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권별로 각양각색의 재미를 전해주는 캐드펠 시리즈. 2권이 고전모험소설의 꿈과 낭만을 제공했다면, 3권을 수도원에 찾아온 한 영주가 독살당하는 사건을 통해 범인을 추적하고 밝혀내는 전형적인 고전 미스터리의 재미를 준다.특히 이번편은 캐드펠의 '탐정'으로서의 면모가 두드러져 세 권 중 가장 추리소설적이라 할만하다. 심지어 스스로의 명예를 (할아버지의 명예는 아니지만 김전일 느낌으로다가) 걸고 범인을 밝혀내겠다고 선언까지하는 당당한 캐드펠의 모습을 볼 수 있다.살인도 한건이고 용의자도 제한적이지만 330여 페이지가 어떻게 넘어가는지 모르게 재미가 있다. 이는 cctv와 과학수사로 삽시간에(혹은 허탈하게) 범인을 잡아버리는 요즘 경찰수사물과 달리 오로지 관찰과 추론, 직관에 의해서 한발한발 범인에게 접근해 가는 끈적끈적한? 수사과정만이 줄 수 있는 매력 덕일 것이다.선과 악은 상황에 따라 상대적으로 결정된다는 캐드펠의 가치관 처럼 범인을 찾아낸 이후의 처리 역시 다른 추리소설과 크게 차별화된다. 중세인의 낭만일지 무법적-초법적 가치관일지는 모르겠지만 범인에 대한 단죄보단 모든 등장인물들이 행복해지는 결말을 추구하는 캐드펠의 대담한 결단도 신선했다.
다소 과장해서 말하자면 마치 '왕좌의 게임'을 보는 느낌이었다. 1권의 장점은 발전시키고 아쉬운 점은 대폭 보강했다.1권에서 다소 모호했던 역사적 배경을 1138년 잉글랜드의 왕권을 둘러싼 스티브왕과 모드황후의 대립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통해 구체화 함으로써 현실감 뿐 아니라 긴장감과 스릴까지 얻어냈다.특히, 주인공이 소속된 수도원이 소재한 성이 함락당하기 직전 직후를 시공간적 배경으로 설정하여 캐드펠 수사에게도 직접적인 전쟁의 공포와 위협이 미치게 함으로써, '여우의 계절'이나 '흑뢰성'에서 맛봤던 전쟁터의 쫄깃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메인 스토리는 성을 점령한 스티븐 왕의 명령으로 처형된 94명의 포로에 몰래 더해진 한 구의 시체에 얽힌 비밀을 찾는 이야기지만, 미스터리보단 낭만적인 역사 모험소설에 가깝다.옛날 이야기 답게 순수와 순진 사이를 오가는 정의롭고 선량한 젊은이들의 사랑과 모험이 주를 이루기에 읽기 편하고 흐뭇한데다, 1편에서 반쯤은 방관자로 머물렀던 캐드펠 수사가 적극적으로 활약하며 온갖 지혜를 짜내 계속되는 위기를 헤쳐나가기에 지루할 틈이 없다. 그 과정에서 언뜻선뜻 드러나는 캐드펠의 지혜와 판단력 뿐 아니라 인간적인 따뜻한 매력도 반갑다.결말부 역시(옛날 이야기답게 우연에 기대는 다소 순진한 측면은 있으나) IT기술이 개입되지 않은 순수한 직관과 추론에 바탕한 추리에다 손에 땀을 쥐는 기사들간 일대일 결투 장면에 이르기까지 다른 어떤 책에서도 볼 수 없는 진귀한 구경거리들을 선사해 준다.개인적으로 신기할 정도로 1권에서 아쉬웠던 점이 보완된 2권이었다. 한때 인기를 끌었던 '팩션'을 아주 좋아했는데 요즘은 많이 없어서 아쉬운 참이었는데, 이 작품은 팩션보다 더 이전에 어렸을 때 재밌게봤던 옛날 얘기느낌이라 더 좋았다.
출판사에서 써 놓은 매우 적절한 책소개처럼 이 책은 중세 수도원을 배경으로 하기에 일견 '장미의 이름'과 비견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하지만 이 작품은 "장미의 이름의 엘리티시즘과 달리 인간 군상에 대한 깊은 애정과 인간적인 삶의 통찰이 돋보이며, 고전적 추리소설의 매력이 흘러넘친다."즉, 이 책은 현학적이지 않고 사람냄새 나는데다(뛰어난 고증과 묘사를 통해 중세의 포도주 냄새까지도 나는듯 )미스터리적으로 진심이다.이 책과 비슷한 작품으로는 오히려 장미의 이름보다는 체스터턴의 '브라운 신부' 시리즈가 떠오르는데,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따뜻한 분위기에 편안하게 잘 읽히는 가독성 뒤에 숨겨진 인간의 본질에 대한 놀라운 통찰 같은 점을 유사점으로 들 수 있겠다.하지만 앞서 언급된 작품들과 차별화되는 이 작품만의 독특한 점이라면, 온갖 풍랑을 겪고 심지어 십자군에 까지 참전한 적 있는 주인공 캐드펠이 중세 신앙과 인간의 본질을 다소 회의적, 중립적, 제3자적 시각으로 본다는 점이다.웨일스의 시골 마을에서 무명의 성녀의 유골을 옮겨와 수도원의 위상을 높이려는 로버트 부수도원장의 야심이 초래한 비극적인 살인 사건을 그린 1권의 제목이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인 이유와 그 결말 역시 풍자와 해학이라는 작품의 특성을 잘 드러낸다.불행인지 다행인지 1권에서 캐드펠 수사가 브라운 신부만큼 본격적인 추리력과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진 않고 촉매나 윤활유 정도에 머물기 때문에 그의 캐릭터 파악이 아직은 어렵다.즐거운 마음으로 여름 책태기를 깨줄 2권으로 넘어가 본다.
그 어떤 sf와도 다른, 아니 굳이 sf라는 틀 안에 가두고 싶지 않은,그저 '이야기'라 칭하고 싶은 세개의 멋진 단편을 모아놓은 책.일단 단편들의 줄거리는 가벼운 sf물 느낌이다. 타임머신을 통해 죽음을 앞둔 친구를 구하고, 초능력을 통해 국정원이 만든 비밀감옥으로부터 탈출하며, 인간에 대한 개의 무한한 사랑을 동력으로 우주를 구한다(늑대인간의 도움을 받아).하지만 이 고급진 소설을 이렇게 폭력적으로 줄이는건, 프로축구 경기를 '다 큰 어른들이 서로 공 가지고 놀겠다고 땀뻘뻘 흘리며 뛰어다니는것'으로 요약하는 것과 같다. 그 바보같은 어른중 호날두라는 아저씨는 마흔 넘어서도 정신못차리고 노는데도 연수백억을 버는데도 말이다.이 책의 고급진 느낌은 잘 쓴 장르소설에서 느껴지는 쾌감이라기 보단 '순문학' 에서 느껴지는 위태위태한 정갈함에 가깝다.심완선 평론가가 지적했듯이 세편의 주인공들 모두 지나치게 감수성이 예민하고 스트레스를 잘 받는, '자신에게 매몰되는' 전형적 순문학 주인공 유형이기에 지켜보기가 불안하지만 그 불안함이 고급진 문장과 잘짜인 구조속에 안정적으로 가둬져 있다.또한, '타는 목마름으로'를 외치는 듯한, 민주주의를 논하며 대학가 술집에서 막걸리 한사발을 나누는 듯한 어찌보면 지금 시대분위기와 다소 어긋나는듯한 갬성도 이러저러한 서브컬쳐의 활용과 무거울만해지면 그 무거움을 덜어주는 소설적장치들 덕에 재출시된 진로 소주처럼 레트로하지 올드하진 않다.이러한 완급조절은 거의 언어의 마술사가 아닌가 싶은 작가의 능수능란한 글솜씨 덕일듯 하다. 그야말로 술술 읽히는 비단결같은 글의 질감덕에 sf적 가벼움과 사회비평적 무거움사이의 균형감이 잘 유지되며 다른걸 다 떠나 '이야기로서 재미가 있다.''감명깊었고 감동적이었으며 재밌는데다 뒷맛까지 상큼한,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추천할만한 책이다.
별생각 없이 집었다가 생각보다 괜찮아서 놀랬던 '낮술'. 힐링과 음식을 결합한 푸드 힐링스토리 장르의 마법사 하라다 히카의 신작이다. 배경이 되는 도서관은 작고한 작가들이 기증한 장서로 운영되며 밤에만 문을 여는 일명 '밤의 도서관'이다. 이 곳의 직원들, 손님, 기증자 등 여러 인물들과 관련된 다양한 인생사가 그려진다.음식 묘사, 특히 음식 자체의 질감-색-맛 보단 그 음식을 즐기는 인물들의 심리묘사와 분위기 묘사에 능한 작가이기에 다른 작가들과 차별화되는 힐링 소설을 써냈다.이러저러한 이유로 삶에 지쳤을때 맛있게 읽기 좋은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