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2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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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분의 채널이었는지 기억이 잘나지 않지만 “여름이 가기전에 꼭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강조하던 책이었다.

  왠지 신뢰가 가는 코멘트였기도 했고, 제목과 표지가 너무 좋았다. <화산의 기슭에서>라는 원제를 바꾼 역자의 센스가 주요했다는 것이다. 🙂

  책은 서정적인 제목답게 그림을 그려내듯한 아름다운 문장으로 채워져 있었고 잔잔하면서도 세밀했다. 오락적 요소가 거의 없다시피한 이 소설을 은은하게 밀려오는 파동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매력이다. 반대로 얘기하면 조금만 산만해져도 읽기 힘든 책이라는 거다 🙃

“마리코 옆에 앉아서, 사랑이니 당신의 눈이니 하는 노래를 듣고 싶기도 하고, 그래서는 몸 둘 곳이 없어질 것 같은 두 마음 사이를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잘 다루지 못하는 새 노를 손에 들고,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채, 나는 작은 보트를 젓기 시작하고 있었다. 곁눈질하다가는 금방 밸런스를 잃고 말것이다. 보트는 어느 틈 엔지 온화한 만을 빠져나가 망망한 큰 바다의 일렁임 속에서 어설프게 앞으로 나아가려 하고 있었다”

그냥 단순하게 적어도 되는 문장인데 주인공의 심리를 은유적으로 그려낸다. 그 표현이 너무 아름답기도 하고 어떤 마음인지 알 것 같아서 좋았다.

잔잔한 소설에는 굴곡이 적어 이렇게 심리를 표현하는 것이 좋은 것 같다.

하나의 계절에 대한 이야기를 400페이지에 옮겨적었다는 것은 얼마나 세세하게 적은 것인지 알 수 있다. 일상적인 얘기지만 지루하지 않았고 건축에 대한 여러가지 사실을 알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직장인으로서 무라이 선생의 일에 대한 태도에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도 다른 사람의 말에 밀려 다니지 않고 죽기 살기로 고집부릴 수 있을 정도의 신념을 가져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어른들의 <나의 여름방학 이야기> 같은 소설이었지만, 그만큼 평온하고 잔잔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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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와 태양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홍한별 옮김 / 민음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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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귀여운 제목과 표지 디자인에 책을 펼치면 아름답고 감동적인 동화가 툭하고 튀어나올 것 같았다. 클라라가 로봇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기까지 꽤 많은 페이지가 필요했다.

  매장의 티셔츠들이 서로 얘기하고 있나? 아이들은 공룡 무늬 티셔츠를 좋아하니까.. 그리곤 매장 매니저는 여기저기 옮겨다 준다는 글을 읽고는 봉재 인형인가? "태양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니 인형에서 생명을 주는 설정일 수도 있을 거야.."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너무 동화같은 문장들에 나는 감히 클라라가 로봇일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책을 덮을 때까지 클라라는 빨간 원피스를 입고 해바라기 같은 얼굴을 하고 있을 것 같았다. 항상 따뜻한 마음으로 인간을 관찰하고 이해하려 하는 클라라의 행동들은 인간이 잃어가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전에는 사람이 자발적으로 외로움을 선택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외로움을 피하려는 소망보다 더 강력한 힘이 있을 수 있다는 걸 몰랐어요.

  이 아름다운 소설은 조시와 클라라의 감동적인 이야기 속에 뒤틀려버린 세상의 부조리함을 말하고 있다. 조시를 통해서는  향상에 대한 인간의 욕구를 보여주고,  클라라를 통해서는 감성적인 인간 본연의 모습에 가까워지고 있는 로봇을 모습을 보여 준다. 작가는 이런 두 존재의 슬픔과 사랑의 모습으로 인간과 로봇의 이상적인 관계를 얘기하고 싶었을까. 인간다움을 버리면서까지 향상을 바라고 로봇에게는 인간다움을 요구하는 모순된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읽는 동안 메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스토리가 워낙 아름답기도 하고 탄탄하기도 해서 그 속에 몰입되어 버렸다. 조시가 건강하기를 바랐고, 클라라가 부서지지 않기를 바랐다. 어느 한쪽이 망가져서 다른 한쪽을 구하는 희생의 스토리가 아니기를 바랐다. 클라라를 홀로 두는 조시가 미웠고 태양에게 얘기를 가는 장면에서는 조마조마 했고 클라라를 도와주는 릭의 모습에 안도하기도 했다. 클라라가 태양을 보고 2층으로 달려가는 장면에서는 나도 함께 조시가 건강해지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랐다. 

  책을 덮고 나서야 '클라라가 로봇이었지'라고 생각할 정도로 클라라는 인간에 가까울 정도로 표현되고 있었고, 더없이 아름다운 이야기였지만 무서운 이야기이기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 뒤에 이렇게 무서운 메시지를 던지고 있었던 것일까. 그제서야 이 책이 SF소설일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전자 공학이 가져다 줄 미래는 '더 향상될' 수 있는지에 따라 새로운 계급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리고 클라라처럼 아름다운 모습을 상상하며 로봇에게 '감정'을 만들어줄지도 모르겠다. 로봇에게 '감정'을 심는 것은 잔인한 일인 동시에 무서운 일이다. 애완동물에게도 학대를 가하는 인간이 로봇에게 그러지 않으라는 법도 없고 로봇 또한 항상 다정할 거라는 보장도 없다. 그리고 로봇이 인간의 자리에서 소중한 사람을 대체하는 연극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상상하기에도 섬뜩한 일이다.

하지만 저는 카팔디 씨가 잘못된 곳을 찾았다고 생각해요.
아주 특별한 무언가가 분명히 있지만 조시 안에 있는 게 아니었어요.
조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안에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카필디 씨가 틀렸고 제가 성공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책의 말미에 클라라는 옛 매니저와의 해후에서 자신이 조시를 완벽하게 연기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나중에서야 비로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얘기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존재의 가치까지 알아본 클라라의 말은 작가가 진정하고 싶었던 얘기가 아니었을까.

  태양은 모든 생명을 자라나게 하고 살아가게 하는 본질적인 존재일지도 모른다. 사회 시스템에 지배를 받으며 끊임없는 경쟁에 내몰리며 식어가는 따뜻함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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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을 놓아줘 - 디그니타스로 가는 4일간의 여정
에드워드 독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달의시간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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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으로도 누군가의 ‘이별’을 이야기 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조금은 감동적이고 많이 아름다운 책이길 기대하면서 서평을 신청했고 #책세상 에서 진행하는 서평 이벤트에 참석하게 되었다.

이 책은 루게릭이라는 불치의 병에 걸린 아버지가 안락사를 선택하고 안락사 지원 병원이 있는 스위스까지 세 아들과 함께하는 여정을 적었다. 여행 중에 일어나는 갈등과 표출되는 애증.. 그리고 인정에 다다르는 모습을 600p가 넘는 지면에 섬세하게 적어 놓았다.

  이야기는 불치의 병에 걸린 아버지가 지인과 함께 안락사 지원 병원에 가는 것을 막내 루이스가 알게 되면서 시작된다.

루이스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자란 두번째 부인의 아들이지만, 형들은 그 불륜으로 상처와 애증을 가진 첫째부인의 아들들이다. 하지만 형들은 막내에게만은 친절했다.

  시대적 배경이 꽤나 현대에 가까워서 그런지 아버지의 불륜은 꽤나 불편했다. 두 아들의 애증을 쥐여짜기 위한 뒤틀린 인간관계를 위한 설정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읽는 내내 아버지의 말은 위선과 자기합리화 같이 느껴졌다. (꽤나 멋드러지는 말을 많이 했음에도…) 각자의 세상에서 아버지와 벽을 쌓아가고 있는 두 형제에게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여정>을 빌미로 동행을 강요한 것은 아니었을까. 물론 아버지의 생각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여행은 완성되어 간다.

박식하면서도 자기 주장이 뚜렷한 아버지는 여행을 통해서 아들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생겼고, 두 아들은 아버지에 대한 응어리를 털어내려 한건지 모르겠다. 그런 그들을 보면서 막내 루이스는 그들을 이해하려고 했는지도..

나흘간의 여정은 짧다면 짧을 수 있지만, 내적 갈등과 분노 표출.. 아버지와 대립을 통한 서로간의 조금의 이해가 생기기엔 충분했을 것 같다. 마지막엔 안락사에 대한 것 또한 아버지의 선택을 인정해주게 되는 듯 하다. 하지만 반대로 보면 아버지의 굴레를 아들에게 씌워버리는 건 아닐까도 싶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꼭 죽을 것처럼 호수를 질러가는 루이스의 모습에서 책장을 한참 쳐다보게 되었다.

책은 재밋게 잘 읽었지만, 막상 후기를 적으려니 소설 속 두 아들에 동화 된 듯 속에서 일어나는 분노로 욕이라도 적고 싶은 생각이 들았다.

해피엔딩 같지 않은 해피엔딩. 나에겐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았지만 이런 갈등과 내적 분노를 섬세하게 다루는 소설을 좋아하신다면 읽어볼만한 하진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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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게 (양장) - 기시미 이치로의 다시 살아갈 용기에 대하여
기시미 이치로 지음, 전경아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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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는 세상 모든 마흔에게 하는 얘기를 담은 책이다. 사실 이 책은 #기시미이치로 교수의 다른 책 #늙어갈용기 와 많은 부분을 공유한다. 그래서 이 책은 마흔이 아니더라도 공감할 수 있는 얘기가 많다.

  이 책은 기시미이치로 교수의 경험담이 담겨 있다. 심근경색으로 수술을 한 것과 노부모를 간병했던 것. 그 속에서 자신이 깨달은 부분을 자연스럽게 연결하여 풀어낸다.

마흔. 어떻게 보면 가장 활발하게 경제활동을 하고 있을 나이이지만 잃게 되는게 더 많아지기 시작하는 나이이기도 하다. 

성공을 목표를 달려온 우리에게 늙어간다는 것은 성공에 대한 장애물로 인식되기 마련이다. 생산성, 효율성이라는 잣대로 자신을 평가하고 끝이 없는 마라톤을 뛰고 있다.

하지만 행복은 성공과 그렇게 상관이 없다. 사람은 어느 때나 행복할 수 있으며 나이가 들어 무력해지더라도 행복할 수 있다.

삶은 마라톤이 아니다. 춤과 같은 것이다. 매순간 즐길 수 있으며 힘들면 쉬면 된다. 자신의 상황에 맞게 추면 된다. 추고 싶다면 언제라도 출 수 있다.

사회를 호령하던 시절을 지나 은퇴를 하게 되면 우리는 사실 잘하는 나를 잃게 된다. 하지만 그 동안 많은 경험와 지식을 획득했다. 자신만의 노하우로 얼마든지 잘할 수 있는 상태인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자신의 불완전함과 마주하기를 싫어한다. 그 전의 모습이 완벽할수록 더 그럴거다. 하지만 새로 시작하는 일에는 언제나 서툴음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잘하지 못하는 나와 마주보는 것은 잘하게 되는 것의 시작이다. 어떤 평가에도 개의치 않고 배우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지금의 자신보다 나아지는 노력은 살아가는 보람을 느끼게 하고 인생의 활력을 가져다 줄 것이다.

죽음은 늘 우리의 곁에 있다. 나이듦이 꼭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늘 살아오던 방식으로 오늘을 행복하게 살면 된다. 죽음을 생각하고 현재를 소홀히 하는 것은 현실도피와 같다. 

가족이나 젊은 사람들이 “저렇게 나이들면 좋겠다” 라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언젠가 일터라는 무대에서 내려오면 앞을 향해 조금씩 더 나아가는 자신과 마주하며 행복한 2막을 열어나갈 수 있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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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학자의 노트 - 식물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
신혜우 지음 / 김영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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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책을 받아 들고는 촤르르 넘겨 봤다. 식물도감 같은 책이라면 그대로 서재에 꼽아 둘 요량이었다. 책장이 잠깐잠깐 멈출 때마다 인쇄된 사진 대신 정성껏 그려진 파스텔톤의 식물 그림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 식물 채집 후, 따라 그려 과제로 제출하던 그런 것들이었다. 정성껏 그려진 그림 옆으로는 빼곡한 글이 있었다. 저자는 하고 싶은 얘기가 참 많은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왜 굳이 손으로 그렸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에야 촬영 기술이 좋지 않아 그랬다 치더라도 왜 지금의 시대에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았을까? 분명 저자는 식물학자 일 터인데.. 그런 생각을 가지고 다시 첫 장으로 돌아왔다. 프롤로그를 읽고 본문에 다다르니 저자가 식물을 연구하는 사람이기 이전에 식물을 참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식물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말은 조금 생뚱맞기도 하고 가끔은 너무 철학적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식물로 힐링을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냥 자연스러운 일이다. 묵묵히 삶을 살아내고 있는 식물에게 사람들은 무심코 말을 걸고 또 대답하고는 한다. 그것이 설령 자신과 하는 내면의 대화일지라도 그 순간 식물은 존재만으로도 가치를 가지게 된다.

  <식물학자의 노트>는 식물을 이해하려고 하는 작가가 그림이라는 느린 기록을 통해 식물과 끊임없이 대화 한 내용을 적어 놓았다. 식물을 그림에 담는다는 것은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식물의 여러 면을 살펴보고 개성을 파악하고 특징을 살려 그려내야 하는 작업인 것이다. 생각해 보면 사진으로 묘사하기가 더 어렵기도 할 것이고 그림으로 그려내는 것이 식물에 대한 감정을 담기 더 좋았을 거다. 

  식물은 동물처럼 살아가기 어렵다고 삶의 터를 옮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기후와 토양 같은 환경 조건이 자신에게 맞아야만 살아갈 수 있다. 또한 번식을 도와줄 수분 매개자도 필요하다. 식물은 혼자서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위대한 생명체인 동시에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생명체이기도 하다. 그래서 식물은 보다 더 섬세하게 진화했다. 난초는  살아가기 위해 곰팡이의 도움을 받고 수분 매개자의 활동 시간에 맞춰 꽃을 피운다. 때로는 수분 매개자가 잘 찾을 수 있도록 냄새를 내기도 하고 자신의 꽃가루만 가질 수 있도록 특별한 구조로 수분 매개자의 진화에도 영향을 준다.

  최재천 박사는 어느 강의에서 이런 말을 하셨다. 다윈의 진화론 중에 '자연선택설'이라는 이론이 임팩트가 있어 다들 '경쟁'이라는 단어에 집중을 했었다고. 그래서인지 세상은 살아남기 위한 '경쟁'은 당연시되고 있다. 하지만 다윈의 또 다른 이론에는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받으며 진화하는 '공진화' 이론도 있다. 지구 상에서 가장 거대한 생명체인 식물이 지구에서 가장 많은 수를 가진 생명체인 곤충과 공진화한다는 것은 최근에서야 호기심을 가지고 보게 된 것이다.

  자연의 세계는 늘 선택의 결과이고 경쟁과 약육강식이 존재하는 세계라고 다들 생각한다. 하지만 자연에서는 많은 생명체들이 서로 도와가며 살아가고 있다. 이는 진화의 방향이 '경쟁'이라는 한 방향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도와가는 이타의 세계도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다른 이를 돕는 것이 어떻게 보면 자연의 섭리의 한 부분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이런 이타적인 마음을 가지고 식물을 대하게 된다면, 지구에서 살아온 많은 종들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이 인간의 무분별한 채집/수렵 활동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인간은 식물을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로 인식할 수 있을까? 식물은 마음의 힐링이 필요할 때만 찾는 나만의 화분 속 친구를 넘어 지구를 덮고 있는 모든 식물들과의 공존을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작가는 그동안 느꼈던 식물의 목소리를 책에 담아 보여 주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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