 내게 “책을 읽는다”는 행위에 대해 다시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볼 기회를 주었다. 그저 흰 종이 위에 인쇄된 글자를 읽는 행위가 아니라 그동안 내가 모르고 있었던 것을 새롭게 알게 되고, 잘못 알거나 아예 인식의 그늘에서 밀어내어 버렸던 사실들을 바로 잡아 주는 것, 그래서 세상에 대해 고른 시각과 균형잡힌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독서의 역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유배>를 읽는 내내 마음을 들뜨게 만들었던 것은 의외를 요소 때문이었다. 책의 내용 자체도 좋았지만 지금은 잘 쓰지 않아 있는지 조차 몰랐던 순우리말을 곳곳에 사용하고 있는 것이 신선했다. 게다가 교과서를 통해 배웠던 지루한 느낌의 시조나 창가 등이 쓰여진 배경과 그것을 지을 당시의 인물의 감점등을 알고 보니 훨씬 풍성한 이해가 가능했고 어떤 경우엔 그 시조 내용이 전혀 새롭게 내 안에 공감되기도 했다.

저자가 의도했던 그렇지 않았던지간에 이런 작은 부분들이 이 책을 더 가치있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았고 우리말, 우리의 것의 중요성이 많은 부분 간과되고 있는 상황들이 비일비재 한 때여서 그런지 그 단어 하나, 시조 하나가 그렇게 소중해 보일 수 없었다.

게다가 유배지를 직접 찾아다니며 하나하나 애정을 담아 쓴 글에는 저자가 이 책을 쓰는 기간 내내 각 인물들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고, 살아있는 벗을 대하는 듯한 깊은 애정으로 담아냈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들에 대한 가물한 기억을, 흔적뿐인 자취를 발견하고 소개해 오롯이 독자들에게 전하려 했던 저자의 숨은 의지가 느껴진다.

몇해전 출판계에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던 유홍준 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읽었을 때와 같은 뿌듯함, 뭉클함마저 느껴졌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도, 정당함을 주장하지도 않고 오롯이 그 인물의 감정을 그의 유배인으로서의 삶을 담아낸 이 책은 새로운 차원의 한국사인물 열전이 될 것이다.

역사 속에 묻혀 있던 인물을 드러내어 역사기록 몇줄로 박제된 인물이 아니라 생각하고 느끼고 외로워하고 그리워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 <유배>는, 내게 편향되었던 역사 인물인식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준 의미있는 책으로 남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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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그램의 희망 - 삶의 매순간은 신성하다
강인식 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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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묵 교수에 관한 기사를 접한 것은 지난 3월. 한 일간지에 대문짝만한게 난 기사를 통해서였다. “한국의 스티븐호킹”이라는 표현이 내 호기심을 한껏 자극했고 호기심으로 읽기 시작했던 기사는 곧 이상묵 교수에 대한 더 깊은 관심과 존경의 마음을 품기에 이르렀다.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할만한 과정을 거쳐 서울대 교수까지. 그것만으로도 결코 평범하다 할 수 없는 이상묵 교수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버린 그날의 사건. 지면상에 자세히 나와있지 않은 그 뒷이야기와 어떤 과정을 통해 그렇게 짧은 시간에 재기할 수 있었는지가 궁금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내 기억속에서 점점 그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해질 무렵, 이 책 <0.1그램의 희망>이 마술처럼 잊혀져 가던 이상묵 교수를 내 머릿속에서 다시 끄집어 냈다.
책 표지 머리에 있는 “매일의 삶은 신성하다”라는 한줄의 문장을 보았을 때, 처음 책을 읽기 시작했을때만해도 음.. 멋진 말이네 하는 단순한 감상뿐이었다. 그러나 책을 펼친 그 순간부터 정신없이 읽어내려간 후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땐 이미 그 문장이 이상묵 교수에겐 얼마나 커다란 무게를 지낸 말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누구나 절망할수 밖에 없었을 그 순간,
절망이 아니라 가느다란 희망 한줄기를 부여잡고 일어서기를 선택한 사람.
전신마비라는 장애 때문이 아인라 자신 때문에 죽음을 맞이한 어린 제자의 이름 앞에 자기가 애써 살린 생명조차 부끄러워했던, 굳센 의지 뒤에 지극히 인간적인 나약함을 감추지 않는 사람.
누구보다도 자신의 학문을 사랑하고 모든 걸 바치기 아까워하지 않는 진정한 학자.
그리고, 자신에게 쏟아지는 격려와 위로를 오롯이 학교와 제자들을 위해 돌릴 줄 아는 사람.
그의 두꺼운 책 한권을 읽고 난후 내 가슴을 깊이 울렸던 이상묵 교수에 대한 잔상이다.

흔히 장애를 가진 사람이 그 어려움과 고통을 딛고 다시 재기하는 스토리의 평범한 전개를 예상했던 나는, 사실 전반부를 제외하고는 온통 그의 학문에 대한 열정, 어떻게 연구하고 그것을 위해 지난날을 고군분투하며 지내왔는지 훨씬더 무게감 있게 다뤄지는 중반부를 보면서 오히려 깊은 감동을 느꼈다.
어떤 사람이든 이런 어려움을 극복한 사람에게는 강인한 의지와 희망에 대한 갈구가 있기 마련이지만 이상묵 교수가 보여준 학문에의 열정, 학자라는 데 대한 자부심은 그 분야 대한 지식이 전무한 나에게도 열정적으로 다가왔다.
6개월. 그가 사고 후 재기하기까지 걸린 시간.
그러나 책속에서 그는 3개월이었어도 가능했을거라 말한다.
그만큼 강단과 연구에 대한 그의 열정이 뜨거웠다는 증거가 아닐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단순히 한 인간의 장애 극복기나 새삶에 대한 희망의 증거를 넘어서서
자신이 가진 목표와 그것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거대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에 깊이 감동을 받았다.
늘 무엇인가를 이루겠다고 생각만 한채 중도에 포기해버리기 일쑤였던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0.1그램의 희망>은 단지 이상묵 교수의 것만은 아닌것 같다.
이미 그의 삶을 통해, 그가 보여준 열정과 의지를 통해
나약하기 그지없었던 내 삶에도 이식되어 조금씩 그 강력함을 발휘해갈 것 같다.
조금씩 조금씩, 그도 해냈듯이
나도 나약함을 벗어버리고 내 나름대로의 열정을 태울 수 있는 삶으로 한걸음 다가간것 같다.
그의 0.1그램의 희망을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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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 1 - 하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밀레니엄 (아르테) 1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아르테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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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디자이너인 나는,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내가 책을 고르는 기준은 거의 명확하다.

첫째는 일단 내용이 좋아야 하고, 둘째는 어쩔수없이 그 책의 얼굴, 표지를 보고 책을 집어드는 경우가 많다. 이 두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는 기분좋은 책이 있는가 하면

어쩔때는 한 가지면만 보고 선택한걸 조금은 후회하게 될 때도 있는데,

그런 언짢은 경험은 보통 표지에 홀딱 반해 책을 고르는 경우인 것 같다.

밀레니엄.

그다지 특이할 것도 없는, 오래전 21세기로 들어섰을때 너무 많이 써서 이미 식상해져버린듯한 느낌을 지울수없는 단어를 제목으로 가진 이 책이 내 눈길을 끈건 정말이지 순전히 표지 중앙에 자리잡고 앉아 내 시선을 정면으로 꿔뚫어보는 듯한 소녀의 얼굴 때문이었다.

게다가 부제로 달려있는 한문장은 표지의 소녀와 함께 기이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무의식중에 책을 돌려보던 중 어느 프랑스 독자가 이런 감상평을 붙여놓은걸 보았다.

"일요일 저녁에는 <밀레니엄>을 읽지 마라! 뜬 눈으로 월요일 아침을 맞고 싶지 않다면."

 

사실 이런류의 감상평은 약간의 과장이 포함된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거참 거하게 평을 잘 해주었군 이라고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첫장을 넘겼다.

그러나.

이 <밀레니엄>은 나에게 흥분으로 떠질것 같이 두근거리는 심장박동과

다음을 알고싶어 미칠것만 같은 궁금증을 비롯해 도저히 며칠동안 한시도 내 주위 몇 미터 밖으로 이 책을 떼어놓지 못할 정도의 강한 마력을 쏟아냈다.

마치 짜릿한 롤러코스터를 한바탕 타고 내려온 기분이다.

롤러 코스터를 타기 위해 오랜 시간을 기다려 서서히 정상을 향해 레일을 타고 바퀴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앞으로 닥칠 흥분과 짜릿함에 잔뜩 설레게 된다.

그리고는 정상으로부터의 하강! 빠른 속도로 정신없이 롤러코스터에 몸을 맡기고 나면

세상에 그렇게 신나고 화끈한 느낌을 두번 느끼지 못할 정도다.

밀레니엄은 정말 고스란히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은 느낌을 준 책이다.

첫번째 권은 주인공들이  맞게 된 거대한 음모와 사건을

정교한 플롯과 곳곳에 깔린 예상치 못한 암시들-이 부분은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가는 과정속에서 빛을 발하게 된다 - 그리고 생생한 묘사를 통해 독자를 서서히 사건 한 가운데로 끌어들인다.

특별히 이 책의 주인공들의 독특한 캐릭터는 늘상보아왔던 추리 소설의 전형성을 벗어나기에

재미를 더해준다. 거기에 우리랑은 또다른 스웨덴이라는 나라만의 특징을 담고 있는 라이프스타일, 사고방식을 주인공들의 동선을 따라가며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점도 내겐 재미와 매력으로 다가왔다.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면서 예상 밖의 퍼즐로 맞춰지는 범죄의 실체 또한 놀라울 따름이다.

작가의 상상력과 이야기 전개도 놀랍지만 무엇보다 이 소설을 통해 사회의 어두운 부분의 문제에 대해 정면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는 점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아마 이런 점들이 <밀레니엄>으로 하여금 단순한 추리소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스웨덴과 유럽을 넘어 전 세계를 뒤흔드는 강력한 베스트셀러로서의 면모를 가능케 한점이 아닌가 싶다.

 

정말 오랜만에 읽으면서 호기심과 중단할 수 없는 재미로 무장한 책을 만난것 같다.

이제 그 프랑스 독자의 감상평에 한 줄을 더 추가해야 겠다.

"일요일 저녁에는 <밀레니엄>을 읽지 마라! 뜬 눈으로 월요일 아침을 맞고 싶지 않다면.

그 월요일 아침까지 <밀레니엄>을 다 읽지 않았다면 정상적인 하루를 포기해야 할것이다!"

 

왜냐하면 방대한 분량의 <밀레니엄>이지만

이을 읽다 중단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를 바로 내가 겪었기 때문이다.

(출퇴근 길에도 내눈은 밀레니엄의 주인공들을 좇고 있었고,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에도 온통 정신이 팔려 시간 날때마다 책을 열어 힐끔거리기 일쑤였으니... )

 

이제 누군가 <밀레니엄> 그책 어때? 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당장 읽도록 해! 평생 잊지못할 시간을 선사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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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만화 와탕카
김석주 스토리, 정필용 그림, 황유경 외 감수 / 길벗이지톡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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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거의 매일 거르지 않고 하는 일이 바로 무료신문 챙기기다.
무료신문을 보는 이유중 단연 으뜸인 것이 바로 연재만화 <와탕카> 때문이다.
바빠서 신문을 다 읽지 못하더라도 꼭 챙겨보는 이 코너 덕분에 나의 하루는 대체로 낄낄거리며 기분좋기 시작하기 일쑤다.
이런 생활의 활력소인 만화 <와탕카>가 영어로 나왔다니 반가울 수밖에.
직장이라면 누구나 영어에 대한 일종의 압박이 있을것이다.
그렇게 오랫동안 영어 공부를 했으면서도 정작 한마디 말할라치면 how are you? 한마디 후엔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리는 게 아마 반 이상의 직장인들의 상황일 것이다.
나또한 별반 다르지 않아서 문제풀이용 영어는 몰라도
회화라면 일단 주눅이 들곤 했다.

그럴때 만난 <영어만화 와탕카!!>는 매일 아침 보는 웃긴 만화 한 페이지에서
실제로 써먹을수 있는 살아있는 영어 사전으로 내게 다가왔다.
화사한 노랑 격자무늬의 표지에 눈에 확띄는 제목도 제목이지만 무엇보다 판형이 작고 깜찍해서 정말 편리하다.
처음 봤을 때는 다른 책에선 찾아볼 수 없는 정사각형의 판형이라 그 특이함에 역시~를 외쳤고,
결코 얇지 않은 이 한권이 첫장을 펼친 순간부터 마지막 표지 뒷장을 덮을 때까지 절대 지루하지 않았다는 데서 다시한번 이야~ 하고 감탄할 수 밖에 없었으며,
일상생활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회화를, 그것도 친절한 단어해설까지 곁들여 구성한데
기립박수를 보낼수밖에 없었다.

사실, 처음 책을 펼쳐들고 몇장 읽다가,
이미 그전에 신문에서 다 보았던 내용인데도 너무 재밌어서 그만 뒤의 해설서를 쭉 읽고야 말았다. 그러고 나서 처음부터 다시 찬찬히 영어로만 읽으니 한국어 뜻을 알고 내용의 흐름도 이해한 상태여서 그런지 내 영어실력이 뛰어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영어특유의 표현의 맛을 느끼면서 끝까지 읽어갈 수 있었다.
영어만화라고 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영어로만 줄줄 써있었으면
의욕적으로 공부하려고 집어들었다가도 이내 막히는 부분이 생기면 포기했을 것 같은데
뒤쪽으로 예쁘게 정렬해둔 해설부분덕에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공부하려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린 기획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하나,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쏙 들었던 것이 한쳅터 끝난후 오른쪽에 팁처럼 구성된
<이 문장은 외우자!> 코너다.
몇몇곳을 제외하고는 두줄 이하의 짧은 문장,
그렇지만 외워두면 두고두고 어깨 으쓱하며 써먹을 수 있는 문장이 75개나 실려 있으니
만화 전체의 내용을 다 외우지 못한다 해도
이 문장 외우는 것만으로도 <영어만화 와탕카>는 소임을 다하는 것 같다^^

재미에 못이겨 짧은 시간안에 눈도장 찍었으니
이제 하루 한편씩 짧은 시간이라도 투자해서 다시 읽어볼 생각이다.
하루 딱 5분, 만화 한편으로 영어감각이 살아난다는 카피처럼
십수년을 배워도 머리속 어딘가에서 고이 잠들어 있는 영어의 감각을
와탕카로 흔들어 깨워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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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과 마력의 도시 로마 산책 - 정태남의 유럽 문화 기행
정태남 글.사진 / 마로니에북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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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로마라는 이름을 생각할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늘 다양한 감정을 수반하곤 한다.

콜로세움으로 대표되는 웅장하고 찬란한 그들의 건축술에 대한 경탄, 거리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게 예술적 감각을 염두에 둔 것만 같은 정교함을 보며 느끼는 부러움, 이탈리아 반도에서 아시아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지역을 정복했던 막강한 군사력과 문화와 멸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세계 문화 구석구석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거대한 영향력에 대한 존경심.

오래전 멸망했지만 그 정신만은 그들의 거대한 문화만큼 영원히 남겨질것 같은 로마인들에 대한 존경을 넘어선 동경은

꽤 오래전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면서 시작된 것이었다.

로마인을 알고 싶었고 닮고 싶었기에 당연히 그들의 생활 터전이었던 로마에 대한 관심 또한 깊은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일본이나 홍콩처럼 아시아권이 아니었기 때문에

로마는 마음으로는 가깝지만 물리적 거리만큼 실제로 가까이 다가가 경험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다.


<매력과 마력의 도시, 로마>
제목을 본 순간 이제껏 들어보았던 로마에 대한 수식어 중 가장 적절한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길을 잡아끄는 매력과 한번 그 매력에 빠져들면 도저히 헤어날 수 없는 마력까지 소유한 도시 로마.

끄덕끄덕 나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리며 첫장을 펼친다. 시작부터 기대로 부푼 마음에 책장을 넘기는 손길이 경쾌하다.
책 뒷표지에서 본 문구에 “이틀에서 닷새 사이의 한정된 일정으로 알차고 효율적으로 로마를 여행하는 사람들을 위한 로마 가이드북”이라는 내용이 있었다. 사실 흔히 여행을 위한 가이드북은 짧은 지면에 볼거리, 먹을거리, 살거리 등의 정보를 모두 담아야 하기 때문에 객관적인 설명으로 일관된 경우가 많고 그곳의 유래나 전해지는 이야기들을 함께 실어주는 경우는 흔치 않다. 단기간 여행지에 관한 정보를 얻는데 지극히 충실한 내용이기 때문에 수박겉핥기 식의 소개라는 느낌도 지울수 없다.
그런데 이책 <매력과 마력의 도시 로마산책>은 그 구성부터가 일반적인 여행지 소개용 가이드북의 개념과는 많이 다르다.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마치 저자가 그곳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낯선 방문객인 나와 함께 천천히 로마의 거리를 걸으면서 따듯한 목소리로 그곳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많은 곳을 보려하지 말고, 남들 다가는 곳은 다 가보고 말겠다는 맘으로 스쳐지나가지 말고, 로마라는 도시를, 그 도시를 가득 매우고 있는 로마인들의 역사와 문화를  하나씩 하나니씩 음미하는 기분이었다.


이 책은 크게 16곳의 로마 시내 주요 명소와 의미 있는 역사적 장소를 소개하고 있다.

로마의 언덕 하면 으레 떠오르는 캄피돌리오 광장, 사진으로만 보아도 그 규모와 굉장한 건축술에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는 콜로세움, 로마에 가면 누구나 한번 이상은 꼭 동전을 던져보고야 말게 만드는 트레비 분수,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햅번이 아이스크림을 먹었던 곳으로 유명한 바로크 양식의 계단, 역시 같은 영화 때문에 길게 줄을 서야 겨우 볼수 있을 정도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진실의 입’, 세계 최대의 성당이자 규모와 아름다움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성베드로 성당’, 로마신화 하면 떠오르는 신전 판테온 등.
특히 이들 장소를 선정함에 있어서 누구나 알고 있는 유명한 장소뿐만 아니라 비록 많이 알려지진 않았어도 로마를 이해하는데, 그 문화를 느끼는데 꼭 필요한 장소까지 함께 소개하고 있다는게 정말 좋았다.
또 책의 가치를 더해주는 것으로 나는 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들을 주저없이 꼽고싶다. 전문적으로 사진 공부를 하지 않았지만, 로마에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발견한, 오직 로마 사람이어야만 발견할 수 있는 앵글로 찍은 사진, 특히 야경들이 보는 내내 참 좋았다. 어디서나 볼수 있는 관광 안내용 사진 말고 로마의 속살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분이어서 그 사진들에 더욱 끌렸던 것 같다.
각 장은 제목과 함께 그 지역을 표시한 로마시내 지도로 시작되는데 골목길까지도 섬세하게 표기해 둔 부분이 눈길을 끌었다. 처음에는 지도에 표기된 지명도 한국사람이 이해하기 쉽게 한글로 써놓았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차피 현지에 가서 간판 등이 한글로 표기되어 있을리 없으니 오히려 이렇게 원어로 써놓은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로마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더욱 구체화된 것 같다. 그도 그럴것이 한 장소마다 그곳에 얽혀있는 역사적인 사건, 그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던 배경, 그 장소를 만들고 오늘날까지 어떤 과정을 통해 전해지게 되었는지, 그 속에 담긴 문화를 대하는 로마인들의 태도가 무엇인지까지 정말 재미있고 유용한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나는 로마를, 단지 유럽의 문화를 대변하는 꼭 한번은 방문해볼만한 관광지가 아니라 이제는 로마라는 것이 의미하는 그 모든 것을 직접 느껴보고 만져보고 경험하면서 한번쯤 살아보고 싶은 곳으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나는 관광지로서의 로마가 아니라 살아숨쉬는 문화로서의 로마를 만났다.

결코 가볍지 않은 책의 두께에도 불구하고 첫장을 넘긴 순간부터 이 매력 때문에 중간에 멈출수가 없었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난 아무래도 로마의 마력에 빠져버린 것 같다.


누군가 뻔한 이야기 말고 진짜 로마를 만날 수 있는 책을 원한다고 말하면 나는 주저없이 이 책을 권할 것이다.

로마라는 도시가 어떤 역사적, 문화적 의미를 갖는지 지루하지 않게 설명해 주는 이 책이라면

로마에 대해 알아가고 이해하기 위한 가이드로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로마에서 뿌리 내리고 살아가는 현지인인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다른 책에서 경험할 수 없는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할 테니 말이다.
또 누군가 로마여행을 위해 어떤 책을 읽어야 하냐고 묻는다면 역시 이 책을 권할 것이다.

로마에 갔다면 누구나 보고오길 바라는 장소를 그 유래와 뒷이야기까지 친절하고 유쾌하게 설명하는 책이라면 단연 이 책이 으뜸일 테니 말이다. 물론, 세세한 쇼핑 정보나 가는 법등을 알아야 한다면 조금 아쉬울 수도 있겠지만, 진정한 여행이라는 게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유명 관광지를 우루루 훑고 오는 것은 아닐 테니.. 게다가 그런 정보는 현지에서 얻는 관광안내 책자 정도로도 충분할 테니 말이다.


이제 이 글을 마무리 하고 나면, 나는 따끈한 커피 한잔을 만들어 놓고 차분한 마음으로 이 책의 첫장을 다시 펼칠 것이다.

다음이 궁금해 견딜 수 없어하며 읽느라 혹 내가 놓친 작가의 행간을 찬찬히 살피고 읽으면서 다시 로마의 거리를 산책하려 한다.

첫만남과는 또다른 로마를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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