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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쓰기의 모든 것 - 가장 비싼 시나리오 작가 95명의 노하우와 실전연습
마딕 마틴 외 지음, 셰리 엘리스 외 엮음, 안희정 옮김 / 다른 / 2022년 6월
평점 :
가끔 서평단 모집글에서 인기 드라마 대본집이 보인다. #나의아저씨 대본집과 #그해우리는 대본집 서평단에 응모했다가 시원하게 미끄러지기도 했다. 내가 울고 웃으며, 설레고 심쿵하며 보았던 드라마가 배우의 입과 행동으로 표현되어 카메라에 담기기 전의 모습이 궁금했다. 특히, 여러 명이 함께 나오는 파트는 인물들 각각의 지문이 있을지, 아니면 베테랑 배우들이 상황에 맞게 알아서 연기하는 건지 알고 싶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이런 내 궁금증이 조금은 해소된 기분이다.
95명의 시나리오 작가들이 소재, 초고, 구조, 주제, 장면, 인물, 주인공, 고쳐쓰기, 계약하기 아홉 가지 항목에 대한 자신만의 노하우와 실전연습 방법을 짧게 소개하고 있어 실제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들에게 꽤 매력적인 책일 것이다.
<앨런 와트> _이야기는 이미 당신 안에 있다.
“글쓰기는 우리가 삶에서 미처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 무언가를 전개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욕구와 관련되어 있다.” _19쪽
그래서 진짜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해 이야기에 대한 ‘생각’, ‘두려움’을 떨쳐내는 실전 연습법을 소개한다.
<크리스티나 M. 킴> _조사를 통해 소재를 확장하자.
해상구조대를 배경으로 한 시나리오를 위해 수많은 책과 영화, 인터넷 검색으로 해상구조 훈련과 기본 지식에 관한 기초를 쌓았지만, 진실하게 쓸 수 있다는 느낌이 오지 않았던 킴은 해상 구조대원인 그레그를 따라다니며 진짜 그들의 일과, 언어, 경험담들을 보고 듣게 된다. 그 과정이 굉장히 흥미로워 보여서 뭔지 모를 열정 같은 게 샘솟기도 했다.
책을 읽다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윌리엄 M. 에이커스는 초고를 쓸 때 개요 작성이 고역이고, ‘마음껏 창작하고 싶은 자유는 레이저프린터로 뽑은 말끔한 개요를 마주하는 순간 원자 크기로 산산조각 날 수 있다’고 말하는데, 마이클 아자퀴는 ‘시나리오를 끝낼 수 있다는 확신을 얻기 위한 최고의 방법은 바로 집필 전 개요를 작성하는 것’이라는 상반되는 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각양각색의 작가들이지만 대부분의 작가들이 입을 모아 ‘작법서의 부정적인 면’을 지적한다. 작법서에 나오는 공식대로 따라 쓰면 판에 박힌 그저그런 시나리오를 쓰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피터 그리브스>는 신랄하게 비판한다.
“나는 시나리오 쓰기 교사들을 절대적으로 혐오하는데, 그들 대다수가 가짜 약장수처럼 보여서다... 이런 멍청이들 때문에 영화 시나리오의 취향과 결이 마치 공장에서 만든 슬라이스 치즈처럼 똑같아지고 균일해지고 있다.” _318쪽
피터 그리브스는 대사에서 상투적 단어들을 걷어내기 위한 실전 연습으로 최고의 동의어 사전과 비속어 사전도 함께 구비하고 상상력을 붙드는 대사를 만들라고 말한다.
<T. J. 린치> _서브텍스트는 맥락 속에서 이해된다.
대사는 자연스럽게 들려야하면서 정보도 전달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지기 쉬운데, 해설을 위장하는 방법 중 하나를 ‘서브텍스트’라고 한다. 서브텍스트는 텍스트 밑에 잇는 것, 누군가의 말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뜻을 말한다. 말로 “나는 지금 불안해”라고 하는 것보다, 다리를 떨거나 손톱을 물어뜯는 등의 행동이 인물의 초조함을 더 강조해주는 것 처럼.
마지막으로 <미셸 월러스타인>이 남긴 글은 완성된 시나리오는 들고 갈팡질팡 하는 새내기 작가들에게 큰 용기와 위로가 될 것 같다.
“에이전트를 찾아내 도움을 받는 비결은 당신이 그들을 찾고 싶은 마음만큼이나 그들도 당신을 찾고 있다는 걸 이해하는 것이다.”_467쪽
장편 소설을 읽을 때마다 '이 긴 스토리를 흥미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인물의 개성을 잘 살리고 장면과 장면, 사건과 사건을 개연성 있게 이어나가는 일이 얼마나 어려울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시나리오는 자연스러운 톤의 대사, 또 대사로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의 분위기까지 고려해야 하며 인물들의 동작, 표정 하나까지 그리듯 써야 하는, 소설과는 또 완전히 다른 형식의 글쓰기였다. ‘시나리오’가 완성되어가는 일련의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으나, 너무 많은 작가의 글을 싣다 보니 좀 더 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없음이 다소 아쉽게 느껴졌다.