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 조립체에 바치는 찬가 수도승과 로봇 시리즈 1
베키 체임버스 지음, 이나경 옮김 / 황금가지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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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의 시 처럼 운율넘치는 문장에 덱스와 함께 숲속을 거닐고 별을 바라보며 야영하는듯한 편안하고 희망찬 내용이지만, 한문장 한문장에 담긴 작가의 성찰을 가볍게 날려 보낼 수 없기에 책을 넘기는 손길이 무거워지고 언어가 입가에서 맴도는 책이다.

책에서 '당신이 방금 걸어온 그 짧은 걸음 아래에서 얼마나 많은 작은 생물들의 죽음이 있었는지 아느냐'라고 말 하듯이 인간과 자연, 생물과 비생물이 공존하기 위해 우리가 얼마나 수많은 인간중심적 편견과 아집, 탐욕을 극복해야 할 지 생각하게 한다.

솔라펑크란 장르가 생소하긴 한데 희망적인 작품의 분위기만 제외한다면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다룬 명작 소설 '더 로드'가 떠올랐다. 비록 수도사 덱스의 여정이 물질적 결핍과 생존의 위기에서 비롯되지는 않았지만 배고픔 못지 않은 영적 결핍의 고통과 정신적 고갈의 위기에서 탈출하려는 몸부림이기에, 그의 여행은 '더 로드'의 생존을 위한 여정못지 않게 엄숙하면서도 숭고하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모스캡의 편견없는 태도와 삶의 자세?에 묘하게 힐링이 됐다. '죽음'과 '순환'을 받아들이는(야생조립체라는 제목은 다른 로봇이 사멸하면 그 부품의 잔재가 다른 로봇에게 계승되어 공장이 아닌 자연에서 조립되는 로봇을 뜻한다) 이 철학적 로봇은 '아프니까 청춘이다'식의 위로가 아니라 '나는 당신처럼 아픔을 느끼진 못하지만 당신이 아파하고 있다는건 알 수 있습니다'식의 묘한 로봇적 공감?을 해준다.

감상평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로봇 모스캡의 묘한 위로에 이기적인 떼쟁이 덱스가 변해가는 모습을 함께 감상해 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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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동검밖에 팔지 않는 것입니까?
에프(F) 지음, 천선필 옮김 / ㈜소미미디어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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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라 불리는 RPG 게임의 주연이 아닌, 조연에도 못미치는 거의 무생물 수준의 npc(non-player character)를 주인공으로 삼는 신박한 판타지 소설이자, 재미반 교양반으로 이루어진 경제 교양 소설이다.

용사가 게임을 시작하는 마을의 도구점에서는 최상급 무기와 방어구를 살 수 없다. 드래곤 블레이드 같은 최강의 무기를 들고 시작한다면 마왕까지 이르는 그 험난한 길이 훨씬 편해지며, 용사들의 생존확률도 훨씬 높아질 텐데 말이다.(이 세계에서는 마왕에게 도전한 용사가 전부 사망한다)

동생이 용사로 선정되어 마왕을 토벌하기 위해 출정하게 되자 견습상인 마루는 동생에게 최상급 무기를 구해주고자 하나, 상인길드가 정한 규칙으로 인해 상점에선 동검밖에 팔지 않는다고 한다.

마루는 이런 불합리한 규칙에 의문을 갖고 시스템을 운영하는 상인길드를 찾아 모험을 떠나면서 각종 경제원리들을 몸소 배우게 되며, 결국 이 세계가 숨기고 있던 비밀에 도달하게 된다.

중국식 양산형 모바일 게임들이 망쳐놓은 mmo rpg가(요즘엔 무슨 5성뽑기 1000회 이러면서 렙1에 드래곤블레이드를 들고 시작해버린다..) 아닌 그때 그 시절의 롤플레잉 게임. 소위 레벨 노가다를 강요했고 불편하고 불친절하지만 왠지 정감이 가는 도트 그래픽의 jrpg 갬성이 이 책의 기본적인 세계관을 이룬다.

이 갬성을 공유한다면 이 책은 거의 어린시절 앨범 보듯이 울고 웃으면서 행복한 마음으로 볼 수 있다. 거기다 그때 게임하면서 부모님께 혼났던 억울함을(쓸데없이 게임하지말고 공부해!) 독점, 담합, 시장경제 원리 등의 경제학적 소양으로 보상받을 수 있기에, 즉 게임을 통해 공부도 할 수 있기에 일석이조다.

하지만 옛날 rpg의 감성을 모른다 해도 전혀 상관이 없다. 커리어 컨설턴트이자 3억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한 인기 유튜버인 저자가 전문지식과 화려한 글빨로 게임을 모르고 관심도 없는 독자를 용사와 마왕, 모험이 존재하는 세계로 자연스럽게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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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의 비극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문승준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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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치넘치슨 일상미스터리에 담긴 씁쓸한 사회문제. 요네자와 호노부 버전의 하야부사 소방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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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모토 산포는 내일이 좋아 무기모토 산포 시리즈
스미노 요루 지음, 이소담 옮김 / ㈜소미미디어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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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의 작가 스미노 요루가 쓴 힐링 소설.

아.. 세상엔 이렇게 좋은게 많았지. 하는 생각이 새삼들게 해주는 책. 각종 기사와 댓글, 게시글들에서 혐오와 분노가 범람하는 시대에 12개의 '무기모토 산포는 ㅇㅇ가 좋아'로 이루어진 이 책을 읽다보면 지극히 당연한 말이지만 행복은 멀리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글의 소재도 새로 들어온 도서관 후배, 미팅, 문방구 탐방, 옆집언니랑 친해지기, sns, 타투, 설날음식, 스키야키, 산토리 하이볼 등 대중없는데, '산포의 가치관은 고정되어 있지 않기'(본문) 새로운걸 틀리다고 여기지 않으며, 다름을 신기하고 재밌게 받아들인다.

"세계는 내가 원하면 속공으로 늘어나기"에 좋아하는 것도 끝없이 늘어나고 하고 싶은것도 많다. 비록 잘하진 못하지만 "애초에 산포는 매일같이 실수를 반복하며 살아가므로 회복이 느리면 진작에 어디선가 수치사했다." 라는 표현처럼 실수하고 회복하며 다시 열심히 좋아한다.

푸른색의 상큼한 표지와 더불어 마음을 청량하게 만들어준 힐링독서였다. 산포처럼 세상을 다시 한번 열심히 좋아해보고 싶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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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 - 개정판
마타요시 나오키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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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콤비 개그(만자이/만담)로 데뷔한 작가가 10여년에 걸친 무명생활 동안 느낀 가난과 자괴감, 이상과 현실의 괴리, 성공에 대한 열망과 개그에 대한 열정을 담아 써낸 자전적 소설.

긴 무명시절 동안 헌책방을 드나들며 한 2천여권의 독서와 (할게 없어서 했다던!) 매일의 길고 짧은 글쓰기, 산책을 통한 사유가 도움이 되었는지, 이 진솔하고 아름다우며 감동적인 데뷔작은 2015년 일본 최고 권위의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

(2016년 기준 260만부가 팔려 80년 역사의 역대수상작 단행본 판매량 최고치를 기록-옮긴이의 말)

'이보다 더 재웠다가는 문학 냄새가 지나치게 짙어져 버리는 아슬한 지점까지 잘 눌러둬서 그야말로 한창 읽기 좋을 때'라는 한 심사평이 더 없이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별다른 플롯이나 기교없이 담담하게 개그계에 투신한 스무살 젊은이의 꿈과 희망, 좌절과 도전을 이야기하는데, 그 진솔함과 순수함에 반하여 글에 몸을 맡겼다.

(일본에서 나름 인기있다는) 현직 개그맨의 자전적 소설이다 보니 (때론 이해할 수 없는 감성이긴 해도)그간 봐왔던 일본 소설의 유머중 가장 재밌었고 자주 터졌다.

'피상적인 묘사, 단조로운 반복'이라는 엄한 심사평도 있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꾸미지 않은 솔직한 표현들과 의외로 고급진 묘사, 곱씹어볼만한 경구들로 인해 '아슬아슬한 수준의 문학 냄새'가 나는점이 마치 수십년 이어온 동네 노포 맛집처럼 좋았다.

모든 좋은 소설에는 훌륭한 기승전결이 있듯이 이 책도 더 없이 훌륭한 마무리로 화룡점정을 찍는다. 주인공의 찬란하게 아름다웠던 도전은 "모두가 웃으면서 울었다. 긴 세월을 들인 이 무모한 도전으로 나는 인생을 얻었다고 생각한다."라고 요약되는 작가가 예비해논 멋진 소설적 장치를 통해 마무리 되며, 작중의 관객과 독자를 동시에 울린다.

'살아 있는한 배드엔드라는건 없다.우리는 아직 도중이다. 이제부터 속편을 이어갈 것이다' 라는 불꽃과도 같은 작가의 열정이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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