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모든 두려움
알렉스 핀레이 지음, 배지은 옮김 / 현대문학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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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스스로 '구식으로' 썼다는 말처럼, 좋은 의미로나 나쁜 의미로나 최근에 찾아보기 어려운 스타일의 작품이다. 수많은 단점아닌 단점들을 압살하는 한방을 가진 작품이기도 하다.

작품 구성을 칭찬하는 번역가의 말과 달리 이 작품은 최근 눈이 부쩍 높아진 한국 미스터리 독자들에게 어필할만한 참신한 구성이나 놀랄만한 반전, 서술트릭이나 특수설정같은 그 어떠한 기교도 없다.

심지어 등장인물들이 다 평면적인데다 (대체 왜 나오는지 모르겠는) 주인공의 친구 그룹들은 작가가 작가의 말에서 몰아봤다고 고백한 넷플릭스 드라마들에 흔히 나오는 평범한? 다인종-다구성? 틴에이저 친구 그룹에 불과하다.

계속 까서 좀 미안하긴 한데, 번역가의 말과는 또 달리 수많은 복선들이 회수되지도 못했으며, 큰 음모의 냄새를 풍기던 사건의 본질이 단순한 클리셰에 불과했다는 점과 전형적인 헐리우드 영화식 마무리 (악인과 총으로 대결 후 경찰이 오고 그간의 문제가 다 해결!) 역시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결국 등장인물, 설정, 배경, 플롯, 구성 그 모두 '다 어디서 본듯한' 올드 스쿨 클리셰들이라, 또 한번 미안하지만 번역가의 말과 달리 데뷔작의 냄새가 풀풀 풍긴다.

하지만, '어쨌든 막은' 마무리 투수처럼, 장르소설은 '어쨌든 재밌으면' 된게 아닌가. 이 책은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놀라운 글쓰기 능력 덕에 상당히 재밌다.다 아는 얘기고 알것같은 결말인데, 어서 빨리 다음 챕터, 다음 페이지를 넘기고 싶게 만드는 스토리 텔링이라는 묵직한 한방을 가진 작품이다.

국적을 불문하고 자극적인 소재나 생각지도 못한 트릭과 구성으로 승부하는 작품들이 대부분인 현실에서, 킹 할배처럼 오로지 '이야기의 힘'으로 독자들의 관심과 흥미를 영상으로 부터 종이책으로 끌어오는 흔치 않은 작가 될 수 있을지 조심스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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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밤의 여자들
세라 페카넨 지음, 김항나 옮김 / 반타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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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

전형적인듯 하면서도 독창적인 영미식 도메스틱 심리 스릴러다. Gone Tonight 이란 원제목과 번역제목을 보니 '나를 찾아줘'가 생각났는데, 또한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이 책을 특별하게 만드는 점은 '정상적인' 주인공들간의 심리 적 긴장감을 그린다는 점과 그 주인공들이 부부가 아닌 세상에서 가장 믿고 의지하는 관계인 '엄마와 딸'이란 점이다.

보통의 도메스틱 스릴러들이 남녀간 신체적 능력차이에서 오는 저항할 수 없는 폭력에 대한 공포를 그렸다면, 이 책이 자아내는 긴장감의 대부분은 딸에게 숨겨왔던 엄마의 과거 비밀과 그 비밀을 숨기고 거짓말을 해온 엄마를 믿을 수 없게된 딸의 심리상태에서 비롯된다.

때문에 엄마 루스와 딸 캐서린의 이야기가 교차로 진행될수록 독자마저 엄마가 혹시 괴물(사이코패스)은 아닌지 믿을수 없는 화자인지 혼란에 빠지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이 혼란의 지점이 훌륭한 심리 스릴러와 답답한 통속 소설?을 가르는 경계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정신이 불안정한 주인공들이 스스로는 물론 독자까지 카오스 상태로 몰아가다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하는 대부분의 '심리 스릴러'를 매우 안좋아하는데 이 책은 이 혼란을 현명하게 빠져나간다.

즉, 엄마가 해온 이상한 행동들이 단지 정신적인 불안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충분한 개연성이 있음이 밝혀지고, 각종 복선들도 준수하게 회수되면서 다소 할리우드식이긴 하나 사이다스러운 괜찮은 결말을 보여준다. 결말이 통속적이라 미안했는지 서늘하게 더한 에필로그의 킥도 좋았다.

작가의 뛰어난 필력덕에 술술 잘 읽히는 준수한 스릴러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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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A 그리고 좀비 - 제9회 ZA 문학 공모전 수상 작품집
배예람 외 지음 / 황금가지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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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국내 앤솔러지이자 단편집이 황금가지에서 (고맙게도!) 계속 출간하고 있는 ZA문학상 수상 작품집이다.

좀비 자체는 징그럽기도 하고 그닥 새롭지도 않아 별로 안좋아하는데, 좀비로 인해 만들어지는 아포칼립스 또는 포스트 아포칼립스적의 분위기와 사회상이 다양한 작가들의 개성있는 필치로 그려지는 점이 매번 새롭고도 재밌다.

특히나 재밌게 봤던 지난 7, 8회 수상 작품집 '좀비 낭군가'를 포함한 이전 작품들이 전통적?인 좀비 영화, 소설의 문법에 따라 사건 발생 이후의 사회상이자 인간 군상들의 어떤 외형적인 모습을 엔터테인먼트에 중점을 두고 긴박하게 그려냈다면, 이 작품집은 거의 완전히 느낌이 다르다.

개인적으로 느낀 이 작품집의 테마는 '인간'과 '가족'이다. 책에 실린 네 편의 단편들은 하나같이 좀비 발생이후의 사회적 혼란을 그리기 보단 그 사건으로 인해 드러나는 인간성 상실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즉, 기존의 다양한 작품들이 좀비 발생 이후에 뒤집어진 사회의 문법덕에 인간성이 '잠시'훼손되었다 (해피엔딩을 통해) 복구되는 과정을 그린다면, 이 작품집은 이미 이 잔인한 사회 속에서 상실되어버린 인간성(우리는 그런지도 인식하지 못한)의 민낯이 좀비라는 촉매제 또는 매개체를 통해 불편하게 드러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특히, 이 과정에서 자신과 가장 가까운 '가족'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깊은 고뇌가 이 작품집의 독특한 개성이다.

액션 스릴러 영화라면 좀비에 물린 또는 좀비떼에 같혀 뒤처진 가족에 대해 오열하고 슬퍼하긴해도 그 슬픔은 잠깐이다. '산 사람은 살아야되므로' 훌훌털고 나간다면, 이 작품집에선 좀비가 된 이후에 그렇게 쉽사리 털어버리지 못한, 남겨진 가족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어려운 결정을 요구한다.

네 개의 작품 모두 이런 깊은 철학적, 문학적 고민을 바탕으로 쓰여져 있기에, 채 200페이지도 안되는 작은 책이지만 분위기가 상당히 무거울 뿐 아니라 가독성이 그리 높진 않다.

얼마전 읽었던 '괴물 요리사'가 엔터테인먼트적 관점에 충실하면서도 한 사건을 다양한 시각에서 보는 신선한 시도를 했다면, 이 작품집은 보다 문학적 충실도를 높인 입장에서 다양한 사건을 하나의 시각으로 분석한듯한 느낌을 주었다.

더이상 좀비로 만들 수 있는 이야기가 있을까 싶은 현실에서 다른 의미로 놀라움과 새로움을 준 이야기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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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명성아파트
무경 지음 / 래빗홀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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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명성아파트(무경, 래빗홀)
#서평단

믿고 보는 무경작가가 다시 한건 해냈다. 본인 스스로 '역사적 고증에 집착하여 하나하나 따지던 고질을 놓고 편안하게 썼다'고는 하지만 마치 1939년 경성에 와 있는듯한 생생한 시대감과 공간감을 느낄수 있는 '무경 유니버스'의 신작이다.

이 작품은 흑백요리사2 결승전의 최강록 음식같다. 겉으로 보기엔 일제 강점기 경성의 아파트를 배경으로 하는 소박한 이야기 같지만, 그 안에 작가가 독자를 위해 세심하게 준비해 놓은 이스터 에그들이 가득하다. 아니 어떤 장치들은 단지 재미가 아니라 이 작품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필수 요소이기에 이스터 에그가 아닌 퍼즐조각이라 해도 되겠다.

먼저 이 작품은 작가가 그간 잘해왔던 두 가지를 버리고 시작한다. 하나는 악마로 대변되는 어두우면서 냉소적인 작중 분위기이며, 다른하나는 작가의 정체성인 '부산'이다.

작품의 화자가 (비록 똘똘하다고는 하지만) 열두세살의 어린 여자아이이자 식모인 '입분'이기에 작품의 분위기는 마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처럼 풋풋하다. 또한 작가가 작품초반 별다른 사건을 일으키지 않고 1939년 경성의 분위기와 명성 아파트의 인물들을 차분히 묘사해 나가기에 언뜻보면 미스터리보다는 역사소설 같은 느낌도 든다.

하지만 무려 130여페이지 가까이 공을 들인 세계관은 첫 시체 등장이후 139페이지부터 시작되는 2장부터 빛을 발하게 된다.

독특한 아파트의 구조부터 개성 넘치는 인물구성과 작위적인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발언에 이르기까지 마치 무언가 수상쩍고 위험한 분위기가 형성되는데, 영특하지만 아직 세상경험이 부족한 입분의 시선에서 하나하나 사건들이 이해되고 정리되어 나가는 재미가 의외로 쏠쏠하다.

후반부의 힘이 좋은 무경작가답게 탄탄한 중반부 이후 반전과 재반전으로 이어지는 충격적인 결말은 상당히 인상적 이었으며, 산뜻하면서도 차기작의 여운을 살짝 남기는 에필로그까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작가가 고증에 힘을 뺐다고는 하지만 작품의 구성 자체에는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는 전개였다.

'멋진 집이지만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다 멋진것 같진 않다'는 캐치프레이즈와는 반대로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더 멋지게 느껴지는 좋은 작품이었다. 차기작은 또 어떤 새로운 시도로 독자들을 놀라게 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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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프네를 죽여줘
플로랑스 멘데즈 지음, 임명주 옮김 / 반타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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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프네를 죽여줘(플로랑스 멘데즈/임명주, 오팬하우스)
#서평단

출판사 책 소개대로 그야말로 '광기와 유머가 동시에 번뜩이는 사이코 범죄 스릴러'다. 이 소개만으로도 난해할것 같은 느낌인데 무려 프랑스 소설이라 난해함이 배가된다. (그러고보면 베르베르옹은 참 글을 쉽게 쓴다!)

최근 우리나라 정부에서 만든 '혐오를 멈춰 주세요' 광고를 본 적 있는데, 이 소설은 점점 증오와 광기, 혐오와 폭력에 물들어가는 현대사회를 향한 프랑스식 블랙 코메디로 읽힌다.

이 작품은 자살에 실패한 다프네란 여자가 다크웹에서 자신을 진짜로 죽여줄 살인청부업자를 찾다 초보 청부업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결국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다룬다.

유명 코메디언이자 사회운동가라는 작가의 이력답게 때로는 이사카 고타로 같은 기괴하고 엉뚱한 발상으로 살인, 강간, 학대같은 끔찍한 이야기들을 유쾌하게 풀어내며 프랑스사회에 만연한 남성 우월주의와 인종차별, 약물중독 등의 사회문제까지 유려한 필체로 툭툭 건들고 지나간다.

'이 소설의 모든 페이지를 사랑한다'는 프랑스 독자들처럼 이 소설에 깊이 공감할 수는 없었지만, 우타노 쇼고의 '밀실 살인게임'처럼 다크웹 커뮤니티의 각종 사이코패스, 살인마들이 펼치는 좌충우돌 블랙 코메디를 보는 재미는 나름 쏠쏠했다. 장르적 기법으로 사회문제를 잘 풀어낸 괜찮은 문학작품을 읽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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