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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 - 권력은 지우려 했고, 세상은 간직하려 했던 사람들
김만선 지음 / 갤리온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유배. 억울한 누명, 스산한 정적, 고독함, 한(恨), 독야청청한 선비의 절개와 청아한 지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림받아 세월속에 잊혀져 버린 충신의 비애.
유배라는 단어가 내게 각인되어 있는 이미지는 대략 이렇다.
사극을 통해 접한 유배.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이미지로 유배라는 말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던 참에 읽게 된 책 <유배>는 이런 피상적인 나의 생각을 뒤바꿔 놓은 계기가 되었다.
역사속에서 실수로든, 고의적으로든 죄인이라는 이유로 유배인들의 기록은 단 몇줄에 그치는 것이 대부분이고 승리한 자들의 입장에서 서술된 역사기록 앞에 그들이 설 자리는 조금도 없었다. 당연히 학교에서든, 개인적인 관심을 따라 습득한 것이든 우리가, 내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 속에도 유배인들의 존재는 극히 미미할 뿐이었다.
그러나 유배지에도 한 시대, 자신이 생각한 뜻을 불의에 대항해 끝까지 꺾지 않고, 충심과 지조를 지켜냈던 인물이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배라는 상황속에서 그들이 겪어내고 감내해야 했던 고통과 외로움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저 사극 속에 박제된 그들의 모습만 알고 있었을 뿐 그들도 역사의 승리자들처럼 살아 숨쉬는, 높은 이상과 뜻을 가지고 있는 존재임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 책 <유배>는 이런 의미에서 내게 “책을 읽는다”는 행위에 대해 다시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볼 기회를 주었다. 그저 흰 종이 위에 인쇄된 글자를 읽는 행위가 아니라 그동안 내가 모르고 있었던 것을 새롭게 알게 되고, 잘못 알거나 아예 인식의 그늘에서 밀어내어 버렸던 사실들을 바로 잡아 주는 것, 그래서 세상에 대해 고른 시각과 균형잡힌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독서의 역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유배>를 읽는 내내 마음을 들뜨게 만들었던 것은 의외를 요소 때문이었다. 책의 내용 자체도 좋았지만 지금은 잘 쓰지 않아 있는지 조차 몰랐던 순우리말을 곳곳에 사용하고 있는 것이 신선했다. 게다가 교과서를 통해 배웠던 지루한 느낌의 시조나 창가 등이 쓰여진 배경과 그것을 지을 당시의 인물의 감점등을 알고 보니 훨씬 풍성한 이해가 가능했고 어떤 경우엔 그 시조 내용이 전혀 새롭게 내 안에 공감되기도 했다.
저자가 의도했던 그렇지 않았던지간에 이런 작은 부분들이 이 책을 더 가치있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았고 우리말, 우리의 것의 중요성이 많은 부분 간과되고 있는 상황들이 비일비재 한 때여서 그런지 그 단어 하나, 시조 하나가 그렇게 소중해 보일 수 없었다.
게다가 유배지를 직접 찾아다니며 하나하나 애정을 담아 쓴 글에는 저자가 이 책을 쓰는 기간 내내 각 인물들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고, 살아있는 벗을 대하는 듯한 깊은 애정으로 담아냈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들에 대한 가물한 기억을, 흔적뿐인 자취를 발견하고 소개해 오롯이 독자들에게 전하려 했던 저자의 숨은 의지가 느껴진다.
몇해전 출판계에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던 유홍준 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읽었을 때와 같은 뿌듯함, 뭉클함마저 느껴졌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도, 정당함을 주장하지도 않고 오롯이 그 인물의 감정을 그의 유배인으로서의 삶을 담아낸 이 책은 새로운 차원의 한국사인물 열전이 될 것이다.
역사 속에 묻혀 있던 인물을 드러내어 역사기록 몇줄로 박제된 인물이 아니라 생각하고 느끼고 외로워하고 그리워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 <유배>는, 내게 편향되었던 역사 인물인식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준 의미있는 책으로 남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