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지에 메디컬 스릴러의 여왕으로 적혀있으나 개인적으로는 안타깝게도 처음 접한 작가 테스 게리첸.작가가 추리/스파이 소설계에 얼마를 기여했는지 모르겠지만 외부정보없이 작품 자체만 말한다면, 이 책은 미래에 2000년대 최고의 스파이 소설이자 고전이었다고 꼽혀도 손색이 없지 않을까 싶은 걸작이다.개인적으로 그 유명한 르 카레 작품을 몇 번 시도했지만 좀 지루했고 폴리팩스 부인같은 은퇴자를 다룬 이야기들은 다소 가볍거나 라떼를 과장한 느낌이 있었다. 영화로는 많이 봤지만 책으로는 크게 기억에 남는 스파이물이 없어 아쉬웠는데 이 책은 그 갈증을 단번에 해소해주었다.작가는 제임스 본드와는 다른 스파이물을 쓰고 싶었다는데 오히려 나는 이 책을 보면서 007 시리즈 최고의 작품이라 생각하는 '스카이폴'이 생각났다.(물론 다른007 액션물들과는 결이 다르다)대자연에 둘러싸인 늙은 스파이의 안식처, 그 안식처를 침범하는 과거의 은원, 비밀요원들의 신상공개와 죽음 그리고 특유의 쓸쓸하면서 비장한 분위기까지.과거 최정예 요원들의 나이듦을 인정하면서도 그들의 영혼에 새겨진 기술과 능력에 대한 과장없는 찬미는 은퇴한 스파이를 다루려면 어떻게 글을 써야하는지 알려주는것만 같았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몇 년째 뜨거운 전쟁을 하는 현실에서 '냉전'을 모티브로 한 러시아와 미국 정보부간의 대결이라하면 사실 좀 철지난 감이 없지 않다.하지만 이 놀라운 작가는 자칫 고루할 수 있는 테마를 최신식 글쓰기 기법?인 과거와 현재의 교차배치, 인물시점의 빠른 전환, 인물별로 사족없는 적절한 서사부여, 사랑과 배신, 복수와 반전까지 모두 활용하여 너무도 솜씨좋은 한 상을 차려냈다. 마치 흑백요리사의 이균 셰프가 현대적/미국적 감각으로 전통 한식을 재해석해 냈듯이.후회없는 선택이었다. 정말 재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