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기술
조승연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3년 7월
평점 :
품절


'공부기술'에서 20분 공부론이나 5분 집중론 등으로 기존의 공부의 틀을 깨려는 시도를 하였던 저자의 두 번째 책이다. '공부기술'에서 자신의 경험만을 근거로 만든 학습법을 설파하여 전국의 많은 청소년들에게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것과는 달리, 이 책에서는 구체적인 학습법의 제시보다는 공부 이전의 '생각' 이라는 개념에 저자의 생각이 집약되고 있다. 내가 본 이 책의 요점은 다음과 같다.

즉, 학문들을 너무 구별짓지 말고 통합적으로 간주하라는 것이 그 첫 번째이다. 수학과 음악, 과학과 예술 등의 학문은 서로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본질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하나의 근원에서 발생된 학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법학의 기저에는 문학, 철학, 역사 등의 정신이 스며들어 있으므로 법학을 하기에 앞서 문학, 사학, 철학을 섭렵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두 번째로는, 외우는 작업 대신에 생각하는 작업으로 모든 공부를 대신하자는 것이다. 단순히 외우는 것만으로는 학문들의 선후관계를 명확히 파악할 수도 없을뿐더러, 설사 그것을 외웠다 한들 실제로는 전혀 효용가치가 없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따라서 '공부기술'에서 말했던 방아쇠 효과(trigger effect)를 이용하여 이론의 형성과 과정을 공부하다 보면 난해했던 이론이 이해가 되고, 그 이론을 실생활에 적용시켜 보면 절대 잊어버릴 수 없는 자신만의 지식이 된다는 것이다.

이 책의 원론은 상당히 훌륭하다. 사실 저자의 말이 다 맞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공부할 때 암기보다는 이해를, 무조건적인 수용보다는 비판적 사고를 하는 것이 진정한 공부의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전적으로 저자가 받은 미국식 교육의 영향이지만, 진정으로 생각하는 훈련은 중요하다. 우리 나라 학생들이 고등학교 때까지는 매우 우수한 학업 성적을 보이다가 그 뒤로 갈수록 능력이 저하되는 것도 생각의 훈련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학문 사이에는 칼로 무를 베듯이 정확하게 나누어지는 경계가 희미하기 때문에 다방면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도 매우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이해가 중요하다고 해서 암기가 무시될 수는 없다. 오히려 이해된 것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이 공부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저자가 말하고자 한 것은 '무조건적인 암기' 에 대한 거부였겠지만, 외운다는 것도 중요한 학습 방법이라는 것을 저자는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민족이라고 불리는 유대 민족을 예로 들어보자. 그들은 나라를 빼앗기고 디아스포라(이방 유대인)로서 전 세계를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자신들이 믿는 신과 종교에 대한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유대인들은 자녀가 어렸을 때 율법 교육을 철저하게 시킨다. 부모는 자녀에게 율법의 의미를 설명한 후 그것을 자녀에게 '외우도록' 지시한다. 만약 유대인들이 율법의 '이해' 에만 치중했다면, 오늘날 유대인의 영향력은 줄어들었을 지도 모르겠다. 이해와 암기 둘 중 어느 것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저자는 '암기'는 싫어하지만 '기억'은 좋아하지 않는가)

마지막으로 저자의 글쓰는 태도에 대해서 언급하고 싶다. 이 책을 쭉 읽어나가면서 저자가 기존의 틀을 바라보는 관점이 약간 '오만하다' 는 생각이 들었다. 기존의 틀을 벗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면 공부 방법의 혁명을 불러일으킬 만한 책을 쓸 수도 없었겠지만, 24년이라는 길지 않은 경륜으로 세상의 모든 것들을 재단하는 그의 현란한 글솜씨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공부가 하나의 기술과 같다는 저자의 말처럼 공부가 쉽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여기는 한국이고, 동양 문화권에 기반을 둔 사회이다. 저자의 사고 스타일은 철저히 서구 방식인데, 그것은 이곳의 실정에 부합하지 않는다. 전투적이고 정복적인 저자의 사고로 우리를 재단하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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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女心 2005-05-26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정말! 이렇게 깔끔하게 리뷰를 써주시니 무슨말씀을.. ! 존경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