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 - 유쾌하고 신랄한 여자 장의사의 좋은 죽음 안내서 시체 시리즈
케이틀린 도티 지음, 임희근 옮김 / 반비 / 202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나라만 해도 모든 국토가 무덤이 될 것이라는 우려 속에서 매장이 화장으로 바뀐 세월이 그리 길지 않다. 장사지낼 땐 매장꾼들이 부르는 대로 돈이 나갈 수밖에 없는 경우를 겪기도 했고, 화장이 부끄럽지 않은 일로 받아들여지는데 시간이 걸린 것을 기억한다.

미국의 경우는 화장장이 개인적으로 운영되고 거기에서 시신의 염, 방부처리, 화장이 일사처리로
말 그대로 시체처리로 이루어지는 모양이다. 협회, 자본들이 얽히면서 장례 당사자들이 죽음을 보고, 애도할 시간은 특별하지 않은 경우 주어지지도, 취하지도 않는 모양이다. 치워져야 하는 부패한 짐이 되버렸다. 예전 어른들 말씀대로 ‘갖다버리기 바빠진‘ 것이다.

일주일에 몇 십 구의 시체를 운반하고 화장 하며 사람들이 굳이 죽음을 숨기려 화장과 방부처리를 하는 이유를 알고 싶어 장의학교를 다니기까지한 작가는 좋은 죽음을 가질 수 있음을 바라며 이 글을 썼다. 죽음을 이렇게 문화적, 사회적 지식을 전달함 없이 직접적으로 전해주는 책도 드물지 싶다. 내가 이렇게 화장되는구나!
우리나라의 장례는 케이틀란이 주장하는 죽음과 미국식 장례의 중간쯤에 머무는 것 같다. 화장이나 방부처리 과정이 조금씩 들어오는 듯 싶은데 오히려 예전 내할아버님처럼 가족들이 씻기고 좋아하시던 옷을 입고 가시는 것도 좋으리라.
한 번쯤 읽어볼 일이다. 내가 죽은 후 어떤 과정을 거쳐 사라지는지, 내 마지막이지만 내가 모를 그 일을 알아 미리 정할 수 있다면 내 가족들의 황망스러움을 덜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죽음은‘알려져야 한다.‘ 어려운 정신적, 육체적, 정서적 과정으로서 알려져야 하고 존중받아야 하며, 있는 그대로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시신에게는 누가 기억해주는 게 필요하지 않다. 사실 시신에겐 더 이상 아무 것도 필요치 않다. 거기 누워 부패해가는 것은 행복 그 이상이다. 시신을 필요로 하는 것은 ‘유족 당사자‘이다. 시체를 바라보면서, 그 사람이 떠났으며 이제 더 이상 삶이라는 경기에서 활동하는 선수가 아님을 안다. 시체를 바라보면서 자신을 보고, 자기 자신도 언젠가는 죽을 것임을 안다. 눈으로 보는 것은 스스로 알아차림을 부르는 것이다. 그것은 지혜의 시작이다.‘

‘그의 한쪽 팔을 씻기려고 쳐들다가 잠깐 멈추었다.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도 이 일을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걸 알았으면 한다. 씻김, 편안함, 이 내밀한 느낌, 이 안정감은 만약 사회가 미신의 짐만 벗는다면 누구든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