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실종자
질리언 매캘리스터 지음, 이경 옮김 / 반타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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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서평단
시간의 마법사, 시점의 마술사.

'잘못된 장소, 잘못된 시간' 단 한편으로 국내 독자들의 기억속에 그 이름을 단단하게 각인시킨 질리언 매캘리스터의 8번째 작품이자 국내 두 번째 출간작이다.

전작의 충격이 원체 컸기에 이 작품에 거는 기대도 컸는데, 놀랍게도 300여 페이지 까지 너무도 평범한 영미권 심리 또는 도메스틱 스릴러 정도여서 또 다른 의미로 놀랐다.

할런 코벤의 실망스러웠던 최근작 '네가 사라진 날' 정도의 느낌으로 별다른 번뜩임없이 실종된 젊은 여자를 찾는 경찰과 애끓는 부모의 마음 정도를 그리고 있기에 작가가 전작의 성공으로 매너리즘에 빠졌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작가의 말에서 스스로 밝힌 '완성을 위해 심혈을 기울인 소설 중간 부분의 반전', '8개의 초안을 검토하는등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 플롯 구성'이 빛을 발하는 순간부터 이 작품은 그야말로 알을 깨고 나와 환골탈태를 한다.

그림자가 있기에 빛이 더 밝아 보이듯, 평범함을 가장한 전반부(라기엔 좀 길긴하다) 덕에 후반부의 반짝임이 더 빛난다.

사실 그 빛나는 중간의 반전 이전에도 미스터리 팬들이 살짝살짝 느낄 위화감의 층은 이미 켜켜이 쌓여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전체적인 플롯이 너무 평범하고 답답하기에 이 위화감들을 단번에 해소하는건 불가능해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중간 반전 이후 복선이 하나하나 회수되면서 이전의 의문점들 역시 하나하나 해결되가기 시작한다. 사건 진행과 상관없어 보였던 뜬금없는 정보의 조각들과 각종 소화불량 덩어리들은, 반전 이후 작품을 다층적 layer를 가진 고품격 요리로 승화시켜 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중반부 이후 작가는 그야말로 물을 만난 고기처럼 시간과 시점을 자유롭게 이동해가며 물 흐르듯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간다. 실제로 반전 이전에는 각 챕터의 길이가 다소 긴데, 중후반부는 짧게는 7~8페이지씩 끊어가며 두세명의 시점에서 사건을 다각도로 조망해 주기에 상당히 복잡한 플롯임에도 쉽고 빠르게 이해가 된다.

좋은 작품을 판단하는 기준이 전체적인 균형감인지 다 읽고 난 뒤의 상쾌함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작가의 작품은 우리가 많은 작품에 대해 얘기하는 '결말의 아쉬움'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 하다.

초중반의 지루함을 조금만 덜어냈으면 좋겠다싶지만 그래도 단 두 작품만으로 개인적인 취향에서는 현 시점 영미권 최고의 미스터리 작가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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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 맨
스티븐 킹 지음, 최세진 옮김 / 황금가지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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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도서협찬

처음부터 끝까지 박진감넘치고 에너제틱하고 열정적인 동시에 하드보일드하게 쿨한 디스토피아 sf소설.

영화 아일랜드를 떠올리게 하는 2025년도의 전체주의적 사회를 배경으로 헝거게임과 같은 죽음의 게임이 개최되고, 골든 슬럼버의 주인공처럼 주인공이 갖은 기지를 발휘하고 크고 작은 운의 도움을 받아 게임을 스스로 끝내는 이야기다.

40여년전에 쓰였다는 이 작품은 바로 지금 2025년을 배경으로하지만 위대한 sf 소설가듯이 그러하듯이 '미래의 기술'을 예측하기 보다 '미래 사회와 인간'을 적확하게 그려낸다.

죽음의 게임이라는 극적 과장이 있긴하지만 (능수능란한 수다쟁이 이야기꾼인 최근 모습과 달리) 거의 하드보일드한 문체로 무정하고 비장한 오늘날의 사회를 그려냈기에 딱히 몇십년전에 쓰였구나 하는 위화감이 없다. 과장좀 섞는다면 2025를 2125로 바꾸면 올해 쓰인 신작인것 같기도.

짧게는 한두페이지 길게는 너댓페이지로 매우 간결하게 분절되어 속도감있게 진행되며, 전체적인 볼륨도 330여페이지 밖에 안되기에 그야말로 책에 푹 빠져들어 주인공의 도전과 여정, 씁쓸하면서도 통쾌한 결말까지 한 호흡에 함께할 수 있었다.

엄청난 반전이나 스케일을 자랑하는 블록버스터는 아니지만, 복잡한 머릿속을 상쾌하게 해줄 진짜 사나이의 속도감 넘치는 도주극이 보고싶다면 강추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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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키메라의 땅 1~2 세트 - 전2권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김희진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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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도서협찬

한때 작가의 작품들을 놀라움으로 따라가던 시절이 있었기에 한동안 외면했던 작가의 신작이 나와 기대감에 가득차 서평단을 신청했고, 생각지도 못한 방향의 놀라움을 느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책에서 엔터테인먼트 소설로서의 재미는 다소 아쉬웠다. 다만 무언가 내 인식의 지평을 강제로 확장시키는 듯한, 거대한 사고실험에 동참한 어떤 장엄함을 경험한 기분이다.

작가의 전작들이 개미로부터 시작해서 인간 개인을 넘어 인류의 미래와 존망, 우주, 신 뭐 이런 식으로 세계관이 확장되어가기에, 이 책은 제목답게 스타쉽 트루퍼스 식의 외계인 정복 외계행성 탐험을 다룬줄 알았다.

하지만 1권에서의 작은 우주공간 에피소드를 넘어서 본격적으로 작가의 사고가 확대되는 2권에 이르러서는 주인공이 창조한 세 혼종들과 호모 사피엔스간의 공존 가능성을 모색하는 과학철학, 사고실험의 영역으로 나아간다.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 끊임없이 인용되는 등 작가가 수십년간 구축해논 베르베르월드?의 세계관과 철학이 작품 곳곳에 스며있기에 팬이라면 반갑겠지만, 한편 호모사피엔스라는 인간의 종의 존속과 멸망이라는 어렵고 두렵기도한 담론을 다루기에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물론 천재적인 이야기꾼인 작가는 이러한 철학과 '사상'을 독자에게 강요하진 않고 크고작은 에피소드에 잘 녹여내었기에 고급 교양과학소설을 읽는 느낌도 난다.

옮긴이의 말을 보니 작가가 자기 소설을 예언소설이라 부른다는데 마치 '스페이스 오디세이'같은 소설이 미래를 상당히 그럴듯하게 예측한 것과 비슷한 느낌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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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수집가
오야마 세이이치로 지음, 윤시안 옮김 / 리드비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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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
Simple is the best. 영리한 작가의 깔끔한 단편집이다.

13년전 책이라 그런지 작가가 의도한바인지 모르겠지만, 쓸데없이 복잡하고 화려한 장식과 스킬을 걷어내고 '밀실추리' 그 자체의 즐거움에 집중했다. 얼음위에 비싼 과일을 산처럼 얹어놓고 10만원에 파는 요즘 호텔빙수가 아니라 팥과 떡, 미숫가루만 툭 던져놓고 통조림 과일 몇개로 장식한 옛날식 팥빙수를 먹는 느낌이 들기도.

작품의 전개방식은 지극히 단순하다. 초창기 히가시노 게이고처럼 간단하고 이해하기 쉬운 상황설정을 통해 등장인물의 서사를 요약하고 밀실을 만든다. 경찰이든 누구든 등장해서 그 밀실의 완성도를 설명해주고 다같이 좌절에 빠진다. 점점 속이 더부룩해질거같은 독자가 고구마를 한입 먹기도 전에 '밀실수집가'가 불현듯 등장하여 단번에 사건을 해결하고 불현듯 사라진다.

이처럼 단순한 전개방식 사이사이에 숨어있는 작가의 영리함이 이 작품집의 '킥'이다. 잘못하면 기시 유스케의 '유리망치' 처럼 작가의 천재성과시나 개연성 떨어지는 물리트릭으로 독자를 머리아프게 하지 않고, 시대적 장소적 배경을 적절히 활용하여 독자의 심리적 허를 찌른다.

5개의 단편이 각각 1937년, 53년, 65년, 85년, 2001년을 배경으로 하는데, 현재 시대라면 코웃음칠법한 트릭과 사건의 진상이 스마트폰도, cctv도 심지어 tv도 없었던 당시 시대상과 맞물리니 그럴듯하게 맞아떨어진다. 즉, 밀릴추리소설 답지 않게 개연성과 핍진성이 상당히 확보되는 느낌이다.

물론 모든 작품이 다 완벽하진 않고 다소 억지스러운 부분이 없진 않다. 하지만 작가는 이 틈새를 인위적으로 채우려하기 보단 일종의 초월적 존재, 초인적 존재로서의 밀실수집가라는 슈퍼히어로를 통해 꽤나 부드럽고 상쾌하게 위화감을 메꾼다.

나중에 가면 트릭을 될대로되라 싶고 얼렁 밀실수집가가 등장하는 장면을 보고 싶기도 한데, 마치 만화영화에서 주인공의 기나긴 변신장면을 악당들이 방해하지 않고 기다려주듯 독자와 등장인물들이 다소 억지스러울수도 있는 밀실수집가의 단정적 추리를 박수치며 반겨주는 마법적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

김전일 보다는 코난 느낌으로, 치밀하고 칼같은 논리보다는 요소요소에 숨어있는 작가의 창의성과 재치, 작품간 연계성에 보다 방점을 두면 더 즐거운 독서가 될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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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팝니다
미시마 유키오 지음, 최혜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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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서평단

실존주의로 난해하게 시작해서 엔터테인먼트 소설로 숨가쁘게 진행하다 교묘한 사회적 정치적 메세지로 끝나는 이야기. 반세기전에 쓰여졌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세련된 문체와 속도감 있는 이야기 전개를 보여준다.

에도가와 란포나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들을 읽을때면 좋게는 예스러운 시대감, 나쁘게는 고루함과 지루함이 느껴졌는데 이 작품은 그렇지 않았다.

마치 뽀로로가 한국적인 정서에 국한되지 않고 보편성을 바탕으로 전세계 아이들에게 다가가듯이, 이 작품 역시 전후 일본 사회 비판이라는 뚜렷한 목적을 가짐에도 시대적 공간적 배경에 제약받지 않고 인간 그 자체에 집중해서 이야기를 전개해나가기에 보편성을 획득한다. 덕분에 일본에서 2016년 역주행 베스트셀러가 될수 있었나 싶기도.

신문 글자들이 갑자기 바퀴벌레로 보여 자살을 결심한다는 초반부는 마치 변신, 죄와벌처럼 난해한 느낌도 살짝 든다.

하지만, 주인공이 목숨을 판매하게 되고 여성들의 도움과 본인의 기지를 통해 수많은 죽음의 위기를 벗어나게 되는 중후반부의 엔터테인먼트적 이야기전개는 작품해설의 비유처럼 007 제임스본드 같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007보단 로런스 블록의 '살인해드립니다'와 이사카 고타로의 '사신치바'가 생각났는데, 불가능해보이는 미션에서 거의 하드보일드적 쿨함을 바탕으로 살아남는 모습과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없는걸 넘어 거의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하는 태도가 치바처럼 코믹해보이기도 했다.

탐미주의, 유미주의 등의 말을 많이 들어서 작가의 작풍이 히라노 게이치로처럼 유장하고 현학적일까 걱정했는데, 유려함은 문장이 아닌 세련된 이야기 전개에서 느껴졌으며 문장 자체는 깔끔하고 차분하며 정제된 느낌이었다.

탐미주의라면 매 에피소드마다 반드시, 굳이 따라붙는 애정행각과 여성의 신체에 대한 동경이 가득한묘사 정도?였는데, 이 역시 필립 말로처럼 아몰라 난 그냥 인기있는 남자야가 아니라 결말부에서 그 이유를 나름 설명해준다.

온고지신이란 이런거구나 싶을 정도로 새로운 독서 경험이었다, 작가의 정치적 입장이 다소 아쉽긴하지만, 문학 그 자체로만 본다면 다른작품도 찾아봐야겠다 싶을 정도로 여러모로 천재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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