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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레시피 Slow Recipe - 천천히 걷고 싶은 당신에게
휘황 글.그림 / 나무수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서른. 한창 왕성하게 일할 나이. 누구보다도 바쁜 나이.
게다가 경력 14년차의 모델이라면, 디제이라면
런웨이 위에서, 화보촬영을 위한 스튜디오에서, 무대를 향해 바쁜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정신없는 도시의 길 한 가운데서, 그리고 열기가 가득한 클럽의 플로어 위에서
그 누구보다도 정신없이, 바쁜 삶을 살고 있을 그런 나이. 그리고 그런 사람.
여기 <슬로레시피>의 주인공 모델 휘황이 바로 그렇다.
휘황을 알게 된건 관심있게 보았던 잡지에 그가 등장하면서 부터였다.
역시 중성적인 외모에 우연히 보게된 tv속 멋진 캣워크에, 그의 스타일리쉬함에
나랑 동갑인, 그러나 전혀 다른 곳 사람같았던 멋지기만 한 그.
그게 모델 휘황에 대한 내 이미지였다.
그런 그가 "천천히 걷고 싶은 그대에게"라는 슬로건으로 책을 냈다니
왠지 어울릴것 같지 않다는 미묘한 느낌이랄까, 호기심도 불일듯 일어나 읽어보게 되었다.
<슬로레시피> 속의 그는, 그냥 자기 삶을 사랑하고 친구들을, 사랑스런 강아지들과 보내는 시간을
소중히 할 줄 아는 보통 청년이었다.
누구보다도 바쁜 서른을 보내는 그의 삶 속에 이렇게 소소하지만
미소짓게 만드는 소중한 순간들을, 소중한 그대로 아낄 줄 아는 그가
또다른 의미로 멋지게 보이기 시작한 순간이다.
스타일리쉬한 그의 모습과 어딘지 모르게 닮은 표지부터
보는 즐거움을 몇배나 배가시켜준 사진과 딱 어울리는 그의 글을 읽으면서
나도 잠시 내 삶을 돌아보고 한걸음쯤 쉬어가야겠다는 느린 마음을 그에게서 배우게 된다.
재일교포 3세로 길거리에서 캐스팅된후로 쭉 14년을
능력있는 모델로, 사람들을 사로잡는 그만의 매력으로 자기만의 길을 찬찬히 만들어가고 있는
유명모델 휘황의 모습 뒤에 살짝 감춰진, 그래서 알고나면 더 매력적인
소박하고 인간적인 그냥 청년 휘황의 모습에 난 다시 반해버렸다.
자신이 만든 요리로 사랑하는 친구들을 즐겁게 할 줄 알고,
이사간 집을 꾸미기 위해 온몸이 뻐근하도록 직접 페인트 칠을 하고 뛸듯이 기뻐하고
자연에 좀더 가까워지기 위해 작은 것 하나라도 다시 쓰고 아껴쓰려는 청년 휘황은
더이상 런웨이 위의 화려한 그가 아니라
바쁜 삶에 치여 어떻게 사는지도 몰랐던 내게
천천히 삶의 순간을 돌아보고 소중히 하고 주변을 돌아보도록 가르쳐준
옆집사는 친구같은 그런 느낌으로 다가온다.
<슬로레시피>는
화려하진 않지만 맛깔나게 잘 차려진, 맛있는 식탁에
소중한 지인들과 둘러앉아 느긋하고 기분좋게 먹은 저녁 한끼같은 느낌이다.
성공해야 한다, 남들보다 높이, 더 멀리, 먼저 날아야 한다, 도태되지 말아야 한다, 살아남아야 한다,
라는 나를 좀먹는 "빨리빨리" 인생으로부터
책을 펼친 그 잠깐의 시간만이라도 한숨돌리고 발걸음을 늦출 여유를 가르쳐준 책
<슬로레시피>는 그런 책이다.
이 천천히 걷는 삶, 느리게 주변을 하나하나 사랑할 줄 아는 삶을 배우기까지 아마
모델 휘황도 그 누구보다도 치열한 순간들을 살아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천천히 삶을 걷기"가, "슬로레시피"가 내게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