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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 천년, 탄금 60년 - 가야금 명인 황병기의 남기고 싶은 이야기
황병기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황병기 라는 이름은, 사실 내겐 그리 친근한 이름은 아니다.
평범한 회사원인 나로서는 신문이나 잡지의 한면을 장식하는 자랑스런 한국인 정도의 인식이었달까.
우리 전통악기인 가야금을 고집스레 지켜온 장인이자, 과거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선구자, 국악의 원로... 이런 정도의 정보가 황병기 선생님에 대해 가지고 있던 정보의 전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분의 전기가 새로이 출간되었을때 주저없이 책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예전에 어느 책에선가 이분의 인터뷰를 읽었을 때 느껴졌던 단단하고 굳건한 소신의 근원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그리고 왠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멀고 어렵게 느껴지는 이 분께도 당신의 딸보다 한참 젊을 천재 첼리스트 장한나와 음악인으로서 특별한 우정을 나눈다는 기사를 보고 내가 느낀 의외성도 한몫한 것 같다.
어쨌든, 잘은 모르지만 조금은 더 깊이 알고 싶은 황병기 선생님의 삶을 읽기 시작하면서
나는 내내 두 가지 감정을 번갈아 느끼곤 했다.
하나는, 첫인상이 그러했던 가야금에 대해서는 타협하지 않고 최고의 것을 추구하려 일생 노력했던 진정한 예술인으로서의 고집과 장인정신을 보며 역시, 국악계의 큰 어른이며 세계의 격찬을 받기에 조금도 부족함 없으신 분이구나 하는 무한한 존경심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틀안에 갇혀 있는 분이 아니라 때론 괴상하게 여겨질만큼 실험적이고 자유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는 데 대한 경이였다. 일상의 생활에서든, 가야금 연주와 작곡에서든 말이다.

사실, 황병기 선생님의 곡을 나는 몇 곡 들어보지 못했다.
기껏해야 이분의 대표곡인 침향무, 비단길, 그리고 제목은 생각나지 않지만 황병기 선생님이 연주하셨던 몇곡 정도... 그것도 실황이 아니라 녹화방송을 본게 전부였다.
이분의 음악을 들으면서 사극이나 다큐멘터리에서 듣고 보았던 가야금에 대한 내 고정관념이 산산히 부서졌고, 그와 더불어 황병기 선생님의 음악이 듣고 느끼기엔 그리 만만치 않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아마 귀에 익숙치 않은 실험적인 면이 많아서였나보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 곡들에 대한 숨은 이야기들과 작곡의도, 황병기 선생님의 애착을 서린 이야기들을 보니 다시 한번 찾아 그분의 곡들을 음미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책 마지막에 친절하게 정리되어 있는 황병기 선생님의 곡 목록을 유심히 읽으면서 꼭 들어봐야겠다 결심히 제목에 밑줄을 그어놓기도 했다.
그만큼 <오동 천년, 탄금 60년>은 황병기 선생님의 삶과 음악에 대해,
국악이나 가야금에 전해 문외한인 나에게조차 관심과 애정을 쏟아붓게 만들어준 책이었다.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표지를 봤을때는 사실 큰 어른의 삶을 다룬 내용이니 무겁고 철학적이고 뭔가 심오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그렇지만 걱정과는 달리 나는 이 책을 다 읽어내려가는데 채 하루가 걸리지 않았다.
단락단락 짧은 에피소드로 묶여진 장들이 그리 길지 않았다는 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글 자체가 가식도, 교만도 없이 소설처럼 쉬운 문체로 씌여져 있어서 읽는데 전혀 부담이 없었다. 책 머리에 보니 이 책을 오랜동안 황병기 선생님이 <중앙일보>에 2007년부터 연재하시던 이야기를 묶어 정리한 책이라고 하던데, 그런걸 보면 편집진의 손질이 있었겠지만 황병기 선생님이 참 달필이시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만큼 잔잔하고 격의없는 문장들은 황병기 선생님의 삶과 생각에 더 친근하게 다가가게 해주었다.
아마 한참어린 장한나 씨와도 깊은 친분을 나눌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소탈함과 겸손함, 그리고 음악에 있어서는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 선생님의 열린 마음 때문인것 같다.
어릴적의 에피소드, 처음 가야금을 잡게 된 이야기, 다양한 작업에의 참여와, 국악을 일으키기 위해 마음을 모았던 이야기들을 읽는데 괜히 가슴이 울렁거리기도 했다.
개인의 삶을 다룬 책이라고 하기엔, 우리것, 우리 음악에 대한 황병기 선생님의 애정과 비전이 문장 곳곳에 스며있어 때론 경이로움마저 느껴졌다.
그만큼 이분의 삶은 단지 음악을 하는 음악인으로서가 아니라 음악이 아예 삶속에 완전히 밀착되어 개인의 삶과 가야금을 분리할 수도 없을 정도의 경지에 이르르게 된 것 같다.
책 마지막에 수록되어 있는 황병기 선생님과의 인터뷰는,
꽤 시간을 들여 읽긴 했지만 그만큼 더 깊이 황병기 선생님에 대해 알수 있어 너무 좋았다.
그리고 책 전반에 산발적으로 나왔던 가야금 음악에 대한 여러 용어나 상식들도 오히려 잘 정리 되어 있어서 상식을 넓히는데도 도움이 된 것 같다.
단지, 국악의 어른이라 느꼈던 황병기 선생님을
존경하는 시대의 한 사람으로 내 마음에 각인시켜준 책을 만나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